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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의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체험해야만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어 최종적으로 진리가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 잔치에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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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참고: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9)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슥 13:9)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대표적인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이 시대에 너희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일을 이루려 한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진리를 실행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 삼고 실제가 되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말씀을 실행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역을 이루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면 되겠는가? 지금은 하루나 이틀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 날마다 말씀을 봐야 한다. 시간이 안 되면 들어도 좋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성령은 사람에게 이런 느낌을 주고,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네가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흑암과 목마름을 느끼게 되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너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고, 성령이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네가 하루 이틀 정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며, 아무런 감동도 없다면, 성령이 너를 버린 것이다. 그것은 너의 내적 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네가 말씀시대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니, 너는 뒤떨어진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규제하기에 너는 말씀을 먹고 마시면 좋다고 느껴지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행할 길이 없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양식이 되고, 동력이 된 것이다. 예전에 성경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했었는데, 오늘날 하나님은 이 사역을 이루고 이 사실을 너희들에게서 성취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사람이 며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밥도 잘 먹고 일도 잘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러지 못하게 되었는가? 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온전케 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고 광명을 주고 실행할 길을 줄 수 있다. 특히 하나님나라시대에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떠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 <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시대이다> 중에서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몰입한다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를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매우 많은 진리를 깨닫고 얻는 것을 말한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중요시한 것은 도리를 아는 것이 아니었고, 신학 지식을 얻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베드로가 중요시한 것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스러움을 아는 것이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여러 가지 타락된 상태와 타락한 본성, 부족점을 깨달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요구에 따라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정확하게 실행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맞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함에 있어 가장 훌륭하게 협력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수백 번의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 사람을 드러내는 말씀, 사람에게 요구한 말씀을 다 엄격하게 자신에게 비추어 보고 성찰하였으며, 하나님 말씀의 뜻을 구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해 준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고 마음에 새겨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베드로는 그렇게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는데, 사람의 여러 가지 타락된 상태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과 본성도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부족점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속성, 하나님이 사역하는 뜻, 인류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는 말씀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에 대해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본질을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도 좀 알고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처럼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에게서 이런 효과를 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매우 귀한 것이다. 베드로는 그 수백 번의 시련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아주 중요시하였고,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하는지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베드로는 그것을 분명히 알게 되기까지 매우 많은 노력을 들였다. 이것은 베드로의 진입에 아주 유익하였다. 어떤 방면의 하나님 말씀이든 베드로는 자신에게 생명이 되는 말씀, 진리에 속하는 것이면 다 마음에 새기고 늘 묵상하면서 깨달아 갔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두었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요시하였음을 설명한다. 나중에는 확실히 효과를 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능숙하게 적용하여 실행할 수 있었고, 진리를 정확히 실행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정확히 행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견해와 상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사람의 상태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에게 그에 대한 인식과 순종이 있게 하고, 사랑과 간증도 있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 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하고,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한 방면의 효과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각오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연단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 있는 일이 되었고,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그리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므로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품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진리는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춰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다짐도 갖춰져 있지 않다. 사람이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다짐은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하며,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에게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의의 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없애 버리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에 멸하려는 것도 아니라,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게 있어 실제적인 검증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연단 속에 있어야만 사람의 사랑이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 <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중에서

『너희 모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란 말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희 모두 예전에 이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아무도 그 진정한 함의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이 말의 실질적인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말세에 이루고자 하는 것이며,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서 그것의 잔혹한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큰 붉은 용은 하나님을 핍박하는 하나님의 원수이므로 이곳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다. 따라서 이 말은 너희들에게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에서 사역을 펼치므로 그의 모든 사역이 크나큰 저지에 직면하며, 그의 말씀 중 많은 부분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는데, 이 역시 ‘고난’의 한 요소이다.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의 땅에서 사역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이 ‘어려움’을 통해 한 단계의 사역을 행함으로써 그의 지혜와 기묘한 행사를 나타낸다. 또한, 이 기회를 빌려 이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받는 고난, 사람의 자질, 이 더러운 땅에 있는 사람의 모든 사탄 성품으로 인해 정결케 하고 정복하는 사역을 행한다. 또한, 하나님은 이로부터 영광을 얻고, 그의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을 얻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른 모든 의의이다.』

―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은 그의 심판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는데, 그의 사랑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을까? 심판, 위엄, 진노, 저주가 있다. 하나님이 지난날 사람을 저주하긴 했어도 완전히 무저갱에 두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의 믿음을 연단한 것이지 사람을 사지로 몰아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육체의 본질이 사탄에게 속한다고 말씀한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을 보면, 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너를 저주하는 것은 너로 그를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육체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가 너를 형벌하는 것은 너로 각성하게 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이 너무나 자격이 없음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는 모두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너희에게 나타내고 있는 공의로운 성품은 모두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 중에서

『하나님이 연단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는데, 사람이 마음으로 고통받는 것은 다 사람 생명에 유익하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더 안정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질 수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도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욥도 시련을 여러 번 겪었듯이, 너희도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연단을 수없이 겪어야 하고,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드시 이 절차를 거쳐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연단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오직 연단과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야만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우러나오게 할 수 있다.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사람에게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이 임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밖에서 떠돌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연단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보게 되고, 부족함이 너무나 많아 자신에게 많은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이겨 나갈 수 없음을 보게 되며, 자신의 패역이 너무나 많음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서라야 참으로 자신의 실제 상태를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사람을 더욱 온전케 할 수 있다.』

― <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그렇게 많은 사역이 사람에게는 다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연단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더욱이 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마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데, 사람이 누리게 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왔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엄하든,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온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고,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시련이 있을 때마다 사람에게 있어야 할 간증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긴 자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 자신감이 넘치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않으며, 사람이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인데,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여 시시각각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긴 자이다.』

― <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성심을 지켜야 한다> 중에서

『만약 사람이 하나님이 요구한 일, 요구한 말씀에서 진정 말씀의 실제에 진입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그 사람에게서 완전히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사람 육체의 본성, 즉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사역의 이상(異象),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폭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참된 인생의 기준이 사람에게 생명이 되어 그런 말씀으로, 그런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사람이 된 것이다.』

―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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