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

지난번 예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화제를 가지고 교통했다. 그 화제는 무엇이었느냐? 너희들은 기억했느냐? 내가 다시 한번 반복하겠다. 지난번에 교통한 화제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이다. 이 화제는 너희에게 중요하지 않으냐? 어느 부분이 너희에게는 가장 중요했느냐?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이었느냐,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었느냐? 너희는 어느 부분의 화제에 대해 가장 흥미를 느끼느냐?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에서 너희가 가장 듣고 싶은 화제는 어느 방면이냐? 나는 너희가 이 문제에 대답하기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어디서나 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사실,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체 경영 계획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이 셋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교통한 하나님의 역사에 관한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아주 오래전에 발생한 일이다. 그런 일들은 다 사람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고, 사람에게서 발생한 동시에 하나님의 참여도 있고, 하나님의 발표도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매우 가치가 있고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갓 지은 후, 인류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인류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으며, 인류를 향해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류와의 접촉이 있게 된 후로, 하나님은 인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소유소시와 자신의 실질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의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들이 볼 수 있든 없든,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면서 자신의 성품을 유로하고 자신의 실질을 발표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인류와의 접촉과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끊임없이 발표되고 유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람에게 무엇을 감춘 적이 없고, 무엇을 숨긴 적도 없으며, 자신의 성품을 조금도 남김없이 공개하고 나타내고(원문: 釋放) 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알기를 바라지, 인류가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영원한 비밀처럼 여기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하나님을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여기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인류만이 진정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 수 있고, 빛 가운데서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살 수 있다.

하나님이 발표하고 유로한 말씀과 성품은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실질도 대표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접촉할 때, 어떤 말씀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성품을 유로했든,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어떤 소유소시와 어떤 실질을 보게 되었든, 그것은 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 인류가 느낀 것이 얼마나 되든, 이해한 것이 얼마나 되든, 깨달은 것이 얼마나 되든, 모두 하나님의 뜻, 즉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하는지를 요구한 것이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실질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지, 하나님에게 어떤 소유소시가 있는지는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를 할 때 발표된 것인데, 거짓이 없고 가식이 없으며, 감춘 것이 없고 꾸민 것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고 항상 분명하게 보지 못할까? 왜 사람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할까? 하나님이 유로한 것, 발표한 것은 다 하나님 자신의 소유소시이고, 다 하나님 자신의 참된 성품의 세부적인 것과 각 방면인데, 왜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투철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원인이 하나 있다. 어떤 원인일까? 바로 창세 이래로 사람은 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즉 갓 지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였든, 사람은 그저 하나님을 동반자로 여기고 의지할 대상으로 여겼을 뿐, 결코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나 이해가 없었다. 바로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이러한 대상, 사람이 보기에 ‘동반자’인 그분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실질이라는 것을 사람은 몰랐고, 그분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라는 것도 사람은 몰랐던 것이다. 간단한 말로 하면, 그때의 사람은 하나님을 조금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으며, 하나님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몰랐고, 더욱이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도 알지 못했다. 물론 하나님도 그때에,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는 인류가 창조된 초창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의 사역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에게 일을 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사람에게 요구도 제기하기 시작했는데,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때에야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간단한 개념이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곧 인류를 창조한 그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 일정한 거리가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높은 인식이 있어야 한다거나 얼마나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이 역사하는 절차에 따라, 역사하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요구한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성품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아주 진실하지 않으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아주 합리적이지 않으냐? 하나님은 인류가 지음받은 가장 이른 시대에서는, 사람에게 정복 사역을 하지 않았고, 온전케 하는 사역도 하지 않았다. 또한 사람에게 그리 많은 말씀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도 아주 낮았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 사람에게 어떤 행위가 있든,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좀 했을지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다 용서할 만한 것이었고,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알고 있고, 사람에게 무엇이 갖추어져 있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어떤 요구 기준을 줘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때의 요구 기준은 아주 낮았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이 빈말이라는 것도 뜻하지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 자신을 알려면, 오직 하나의 경로밖에 없다. 그것은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따르고, 인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에게 본체를 나타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할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게 되었으면, 그것은 이미 진실한 하나님 자신을 본 것이고, 이미 하나님의 본체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결과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은 무지개를 증거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는다고 언약을 세운 후, 하나님은 더욱더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과 동심합의하는 사람을 얻으려고 하였고, 또한 더욱더 절박하게 땅에서 자신의 뜻이 통행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하였으며, 더욱이 사탄의 속박을 받지 않고 흑암 세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을 땅에서 얻으려고 하였다. 이런 무리를 얻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오랫동안 바랐던 것이고, 창세 이래로 계속 기대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했든, 사람과 언약을 세웠든, 하나님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고, 하나님의 심정도 바뀌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계획과 바람도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려고 하는 것은 창세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바랐던 것이다. 즉, 인류 가운데서 자신이 얻고 싶은 사람을 얻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를 경배할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을 얻으려고 한 것이다.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은 진정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지심인(知心人)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 계속해서 하나님의 발자취를 좇아,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 발걸음을 따라,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및 하나님과 관련된 세부적인 것을 찾아내도록 하자.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실질을 알아서 각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또한 각 사람을 하나님에게 다가가도록 하고,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하자.

지난번에 우리는 하나님이 왜 사람과 언약을 세워야 했는지에 관한 일들을 가지고 어느 정도 나누었다. 이번에는 계속해서 다음 부분의 성경 구절들을 교통해 보자. 성경 구절을 읽어 보자.

(1) 아브라함

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함

(창 17:15~17)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21~22)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침

(창 22: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 22:9~10)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하나님이 하려고 작정한 사역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너희는 다 들었겠지? 그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택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100세,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주려고 했느냐? 그것은 성경에 언급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라고 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할 때, 당시의 아브라함의 배경은 어떠했느냐? 성경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그들 노부부는 그 나이에 자녀를 출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은 무엇을 했느냐? 그는 엎드려 웃으며 속으로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 뜻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그저 우스개에 불과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 일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고,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주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도, 사람이 이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시다니! 아들을 하나 주겠다고 하시면서 낳아 기르라고 하시다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땅에 엎드린 동시에 웃으면서 속으로 ‘불가능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건 농담하시는 거야, 이건 진짜일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담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럼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냐? (의인입니다.) 어디에서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했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부른 사람이면 다 의인이고, 다 온전한 사람이고, 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규례만 지키는구나! 이 일을 너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어느 사람에게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각 사람에 대해 가늠 기준이 하나 있다. 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지만, 그 일에서 나타낸 아브라함의 태도를 놓고 말하면,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막연한 것이 좀 있지 않느냐? 아브라함의 믿음은 크냐? 크지 않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속으로 생각한 것은 이미 그 사람을 대표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여기는 것은 순전히 상상이고, 멋대로 규례에 맞추는 것이며, 무책임한 평가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웃음과 그의 작은 행동을 보지 못했을까? 알지 못했을까?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한 일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계획을 이미 다 해 놓고, 그 사람을 택하려고 뜻을 정했을 때,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에게 어떤 태도가 있든, 하나님에게는 영향과 방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의 태도, 더구나 무지한 태도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함부로 바꿀 리도, 자신의 계획을 깨뜨릴 리도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 17장 21~22절에 뭐라고 했느냐?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왜 아랑곳하지 않은 것일까? 그때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높은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하나님이 한 일과 한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려고 뜻을 정했는지, 어떤 사람을 택하려고 뜻을 정했는지, 어떤 원칙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사람에게 완전히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의 분량이 거기에 전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표현을 하든,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매우 정상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정죄하지 않았고, 질책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이삭을 낳을 것이니라”고 말씀했을 뿐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 일은 하나님 말씀이 떨어지는 순간,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나님이 봤을 때, 자신이 이루려고 계획한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배정한 후에 곧 떠났다. 사람이 어떻게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이해하든, 어떻게 계획하든, 그런 것은 다 하나님과 상관없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시간과 절차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계속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인식하든, 하나님은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믿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역사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사실대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본,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시간에 이삭을 태어나게 한 것이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사람의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았느냐? 가로막지 못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작은 믿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하나님의 역사에 영향을 주었느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영향을 전혀 주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환경도 그의 경영 계획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려고 정한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제때에 완성되고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사역은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다. 사람의 일부 우매함과 무지함에 대해,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일부 저촉과 관념에 대해, 하나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자신이 하려고 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고, 또한 하나님의 무소불능이 표현되는 것이다.

─────────

①소유소시: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