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이려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인식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이전의 역사(구약ㆍ신약)에 대해서도 인식이 있어야 하며 오늘의 역사에 대하여 더욱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바로 6천년의 3단계 사역에 대하여 모두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너더러 복음을 전하라고 해도 네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한다면 전할 수가 없다. 그들이 너에게 묻기를, “성경은 어찌 된 일인지, 구약은 어찌 된 일인지, 예수가 당시에 한 역사와 한 말씀은 어찌 된 일인지, 당신들의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았는가? 그분(하나님)이 만약 성경의 내막을 말해내지 못하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이 만약 말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굴복하겠다.” 당시에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구약의 허다한 일을 말하였다. 그들이 본 것은 모두 구약이었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몇십 년이 되어서야 사람이 성경의 신약을 써내게 되었다. 너희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로 성경의 내막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 즉 여호와가 한 사역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예수가 한 사역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다 모든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이다. 이 두 단계 역사는 모두 그들에게 없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먼저 현재의 성령 역사를 말하지 말라. 이 단계 사역에 그들은 닿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추구하는 것은 가장 높은 것이며,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역시 성령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 두 방면을 제외하고는 이보다 더 높은 것이 더는 없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먼저 높은 것을 말한다면 그가 닿지 못한다. 왜냐하면 누구도 이러한 성령 역사를 경력한 적이 없고 이러한 역사는 전례가 없어 사람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력하는 것은 모두 이전의 낡은 것들이고 이따금 성령 역사가 좀 있으며, 그들이 경력하는 것은 성령의 현시의 역사가 아니고 경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현시의 뜻도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런 낡은 실행법대로 실행하므로 조금도 새 빛과 새로운 것이 없다.

예수 그 시대에 성령은 주로 예수 몸에서 역사하였다.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는 그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충성스럽게 여호와를 섬기고 성령 역사도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더듬지 못하여 다만 이전의 낡은 실행법대로 여호와께 충성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새로운 인솔이 없었다. 예수가 와서 새로운 사역을 가져왔다. 성전 안에 있는 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솔이 없었고 새로운 사역이 없었으며, 성전 안에서 섬기는 것은 다만 이전의 그런 낡은 실행법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들이 성전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전혀 새로운 진입이 있을 리가 없었다. 새로운 사역은 예수가 가져온 것이고, 또한 예수는 성전 안에 들어가 역사하지 않고 다만 성전 밖에서 역사하였다. 하나님의 역사 범위를 이미 바꾸어 더는 성전 안에서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성전 안에서 섬기는 것은 현 상태만 유지하였을 뿐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 그 종교 인사들도 여전히 성경을 숭배하고 있다. 네가 만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그들이 너와 성경으로 논쟁하려 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성경을 말하기 시작할 때에 네가 어안이 벙벙하여 말해낼 수 없다면 그들이 너희들을 흐리멍덩하게 믿는다고 여긴다. 성경━‘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모르면서 그래 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가? 그들이 너를 깔보면서 또 말할 것이다. “당신들이 믿는 분이 하나님인 이상, 그분이 무엇 때문에 당신들에게 구약은 어찌 된 일인지, 신약은 어찌 된 일인지를 교통해주지 않았나요? 그분이 영광을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가져온 이상, 그분이 어째서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모르나요? 어째서 예수님이 한 사역을 모르나요? 당신들이 모르면 그분이 당신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음을 증명해요. 그분이 예수의 또 한차례 도성육신(道成肉身)인 이상, 그분이 어째서 이런 것을 모르나요?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하신 사역을 아는데, 그분은 어째서 모르나요?” 때가 되면 그들이 모두 이런 것을 너에게 물을 것이다. 그들의 두뇌에 담은 것이 이런 것뿐인데, 이런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도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현재에 성경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오늘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을 너희들이 따라왔고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을 너희들이 직접 목도하였으며 이미 3단계 사역을 명확히 보았으니 할 수 없이 내려놓고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에 대하여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물을 것이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한 사역과 이전에 그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한 사역은 무슨 구별이 있나요? 다윗도 주로 불렸고 예수도 주로 불렸으며, 그들이 한 사역은 같지 않지만 호칭은 같은데, 당신이 무엇 때문에 그들의 신분이 같지 않다고 하나요? 요한이 본 것은 이상(異象)이고 역시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며, 그가 성령이 하려는 말씀을 말해낼 수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요한의 신분은 예수의 신분과 같지 않나요?” 예수가 한 말씀이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하여 역사하였기 때문이다. 요한이 본 것은 이상에 속하며, 그는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할 수 없다. 요한ㆍ베드로ㆍ바울도 많은 말을 하였고 예수도 많은 말씀을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들의 신분은 구별이 있는가? 주요 원인은 그들이 한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며,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고 또한 새 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며, 아무도 한 적이 없었던 사역이다. 그는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였으며, 그가 대표한 것은 여호와이고 대표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베드로든, 바울이든, 다윗이든 그들이 무엇이라 칭함받았든지 그들은 단지 하나의 피조물의 신분을 대표하였거나 예수 또는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이 아무리 많고 행한 이적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단지 하나의 피조물이니 하나님의 영을 대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거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사역한 것이고 예수 또는 여호와가 전개한 시대에서 사역한 것이지 다른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필경 그들은 단지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구약에서 허다한 선지자들이 예언을 하였고 예언서를 썼지만 아무도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가 오자, 그가 말씀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영이 그를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현재에는 네가 아마 알고 있겠지! 이전에 그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각종 서신을 쓰고 허다한 예언을 하였는데, 후세 사람이 일부분만 선택하여 성경에 넣었고 또 얼마간은 이미 실전(失傳)되었다. 그들의 한 말이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어떤 사람이 말한다면 무엇 때문에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는가? 무엇 때문에 선택된 것도 있고 선택되지 못한 것도 있는가? 참으로 성령의 말씀이라면 그래 사람이 골라서 선택할 필요가 있겠는가? 예수가 한 말씀과 사역이 무엇 때문에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이 같지 않은가? 이것은 기록한 사람의 실수가 아닌가? 어떤 사람은 물을 것이다. “이왕 바울이나 신약의 기타 저자가 쓴 서신과 한 사역이 사람 뜻에서 온 것이 있고 사람의 관념이 뒤섞여있는 것이라면 당신(하나님)이 오늘 한 말씀에는 사람의 뒤섞임이 조금도 없습니까? 사람의 관념이 조금도 없습니까?” 이 단계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바울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한 사역과 완전히 같지 않다. 신분이 같지 않은 것만이 아니고, 가장 주요한 것은 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격살되어 주의 앞에 엎드러진 후에 성령의 인솔을 받고 사역한 사람이다. 그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가 뭇교회에 편지를 써주었는데, 이런 편지는 모두 예수의 교도를 이은 것이다. 그는 주 예수의 이름을 받들고 주의 보냄을 받고 사역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와서는 어느 한 이름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 영을 대표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와서는 직접 역사하는 것이지 사람의 온전케 함을 거치지 않고 어느 한 사람의 교도의 기초에서 역사하는 것도 아니다. 이 단계 사역에서 인솔하는 것은 개인의 경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의 소유에 따라 역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효력자, 형벌시대, 죽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런 사역을 하였는데, 모두 이전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이고 모두 본시대의 사역이지 사람의 경력이 아니다. 나의 말에서 어느 말이 사람이 경력한 것인가? 모두 직접 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모두 영의 발표가 아닌가? 다만 너의 소질이 너무 낮아 꿰뚫어보지 못할 뿐이다! 내가 말하는 실제적인 생명의 도는 길을 이끄는 것이고, 이전에 누구도 말한 적이 없던 것이다. 이 이전에는 아무도 이 길을 경력한 적이 없고 또 아무도 이 실제를 알지 못하였다. 내가 이 말을 하기 전에는 아무도 이 말을 해낸 적이 없고, 아무도 이 경력을 말한 적이 없으며, 또한 아무도 이 세부를 말한 적이 없고, 더욱이 아무도 이 정형을 지적하여 이런 것들을 드러낸 적도 없다. 오늘 내가 이끌어낸 이 길은 이전 사람이 이끈 적이 없는 길이다. 만일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더 새로운 길이 있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에게 예수가 길을 이끌기 전에는 그들 개인의 경력이 없었고, 예수가 이 길을 이끌어낸 후에야 그들은 예수가 한 말씀과 이끈 길의 기초에서 경력하게 되었다. 따라서 허다한 경력이 있게 되어 이런 서신들을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말하니, 사람의 경력은 하나님의 역사와 서로 다르고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 사람의 경력에서 말해낸 인식과 같지 않은 것이다. 현재에 내가 새 길을 이끌고 새 사역을 하는 것이므로 요한과 선지자들이 한 말과도 같지 않고 한 것과도 같지 않다고 나는 거듭 말한다. 나는 먼저 경력한 다음 다시 너희에게 말해준 적이 없다.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벌써 너희들을 지체시키지 않았겠는가?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말해낸 인식도 매우 높지만 그들이 말한 것은 모두 소위 영적 사람들의 기초에서 말해낸 것이며, 길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경력에서 온 것이고 사람의 보임과 사람의 인식에서 온 것이다.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이고 어떤 것은 사람이 총결해낸 경험이다. 현재 내가 역사하는 성질은 그들과 완전히 같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인솔을 경력한 적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케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또한 내가 말하는 것과 교통하는 것은 누구와도 같지 않고 여태껏 아무도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 너희들은 누가 사역하든지 모두 내가 말해낸 말씀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런 말씀과 역사가 없다면 누가 이런 것을(효력자ㆍ형벌시대……) 경력할 수 있고 누가 인식을 말해낼 수 있겠는가? 설마 이런 것을 네가 아직도 꿰뚫어보지 못한단 말인가? 어느 단계의 사역이든지 내게로부터 말씀이 나오기만 하면 너희들은 나의 말에 따라 교통하기 시작하였는데, 모두 내가 한 말에 따라 사역한 것이지 너희 어떤 사람이 생각해낸 길이 아니다. 오늘까지 왔는데도 네가 이렇게 간단명료한 문제조차 꿰뚫어볼 수 없는가? 어떤 사람이 생각해낸 길이 아니고 어떤 영적 사람의 기초에서도 아니라 따로 방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가 말한, 때가 지난 허다한 말씀까지도 폐하였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천지개벽의 사역이고 가업을 새로 세우는 격이다. 하는 사역과 하는 말씀은 다 새로운 것인데, 이것이 오늘의 새로운 역사가 아닌가? 예수가 당시에 역사한 것도 역시 이러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전 안의 사람이 한 것과도 같지 않았고 바리새인이 한 것과도 같지 않았으며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과도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고는 도대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감히 확정하지 못하였다. 예수는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와서 사람을 교훈하면서 가르친 것은 다 새로운 것이고, 구약의 그 옛 선지자들이 말한 것과도 같지 않았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이 확정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어려운 점이다. 이 단계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에 너희 다수의 사람들이 걸은 길은 모두 이전의 그 영적 사람들의 기초에서 실행하고 진입한 것이지만 오늘 내가 하는 사역은 크게 다르다. 그래서 너희들은 도대체 옳은지 그른지를 확정하지 못하였다. 나는 네가 이전에 걸은 길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관하지 않고, 네가 이전에 누구의 밥을 먹었든지 누구를 너의 ‘아비’로 인정하였든지 상관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미 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을 인솔한 이상, 무릇 나를 따르는 자는 모두 내가 말한 대로 해야 한다. 네가 어느 등급의 ‘호족의 자식’이든지 나를 따라가야 하며, 너의 이전의 실행법대로 계속 실행해서는 안 된다. 너의 ‘양아비’를 마땅히 퇴위(退位)시켜야 하고, 너는 마땅히 너의 하나님 앞에 가서 너의 얻어야 할 분깃을 찾고 구해야 한다! 너의 전부가 다 나의 손에 있으니 너는 너의 ‘양아비’를 너무 미신하지 말라. 그가 너를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 오늘 하는 사역은 다 가업을 새로 세우는 격이다. 오늘 말하는 것은 이전의 기초에서가 아니라 새로이 시작한 것이 아주 분명하다. 네가 만일 사람이 혼자서 직접 건립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는 눈이 멀어서 구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사야ㆍ에스겔ㆍ모세ㆍ다윗ㆍ아브라함ㆍ다니엘 그들은 이스라엘 선민 중의 지도자나 선지자에 속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으로 불리지 않았는가? 성령이 무엇 때문에 그들을 증거하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예수가 역사하고 말씀하자 성령이 그를 증거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을 증거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육신이며, 또한 모두 주로 불렸다. 그들을 어떻게 호칭하든지 그들의 역사가 그들의 소시와 실질을 대표하며 그들의 소시와 실질이 그들의 신분을 대표한다. 하나의 호칭은 그들의 실질과 관련되지 않으며, 그들이 발표하고 살아낸 것으로써 그들의 실질을 대표하는 것이다. ‘주’로 불리는 것은 구약에서는 극히 평범한 일이니 마음대로 어떻게 호칭해도 된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과 고유한 신분은 영원토록 변할 수 없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사람을 미혹하는 그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래 사람이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이며, 본래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분이 없다. 다윗도 열두 지파 중에서 주로 불리지 않았는가? 예수도 주로 불렸는데, 무엇 때문에 예수만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으로 불렸는가? 예레미야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는가? 예수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을 대표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는가? 그래 ‘실질’이 같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 한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설마 하나의 호칭에 달렸단 말인가? 예수도 비록 ‘인자’로 불렸지만 그는 하나님의 첫 번째 도성육신이었으며 정권을 담당하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분이었다. 이 점만으로도 예수의 신분ㆍ실질이 마찬가지로 ‘인자’로 불리는 사람과 전혀 같지 않음을 증명한다. 오늘 너희들은 누가 감히 무릇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이 해낸 말을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네가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무엇 때문에 에스라의 예언서를 삭제해버리고 그 옛 선지자들이 쓴 책마저도 삭제해버렸는가? 기왕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너희들은 또 감히 제멋대로 선택하였는가? 너에게 성령 역사를 선택할 이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에서의 허다한 이야기를 그들이 삭제해버렸는데, 만약 네가 이전에 기록한 이런 책들이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긴다면 무엇 때문에 일부분 책들을 삭제해버렸는가?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이상, 다 남겨서 뭇교회 형제자매들에게 발급하여 보게 해야지 사람의 뜻을 뒤섞어 함부로 삭제하고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옳은 것이다. 바울과 요한 그들의 경력에 개인의 보임이 뒤섞여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경력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왔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에게 개인의 경력으로부터 온 것과 개인이 본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의 현실적인 경력과 배경에 근거하여 인식한 것인데, 누가 감히 그런 것이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4복음서가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무엇 때문에 마태ㆍ마가ㆍ누가ㆍ요한 그들 네 사람이 당시에 예수가 한 사역에 대해 말한 것도 다 같지 않은가? 믿어지지 않으면 너희들이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가 세 번 주를 부인한 것도 다 다르고 각기 ‘특색’이 있음을 좀 보아라. 견식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도성육신인 하나님도 역시 사람인데, 그분이 한 말씀이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일 수 있겠는가? 바울ㆍ요한에게 인의(人意)적인 뒤섞임이 있다고 하는데, 설마 그분이 한 말씀에는 인의적인 뒤섞임이 없겠는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눈이 멀었고 견식이 없다! 너희들이 4복음서를 잘 보아라. 예수가 한 일과 한 말씀, 네가 그들이 기록한 것을 좀 보아라. 그야말로 한 사람이 한가지인바, 제각기 자기의 보임을 가지고 있다. 만일 책을 쓴 사람의 쓴 것이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같아야 하고 통일적이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또 다른 점이 있는가? 사람이 이런 것에 대하여 꿰뚫어보지 못한다면 너무나 흐리멍덩한 것이 아닌가? 너더러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하라고 하면 어떻게 간증하겠는가! 너의 이 인식법으로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다른 사람이 너에게 “요한ㆍ누가 그들의 기록에 인의적인 뒤섞임이 있다고 한다면 당신들의 하나님이 한 말씀에는 인의적인 뒤섞임이 없나요?”라고 묻는다면 네가 명확히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와 마태 그들이 예수가 한 말씀을 다 듣고 예수가 한 사역을 다 본 후에 개인의 인식을 말해낸 것은 마치 회고록처럼 예수가 역사한 사실을 얼마간 기록한 것이다. 너는 그들의 인식이 완전히 성령의 계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성경 이외에도 그들보다 더 높은 영적 사람의 많은 인식이 있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후세 사람에게 채택되지 않았는가? 그들도 역시 성령께 쓰임받은 것이 아닌가?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오늘 하는 사역은 예수 역사의 기초에 나 자신의 보임을 더한 것이 아니고, 예수의 사역 배경을 가져온 다음 또 나의 인식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가 그때에 무슨 사역을 하였는지? 내가 오늘 또 무슨 사역을 하는지? 내가 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모두 미증유한 것이다. 오늘 가는 길은 모두 이전 사람이 걸은 적이 없는 길이고 역세 역대의 사람이 걸은 적이 없는 길이며, 오늘 개척해낸 것이다. 이것이 영의 역사가 아닌가? 이전에 인솔자로 된 사람은 설사 성령이 역사하였다 하더라도 모두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역사는 다르다. 예수 그 단계의 사역도 역시 이러한바, 모두 스스로 새로운 출로를 개척한 것이다. 와서는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고 회개해야 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예수가 사역을 다 한 후에 베드로ㆍ바울 그들이 예수의 사역을 잇기 시작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승천한 후 그들은 그 영의 보냄을 받고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설사 바울이 말한 것이 매우 높다 하더라도 예수의 기초에서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인내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과 고통받는 것, 또는 머리에 쓰는 것과 세례를 받는 것, 또는 지켜야 할 다른 규례를 가르치는 것 등등 모두 예수의 말씀의 기초에서 한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출로를 개척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당시에 말씀하고 역사하는 데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으며, 성경 구약 율법 사역에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한 것이다. 그는 그가 가지고 온 사역에 따라 한 것이고 그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한 것이고 그의 직분에 따라 역사한 것이지 구약 율법에 따라 역사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매 한가지 일을 할 때마다 구약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것은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하여 역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매 단계 사역에서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았고 그의 이전의 사역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그의 새 사역을 전개하였다. 물론, 예수가 와서 사역한 것도 적지 않은 구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에 하는 사역도 구약의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는 것이다. 다만 오늘 너와 그 ‘노황력(老黃歷)’을 펼치지 않을 따름이다. 내가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더 많은 말씀을 너희에게 해야 하기에 이런 사역과 이런 말씀은 그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사역은 너희들에 대하여 말하면 별로 큰 의의와 별로 큰 가치가 없기에 너희들을 도울 수 없고 너희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새로운 사역을 하려는 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이 단지 성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네가 말해봐라, 도대체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도대체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당시에 예수가 정식으로 직분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처럼 그도 때로는 성전에서 집회하고, 찬송하고, 찬미하고,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 후에는 영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 강림’하여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신분과 해야 할 직분을 나타내었다. 이 이전에는 그의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요한마저도 몰랐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이 열리고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다. 그가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령이 이렇게 그를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세례를 받지 않은 스물아홉 살 전에는 정상 사람의 생활을 지냈는데, 식사할 때면 식사하였고 잠을 자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는 이런 것은 다 평소와 같았으며, 타인과 다른 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본 것이다. 때로는 연약함도 있었고 때로는 어떤 일을 꿰뚫어볼 수도 없었는데, 마치 성경에 “그의 나이와 그의 총명 지혜가 함께 자라니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이 말은 다만 그에게 하나의 보통 정상 인성이 있고 정상 사람과 그 무슨 특별한 차이가 없음을 설명하며, 그에게도 정상 사람의 생장(生長) 과정이 있고 조금도 특별하지 않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었고 하나님의 보호가 있었다.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시험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어 직분을 하기 시작하고 역사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능력도 있고 지혜도 있고 권병도 있었다. 이렇다고 해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성령이 그의 몸에 역사하지 않는다거나 성령이 그의 몸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세례를 받기 전에도 성령이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역사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는 시간의 한도가 있고 더더구나 정상 사람은 모두 정상 사람의 생장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줄곧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다. 그가 강생할 때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았는데 샛별의 나타남이 있었다. 그가 강생하기 전에는 또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마리아가 한 남자 아기를 낳으리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느니라고 알려주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역시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할 때, 성령이 그의 몸에 갓 임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의 몸에 임하였다는 것은 그가 직분을 하기 시작한 것을 놓고 말한 것이다. 그는 그 전에도 하나님의 영이 있었지만 역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이는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은 경솔히 역사하지 않고 세례받는 이 방식으로써 그를 증거하였다. 물에서 올라오자 영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서 역사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직분을 하기 시작하고 구속의 사역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며, 즉 은혜시대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하나님이 무슨 사역을 하든지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도 그 무슨 특수한 변화가 없었으며 여전히 그의 원래 육신이었다. 다만 역사하기 시작하여 그의 신분을 나타내었을 따름이다. 또한 그에게 권병과 능력이 가득하였는데 이 점이 이전과 같지 않은 것이다. 신분이 같지 않았는데, 즉 지위에 뚜렷한 변화가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증거에 속하는 것이지 사람이 한 사역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몰랐는데, 성령이 이렇게 증거해서야 사람이 조금 알게 되었다. 만일 성령이 증거하기 전에 예수가 매우 큰 사역을 하였다 해도 하나님 자신의 증거가 없다면 그가 한 일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람은 그의 신분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육안으로 꿰뚫어볼 수 없기에 반드시 성령이 증거하는 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도성육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만일 성령이 증거한 후에도 그가 여전히 이전처럼 역사하고 그 무슨 구별이 없다면 효과에 달하지 못한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또 성령의 역사 부분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는 반드시 성령이 나타나게 하여 너로 하여금 그가 바로 하나님이고 그의 몸에 하나님의 영이 있고 하나님이 증거한 것이 틀림없음을 분명히 보게 해야 한다. 이것도 증거가 정확하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다. 만약 이전에 한 사역과 이후에 한 사역이 다 같다면 도성육신인 그의 직분을 두드러지게 할 수 없고 성령의 역사 부분을 두드러지게 할 수 없다. 이러면 사람은 성령 역사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한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증거한 후에는 성령이 성령의 증거를 수호해야 하므로 반드시 그의 몸에 지혜와 권병을 나타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전과 같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세례받은 효력이 아니다. 세례받는 것은 단지 하나의 의식인데, 다만 세례받는 이런 방식으로써 그가 직분을 하는 시간을 나타내었을 뿐이다. 이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내고 성령의 증거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성령이 성령을 증거하였으면 끝까지 책임진다. 예수가 직분을 하기 전에는 그도 각처에서 말씀을 듣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 무슨 큰 사역을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직분을 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역시 하나님 자신이 육신 중에 비미은장(卑微隱藏)하였기 때문이고 때가 되지 않으면 그가 아예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례받기 전에 그가 역사하지 않은 것은 두 방면의 원인이 있다. 한 방면은 성령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 임하여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바로 아직 그에게 역사할 능력과 권병을 주지 않은 것이다). 설사 그가 자신의 신분을 알았다 하더라도 후에 할 사역을 할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세례받는 날까지 기다려야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이니 누구도 어길 수 없고 심지어 예수 본인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그 자신의 사역에 엇나갈 리가 없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비미의 일면이고 역시 하나님의 역사에 법칙이 있는 일면이다. 그의 영이 역사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그의 사역에 참견할 수가 없다. 다른 한 방면은 그가 세례받기 전에는 단지 하나의 극히 평범하고 보통 사람이어서 정상 보통 사람과 그 무슨 구별이 없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 도성육신이 초자연한 것이 없는 한 방면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 영의 안배를 어기지 않고 모두 순서있게 아주 정상적으로 역사한다. 그가 역사하는 데에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게 된 것은 단지 세례받은 후부터였다. 다시 말하면, 설사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더라도 어떤 초자연한 거동이 없고 정상 사람의 생장 법칙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예수가 일찍이 본인의 신분을 알고 또한 세례받기 전에 각처에서 크게 역사하고 모든 정상 사람과 다르고 비범하게 보였다면 요한의 사역을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도 전개할 수가 없다. 이렇다면 하나님이 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며,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사역은 모두 세례받은 후에 한 사역인데, 즉 3년 동안의 사역이다. 성경에 그가 세례받기 전에 어떤 사역을 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바로 그가 세례받기 전에 이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하나의 보통 사람이었고 하나의 보통 사람을 대표하였다. 그가 직분을 하지 않았을 때는 정상 사람과 완전히 같아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스물아홉 살이 된 후에야 예수는 자신이 한 단계 사역을 완성하러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그 자신도 몰랐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전혀 초자연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열두 살이 되어 예배당에서 집회할 때, 마리아가 그를 찾으니 그는 어린아이같이 “모친, 내가 아버지의 뜻을 중히 여겨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한마디 하였을 뿐이다. 물론, 그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는데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특수함은 초자연한 것을 대표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유치한 아동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을 따름이다. 비록 겉모습을 보면 그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실질은 그래도 특별하였고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진정 그의 몸에서 성령이 역사함을 느끼게 되고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느끼게 된 것은 그래도 세례받은 후였다. 서른세 살 되던 그 해에야 그는 참으로 성령이 그의 몸에서 십자가의 사역을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서른두 살 때에는 얼마간의 내정(內情)만 조금 알고 있었다. 마치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과 같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는 일찍부터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무엇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나자마자 완전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령이 그의 몸에서 역사한 것은 모두 차츰차츰 한 것이고 과정이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시작하자마자 자신이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고 도성육신인 인자임을 알고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전에는 그가 역사하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예수가 제자들에게 그가 해야 할 직분을 알려준 다음에야 민망한 느낌이 들게 되었고 또한 이 때문에 간절히 기도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요한으로 하여금 그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게 하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게 한 후에야 그가 이전에 깨닫지 못하였던 허다한 일들을 깨닫게 되었는가? 이 모든 것이 증명하는 것은 바로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다. 그래서 그가 깨달을 수 있고 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과정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어서 영의 직접적인 역사와 전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하나의 흐름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은 창세부터 현재까지 모두 한 단계가 한 단계를 이어서 현재까지 관통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길을 닦는 자가 없다면 뒤에 오는 이도 없으며, 뒤에 오는 이가 있는 이상 길을 닦는 자도 있는 것이다. 사역은 바로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전해온 것이다. 한 단계가 한 단계를 이었다. 만약 길을 개척하는 자가 없다면 사역을 전개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역사할 수가 없다. 어느 단계도 엇나가지 않으며, 모두 순서에 따라 이어내려오면서 형성된 하나의 흐름이고 한 분의 영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이어가는 사람이든지 신분을 결정할 수 없다. 네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가? 요한은 길을 개척한 자이고, 예수는 이은 분이다. 이렇다 하여 예수의 신분이 요한의 신분보다 낮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가 예수 전에 역사하였다고 네가 말하는데, 그렇다면 너는 여호와가 예수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길을 닦는 것과 잇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 역사하는 실질과 대표하는 신분이다. 네가 말해봐라, 이 말이 옳은가? 이왕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려면 그는 반드시 길을 닦는 사람을 일으켜 역사해야 한다. 요한이 첫 시작에 전도한 것은 바로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그가 이 도를 가르쳤는데, 무엇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가? 만일 말을 한 전후에 따른다면 요한이 먼저 이 천국의 복음을 말한 것이고 예수가 후에 말한 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따라 말한다면 요한이 새 출로를 개척한 것이니 당연히 요한이 예수보다 큰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도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빌어 출로를 개척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였을 뿐이다. 그는 예수를 위하여 길을 닦는 사람이니 예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었다. 사람의 사역도 다 성령이 수호하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여호와가 길을 이끈 것이다. 여호와 역사가 구약 전체 시대를 대표하였고 이스라엘에서 한 전체 사역을 대표하였다. 모세는 땅에서 좀 수호하였을 뿐이다. 그의 사역은 인성 협력에 속한다. 당시에는 여호와가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여 모세를 부르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세를 일으켜 이 사람들을 광야로 이끌게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이지 모세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모두 여호와가 친히 지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다. 그도 율법을 정하기는 하였지만 이 율법은 여호와가 스스로 반포하여 모세로 하여금 말하게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도 계명을 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약 율법을 폐하고 새 시대의 계명을 정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예수가 바로 하나님 자신인가? 왜냐하면 이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에 모세가 한 사역은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는 것도 아니며, 여호와가 앞에서 길을 이끌고 그에게 지시하여 한 것이다. 다만 그는 쓰임받은 사람에 속할 따름이다. 예수가 왔을 때에 요한은 이미 길을 닦는 사역을 하였고,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성령은 시작에 이렇게 하였다) 예수가 오자마자 직접 그 자신의 사역을 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모세의 말과 사역과는 매우 큰 구별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가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는 하나님 자신이 아닌가? 예수는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인가?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을 누구도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였고 완전히 사람의 뜻으로부터 온 것이라고도 감히 말하지 못하였으며, 누구도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 자신이 한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이런 일들은 사람이 모두 분석할 수가 없다. 이사야가 그런 사역을 하고 그런 예언을 한 것도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며 직접 그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묵시로부터 온 것이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예수는 사역을 얼마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았고 매우 많은 예언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보기에 그는 별로 높은 도를 가르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는 하나님의 자신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해석할 수가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요한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이사야를 믿는 사람도 하나도 없고 다윗을 믿는 사람도 하나도 없으며,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없고 또는 다윗 하나님, 요한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예수만을 그리스도라고 칭하였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증거에 근거하고 그의 담당한 사역과 그의 직분에 근거하여 구분하였다. 성경 안의 이 큰 인물들, 아브라함ㆍ다윗ㆍ여호수아ㆍ다니엘ㆍ이사야로부터 요한ㆍ예수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이 한 사역에서 너는 도대체 누가 하나님 자신이고 어느 부류의 사람이 선지자에 속하고 어느 부류의 사람이 사도에 속하는가를 분별해낼 수 있다. 누가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고 누가 하나님 자신인가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한 사역의 실질과 유별에 근거하여 분별하고 확정하는 것이다. 이런 것마저도 네가 분명히 분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찌 된 일인지를 네가 모른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는 하나님이다. 이는 그가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였고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으며 특히 그가 많은 표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요한도 그렇게 많은 일을 하였고 그렇게 많은 말을 하였으며 모세도 역시 이와 같은데, 그들은 어찌하여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었는가?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자인데, 무엇 때문에 그를 하나님이라 칭하지 않고 다만 하나의 피조물이라고 칭하였는가? 만약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셨고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기에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면 모세도 그렇게 많은 말을 하였는데, 마땅히 하나님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이렇게 묻는다면 이때 너는 그에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당시에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셨지만 요한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시지 않았겠나요? 요한은 예수님 먼저가 아닌가요? 요한이 한 사역이 큰가요 아니면 예수님이 한 사역이 큰가요? 사람이 보기에 요한이 한 것이 크고 예수님이 한 것이 작은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요한을 증거하지 않았겠나요?”라고 반문하여라. 이는 오늘과 같은 문제이다! 당시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할 때는 여호와가 구름 속에서 그에게 말씀한 것이지 그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다. 바로 여호와가 직접 인솔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다. 모세의 몸에는 그 영이 없고 그 소시가 없기에 그는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와 예수가 한 것은 크게 다르다. 바로 한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선지자ㆍ사도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가 하는 것은 역사의 성질로부터 분별하면 너는 의문이 없을 것이다. 성경에 오직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고 기록되었다. 역대 이래, 그 큰 인물들 중에 성경을 해석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러면 너는 그들을 모두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너는 그들이 해석한 것을 완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성경 해석가’이다. 그들에게 어린양의 신분이 없는데, 어찌 일곱 인을 뗄 자격이 있겠는가? “오직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는 이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온 것은 단지 일곱 인을 떼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다. 이 사역은 그 무슨 필요가 없고, 다만 사역을 겸하여 할 따름이다. 그 자신이 하는 사역은 그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데, 그래 대량의 시간을 허비하여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겠는가? 6천년의 사역에 또 ‘어린양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를 첨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새로운 사역을 하러 온 것인데, 다만 이전의 사역을 좀 드러내보였을 따름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6천년 사역의 실정을 깨닫게 하면 되고 너무 많은 성경 장절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관건은 그래도 현시의 사역이 중요하다. 너는 하나님이 온 것은 전적으로 일곱 인을 떼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을 하러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하리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이러한 죄인들이 갓 구속되어왔는데,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너 옛 사람, 예수가 너를 구원해온 것은 틀림없다.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의 안이 아직도 더러움뿐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네가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한 단계의 과정이 적은데, 다만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되기만 하고 거룩함에 달할 수 없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에서,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관건적인 한 단계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산업을 직접 이어받을 수 없다.

만일 이 단계 새 사역의 시작이 없다면 너희들 이 대전도자ㆍ설교자ㆍ성경 해석가 그리고 소위 영적 위인들이 어느 지경까지 발전될지 모른다! 이 단계 새 사역의 시작이 없으면 너희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그 낡아빠진 것들이 아닌가? 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면 왕이 될 분량을 예비하는 것이고, 자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면 자기의 몸을 굴복시키는 것이며, 인내하는 것이 아니면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것이고, 겸손하는 것이 아니면 사랑하는 것인데, 그래 옛날 곡조를 다시 연주하는 격이 아닌가? 모두 형식만 바꾸고 내용을 바꾸지 않는 격이다! 머리에 쓰고 떡을 떼는 것이 아니면 안수 기도하고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것인데, 그래 무슨 새로운 사역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 무슨 발전 전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너로 하여금 이렇게 이끌어나가게 한다면, 규례를 고집스레 지키는 것이 아니면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진행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사역도 대단히 훌륭하다고 여기는데, 모두 고대의 그 ‘노인’들이 남겨놓은 유전과 유교인지 모른단 말인가? 너희들이 말하는 것과 하는 것은 그래 모두 노인의 유언이 아닌가? 그래 모두 노인의 임종 전의 부탁이 아닌가? 너는 너희들이 한 것이 역대의 사도ㆍ선지자를 초과하고 심지어 만유를 초월한다고 여기는가? 이 단계 사역이 시작되자, “왕이 되고 보좌에 앉기를 추구한다”는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숭배하는 너희들을 제지시키고 이 사람들의 날뛰는 기세를 그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이 단계 사역에 간섭할 수 없게 하였다. 만약 이 단계 사역이 없다면 너희들은 갈수록 더 깊이 빠져서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 낡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현재의 사역이 너희들을 끌어온 것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하나님인 이상, 너는 무엇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찾고 구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계속 그 낡은 것들을 지키는가? 그러므로 성령의 오늘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관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