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신의 진상을 분명히 보게 되다

江蘇省 徐州市 小小

교회 사역의 필요에 따라 저는 다른 곳에 가서 본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게 된 곳의 복음 사역은 침체 상태에 있었고, 형제자매들의 정형도 그다지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의 감동으로 아주 기꺼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제 자신이 부담이 많고 깨닫는 것도 많고, 게다가 꽤 추진력이 있어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니 그 사역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성령의 역사와 자신의 본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이 자기만족과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자신감에 넘쳐 있었을 때, 한 섬김의 집에서 그 지역의 사역을 책임지는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사역 상황에 대해 묻길래 저는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 형제가 틀림없이 저의 사역 능력과 참신한 견해를 칭찬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도 저의 대답을 듣고 난 후 칭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제대로 못했다든가, 인원을 동원하는 데에 미흡했다든가, 효과도 안 보인다는 등의 이런 말만 했습니다. 저는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그의 표정과 제 사역에 대한 평가를 듣고 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아직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어느 정도라야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는 거지? 골칫덩어리를 마다하지 않고 맡아 준 것만 해도 잘한 거잖아. 근데도 잘하지 못했다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불복, 불만, 패역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이 정도밖에 못해. 아무튼 난 최선을 다했어. 내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을 찾든지……’ 그때 저는 너무나 괴로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형제가 이것저것 더 말했으나 제 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저는 자신감이 넘치던 정형이 의기소침하게 되었고, 득의양양해하던 것이 억울함으로 꽉 차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 막막함과 답답함 속에 있던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을 살아내려고 추구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고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며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난 뭘 추구했지? 다른 사람에게 몇 마디 들었다고, 사역을 잘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괴로워하며 본분을 내팽개치려 하다니, 이게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인가? 이게 베드로처럼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것인가? 내가 유로(역주: 흘러나옴)한 것들은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기 싫어하고 칭찬만 듣고 싶어하는 것은 가장 비천한 추구가 아닌가?’ 그때 저는 뭔가 떠오르는 말씀이 있어 재빨리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책을 펼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희는 그래도 자신을 인식하는 진리에 공을 좀 들이는 것이 좋겠다. 왜 하나님이 너희를 알아주지 않는가? 왜 너희의 성정은 그를 혐오케 하는가? 왜 너희의 언사는 그를 증오케 하는가? 너희는 충성이 조금 있으면 자화자찬하고, 공헌이 조금 있으면 보수를 요구하며, 순복이 조금 있으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그마한 일을 좀 하고 나면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는다. ……너희의 이러한 인성은 그야말로 말하기조차 거북하고, 듣기조차 민망하다. 너희의 언행에 자랑할 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너희는 그것이 가소롭게 느껴지지 않는가?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자기를 자랑하는데, 너희는 너희의 이지가 이미 자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 이지로 어찌 하나님과 접촉할 자격이 있겠는가? 지금 너희는 자신이 걱정되지도 않는가? 너희의 성정은 이미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너희의 믿음은 매우 가소롭지 않은가? 너희의 믿음은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너는 너의 미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네가 가야 할 길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날 선 검처럼 저의 실질을 뚜렷하고 확실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말문이 막혀 버렸고, 부끄러워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의 변명과 마음속의 전쟁은 연기처럼 깨끗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마음속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로 인해 저는 제 자신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실하게 본분해서 제일 좋은 효과를 얻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현 상태에 만족하면서 득의양양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어린아이다.”라고 말씀하셨으나, 저는 제 자신이 아이와 같은 존재란 것을 몰랐습니다. 또한 저의 정형을 하나님께서 혐오하신다는 것도 몰랐고, 다른 사람이 지적할 때 오히려 억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참으로 무지몽매하고 사리를 몰랐던 것입니다! 사역을 좀 하고 나면 늘 칭찬받기를 바랐고, 칭찬을 받지 못하면 힘이 빠졌습니다. 고생을 했는데도 좋은 소리는 못 듣고 훈계까지 받게 되면 입을 삐죽거리며 싫어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자신의 위선적인 몰골을 보게 되었는데, 본분을 하면서 요구와 거래가 있었고, 불순물이 가득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저는 사람의 인성이 비천하다고 폭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도 잘 이해하지 못해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이렇게 드러내 주시니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본분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높여 주심과 사랑인데, 난 이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가치 없고 의의 없는 것을 추구했었지.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거나 주목받기를 추구하고 사람 마음속에 지위가 있기를 추구했는데, 이런 것들이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난 지난날 무엇을 의지해 살았지? 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만 신경 쓰며 살았고, 항상 이로 인한 이해득실만 따졌었지. 칭찬이나 위로나 배려하는 한마디 말로 인해 힘이 솟구쳤고, 지적하는 한마디나 언짢은 표정 하나에 늘 의기소침해져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과 방향을 잃곤 했었지. 그럼 나는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 설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폭로하신 것같이 내가 중히 여겼던 것은 진리가 아니었고, 사람됨의 원칙도 아니었으며, 더욱이 심혈을 기울이신 하나님의 역사도 아니라, 육체가 좋아하는, 내 생명에 전혀 유익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어. 다른 사람이 나를 잘 대해 준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과 합할 수 없다면, 내가 추구한 것들은 역시 헛된 것이 아닌가?’ 이렇게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 자신이 유로한 것을 돌아보면서 그리스도의 소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셔서 역사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하나님에 대한 인류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그분은 본래 거룩하시고 존귀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자신이지만, 그 누가 참으로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고, 그 누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으며, 또 그 누가 참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적이 있었는가? 인류는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할 뿐만 아니라 모독하고 저버렸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사람과 시시콜콜 따지지 않으셨고, 사람의 과오대로 사람을 대하지 않으셨으며, 묵묵히 사람의 박해와 기만을 당하면서도 전혀 항거하지 않으셨어. 또한 그 누가 그리스도의 낮추심과 선량함, 드넓은 흉금을 참으로 찬미한 적이 있는가?’ 반면에 저는 속이 좁고, 시시콜콜 따지기 좋아하고, 늘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고 중시받기 좋아하는,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파렴치한 저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비천한 인격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을 아주 귀한 금덩이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지(理智)가 이미 자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 곧 만물의 주재자에 대한 사모와 연모의 정이 생겼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성품, 당신의 실질, 당신의 아름다움을 한없이 찬미합니다. 그 누가 당신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우리 가운데서 발표하시고 유로하시고 우리를 폭로하신 것에 당신의 아름다움과 선함, 공의와 위엄을 나타내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저의 눈을 열어 주시고, 제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게 하고 고개를 숙이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저의 교만과 허영심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기묘한 배치와 안배가 아니었더라면, 다른 사람을 통해 이렇게 저를 질책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마 제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을 것이고, 당신의 영광을 가로채고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참으로 염치없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저를 드러내 주시고 또 보호해 주셔서 다행히 저는 자신의 진상을 분명히 보게 되었고,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소극적이지 않고, 더 이상 그런 비천한 것들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당신의 형벌과 심판, 격타와 징계 속에서 당신을 추구하고 알아갈 것이며, 당신의 훈계와 책망 속에서 본분을 잘해 당신께 보답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