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역사 이상 (2)

은혜시대에 전한 것은 회개의 복음이기에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지금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정복하는 것과 온전케 하는 것만 말한다. 누구도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온 집안이 복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한번 구원을 얻으면 영원히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것은 낡아빠진 것이다.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온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무릇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너를 구속하며,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 몸에는 아직도 거역하는 것들과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함받았음을 대표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다. 예수가 당시에 많은 사역을 하였어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그가 많은 말씀을 하였어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에 그 자신이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떠난 몇 년 후에 마태가 그에게 족보를 하나 배열해놓았고 다른 사람도 인의(人意)적인 사역을 많이 하였다. 그때에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얻는 것도 아니기에 한 단계 사역만 하기 위하여 천국의 복음을 가져오고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였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의 사역은 전부 끝났다. 그러나 이 단계 정복의 사역은 반드시 더 많은 말씀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며, 또한 많은 과정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가 이전에 한 사역, 또는 여호와가 한 사역의 비밀을 다 풀어놓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명확하게 믿고 환하게 믿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말세의 사역이며, 말세는 마무리하는 사역이고 사역을 끝마칠 때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 사역에서 너로 하여금 여호와의 율법과 예수의 구속을 깨닫게 하고 투득하게 하려는 것은 주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깨닫게 하고, 너로 하여금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의의와 실질을 터득하게 하고, 너로 하여금 예수가 한 많은 사역과 예수가 한 많은 말씀의 용의(用意), 더 나아가서는 성경에 대한 너의 미신 숭배까지 깨닫게 하며, 이런 것을 너로 하여금 꿰뚫어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가 그때에 한 것과 오늘 하나님이 하는 것을 너로 하여금 깨닫게 하며, 모든 진리ㆍ생명ㆍ길을 너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너로 하여금 보게 한다. 예수는 그 단계에서 한 사역을 무엇 때문에 마무리하지 않고 갔는가? 그 원인은 그의 그 단계 사역이 마무리하는 사역이 아니며,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가 한 말씀도 끝났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의 사역도 따라서 전부 끝났으며, 이 단계처럼 반드시 할 말씀을 다 하고 모든 사역을 다 끝맺어야 사역을 끝마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단계 사역에서 많은 말씀을 다하지 않았고 밝히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다 하였는가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말씀의 직분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떠났다. 그 단계는 주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이며, 이 단계와는 같지 않다. 이 단계 사역은 주로 마무리하고 마당을 깨끗이 하고 모든 사역을 끝마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을 끝까지 다하지 않으면 사역을 끝마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단계는 말씀으로써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성취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예수가 많은 사역을 한 것을 사람들이 다 깨닫지 못하였어도 그는 조용히 떠났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 이해하고도 아주 옳다고 여기며 틀린 줄도 모른다. 최후 이 단계는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고 다 마무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깨닫게 하고 알게 한다. 사람 안의 관념, 사람 안의 존심, 사람의 잘못된 터득법, 여호와의 역사에 대한 관념, 예수의 역사에 대한 관념, 이방인에 대한 견해, 치우치고 그릇된 모든 점을 다 돌려세워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인생의 정도(正道)를 알게 하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을 깨닫게 하고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면 이 단계 사역은 끝나게 된다. 여호와가 한 사역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고 시작이며, 이 단계 사역은 사역을 끝마치는 것이고 결말이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선민 가운데서 하였고 가장 거룩한 곳에서 천지개벽을 하였으며, 최후 한 단계는 가장 더러운 국가에서 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시대를 끝마친다. 제1단계는 가장 광명한 곳에서 역사하였으며, 최후 한 단계는 가장 흑암한 곳에서 역사하여 흑암을 몰아내고 광명을 가져와 이 사람들을 다 정복한다. 가장 더럽고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정복하여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하나님이 있음을 시인하고 참 하나님임을 시인하고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하는 이 사실로써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하는바, 이 단계 사역은 대표적 의의가 있다. 이 시대의 사역을 다 하면 6천년의 경영 사역이 철저히 끝나게 된다.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이미 정복하였다면 그 외의 곳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오직 중국의 정복 사역만이 대표적 의의를 갖고 있다. 중국은 모든 흑암 세력을 대표하는바, 중국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고 혈기에 속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중국 사람은 큰 붉은 용에게 가장 심하게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함이 가장 엄중하며 인성이 가장 비열하고 가장 더럽다. 그러므로 전체 패괴된 인류의 전형적인 대표이다. 결코 다른 국가가 다 좋다는 것은 아니며, 사람의 관념은 다 같다. 비록 그가 소질은 좋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역시 대적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유대인도 대적하고 거역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바리새인도 대적하였는가? 유다가 무엇 때문에 예수를 팔았는가? 당시에 많은 제자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에도 무엇 때문에 사람이 여전히 그를 믿지 않았는가? 사람의 패역은 다 같은 것이 아닌가? 단지 중국 사람을 가져다 전범(典範)으로 하고 정복한 후에 모형과 표본으로 만들어 참고물로 할 따름이다. 무엇 때문에 줄곧 너희들을 나의 경영 계획의 부속물이라고 하는가? 바로 사람의 패괴ㆍ더러움ㆍ불의ㆍ대적ㆍ패역 이런 것들이 중국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전면적으로 표현되고, 갖은 모양이 다 드러난다. 한 방면으로는 소질이 낮으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생활이 낙후하고 사상이 낙후하며 생활 습관, 사회 환경, 출생 가정이 다 차이가 나고 가장 낙후한 것이다. 이 사람들의 지위마저도 낮아 이곳에서 역사하면 대표성이 있다. 시점(試点) 사역을 전면적으로 하면 이후에 또 사역을 전개하기에 더 편리하게 된다. 이 단계 사역을 다 이루면 이후의 사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단계 사역이 이루어지고 큰일이 철저히 이루어지면 온 우주의 정복 사역도 철저히 끝나게 된다. 사실, 너희들 가운데서의 사역이 성공되면 전 우주의 사역이 성공된 것과 같다. 무엇 때문에 너희더러 모형ㆍ표본이 되라고 하는가 하는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람들 몸에 패역이라면 패역이 있고 대적이라면 대적이 있고 더러움이라면 더러움이 있고 불의라면 불의가 있는바, 인류의 모든 패역을 다 대표하였다. 이 사람들은 실로 간단치 않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정복의 전범으로 한다. 물론 정복한 후에는 표본ㆍ모형인 것이다. 제1단계 사역을 이스라엘에서 한 것이 가장 대표적 의의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가장 거룩하고 가장 얕게 패괴된 인류이기에 이 땅에서 천지개벽을 한 것은 가장 의의있다. 인류의 선조는 이스라엘 땅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 역사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시초에 이 사람들은 가장 거룩하였고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으므로 그들의 몸에서 역사하여 가장 좋은 효과에 달할 수 있었다. 온 성경에 두 시대의 사역이 기록되었는데, 하나는 율법시대의 사역이고 하나는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구약에는 여호와가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에게 한 말씀과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 기록되었고, 신약에는 예수가 유대에서 한 사역이 기록되었다. 무엇 때문에 중국 사람의 이름이 없는가? 그 원인은 시작의 두 부분 사역을 모두 이스라엘에서 하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은 선민에 속하고 최초에 여호와의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가장 얕게 패괴된 인류이며, 시초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제사장 옷을 입거나 제사장 화관을 쓰고서 줄곧 성전 안에서 섬겼으며, 그들은 최초에 하나님을 경배한 사람들이고 역시 하나님의 최초의 역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 인류의 표본과 모형에 속하며, 그들은 거룩한 표본ㆍ모형과 의인(義人)인 표본ㆍ모형에 속한다. 욥ㆍ아브라함ㆍ롯 또는 베드로ㆍ디모데 등등 이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고 가장 거룩한 표본 모형이다. 이스라엘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일찍이 하나님을 경배한 국가이며, 여기에서 나온 의인도 역시 가장 많다. 그들의 몸에 역사한 것은 이후에 온 땅에서 인류를 더 잘 경영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사적’과 여호와를 경배하면서 행한 의를 기록하여 은혜시대 이스라엘 이외의 사람들의 표본과 모형으로 하였는데, 그들이 한 것으로써 몇천 년의 사역을 유지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다.

창세 이후 제1단계 사역을 이스라엘에서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한 발원지이고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한 근거지이다. 예수가 사역을 한 범위는 온 유대에서였다. 그가 역사하는 기간에 유대 이외의 사람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유대 이외에서 전혀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사역을 중국에 가져왔는데, 역시 이 범위일 뿐이다. 이 단계에는 중국 이외에서 전혀 따로 사역을 전개하지 않는다. 밖으로 확장하는 것은 이후의 사역이다. 이 단계 사역은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을 이어서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예수가 구속의 사역을 하였으며, 이 단계는 잇는 사역을 한다. 구속이 완성되었기에 이 단계는 성령으로 잉태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단계 사역은 지난번의 사역과 다르고 중국은 이스라엘과 더욱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한 단계 구속의 사역을 하여 사람들이 다 예수를 보았고 머지않아 이방으로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미국ㆍ영국ㆍ러시아에는 상제를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중국에는 어째서 그렇게 많지 않은가? 그것은 중국이 가장 엄하게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도를 가장 늦게 받아들였고 현재까지 100년도 되지 않으며, 미국ㆍ영국에 비하면 차이가 많은 것이다. 최후 이 단계 사역을 중국 이 땅에 현실화시킨 것은 사역을 끝마치기 위한 것이고 역시 모든 사역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를 주라고 하였다. 당시에 그들은 여호와를 일가의 주인으로 간주하였으며, 이스라엘 온 땅은 하나의 대가족으로 되어 모두 그들의 주 여호와를 경배하였다. 여호와의 영은 때때로 사람에게 나타났고 사람에게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였으며, 구름기둥과 음성으로써 그들을 인솔하여 생활하도록 하였다.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영이 직접 인솔하여 사람에게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였는데, 사람이 본 것은 구름이었고 들은 것은 우렛소리였다. 바로 이렇게 그들을 인솔하여 몇천 년 동안 생활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오직 이스라엘 사람만이 줄곧 여호와를 경배하였다. 그들은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지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긴다. 필경 여호와가 그들 가운데서 거의 4천년이나 역사하였으니 이것도 이상할 것 없다. 중국 이 땅에서 몇천 년이나 깊이 잠든 이 인간쓰레기들이 현재에 와서야 천지만물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조물주가 창조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복음이 국외로부터 전해져왔기 때문에 그 봉건적ㆍ반동적인 머리들은 무릇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를 그들의 조상━불교의 조상을 배반하는 대역무도한 인간쓰레기라고 여긴다. 더 많은 봉건 머리들은 ‘중국 사람이 어찌 서양인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이것은 조상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긴다. 오늘까지 발전하여 사람은 여호와가 너희들의 하나님임을 이미 잊었으며, 조물주를 이미 뒷전에 버려두고 사람은 ‘진화론’, 즉 사람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어온 것이고 대자연은 일찍부터 있던 것이며 인류가 누리는 미식은 모두 대자연이 준 것이고 사람의 생사 존망은 모두 법칙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다. 더 많은 무신론 학자들은 사람이 만일 그렇게 여긴다면 미신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있는가? 과학이 인류를 주재할 수 있는가? 이러한 국가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고 가로막음이 너무 심하다.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대적하고 있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사역으로써 예수의 사역에 맞춰보고, 맞추지 못하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맞추지 못하였는가? 한 방면으로는 예수가 새로운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당시 예수가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에게 족보를 써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에게 족보를 써주었더라면 타당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만약 마태가 몇십 년 앞당겨 예수께 이 족보를 써주었더라면 예수가 그렇게 큰 핍박을 받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네 생각엔 그렇지 않은가? 예수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윗의 뿌리라고 한 족보를 사람이 보기만 하였어도 그를 핍박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쉽게도 족보를 너무 늦게 써놓았다. 그렇지 않은가? 또 아쉽게도 성경에는 두 단계의 사역만 기록되었는데, 한 단계는 율법시대의 사역이고 한 단계는 은혜시대의 사역이며, 한 단계는 여호와의 사역이고 한 단계는 예수의 사역이다. 만일 대예언자가 오늘의 사역을 다 앞당겨 예언해놓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성경에 한 부분의 ‘말세의 사역’이 더 있게 하였더라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구태여 사람이 현재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정말로 너희들을 억울하게 하였구나! 미워할 것은 그 이사야ㆍ다니엘이 무엇 때문에 말세의 사역을 다 예언해놓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고, 나무랄 것은 신약의 그 사도들이 무엇 때문에 앞당겨 하나님 두 번째 도성육신(道成肉身)의 족보를 배열해놓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사람을 유감스럽게 하였구나! 너희들로 하여금 여러 곳에서 근거를 찾아 자질구레한 ‘소화(小話)’를 조금 얻게 하여도 맞출 수 있을는지 모른다. 너무나도 난처하게 하였구나!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은밀히 역사하는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으나 부인할 수도 없다. 이것을 어떡하겠는가? 한사코 따를 수도 없고 의혹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많은 ‘총명한 재자(才子)’들이 ‘시험해보자’는 태도를 가지고 따른다. 너무나 어렵구나! 당시에 마태ㆍ마가ㆍ누가ㆍ요한에게 예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더라면 더 쉽지 않았겠는가? 당시에 요한이 국도 생활의 내막을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다만 아쉽게도 그가 본 것은 ‘이상(異象)’일 뿐 땅에 실제화된 진실한 사역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사람을 유감스럽게 하였구나! 하나님도 웬 일인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사역을 잘 하다가 도리어 방향을 바꿔 중국에 왔을 뿐만 아니라 또 반드시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고 생활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사람의 뜻에 너무나 맞지 않는구나! 사람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형벌과 심판이 갑자기 닥쳐오니 정말로 이해되지 않는구나!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었을 때 사람에게 모든 내막을 미리 알려주지 않아서 그가 이미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는데, 설마 그가 잊었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이번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는가? 현재 성경에 66권밖에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만일 한 권의 책이 더 많아 말세의 사역을 다 예언해놓았더라면 사람은 족할 것이다! 네 생각엔 그렇지 않은가? 여호와ㆍ이사야ㆍ다윗 그들마저도 오늘의 사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과 더욱 멀리 떨어져 4천여 년이란 사이를 두었다. 예수도 현재의 사역을 완전히 예언하지는 않고 조금만 말하였으므로 사람은 아직도 충분한 근거를 얻지 못하였다. 네가 이전의 사역을 현재에 가져와서 대조한다면 어찌 맞출 수 있겠는가? 여호와가 한 그 단계 사역은 이스라엘에 비추어 한 것이니 오늘에 가져오면 더욱 맞추지 못하고 맞출 수도 없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다. 너의 소질과 너의 각 방면이 다 부족한데, 네가 그들과 맞출 수 있겠는가? 이것에 달할 수 있겠는가? 현재는 국도시대이고 이전의 율법시대ㆍ은혜시대와 같지 않다는 것을 네가 알아야 한다. 어쨌든, 너는 공식에 맞추지 말라. ‘하나님’은 네가 공식에 맞추어서 얻어내는 분이 아니다.

예수가 태어나서 어떻게 29년 동안 생활하였는지, 성경에 그의 어린 시절과 그의 청년 시절이 전혀 기록되지 않았는데,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이 어떠한지를 네가 아는가? 설마 그에게 어린 시절이 없고 청년 시절이 없이 태어나자 서른 살이었겠는가? 네가 아는 것이 너무 적으니 너는 함부로 의견을 내놓지 말라. 너에게 유익한 점이 없다! 성경에는 다만 예수가 서른 살 전에 세례를 받기 시작하고 성령께 이끌려 광야에 가서 마귀에게 시험받기 시작한 것이 기록되었다.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예수의 3년 반의 사역이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가 다 기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에게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가 없었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다만 시초에 그는 역사하지 않았고 하나의 정상 사람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면 네가 말해봐라, 그가 하나의 정상 사람으로서 서른 살을 살았는데 청년 시기가 없었겠는가? 어린 시절이 없었겠는가? 그가 열 한두 살을 지내지 않고 열 일고여덟 살을 지내지 않고서 단번에 서른세 살 반으로 자랄 수 있었겠는가? 사람은 다 초자연적으로 생각하는데, 사람은 진리가 없다! 물론 하나님 도성육신은 정상 보통인 인성이면서도 신성과 불완전한 인성으로 직접 역사한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은 현재의 사역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도 의혹의 태도를 취한다.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되어 하는 사역은 서로 다르지만 그 실질은 전혀 구별이 없다. 물론 네가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을 본다면 차이가 클 것이다. 네가 어찌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네가 어찌 예수의 정상 인성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혹시 네가 오늘의 하나님의 인성에 대해서는 특히 이해하겠지만 네가 예수의 인성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하였고 더욱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태가 기록해놓지 않았더라면 너는 예수의 인성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 혹시 내가 너에게 예수 평생의 ‘사적’을 알려주고 너에게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의 생활의 내막을 알려준다면 그때에 너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닙니다! 그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연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인성이 있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심지어 너는 큰소리로 외칠 것이다. 네가 예수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관념이 있게 된 것이다. 네가 여기는 예수는 너무 신비로워 아예 육신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쨌든 사실인바, 누구도 사실의 진상을 어기고 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것은 진상에 직면하여 말하는 것이지 추측도 아니고 예측도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 있고 더욱이 지극히 낮은 곳에 숨을 수도 있으며, 그는 너의 대뇌로 그려낸 분이 아니며, 그는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지 어떤 사람이 구상해낸 개인의 하나님이 아니다. 네 생각엔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