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멍에에서 벗어나다

河南省 鄭州市 珍惜

10년 전, 저는 교만한 본성 때문에 본분을 하면서 늘 교회의 안배에 완전히 순복하지 못했습니다. 제 뜻에 맞는 것은 순복했지만 제 뜻에 맞지 않는 것은 가려 가며 순복하거나 순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본분을 하면서 사역안배를 심하게 어기고 딴짓을 하다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려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반성을 하면서 자신의 본성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질 방면의 진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별로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교회에서 저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어 복음 사역을 맡겼는데, 그때 저는 ‘내가 이처럼 패괴되고, 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도 저질렀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쓰실 수 있지? 혹시 나를 이용하는 건 아닐까? 이용한 다음 나를 도태시키는 건 아닐까? 휴, 교회에서 나에게 기회를 주었으니 소중히 여겨야지. 효력자가 된다고 해도 괜찮아.’라며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추구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영적 수양을 할 때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정복되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고, 앞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도 고려해야 한다. 너는 온전케 될 심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고, 늘 자신은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진리가 사람을 차별 대우 하겠느냐? 진리가 또 일부러 사람과 맞서겠느냐?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데 진리가 너를 압도하겠느냐? 네가 정의를 위해 일어서는데 정의가 너를 넘어뜨리겠느냐? 너에게 정말로 생명을 추구할 심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피하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결코 진리가 너를 외면했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서지 못하는 것은 정의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정의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여러 해 추구했어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너에 대해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해 양심이 없었고, 네가 생명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네가 추구하지 않으면 너를 가치 없는 천한 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네게는 살아갈 용기가 없고, 흑암 세력에 반항할 정신력도 없다. 너는 너무나도 나약하다! 사탄 세력의 포위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아주 평안하게 일생을 보내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죽으려고 한다. 네가 정복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바이고, 마땅히 다해야 할 의무이다. 네가 정복되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그것은 네가 빛의 존재를 몰아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심판과 형벌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나니 저의 마음은 몹시 감동되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모두 온전케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기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제 걱정을 내려놓고, 다시는 소극적이 되거나 피동적이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힘써 추구하겠습니다.’라고 생각하며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신실한 실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늘 그 말씀들은 다른 사람에게 하신 것이고, 저 같은 사람에게는 단지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늘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적이 있는 데다가 본성 또한 그토록 패괴됐고, 본분을 하면서도 늘 패괴 성정들을 유로하기 때문에 계속 추구한다고 해도 온전케 될 수 없을 테니 효력하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또 소극적인 정형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상면에서 여러 차례나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방면의 진리를 교통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밝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다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실질은 신실한 것이어서 말한 대로 하고, 하는 대로 이룬다. 그는 신실한 분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도성육신의 두 번째 방면의 의의>에서 발췌)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는데, 마치 마음속에 가득 끼어 있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힌 것처럼 수년간의 오해와 의심과 염려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저는 또 전에 먹고 마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에게 정말로 생명을 추구할 심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피하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결코 진리가 너를 외면했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서지 못하는 것은 정의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정의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여러 해 추구했어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너에 대해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해 양심이 없었고, 네가 생명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심판과 형벌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의 구절구절에 호연지기(浩然正氣)와 끝없는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고 느껴지면서 말씀이 그렇게도 고귀하고 위대해 보였습니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비천하고, 옹졸하고, 퇴폐적인지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의심할 바 없고 흠잡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실질을 지니고 계시기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만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최대한도로 구원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하시고, 하시는 대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하나님도 사람처럼 나중에는 토사구팽할 수도 있다고 의심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진리로 대하지 않았고, 더욱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진실하게 믿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상상과 의심 속에서 살다 보니 진리 앞에서 용기가 부족했고, 나약하게 흑암 세력에 굴복하면서 정의를 위해 굳게 서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예전부터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 인식하기를 중요시하였더라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염려 속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생명 성장도 지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보살펴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저를 오랫동안 통제당하였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고, 안개 속에서 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전에는 제가 당신을 알지 못하여 항상 오해 속에서 살면서 당신의 말씀을 확신하지 못했고, 당신의 말씀을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으로만 여겼습니다. 결코, 당신의 말씀을 진리와 생명으로 대하지 않았고, 더욱이 당신을 하나님으로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제가 저지른 과오대로 저를 대하지 아니하시고, 저를 관용해 주시고 인내해 주시며,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고, 또한 저를 깨우치고 빛 비춰 주어 저로 당신의 신실하고 공의로운 실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게 하셨는데, 이것 역시 당신의 사랑이 체현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저는 당신을 아는 방면의 진리에 많은 공을 들여 저에 대한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신의 실질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성정이 변화되어 당신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인식하고 나니 마음속에서 감동의 힘이 솟구쳐 올랐고, 어려움에 직면해도 더 이상 소극적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의 오해와 의심, 염려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완전히 적극적인 정형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