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참된 신복이 있으면 너는 늘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것이다

2017.09.29

하나님은 니느웨 성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모호함도 없었고, 순수한 진노에서 순수한 관용에 이르렀다. 여기서 하나님의 본질이 참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한 적이 없다. 그의 사역 원칙과 목적은 흠 없이 순결하고 투명하며, 여기에는 절대 그 어떤 계략과 음모도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에는 어둠과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노한 것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안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고 그들에게 다시 관용을 베풀었을 때도 하나님이 나타낸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로 인해 바뀐 것이다. 그 기간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은 변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본질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노하지만,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려 진노를 거둔다. 그러나 사람이 완고하게 하나님께 계속 대항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멸할 때까지 노를 멈추지 않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또한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성품이 진노든, 긍휼과 자비이든 모두 사람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난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기인한다. 만약 하나님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노한다면,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거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인’ 적이 없고 진심으로 신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항상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있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신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시한 적이 없을 것이다. 늘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늘 임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간단한 성경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 본질의 참됨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진노하는 것과 마음을 되돌리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진노할 때와 마음을 되돌릴 때 극명한 대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관용, 두 측면의 본질에 차이와 대비가 크다고 느꼈다. 하지만 니느웨 성 사람들의 회개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보면서 사람은 또 한 번 하나님의 참된 성품의 다른 면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는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진실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으며, 진실하게 발현된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 인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전설이나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진실했고, 마음을 되돌린 것도 진실했으며, 하나님이 확실히 또 한 번 인류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참된 신복이 있으면 너는 늘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것이다

참된 회개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결말을 바꾼 니느웨 사람들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리는 것과 진노하는 것에 모순이 있느냐? 당연히 없다! 하나님이 관용을 베풀었을 때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성경에 언급한 ‘각기 악한 길에서 떠나다’와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다’이다.

하나님에 대해 참된 신복이 있으면 너는 늘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것이다

‘악한 길’은 한두 가지의 악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행한 일의 근원이 사악함을 의미한다. ‘악한 길에서 떠나다’는 더 이상 그렇게 일을 하지 않고 악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하는 방식, 근원, 출발점, 속셈, 원칙 모두를 바꾸어 더 이상 그런 방식과 원칙으로 향유하거나 즐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다’의 ‘떠나다’는 내려놓고 버림으로 과거를 완전히 끊어 내고 다시는 지난 길을 걷지 않는다는 뜻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난 것은 참된 회개를 했음을 증명하고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과 내면을 모두 관찰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마음으로 참된 회개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살펴보고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제서야 마음을 되돌렸다. 즉, 사람의 행동과 태도, 다양한 모습과 마음에 진실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고, 뜻을 바꾸고, 내린 결정을 거두고, 그들을 벌하지 않고, 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니느웨 사람들의 결말이 바뀌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되찾았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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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참된 회개를 보았다

여기서 ‘무너지리라’는 무슨 의미이냐? 사라진다는 뜻이다. 왜 사라질까? 누가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이냐? 물론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어리석지 않았기에 듣자마자 그 말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이 그 성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악독이 여호와 하나님을 노하게 만들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그들은 성과 함께 멸해질 것임을 알아차렸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후 어떻게 하였느냐? 왕부터 백성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성경에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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