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간다

현재의 사역 또는 이후의 사역에 대해서는 사람이 얼마간 깨닫고 있지만 인류가 이후에 도대체 어떤 귀숙(歸宿)에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이 오히려 깨닫지 못한다. 피조물로서는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면 사람은 어떻게 따라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가라고 알려주면 너희들은 어떻게 가야 한다. 너는 스스로 자신을 지배할 수 없고,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만일 하나님이 사역을 하면서 앞당겨 사람에게 하나의 결국을 주고 하나의 아름다운 귀숙을 주는 것으로써 사람을 매료시켜 그를 따르게 하고 사람과 거래를 한다면 이것은 정복하는 것이라 하지 않으며,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결국으로써 사람을 통제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가지는 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귀숙으로써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다. 사람이 제일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후의 결국이고 최종의 귀숙이며 도대체 좋은 소망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에서 사람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소망을 주고 사람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사람에게 하나의 적합한 귀숙을 주어 추구하게 한다면 사람을 정복하는 효과에 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복 사역의 효과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하면, 정복 사역은 사람의 운명과 전망을 빼앗아가고 사람의 패역 성정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효과에 달하는 것이지 사람과 거래하는 것, 즉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베풀어주어 달하는 것이 아니며, 바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고 사람의 전망을 취소하여 사람의 충심을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달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정복 사역의 실질이다. 만일 시초부터 사람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소망을 준 다음 형벌ㆍ심판의 사역을 한다면 사람이 형벌ㆍ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망이 있는 기초에서 받아들이는 것인데, 최종에 가서도 모든 피조물이 조물주께 무조건 순복하고 경배하는 데에 달할 수 없으며, 다만 줄곧 우매하게 순복하거나 줄곧 요구하기에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복 사역은 사람을 얻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을 할 수도 없다. 이러한 피조물은 자기의 본분을 할 수 없고 조건만 따질 뿐이다. 이러면 정복이라고 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고 복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사람의 최대 애로는 바로 운명과 전망을 언제나 마음속에 두기에 우상으로 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운명과 전망을 위하여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정복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사람의 사심, 사람의 탐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가장 잘 가로막는 사람의 그런 것들을 대처해버려야 한다. 이러면 사람을 정복하는 효과에 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처음 사람을 정복할 때는 반드시 먼저 사람의 야심과 사람의 가장 치명적인 것들을 취소해야 한다. 이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발견하고 인생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변화시키고 사람의 생존의 의의를 변화시킨다. 이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순결해질 것이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 정복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단지 정복하기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얻기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며 시초의 사람의 원래 모양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다. 만일 정복하기 위해서만 정복한다면 정복 사역의 의의를 잃게 된다. 다시 말해서, 만일 사람을 정복한 후에 사람에 대하여 방치하고 사람의 생사를 도외시할 뿐이라면 인류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람을 정복한 후에 다시 얻고 최종에 인류를 모두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가야만이 모든 구원 사역의 중심이며, 비로소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에 달하게 된다. 즉 사람을 인류의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가고 안식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전망이고 역시 조물주가 해야 할 사역이다. 만일 사람이 사역을 한다면 너무나 유한하여 다만 사람을 어느 정도에 이르게 할 뿐 사람을 영원한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전망과 이후의 귀숙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르다. 그는 사람을 창조한 이상 사람을 인솔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이상 사람을 철저히 구원하여 사람을 완전히 얻고, 사람을 인솔하는 이상 사람을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으며, 그는 사람을 창조한 이상, 사람을 경영하는 이상 사람의 운명과 전망에 대하여 책임을 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조물주가 하는 사역이다. 비록 정복 사역은 사람의 전망을 취소하는 것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최종에 가서는 그래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놓은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려들어갈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에게 비로소 귀숙이 있게 되고 사람의 운명이 비로소 낙착이 있게 된다. 여기에서 언급된 적합한 귀숙이란 이전에 취소한 사람의 전망과 소망이 아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사람 자신이 바란 것과 추구한 것은 사람이 육체의 사치한 욕망을 추구할 때에 바란 것이지 사람에게 있어야 할 귀숙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것은 사람이 정결케 된 다음 받아야 할 축복과 약속이다. 이는 하나님이 창세 후에 사람에게 예비해놓은 것인데, 사람의 선택, 사람의 관념, 사람의 상상, 사람의 육체가 섞여있지 않는 것이다. 이 귀숙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안식할 땅이다. 그러므로 이 귀숙은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귀숙이다.

조물주가 피조물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그가 어떻게 하든지 너는 벗어나려 하지 말고, 그가 어떻게 하든지 너는 들어야 하며, 그를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사역을 하여 최종에 그의 목적에 달하면 영광을 받게 된다. 현재에 어째서 너를 모압의 후대라고 말하지 않고 너를 큰 붉은 용의 자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무슨 선민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다만 피조물이라고 말하는가? 이것이 사람의 원래 호칭이고 사람의 원래 신분인데, 바로 피조물이다. 사역 시대가 다르고 사역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호칭이 있게 되었다. 사실, 사람은 아주 보통인 피조물이다. 무릇 피조물이라면 가장 패악한 자든지 아니면 가장 거룩한 자든지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복의 사역을 하는 데는 전망과 운명ㆍ귀숙으로써 너를 통제하지 않는다. 사실 그러한 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정복 사역의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조물주를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후에야 사람이 비로소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갈 수 있다.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기에 너는 너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설사 사람이 언제나 자기를 위하여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삐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만약 자기의 전망을 더듬을 수 있고 자기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그래 피조물이라고 하겠는가? 아무튼,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다 인류를 위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창조한 천지만물도 다 사람에게 효력을 하는 것과 같다. 해ㆍ달ㆍ별을 창조한 것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고 동물ㆍ식물을 창조한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춘ㆍ하ㆍ추ㆍ동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든지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설사 사람의 육체적 소망을 박탈하였을지라도 여전히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인데,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은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사람의 귀숙이 모두 조물주의 수중에 있는데, 사람이 어찌 스스로 자기를 장악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이 끝난 후 인류는 하나의 아름다운 하늘땅으로 이끌려들어갈 것이다. 물론, 이런 생활은 여전히 땅에 있지만 현재 사람의 생활과는 크게 다르다. 이 생활은 전 인류가 다 정복된 후에 있게 될 생활이며, 이 생활은 인류의 땅에서의 다른 하나의 새로운 발단이다. 인류에게 이러한 생활이 있게 되면 인류가 또 다른 하나의 새롭고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갔음을 증명하는데, 이는 하나님과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는 발단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생활이 있게 되는 전제는 반드시 사람이 정결케 되고 정복된 후에 모두 조물주의 앞에 복종함으로써 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인류가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가기 전의 최후 한 단계 사역이라고 한다. 인류에게 이런 생활이 있는 것은 이후의 땅 위의 생활이고 땅의 가장 아름다운 생활이며, 역시 사람이 지향하는 생활이고 유사 이래 사람이 이른 적이 없는 생활이다. 이것은 6천년 경영 사역의 최종 효과이고 인류가 몹시 바라던 것이며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반드시 한동안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때에 이 단계 사역을 다 할 때 사람이 철저히 정복되면,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면 인류는 이후의 귀숙에 들어가게 된다. 사람이 연단을 거친 후에는 죄성이 없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사탄을 패배시켰기 때문이다. 즉 침해할 수 있는 적세력이 없고 사람의 육체를 공격할 수 있는 어떠한 적세력도 없으면 사람은 자유롭게 되고 또한 거룩하게 된다. 이는 바로 영세 안에 들어간 사람이다. 오직 흑암의 적세력을 결박해야만 사람이 어디로 가든지 다 자유롭다. 이러면 사람에게 패역도 없게 되고 대적도 없게 된다. 사탄이 결박되기만 하면 사람은 좋아질 것이다. 현재는 바로 사탄이 아직도 땅에서 이르는 곳마다 방해하기 때문에 또 전체 경영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을 패배시킨 후에야 사람이 철저히 해방받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얻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오게 되면 곧 공의로운 해를 보게 된다. 정상 사람에게 있어야 할 생활은 모두 회복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먹고 입을 줄 알고, 정상적으로 기거할 줄 아는 이런 것들이 정상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에 속하는데 모두 회복된다. 처음 인류를 창조하기 시작해서부터 설사 뱀이 하와를 유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그런 정상 생활이 있어야 하였으며, 먹기도 해야 하고 입기도 해야 하였으며, 땅에서의 정상 사람의 생활을 지내야 하였다. 그러나 인류가 타락된 후에 이런 생활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심지어 사람은 현재 이런 일들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다. 사실 사람이 지향하는 아름다운 그런 생활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인류에게 이러한 귀숙이 없다면 인류의 땅에서의 타락된 생활을 끝맺을 수 없다. 가령 말해서 그런 아름다운 생활이 없다면 사탄의 운명을 끝마치는 것이 아니고 땅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시대를 끝마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흑암 세력이 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사탄을 패배시켰음을 증명한다. 이러면 사탄의 방해가 없이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장악하고 인류의 모든 생활을 장악하며 인류의 모든 생활을 통제한다. 이것을 비로소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라고 한다. 사람의 현재 생활은 다수가 아직도 더러운 생활이고 아직도 고통과 환난의 생활이다. 이것은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라 하지 않는다. 사람이 아직 고해(苦海)에서 이탈하지 못하였고 인생의 고통에서 이탈하지 못하였고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보잘것없다. 사람의 모든 고통은 다 사탄이 빚어낸 것이고, 인생의 고난은 다 그것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사탄이 결박된 후에야 사람이 완전히 이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사탄을 결박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에 의하여 달하는 것인데, 사람을 전리품으로 하는 것이다. 현재 사람이 추구하는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는 것 같은 것은 모두 땅에서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기 전에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며 모두 사탄을 결박하기 전에 추구하는 목표이다. 사람이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거나 크게 쓰임받는 것을 추구하는 실질은 모두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하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기는 자를 추구하는 것이라 해도 최종의 결과는 여전히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하기만 하면 사람은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정상 사람의 생활을 지낼 수 있다. 사람이 현재 이기는 자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모두 땅에서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기 전에 추구하여 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주로 정결함을 받고 진리를 행하기 위한 것이며 조물주를 경배하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땅에서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고 고통과 환난의 생활이 없다면 사람은 그 무슨 이기는 자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는 것이란 모두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추구 목표이다. 이런 추구 목표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행하게 하고 의의있는 인생을 살아내게 한다.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이 목표이며, 이기는 자로 되기를 추구하거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다만 경로이다. 만일 장래에 인류가 모두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된다는 논법이 없고 다만 피조물이 각기 자기의 직책을 할 뿐이다. 사람의 추구가 더욱 목표가 있고 더욱 실제적이 되도록, 현재 사람더러 이런 것을 추구하라는 것은 다만 사람에게 하나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여전히 막연 중에서 살면서 영생에 들어가기를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더욱더 가련하지 않은가? 목표가 없고 원칙이 없는 이러한 추구는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것이 아닌가? 최종에 이르러 이런 추구는 자연히 성과가 없으며, 결국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구태여 이렇게 목표없이 추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인류가 영원한 귀숙에 들어갈 때에는 사람이 모두 조물주를 경배하게 된다. 사람은 구원받는 것을 거쳐 영세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람은 더는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탄의 포위 공격이 있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때에 사람은 모두 ‘안분’하고 모두 자기의 본분을 다한다. 설사 사람을 형벌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는다 해도 모두 각자의 본분을 다한다. 그때에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도 피조물이라고 칭하게 되는데, 더는 그 무슨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고 다만 하는 기능이 다를 따름이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순위가 있는 인류의 적합한 귀숙에서 살며, 사람은 모두 조물주를 경배하기 위하여 각자의 본분을 다한다. 이러한 인류가 바로 영세 안의 인류이다. 그때에 사람이 얻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는 생활이고 하나님이 보살펴주는 생활이며 하나님이 보호해주는 생활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고 인류가 땅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있게 되면 전 인류는 모두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6천년 경영 계획으로 철저히 사탄을 패배시키면, 즉 하나님이 땅에서 인류를 창조하고 또한 사람의 원래 형상을 회복시키면 하나님의 원래 마음을 만족케 하는 것이다. 시초에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되기 전, 인류는 땅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있었다. 그 후에 사탄에게 패괴되고 나서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기에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시작하였고 사탄과 싸우는 것으로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키기 시작하였다. 6천년 경영 사역이 끝날 때에야 전체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이 정식으로 시작되고 인류에게 아름다운 생활이 있게 된다. 이래야 시초에 사람을 창조할 때의 목적을 회복하게 되고 사람의 원래 모양을 회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게 되면 사람이 그 무슨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이 모두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하는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는 것 같은 것은 모두 하나님이 사탄과 싸울 때 사람에게 준 추구 목표이다. 이 목표는 사람이 패괴된 것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목표이다. 너에게 하나의 목표를 주어 그 목표를 향해 추구하게 하는 것으로써 사탄을 패배시키는 데에 달한다. 너더러 이기는 자, 온전케 되는 자, 쓰임받는 자로 되라고 하는 것은 모두 간증을 하는 것으로써 사탄을 욕되게 하라고 너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최종에 이르러 사람이 땅에서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게 되고 사람도 모두 거룩하게 되는데, 또 무슨 이기는 자로 되기를 추구하겠는가? 모두 똑같은 피조물이 아닌가? 이기는 자로 되고 온전케 되는 자로 되는 것은 모두 사탄을 겨냥하여 말한 것이고 모두 사람의 더러움을 겨냥하여 말한 것이다. 이기는 자라 하면 그래 사탄을 이기고 적세력을 이기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너는 네가 온전케 되었다고 하는데, 너는 무엇이 온전케 되었는가? 그래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데에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그 더러운 것들을 겨냥하여 말한 것이고 사탄을 겨냥하여 말한 것이지 하나님을 놓고 말한 것은 아니다.

현재 너더러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이기는 자로 되기를 추구하라고 하는데 네가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땅에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게 될 때에는 그런 것을 추구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때는 이미 각 종류 사람의 결국이 드러난 것이다. 네가 도대체 어떤 놈인지, 그때면 다 드러난다. 네가 만일 다시 이기는 자로 되기를 추구하려고 하거나 온전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사람의 패역으로 인하여 사람을 드러낸 후 징벌할 뿐이다. 그때에 사람은 그 무슨 네가 높고 내가 낮다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며, 네가 이기는 자로 되고 내가 온전케 되는 자로 되고 또는 네가 장자로 되고 내가 뭇아들이 된다는 그런 것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두가 피조물에 속하고 모두가 땅에서 생활하며, 또한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땅에서 생활한다. 현재는 모두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을 경력하는 기간이고 싸움이 끝나지 않은 기간이며 역시 사람이 아직 완전히 얻어지지 못한 기간이다. 현재는 바로 과도 단계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요구는 이기는 자로 되기를 추구하거나 자민(子民)으로 되기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현재는 이런 지위의 구별이 있지만 그때에 가면 이런 구별이 없다. 무릇 이긴 사람의 지위는 다 같으며, 다 합격된 인류가 땅에서 평등하게 생활하는 것이고 즉 다 합격된 피조물이며, 너에게 주는 것이든 그에게 주는 것이든 다 같다. 역사 시대가 다르고 역사 대상이 다르기에 너희들 몸에 하면 너희들이 온전케 되어 이기는 자로 될 자격이 있다. 만약 외국에서 한다면 그들이 첫 패로 정복되는 사람으로 될 자격이 있고 또한 첫 패로 온전케 되는 사람으로 될 자격이 있다. 현재는 외국에서 하지 않기에 그들은 온전케 되어 이기는 자로 될 자격이 없고 그들은 첫 패로 될 수 없다. 초점을 맞춘 대상이 다르고 역사하는 시대가 다르고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첫 패가 있는 것이고, 즉 이기는 자가 있는 것이며, 두 번째 패로 온전케 되는 자도 있는 것이다. 첫 패로 온전케 되는 자가 있으면 표본 모형도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온전케 되는 사람은 바로 두 번째 패, 세 번째 패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세 안에서는 다 같고 지위의 구분이 없으며, 다만 온전케 된 선후가 같지 않을 뿐 지위의 같지 않음은 없다. 이후에 사람이 모두 온전케 되고 전체 우주의 사역이 끝나게 되면 지위의 구별이 없으며 사람의 지위는 평등하게 된다. 현재는 너희들 몸에서 하여 너희들을 이기는 자로 만든다. 만약 영국에서 한다면 영국에도 첫 패로 이기는 자가 있게 된다. 그렇게 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 너희들 몸에서 하는 것은 특별히 은총을 베풀어준 것에 불과하다. 만약 너희들 몸에서 하지 않는다면 너희들도 여전히 두 번째 패, 또는 세 번째ㆍ네 번째ㆍ다섯 번째 패로 된다. 이것은 다만 사역의 전후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 첫 번째 패, 두 번째 패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대표하지 않고 다만 온전케 되는 선후를 대표할 뿐이다. 오늘날 이 말을 너희에게 교통해주는데, 무엇 때문에 일찍 너희들로 하여금 알게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과정이 없으면 사람이 쉽게 극단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마치 당시에 예수가 “내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오리라”고 한 것과 같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푹 빠져서 흰옷을 입고 들림받으려고 늘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허다한 말은 너무 일찍 말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말하면 사람이 극단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아서 이런 말을 꿰뚫어볼 수 없다.

인류가 땅에서 사람의 진정한 생활이 있는 데에 달하고 전체 사탄 세력이 다 결박되면 사람의 땅에서의 생활은 상당히 수월하여 현재처럼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인간 관계, 사회 관계, 복잡한 가정 관계, 너무나 번거롭고 너무나 고통스럽다! 사람이 이 안에서 살면 너무나 괴롭다! 사람이 정복된 후에는 사람의 마음과 사상이 모두 변화되며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게 된다. 전 우주 아래에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모두 정복된 후에 역시 사탄이 패배될 때에 사탄이 결박되면, 즉 모든 흑암 세력이 다 결박되면 사람의 땅에서의 생활은 어떠한 방해도 없으며, 자유자재로 땅에서 생활할 수 있다. 사람의 생활에 만일 육체 관계가 없고 육체의 복잡한 그런 일들이 없다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사람의 육체 관계는 너무나 복잡하다. 사람에게 이런 것들이 있으면 사람이 아직도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네가 형제자매들과 다 같은 관계이고 일반 식구들과도 다 같은 관계라면 아무런 번뇌도 없을 것이다. 누구도 근심 걱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더없이 좋은 것이다. 이러면 사람의 고통은 절반 줄어든다. 땅에서 사람의 생활이 정상이 되면 사람은 천사와 같다. 비록 역시 육체이기는 하지만 또한 천사와 거의 비슷하다. 이것은 최후의 약속이고 최후에 사람에게 베풀어줄 약속이다. 사람이 현재 형벌과 심판을 경력하는데, 너는 이런 것을 경력하는 것이 다 의의없는 것이라고 여기는가?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헛되이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을 무저갱에 넣는 것이라고 이전에 말하였는데, 바로 사람의 운명과 전망을 빼앗아간 것이다. 이것은 다만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일부러 사람을 무저갱에 넣고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최종에 사람 안의 것이 정결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이 있고 사람이 모두 거룩한 사람과 같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사실 사람 안의 대처해야 할 것들을 모두 대처해버리면 사람은 드높은 간증을 하는 동시에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다. 설사 사람 안에 원래 있는 그런 것들이 아직도 정결케 되지 못한 것이 좀 있더라도 사탄을 패배시킨 후에는 방해가 없을 것이다. 그때에 사람도 곧 철저히 정결케 될 것이다. 사람은 그러한 생활을 체험한 적이 없다. 사탄을 패배시킬 때에는 모든 것이 다 끝날 것이고 사람 안의 그런 하찮은 일도 다 해결될 것이다. 요점이 해결되면 그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서 역사하고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데, 하는 사역은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것에 의하여 사탄을 패배시키고 역시 너희들을 온전케 하는 것에 의하여 사탄을 패배시킨다. 너희들이 드높은 간증을 해내면 이것도 사탄을 패배시키는 표징이다. 사람이 먼저 정복되고 최후에 철저히 온전케 되는 것은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질상 사탄을 패배시키는 동시에 전 인류를 구원하여 이 공허한 고해(苦海)에서 이탈하게 하는 것이다. 전 우주의 사역을 하든지 또는 중국에서 하는 사역이든지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으로써 전 인류를 구원하여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은 네가 보기엔 이 정상 육신인 것 같지만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해서이고 이 육신의 하나님의 역사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천하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며 모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해서이고 더욱이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해서이다. 전체 경영 사역의 핵심은 사탄을 패배시켜 전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떠나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허다한 사역 중에서 언제나 너희더러 간증을 하라고 하는가, 이 간증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그래 사탄이 아닌가? 이 간증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고 역시 하나님의 사역이 효과에 달한 것을 간증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간증은 사탄을 패배시키는 사역에 관련된다. 만일 사탄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에게 간증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사탄을 패배시키려 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는 동시에 사람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사탄 앞에서 간증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으로써 사람을 구원하고 사탄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구원할 대상이기도 하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체 경영 사역의 핵심은 사람이며 사탄은 다만 훼멸시킬 대상이고 원수이다. 혹시 너는 자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느끼겠지만 너의 성정이 변화된 것으로 말미암아 간증을 해낸 것이다. 이 간증은 사탄을 겨냥하여 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간증을 누릴 자격이 없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싸우는 대상은 사탄이고, 사람은 다만 구원받을 대상이다. 사람은 사탄의 패괴 성정이 있어, 이 사역을 꿰뚫어볼 수 없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패괴로 인한 것이지 사람에게 원래 있던 것이 아니며, 모두 사탄이 지배한 것이다. 현재는 주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인데, 바로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여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최후의 간증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 많은 경우에 너의 육안으로 보기엔 마치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사역을 이미 이룬 것이다. 사람의 요구에 따르면 무릇 이룬 사역이라면 반드시 보여야 한다고 하지만 너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나는 이룬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굴복하였고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지혜ㆍ능력ㆍ권병이 사탄을 전승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려는 간증이다. 사람 몸에 비록 그 무슨 뚜렷한 표현은 없지만, 비록 사람의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이미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다. 이 모든 사역은 다 사탄을 겨냥하여 말한 것이며 사탄과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에 사람이 보기에는 성공하지 못한 일이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이미 성공한 일이다. 이것은 모든 사역의 한 방면의 내막이다.

사탄을 패배시킨 후, 즉 사람이 철저히 정복된 후 사람은 이 모든 사역이 다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구원의 방식이 바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탈취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6천년의 경영 사역은 3단계로 나눈다. 이 3단계 사역은 바로 율법시대ㆍ은혜시대ㆍ국도시대이다. 이 3단계 사역은 모두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에게 엄중히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구원 사역을 3단계로 나누고 사탄과의 싸움도 곧 3단계로 나눈다. 이 두 방면의 사역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사실,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한 단계 사역으로 즉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탄과의 싸움도 단계로 나누고 시기로 나누어서 하며, 인류의 필요에 따라 사탄이 패괴시킨 정도에 따라 사탄과 싸움을 전개한다. 혹시 사람의 상상 속에서는 ‘싸움’은 바로 양군대전(兩軍對戰)처럼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것은 다만 사람의 두뇌로 달할 수 있는 극히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구상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또 모두 이렇게 여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내가 말한,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이 바로 사탄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여긴다.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3단계로 하였는데, 즉 사탄과의 싸움을 도합 세 절차로 나누어 철저히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과 싸우는 모든 사역의 내막은 바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고, 사람의 속죄제로 되고,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이 몇 단계 사역에 의하여 효과에 달하는 것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사탄과의 싸움은 사탄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생명을 만들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에 의하여 하나님을 위해 간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사탄을 패배시킨다. 사람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에 의하여 사탄을 패배시킨다. 사탄을 패배시킨 후 즉 사람이 철저히 구원받은 후에 수치당한 사탄을 철저히 결박한다. 이러면 사람은 철저히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말하니, 사람을 구원하는 실질은 바로 사탄과 싸우는 것이고, 사탄과 싸우는 것은 주요하게 사람을 구원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단계에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사탄과 싸우는 최후 한 단계 사역이고 역시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데에 내포된 뜻은 바로 사탄에게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한 후 조물주께로 향하게 하는 것으로 사탄을 배반하도록 하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사람은 철저히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 즉 사탄과 싸우는 마무리 단계 사역은 사탄을 패배시키는 최후 한 단계 경영이다. 만일 이 한 단계 사역이 없다면 최종에 사람을 완전히 구원해낼 수도 없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킬 수도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갈 수 없고 영원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영 사역의 핵심은 바로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었지만 사탄의 유혹과 패괴로 인하여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묶여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그러므로 사탄은 경영 사역 중에서 패배당할 대상으로 되었다. 그것이 사람을 점유하였고 사람은 또한 전체 경영의 본전이기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을 탈환해야 하고 즉 사탄에게 노획된 사람을 또다시 탈환해야 한다. 이리하여 사람의 옛 성정을 변화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의 원래 이지(理智)를 회복하게 하는 것에 의하여 사탄을 패배시킨다. 이러면 노획된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탈환할 수 있다. 사람이 만일 사탄의 권세와 결박에서 이탈한다면 사탄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최종에 사람을 탈환하면 사탄도 패배당한다. 사람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모든 싸움의 전리품이 되고 사탄은 오히려 싸움이 끝난 후에 징벌받을 대상이 된다. 이러면 인류를 구원하는 전부의 사역을 끝마치게 된다.

하나님은 피조물에 대하여 그 무슨 악의가 없고, 다만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해서이다. 그의 모든 역사는 형벌이든 심판이든 사탄을 겨냥하여 한 것이며, 바로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바로 하나의 목표, 사탄과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사탄을 이기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는다! 언제 사탄을 패배시키게 되면 비로소 그만두는 셈이다. 왜냐하면 하는 모든 사역은 다 사탄을 겨냥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에게 패괴된 이 사람들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장악되어 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기에 사탄과 싸우지 않고 사탄과 결렬(決裂)하지 않으면 사탄이 이 사람들을 놓아주지 않고, 이 사람들도 얻어질 수 없다. 이 사람들을 얻지 못하면 사탄을 패배시키지 못하고 사탄을 전승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6천년 경영 계획의 제1단계는 율법의 사역을 하였고, 제2단계는 은혜시대의 사역, 즉 십자가의 사역을 하였으며, 제3단계는 인류를 정복하는 사역을 하였다.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정도에 비추어 한 것이고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단계는 하나도 없다. 6천년 경영 사역의 실질은 바로 큰 붉은 용과 싸우는 것이다.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은 곧 사탄을 패배시키는 사역이고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6천년 동안 싸움을 하여 즉 6천년 동안 역사하여 최종에 사람을 하나의 경지로 이끌어들어간다. 사탄이 패배당하면 사람은 철저히 해방받는다. 현재의 사역이 바로 이것에 경향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에 역사하는 것은 바로 이 추세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해방받게 하고 자유를 얻게 하며, 어떤 규례의 통제도 받지 않게 하고 어떤 매임의 제한도 받지 않게 한다. 모두 너희들의 분량에 따라 역사하는 것이고 너희들의 필요에 따라 역사하는 것인데, 바로 너희들이 어떤 것에 달할 수 있으면 어떤 것을 공급하는 것이지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하는 것은 모두 너희들의 실제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다. 매 단계의 사역은 모두 사람의 실제 필요에 따라, 사람의 실제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인데, 바로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해서이다. 사실 조물주와 피조물은 시초에 아무런 간격도 없었는데, 모두 사탄이 초래한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방해하고 사람을 패괴시켰으므로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더듬을 수 없었다. 사람은 피해자이고 속임당한 자이다. 사탄을 패배시킨 후에 피조물은 조물주를 보게 되며 조물주는 피조물을 보게 되고 피조물을 친히 인솔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땅에 있어야 할 생활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주요한 사역은 그래도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탄을 패배시키면 무슨 일이나 다 해결된다. 오늘 네가 보다시피,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온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와서 날마다 이것도 말하고 저것도 말하면서 너희들과 불쾌히 지내거나 다만 너희들로 하여금 그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고 도대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 된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좀 보게 하거나 너희들로 하여금 시야를 좀 넓히게 하거나 너희들로 하여금 그가 말한 비밀과 그가 뗀 일곱 인을 좀 듣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가 친히 인간 세상에 와서 육신을 입고 사람을 구원하는 것으로써 사탄과 싸우는데, 말씀이 육신 된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만약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친히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을 하며 친히 사람에게 나타나고 친히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는데, 이것이 작은 일인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하나님이 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좀 보게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바로 실제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막연하지 않고 공허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높거나 클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겠는가? 바로 사탄이 패괴시킨 것은 사람의 육체이고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것은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육신을 입고 사탄과 싸워야 하며 육신을 입고 친히 사람을 목양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사역에 유리하다. 두 차례로 말씀이 육신 되었는데 이 두 육신을 놓고 말하면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있게 된 것이고 역시 모두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하여 있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든지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든지 사탄과 싸울 대상은 하나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총괄적으로, 사탄과 싸울 대상은 천사일 수 없고 더욱이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일 수도 없다. 천사는 능력이 없으며 사람은 더욱 간섭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을 만들려 하고 친히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을 만들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말씀이 육신 되어, 즉 육신을 입고 그의 원래 신분을 지니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지니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일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거나 사람이 사역한다면 이 싸움은 영원히 효과에 달할 수 없고 또한 영원히 끝날 수 없다.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탄과 친히 교전할 때에야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가 있게 되었고, 또한 사탄도 저절로 수치당하여 다시는 틈을 탈 기회가 없게 되고 어찌할 방도가 없게 되었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하나님의 영이 달할 수 없는 것이고 더욱이 혈기에 속하는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이 싸움에 ‘참가’한다면 다만 참패를 당하고 심한 궁지에 빠질 뿐이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전혀 변화시킬 수 없으며, 사람을 십자가 위에서 구해낼 수도 없고 패역한 전 인류를 정복할 수도 없으며, 다만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낡은 사역을 좀 하거나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과 관계되지 않는 약간의 사역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이럴 필요가 있겠는가? 사람을 얻을 수 없고 더욱이 사탄을 패배시키는 사역을 할 수도 없는데, 이러면 또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탄과 싸우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하고 사람은 전혀 달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본분은 바로 순복하고 따르는 것이다. 사람은 아예 천지개벽의 사역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사탄과 싸우는 사역도 할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 자신의 인솔 하에서 조물주를 만족케 하는 것으로써 사탄을 패배시킬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람이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 차례의 새로운 싸움의 시작, 즉 새 시대의 사역의 시작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전체 시대를 인솔하며 온 인류를 위하여 더 새로운 출로를 개척한다. 매번 새로운 시대를 바꾸는 것은 모두 사탄과 싸우는 새로운 발단이다. 이로부터 인류는 곧 하나의 더 새롭고 더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솔하는 하나의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다. 그러나 얻어진 사람은 또한 모든 싸움 후의 열매이며, 사탄은 만물을 패괴시킨 자이고 모든 싸움 후의 패장(敗將)이며, 역시 싸움 후의 징벌받을 대상이다. 하나님ㆍ사람ㆍ사탄 이 3자 중에서 오직 사탄만이 버림받을 대상이다. 그러나 사탄에게 얻어지고 오히려 하나님께 탈환되지 못한 사람은 사탄 때문에 징벌받을 대상으로 된다. 이 3자 중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의 경배를 받아야 할 분이다. 그러나 사탄에게 패괴되었지만 하나님께 탈환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서 하나님을 위하여 악한 자를 심판하는 대상으로 된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이기는 분이고, 사탄은 틀림없이 실패하는 자이다. 그러나 사람은 오히려 이기는 것도 있고 실패하는 것도 있다. 이기는 것은 이긴 자에 속하고 실패하는 것은 실패한 자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각기 종류대로 되는 것이고, 모든 사역의 종결이자 모든 사역의 취지이며, 영원히 변할 수도 없는 것이다. 경영 계획의 주요한 핵심을 사람을 구원하는 이 한 점에 집중시켰다.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주로 이 핵심을 위한 것이고 이 사역을 위한 것이며,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것도 역시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가 친히 말씀이 육신 되고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첫 번째 싸움의 사역━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였다. 마찬가지로, 이 단계도 역시 친히 사역을 하고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며, 친히 말씀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한다. 물론 그는 겸하여 그 외의 사역도 좀 하는데, 그것은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친히 이 사역을 하는 것은 주로 여전히 사탄을 패배시키고 모든 인류를 정복하고 이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도성육신의 이 사역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가 만일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미은장(卑微隱藏)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바로 실제의 하나님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만일 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말씀이 육신 될 필요가 없다. 설사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직접 사람에게 그의 비미은장과 그의 높고 큼과 거룩함을 계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과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사람을 구원할 수 없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으며 더욱이 사탄을 패배시킬 수도 없다. 만일 영과 영이 교전하여 사탄을 패배시킬 뿐이라면 이러한 사역은 더욱더 실제적 가치가 조금도 없으며, 사람을 얻기는커녕 사람의 운명과 전망마저도 지체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현재 이렇게 하는 것은 의의가 너무나 깊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좀 보게 하거나 사람으로 하여금 시야를 좀 넓히게 하여 감동을 좀 받게 하고 격려를 좀 받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만일 이렇다면 아무런 의의도 없을 것이다. 만일 네가 이러한 인식만 말할 뿐이라면 네가 아직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진정한 의의를 인식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전체 경영 계획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는 것이다. 제1단계의 창세는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것이다. 하나님이 만일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인류를 창조할 수 없다. 제2단계에 온 인류를 구속한 것도 역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것이다. 제3단계는 마무리하는 사역이므로 더 말할 필요없이 더욱 그가 친히 해야 한다. 모든 인류를 구속하고 정복하고 얻고 온전케 하는 것은 다 그 자신이 친히 하는 것이다. 그가 만약 친히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의 신분을 대표할 수 없고 그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없다.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인류를 얻기 위하여, 인류에게 땅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친히 사람을 인솔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한다. 모든 경영 계획을 위하여, 그의 모든 사역을 위하여 그가 반드시 친히 해야 한다. 만약 사람이 다만 하나님이 온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좀 보게 하고 사람을 좀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너의 그러한 인식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아무런 의의도 없다. 사람의 인식은 너무나도 얕다!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만 이 사역을 철저히 할 수 있고 완전하게 할 수 있다. 만일 사람이 한다면 그를 대표할 수 없다. 그의 신분이 없고 그의 실질이 없으면 그의 사역을 할 수 없다. 설사 한다 해도 효과에 달하지 못한다. 제1단계 도성육신은 구속을 위한 것이다. 온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함을 받을 수 있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정복 사역도 여전히 그가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만일 예언만 한다면 하나의 예언자를 찾아도 된다. 바로 은사가 있는 하나의 사람을 찾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가령 예언만 한다면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만약 친히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고 사람의 생명을 만든다면 이 사역은 사람이 할 수 없다.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고 친히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해야 한다. 만일 말씀의 시대에서 예언만 한다면 이사야를 찾아도 되고 또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와도 되기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할 필요가 없다. 바로 이 단계에 하는 사역은 예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의 사역으로써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기에 이 단계 사역은 사람이 하지 못하며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율법시대에서 여호와가 일부분 사역을 하였으며 후에 또 선지자에 의하여 얼마간의 말씀을 하였고 얼마간의 사역을 하였는데, 그것은 사람이 그의 사역을 대체할 수 있었고 예언자가 그를 대신하여 예언할 수 있었으며 그를 대신하여 얼마간의 이몽을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한 사역은 직접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죄와 무관하며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라고만 요구하였기 때문에 여호와는 말씀이 육신 되지 않고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직접 모세에게 말씀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의 하려는 말씀과 하려는 일을 대신하게 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게 하였다. 제1단계 사역은 사람을 인솔하는 것에 상당한데, 사탄과의 싸움의 시작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사탄과 정식으로 싸운 것은 첫 번째 말씀이 육신 되어서부터 줄곧 현재까지이다. 첫 번째 싸움은 바로 말씀이 육신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사탄을 패배시킨 것은 제1단계 싸움이 성공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 되어 직접 사람의 생명을 만들기 시작해서부터 정식으로 사람을 탈환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 사역은 사람의 옛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여호와가 시초에 한 그 단계 사역은 다만 인류를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한 것이고 사역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어떤 싸움과도 관련되지 않고 어떤 큰 사역과도 관련되지 않지만 역시 이후의 싸움의 사역을 위하여 기초를 닦은 것이다. 후의 제2단계 은혜시대에서의 사역은 사람의 옛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되는데, 즉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하나님이 친히 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말씀이 육신 되어야 하였다. 만약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다면 그 단계 사역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역은 직접 사탄과 대결하는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역을 대체하게 한다면 사탄 앞에서 사탄이 굴복하지 않기에 아예 그것을 패배시킬 수가 없다. 반드시 도성육신에 의하여 그것을 패배시켜야 한다. 하나님 도성육신의 실질은 여전히 하나님이고 여전히 사람의 생명이고 조물주이기에 어떠하든지 그의 신분과 실질은 변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육신을 입고 역사하여 사탄을 철저히 굴복시킨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을 가령 사람이 하게 하고 직접 사람이 말하게 한다면 사람은 말할 수 없다. 만일 예언을 한다면 사람을 정복할 수가 없다. 육신에 의해 사탄을 패배시키고 사탄으로 하여금 철저히 굴복하게 하여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고 사람을 철저히 정복한 다음 사람을 철저히 얻게 되면 이 단계 사역이 끝날 것이고 큰일이 성사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경영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다. 특히 시대를 인솔하는 사역과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는 것은 더욱더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계시를 받게 하고 예언을 얻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대체하게 할 수 있지만 만약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 친히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하지 못하게 한다. 제1단계 사역에서 사탄과 싸우지 않았을 때는 선지자에 의하여 예언을 하였고 여호와가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하였다. 후에 제2단계 사역은 사탄과 싸우는 것이기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말씀이 육신 되어 육신 중에 와서 역사하였다. 사탄과 싸우는 것과 관련되기만 하면 도성육신과 관련되는데, 다시 말하면 싸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싸우게 할 수 없으며 사람이 싸워서는 그것을 패배시키지 못한다. 사람이 아직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데 어찌 그것과 싸울 힘이 있겠는가? 사람 자체가 바로 중간파에 속한다. 네가 만일 사탄에게 쏠리면 사탄에게 속하고, 네가 만일 하나님을 만족케 하면 하나님께 속한다. 이러한 싸움 사역을 만약 사람으로 하여금 대체하게 한다면 대체할 수 있겠는가? 이러면 사람이 진작 목숨을 잃지 않았겠는가? 진작 저승으로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말하니,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없다. 네가 사탄과 싸우면 사탄을 패배시킬 수 없다. 사람은 일부분의 사역만 할 수 있고 일부 사람들만 농락할 수 있을 뿐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 사람이 어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는가? 네가 싸우기도 전에 그것이 너를 노략해갈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이 사탄과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 기초에서 따르고 순복해야만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사탄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의 지혜ㆍ권병ㆍ능력만으로 사람이 달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유한하기에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인솔할 수 없고 더욱이 사탄을 패배시킬 수도 없다. 사람의 총명과 사람의 이런 지혜로는 사탄의 궤계를 이길 수 없는데, 또 어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는가?

무릇 온전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모두 온전케 될 기회가 있다. 사람마다 안심하여라, 이후에는 모두 그 귀숙에 들어갈 것이다. 가령 네가 온전케 되기를 원하지 않고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 자신의 일이다. 무릇 온전케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원하는 사람, 무릇 순복하는 사람, 무릇 성실하게 기능을 다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될 수 있다. 현재 무릇 충심으로 본분을 하지 않는 자, 무릇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자, 무릇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자, 특히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어도 실행하지 않는 자, 이러한 사람은 온전케 될 수가 없다. 무릇 충심으로 순복하기를 원하는 이러한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될 수 있다. 좀 우매하여도 염려할 것 없다. 무릇 추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될 수 있다. 이 일은 너희들이 모두 안심하여라. 네가 이 방면으로 추구하기를 마음속으로 원하기만 하면 온전케 될 수 있다. 너희들 가운데의 사람을 나는 하나도 버리기를 원하지 않고 하나도 도태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만일 사람이 스스로 힘써 노력하지 않는다면 네가 스스로 자기를 해치는 것이다. 내가 너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자기를 도태시키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본분을 하지 않거나, 충성하지 않거나,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자기의 그 수단을 꾸미면서, 즉 돈을 쓰고 남녀 관계를 맺으면서 네가 스스로 힘써 노력하지 않는데, 네가 스스로 범죄한 것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불쌍히 여길 가치가 없다! 나의 뜻은 너희들로 하여금 모두 온전케 될 수 있고 최소한 정복되는 데에 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이 단계 사역이 순조롭게 완성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사람마다 온전케 되어 최종에 그에게 얻어지고 완전히 그에게 정결케 되어 그의 사랑하는 사람으로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너희들을 낙후하다고 하든지, 너희들을 소질이 낮다고 하든지 이것은 모두 실제 정황이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를 버리려 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내가 너희들에 대하여 희망을 잃었다는 것도 증명하지 않으며, 더욱이 너희들을 구원하기를 싫어한다는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오늘 온 것은 너희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고 역시 구원의 접속 사역을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온전케 될 기회가 있다. 네가 원하기만 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최종에 가서는 모두 효과에 달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 네가 소질이 낮으면 소질이 낮은 대로 요구하며, 네가 소질이 높으면 소질이 높은 데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우매하여 글자를 모르면 너의 이 조건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글자를 알면 글자를 아는 표준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연로하면 연로한 데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접대할 수 있으면 접대할 수 있는 것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접대할 수 없고 다만 한 방면의 기능, 즉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사무 사역을 할 수 있다면 너의 하는 기능에 따라 너를 온전케 한다. 네가 충성할 수 있고, 끝까지 순복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를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네가 달해야 할 바이다. 바로 이 세 가지가 가장 좋은 실행이다. 최종에 사람에게 요구하여 달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몇 가지이다. 이 몇 가지에 달하는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네가 진심으로 추구해야 하고 주동적으로 높은 표준에 닿아야 하며, 이 일을 소극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온전케 될 기회가 있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내가 말하였는데, 이것은 말한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오히려 높은 표준으로 추구하지 않고 그 세 가지 표준에 달하지 못한다면 최종에는 여전히 도태될 것이다. 나는 사람마다 따를 수 있기를 바라고 사람마다 성령의 사역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이 있고 모두 최종까지 순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것은 너희 각 사람이 다해야 할 본분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모두 너희들의 본분을 다할 때면 너희들이 모두 온전케 되고 드높은 간증도 있게 된다. 무릇 간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탄을 이기고 약속을 받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바로 이후에 존류하여 아름다운 귀숙에서 생활할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