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와 하나님의 역사가 도달하는 효과

우선 찬양 한 곡 부르자. <하나님 나라의 축가 (1) 국도(하나님 나라)가 인간 세상에 임하였다>

병창: 뭇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 환호하고 찬미하며, 만입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칭송하네. 국도가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1. 뭇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 환호하고 찬미하며, 만입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칭송하며, 만인은 눈을 들어 하나님의 행사를 바라보네. 국도는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하나님의 본체는 풍부하고, 하나님의 본체는 완전하도다. 어느 누가 이로 인해 기뻐하지 않으랴? 어느 누가 이로 인해 즐겁게 춤추지 않으랴? 시온아! (시온아!)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려 하나님을 위해 경축하라! 개선가를 울려 하나님의 성호를 전파하라! 땅끝까지의 모든 만물아! 어서 깨끗이 씻고 나와 하나님께 제사를 바치라! 천우의 뭇별들아!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 하나님의 궁창에서의 권능을 나타내어라! 하나님이 땅의 백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니, 노랫소리에 하나님을 향한 끝없는 경배와 사랑이 흐르고 있네! 만물이 소생하는 날에 하나님이 친히 인간 세상에 임하셨네. 그때에 백화가 만발하고, 새들이 일제히 노래하며, 만물은 기쁨으로 끓어오르네! 사탄의 나라는 국도의 예포 소리에 무너지고 진동하는 국도 축가 소리에 부서져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리라!

2. 땅에 있는 사람 중에 누가 감히 일어나 대적할 수 있으랴? 하나님은 땅에 임하시면서 불사름을 가져오셨고, 진노와 모든 재난을 가져오셨네. 세상의 나라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도다! 하늘에는 (하늘에는) 흰 구름이 춤추며 뭉게뭉게 피어나네. 하늘 아래에는 (하늘 아래에는) 호수와 강물이 출렁이면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곡조를 연주하네. 잠자던 짐승들은 굴에서 나오고, 꿈속에 있던 만민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깨어났으며, 만민이 기다리던 날은 드디어 도래하였네! 그들은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바치네!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바치네!

너희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주 격동되고 감동됩니다. 국도의 미경은 그토록 아름답고 사람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지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나님과 함께 지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느냐? 너희의 상상 속에, 사람은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님과 함께 이후의 아름다운 국도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성정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정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변화되어야 하느냐?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느냐?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한 것은 어떤 기준이냐? (모든 생각이 그리스도와 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표현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답은 정답에 가깝다. 너희는 모두 마음을 터놓고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거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진리를 추구하는 기초에서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통제도 받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 본분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곧 충성을 다해 본분을 해야 합니다. 그다음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마음이 하나님과 합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해야 하고,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장 낮은 기준은 사탄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사람이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주 관건이라고 생각됩니다.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아직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기준은 하나님과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고,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알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말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가치

보아하니, 너희 마음속에는 자신이 준수해야 할 도에 대해 다 실질적인 내용이 조금 있고, 저마다 인식한 것이나 터득한 것이 조금 있구나. 그러나 너희가 말한 그런 것들이 너희에게 매우 공허한 것이 되는지 아니면 매우 실제적인 것이 되는지는 너희가 평소에 실행할 때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달렸다. 이 몇 년 동안 너희는 각 방면의 진리에 있어서 도리적으로 놓고 보든, 진리의 내용상으로 놓고 보든 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 사람들이 모두 진리에서 노력하기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이런 각 방면, 조목조목의 진리는 틀림없이 일부 사람들 마음속에 이미 뿌리내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너희 마음속에 이런 진리의 제목과 이런 이론은 뿌리를 내렸지만 실제 내용이 차지하고 있는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닥쳐 너희가 시련에 직면하고 선택에 직면했을 때, 이런 진리의 실제가 너희에게 있어서 얼마나 크게 작용할 수 있느냐? 너희로 난관을 극복하게 하여 시련 속에서 나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시련 속에서 굳게 서서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간증을 할 수 있게 하느냐? 너희는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느냐? 너희에게 이렇게 묻겠다. 너희의 마음속에서, 너희가 매일 생각하는 그런 일들 가운데서 너희는 어떤 것이 너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지 총결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냐?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날마다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매일 하는 본분을 잘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매사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매사에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기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러냐? 이런 내용들만 있는 것이냐?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께 순복하려고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일이 닥치니 결국엔 순복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한 번이라도 만족케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께 순복할 생각만 하면서 시련이 닥칠 때에는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면서 불평하지 않고 그 어떤 요구도 없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도 순복이 되지 않아 거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저는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전혀 선택하지 못했고, 늘 육체를 만족시키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무슨 원인이냐? 하나님이 검증하기 전에, 너희는 벌써 여러 번 자신에게 도전하고, 또 여러 번 자신을 테스트해 보고 검증해 보지 않았느냐? 자신이 정말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지, 정말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자기 선택이 없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고 하나님만 만족케 할 수 있는지를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이 있지 않느냐? 사실, 너희 앞에 놓인 사실도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사람마다 마음속으로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고,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곧, 각 사람의 결말과 귀숙이다. 아마 너희는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결말에 관한 것,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것, 하나님이 사람을 어떤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가는지에 관한 것과 같은 몇 가지 방면의 진리와 몇 가지 방면의 하나님 말씀을 이미 여러 번 읽어 보면서 연구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리저리 찾으면서 사색을 해봐도 결국에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거나 혹은 모호한 결론은 얻을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여전히 자신에게 도대체 어떤 결말이 있을지는 확정할 수 없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 교통을 받아들이고, 교회 생활을 받아들이고,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늘 실정과 내막을 알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의 결말은 도대체 어떠할지? 자신이 도대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지?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도대체 어떤 태도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나는 이전에 어떤 짓들을 한 적이 있고, 어떤 말들을 한 적이 있어! 나는 이전에 하나님을 거역한 적이 있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좀 한 적이 있어! 나는 이전에 어떤 일들에서 하나님을 흡족케 해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하나님을 실망시켰고, 하나님께 미움을 사고 증오를 샀으니 내 결말은 미지수일 거야!’라고 하면서 근심까지 한다. 다시 말해,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결말에 대해 불안해한다. 어느 한 사람도 “난 내가 살아남을 사람이라고 100% 확신해! 난 100%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자신이 있어! 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를 준수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여기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은 구제 불능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에게 어떤 좋은 결말이 있기를 지나치게 바라지 못한다. 혹은 자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없고 살아남을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결말이 없고, 자신은 좋은 귀숙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결론적으로, 사람마다 마음속으로 자신의 결말을 많이 따져 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따져 보고 있고 계획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갑절로 대가를 치르고, 어떤 사람들은 가정과 직업을 버리며,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포기하기를 택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직하여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을 택하며, 어떤 사람들은 집을 떠나 본분하는 것을 택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면서 가장 힘들고 고달픈 일을 감당하기를 택하며, 어떤 사람들은 헌금하거나 모든 것을 봉헌하기를 택하고,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것을 택한다. 너희가 실행 방식을 어떻게 택하였든지, 그 방식이 중요하겠느냐?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냐? (겉면의 행실이 좋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각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실행하는지,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그리스도들이 넘어지고 또 일부 거짓 인솔자들이 넘어진 일을 통해, 저희는 겉면의 행실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겉으로는 많이 포기하고 기꺼이 대가도 치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해부했을 때, 저희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곳곳에서 하나님과 맞서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일이 닥쳤을 때,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는지, 일을 판단하는 관점이 어떠한지에 달렸다고 봅니다.) 너희는 다 잘 말했다. 보아하니 너희의 마음속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기초적인 인식이 있고 기준도 있구나. 나는 너희가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매우 감동된다. 비록 너희가 한 어떤 말은 그렇게 적절하지는 않지만, 진리에 있어야 할 내용 해석에 이미 근접하였다. 이는 너희가 주변의 인ㆍ사ㆍ물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너희들이 눈으로 본 것에 대해 이미 자신만의 진정한 인식, 진리에 가까운 인식이 조금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설사 너희가 말한 것이 전면적이지 못하고 어떤 말은 그렇게 적절하지 않지만, 너희 마음에 있는 인식은 이미 진리의 실제에 아주 근접하였다. 너희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나는 기분이 매우 좋다.

사람의 생각은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대가를 많이 치르고, 겉면의 행실이 아주 좋아 다른 사람에게 존중을 받고, 또 사람들을 아주 탄복하게 만든다. 그런 겉면의 행위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있다고 정할 수 있느냐? 왜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면 흔히 그들은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있고, 진리 실행하는 길을 걷고 있으며,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있다고 여기느냐? 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거기에는 한 가지 설명밖에 없다. 이 설명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 진리의 실제가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등등의 이런 문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주 영적인 듯해 보이고 아주 고상한 듯해 보이고 형상이 매우 숭고하고 위대한 듯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늘 미혹되는 것이다. 이 일부 사람들은 겉면으로 글귀 도리를 잘 말하고, 겉면으로 말을 하고 일 처리하여 사람을 탄복케 하는 그 사람들의 일을 하는 실질이 무엇인지, 일 처리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일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전혀 보지 않는다. 또한 그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전혀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 사람들의 인성 실질은 전혀 분별하지 않고, 처음 낯선 상태에서 익숙해지고, 그다음 조금씩 탄복하고 우러러보다가 마지막에는 그 사람들을 자신들의 우상으로 삼는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들이 숭상하는 우상과 자신들이 여기는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겉면으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사람이고, 참으로 좋은 결말과 좋은 귀숙이 있을 사람이며,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은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냐? 이 일의 실질은 무엇이냐? 이 일이 초래한 결과는 무엇이냐? 먼저 이 일의 실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런 사람의 관점과 실행법에 관해 사람이 스스로 채택한 실행 원칙, 그리고 각 사람이 평소에 중시하는 것은 실질상에서 모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시한 것이 깊은 것이든 얕은 것이든, 글귀 도리이든 실제이든, 결론적으로, 사람은 인간이 가장 잘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고, 가장 잘 알아야 하는 것도 모르고 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 원칙을 찾아 실행하는 부분에서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름길로 가면서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행위와 행실을 총결해 내어 자신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고,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직접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사람이 인위적인 좋은 행위로 진리 실행을 대체하게 되고, 동시에 또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진리에 대항하는 자본,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맞서는 자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람은 또 서슴없이 하나님은 한쪽에 버려두고, 자신 마음속의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다. 사람에게 이런 미련한 행실과 우매한 견해, 혹은 편면적인 견해와 실행법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을 오늘 알려 주겠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을 따르면서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보고 있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데에 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혐오하는지, 하나님은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무엇을 버리는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하나님은 어떤 기준으로 사람에게 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안다면, 사람에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함부로 사람을 숭상할 수 있겠느냐? 또 일반 사람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사람의 견해가 좀 이성적일 것이다. 그리고 패괴된 사람을 함부로 자신의 우상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서 제멋대로 몇 가지 간단한 규례나 원칙 지키는 것을 진리 실행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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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③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처소, 본향을 뜻함.

④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