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복음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선집

목차

6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과의 구별

각 종교의 교주는 패괴된 인류이지 절대 하나님이 아니다

1. 『도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새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이며, 그의 사역을 잇는 사람은 그에게 쓰임받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의 직분 내의 사역이니 결코 이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만일 하나님 도성육신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낡은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새로운 시대도 가져올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얼마간의 본분 내의 사역 즉 사람이 할 수 있는 사역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해야지 이 밖에 누구도 그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 물론 내가 한 말은 모두 도성육신의 사역에 비추어 말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2.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며,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고 또한 새 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며, 아무도 한 적이 없었던 사역이다. 그는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였으며, 그가 대표한 것은 여호와이고 대표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베드로든, 바울이든, 다윗이든 그들이 무엇이라 칭함받았든지 그들은 단지 하나의 피조물의 신분을 대표하였거나 예수 또는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이 아무리 많고 행한 이적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단지 하나의 피조물이니 하나님의 영을 대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거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사역한 것이고 예수 또는 여호와가 전개한 시대에서 사역한 것이지 다른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필경 그들은 단지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3.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하나님이 친히 한다. 그는 사역을 전개하는 분이자 사역을 끝마치는 분이며, 그는 사역을 계획하는 분이자 사역을 경영하는 분이고 더욱이 사역을 성취하는 분이다. 마치 성경에서 “나는 시작과 끝이라, 나는 씨를 뿌리는 자이자 곡식을 거두는 자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그의 경영에 관련되는 이 모든 사역은 다 그 자신이 하며, 그는 6천년 경영 계획의 주재이며, 어느 한 사람도 그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고 어느 한 사람도 그 자신의 사역을 끝마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모든 것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그가 창세한 이상 온 세계를 인솔하여 그의 빛 속에서 살게 할 것이고, 또 필연코 전체 시대를 끝마치는 것으로써 그의 모든 계획을 이룰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비밀 (1)≫에서 발췌

4. 『요한은 시작의 사역만 하였으며, 더 많은 새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것이다. 요한도 새로운 사역을 하였지만 그가 새 시대를 개척한 것은 아니다. ……요한도 비록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였고 역시 천국의 복음을 전한 자이지만 그의 사역은 심화되지 않았고 다만 시작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였고 낡은 시대도 끝마쳤지만 구약 율법도 완전케 하였다. 그는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하였다. 또한 그는 온 인류를 구속하러 왔기에 그 단계 사역을 한 것이다. 요한, 그는 길만 닦아 놓았을 뿐이다. 비록 그가 한 사역도 아주 크고 한 말도 아주 많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만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사람은 그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얻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은 하나의 큰 선지자(엘리야)이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하여 장소를 개척하고 인선(人選)을 예비하였는데,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봉이었다. 이런 것을 분별함에는 정상 사람의 외각(外殼)으로는 전혀 분간할 수 없다. 더더구나 요한이 한 사역도 상당히 크고, 또한 요한은 성령이 약속한 자이며, 그가 한 사역은 성령이 수호한 것이다. 이래서 오직 그들이 한 사역으로부터 각자의 신분을 분별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외각으로는 사람의 실질을 식별할 수 없으며,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를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한이 한 사역과 예수가 한 사역은 같지 않고 사역 성질도 같지 않다. 당연히 이런 것으로부터 그가 도대체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예수가 한 사역은 시작ㆍ계속ㆍ마침ㆍ성취인데, 이 몇 단계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시작만 하였다. 예수가 처음에는 복음을 전하고 회개의 도를 전하였으며, 후에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으며, 최종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내어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을 완성하였다. 그도 역시 각처에서 사람에게 전도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였다. 이 점은 요한과 같지만 다른 것은 그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여 은혜시대를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은혜시대에 사람이 실행해야 할 것과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모두 그의 입으로부터 말해내고, 최종에 그는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였다. 요한은 오히려 이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였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직접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비밀 (1)≫에서 발췌

5.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이 경력한 것이고 사람이 이미 본 것이며, 사람 자신의 사유로 달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의 촉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사람이 교통해낼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는 말씀은 영의 직접적인 발표이다. 발표하는 것은 영이 이미 하였던 사역이다. 육신이 경력하지 않았고 보지도 못하였지만 발표하는 것은 여전히 그의 소시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실질은 영이고 발표하는 것은 영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설사 육신이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영이 이미 하였던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 된 후에 육신의 발표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게 하는 데에 달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하는 사역을 보게 하는 데에 달한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에 대하여 더욱더 투득하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인솔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고 진리를 경력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것은 부축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인류를 위하여 새 출로를 개척하고 새 시대를 개척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속된 인간이 알지 못하는 일을 드러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성품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인솔하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6.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라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욱 안 되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실질상에서 구별이 있다. 혹시 네가 이 말씀을 보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사람이 받은 깨우침이라고만 인정한다면 너는 너무나도 무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사람이 받은 깨우침과 같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개척하는 것이고, 전 인류를 인솔하는 것이며, 비밀을 풀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새 시대의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주는 것이다. 사람이 받은 깨우침은 단지 얼마간의 간단한 실행이나 인식일 뿐 전 인류를 인솔하여 새로운 시대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의 비밀을 풀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실질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7. 『구약에서 선지자가 예언을 하였는데, 마찬가지로 예수도 예언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런 것은 역사 성질에 근거하여 구별한다. 이 일을 분별함에 있어서 너는 육신의 성질이 어떠한가를 보아서는 안 되며, 그의 말씀이 도대체 깊은가 얕은가 하는 것도 보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너는 먼저 그가 한 사역과 이 사역이 사람 몸에 어떤 효과에 달하였는가를 보아야 한다. 당시에 이사야가 한 예언은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다니엘 그 사람들이 얻은 그런 묵시는 예언일 뿐 생명의 도가 아니다. 당시에 만약 여호와가 직접 계시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속된 인간이 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도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이런 말씀은 생명의 도이므로 사람이 그중에서 실행할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첫째, 예수가 바로 생명이기에 그는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었다. 둘째, 그는 사람의 그 치우치고 그릇된 점들을 돌려세울 수 있었다. 셋째, 그는 여호와의 사역을 교체하여 시대를 접속할 수 있었다. 넷째, 그는 사람 안의 필요한 바를 알아낼 수 있었고 사람의 결핍을 알 수 있었다. 다섯째, 그는 새 시대를 전개하고 낡은 시대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를 하나님이라 하고 그리스도라 하며, 이사야와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선지자와도 같지 않다고 한다. 선지자가 한 사역, 바로 이사야를 놓고 대조해보면 첫째, 그는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없었다. 둘째, 그는 시대를 전개할 수 없었고, 여호와의 인솔 아래에서 사역을 한 것이지 새 시대를 전개하여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셋째, 그 자신이 한 말은 그 사람 자신도 달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이 직접 계시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듣고서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몇 조목으로 그가 한 말이 단지 예언임을 증명할 수 있고 단지 여호와의 한 방면의 사역을 대체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하게 여호와를 대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여호와의 종이고 여호와의 사역 중의 도구이다. 그는 다만 율법시대 이내에서 사역을 하였고 여호와가 역사한 범위 내에서 사역을 하였을 뿐 율법시대의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가 한 사역은 같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가 역사한 범위를 벗어났고, 그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나 역사하였으며, 그는 십자가의 사역을 하여 전 인류를 구속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는 여호와 이외에 또 새로운 사역을 한 것이다. 이것은 시대를 개척한 것에 속한다. 또 한가지가 있는데, 그는 사람이 달하지 못하는 얼마간의 말씀을 할 수 있었다. 그가 한 사역은 하나님 경영 중의 사역이고 전 인류에 관련되는 사역이지 몇 사람만 만드는 사역이 아니고 제한된 사람을 인솔하여 역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한 사역으로부터 보면 첫째, 그는 시대를 전개할 수 있었다. 둘째, 그는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었고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가리킬 수 있었다. 이러면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확정할 수 있고 최소한도로 그가 한 사역이 완전히 하나님의 영을 대표할 수 있었음을 확정할 수 있으며, 그가 한 사역으로부터 그의 몸에 하나님의 영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것이고 새로운 사역을 이끄는 것이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몇 가지로 그를 하나님 자신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 이러면 이사야ㆍ다니엘 그 대선지자들과 구별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과의 구별≫에서 발췌

8. 『너희들은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사역에서 너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이 경력한 성분이 많으며,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소시이다. 하나님 자신의 역사도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그의 소시는 결코 사람의 소시와 같지 않다. 사람의 소시는 사람의 경력과 사람의 신세(사람의 일생에 어떤 경력이나 조우가 있는지 또는 어떤 처세 철학이 있는지)를 대표하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발표하는 소시도 같지 않다. 네가 사회의 일을 경력한 적이 있는가 없는가, 너의 가정에서 네가 도대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경력한 것인가는 모두 너의 발표 속에서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도성육신의 역사 속에서 너는 그에게 도대체 사회 경험이 있는가 없는가는 알아낼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금 보듯 하여 각 종류 사람의 각종 행실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사람의 패괴 성정과 패역 행위를 더욱 드러낼 수 있다. ‘세상 사람’ 가운데서 생활하지 않지만 ‘속된 인간’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다. 이것은 그의 소시이다. 그는 비록 처세하지 않지만 처세의 조목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의 본성에 대하여 이미 투철히 측량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오늘이나 이전의 것을 다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이 아닌 지혜와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기묘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공개하기도 하고 사람에게 숨기기도 한다. 그가 발표한 것은 하나의 비범한 사람의 소시가 아니라 영의 원래 속성과 원래 소시이다. 그는 열국을 일주하지 않지만 오히려 천하의 일을 알고 있다. 접촉하는 것은 지식이 없고 견식이 없는 일부의 ‘유인원’이지만 오히려 지식보다 높고 위인보다 높은 언론을 발표해낸다. 인성이 없고 인성의 관례와 인성 생활을 모르는 멍청하고 마비된 한 무리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미천한 인성도 드러낼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소시인데, 혈기에 속한 어느 한 사람보다도 높은 그의 소시이다. 그에 대하여 말하면 부질없이 복잡하고 번쇄하고 더러운 사회 생활을 경력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고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남김없이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더러운 사회 생활은 그의 육신을 양성할 수 없다. 그가 역사하고 말씀하는 것은 단지 사람의 패역을 드러낼 뿐 사람에게 처세의 경험ㆍ교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데는 사회를 조사할 필요가 없고 사람의 가정을 조사할 필요도 없다.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육신의 경력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람의 패역을 일찍이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한 후에 비로소 사람의 불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오직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데, 혈기에 속하는 사람이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역사를 놓고 말하면 사람은 그가 도대체 어느 부류의 사람에 속하는지를 명확히 말할 수 없다. 사람도 그의 역사에 따라 그를 피조된 사람 가운데 귀속시킬 수 없고 그의 소시도 그를 피조된 사람 가운데 귀속시킬 수 없어, 사람은 부득불 그를 비인류 중에 넣었다. 그러나 또 어느 부류에 속해야 하는지를 몰라 부득불 그를 ‘하나님’의 유별 중에 넣었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도 도리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9. 『하나님이 땅에 와서 신성에서의 사역만 하는 것은 하늘 위의 영이 도가 육신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에 대한 부탁이다. 그가 와서는 각처에서 말씀만 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데, 주로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과 사람을 훈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역사 원칙으로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거나 사람 생활의 사소한 부분 같은 것을 그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의 주요 직분은 바로 영을 대표하여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이며, 바로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육신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명만 공급하고 진리만 내놓으며, 사람의 사역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바로 인성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면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면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인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과의 실질에서의 구별≫에서 발췌

10. 『육신 중에서의 하나님은 사람의 불의를 직접 심판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본래부터 거룩한 표징이자 뭇사람과 다른 표징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능히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있고 조건이 있다. 그에게 진리가 있고 공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심판할 수 있다. 진리가 없고 공의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11. 『하나님이 역사하거나 말씀하는 것이 무릇 인류의 귀숙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모두 그 실질에 따라 적합한 처리를 한 것이므로 어떤 착오도 있을 리가 없고 더욱이 추호의 실수도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이 사역해야만 사람의 감정이 섞여있을 수 있고 또는 사람의 뜻이 섞여있을 수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모두 가장 적합한 것이므로 절대로 어느 한 피조물을 모함할 리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12.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다만 유한한 범위를 대표한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데는 어느 한 사람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해 말씀하는 것이고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향해 말씀하는 것이다. 결국을 선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결국을 선포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결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 하지 않고 또한 어느 한 사람과도 불쾌히 지내지 않는다. 그는 전 인류에 대하여 역사하고 말씀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13.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는 규례가 없고 시간의 제한과 지리의 제한도 받지 않기에 어느 시간이든 어느 지점이든 그의 소시를 발표할 수 있으며, 그가 역사하는 것은 모두 자유로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역하는 데는 조건이 있고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할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진리에 대한 경력도 발표해낼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의 역사인지 아니면 사람의 사역인지, 대조하기만 하면 너는 사람의 사역과 하나님의 역사의 구별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14. 『사람의 사역에서는 혹시 사람의 경력이 아주 높고 사람의 상상과 추리가 아주 높을 것이며, 또한 인성이 아주 좋을 것이다. 이것은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탄복하게 하는 데에 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외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사역 능력이 있고 또한 경력이 아주 깊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을 사람이 모두 탄복하지만 어쨌든 경외하는 데에는 달할 수 없고 다만 탄복하고 흠모할 따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은 하나님을 탄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한 일은 사람이 달할 수 없는 것이자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라고 느끼며 새롭고도 기묘하다고 느낀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그에 대한 첫 인식은 바로 ‘심오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고 지혜롭고도 기묘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저도 모르게 그에 대하여 경외함이 생기게 되었으며, 사람은 그의 하는 사역이 심오하여 사람의 사유로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그의 요구에 달하고 그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 그를 초월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가 하는 사역이 사람의 사유와 사람의 상상을 초과하기에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자신마저도 자신의 결핍함을 모르지만 그는 오히려 따로 새 길을 개척하여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을 더 새롭고 더 아름다운 하늘땅으로 이끌어들어갔다. 인류는 그제야 새로운 진전이 있게 되었고 더 새로운 발단이 있게 되었다. 사람이 그에 대하여 생긴 것은 탄복이 아니다. 또 가히 말해서 탄복만이 아니다. 가장 깊은 체험은 경외하는 것이고 또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확실히 기묘하다고 느끼고 그의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해낼 수 없다고 느끼고 그의 하는 말씀은 사람이 말해낼 수 없다고 느끼는데, 그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은 언제나 이상야릇한 느낌이 있다. 더 깊이 경력한 사람은 하나님을 특히 사랑하는데, 언제나 그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의 하는 사역이 너무 지혜롭고 너무 기묘하여 사람들 가운데 무궁한 힘이 생기게 되었는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이따금 애대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깊이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한 사람은 또 그의 위엄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의 많은 역사를 경력한 사람도 그를 측량할 수 없다. 무릇 진실로 그를 경외하는 사람은 모두 그의 역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사람의 관념을 반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사람이 그에 대하여 완전한 탄복이나 겉면의 순복에 달할 수 있는 것이 요구되지 않으며, 진실한 경외와 진실한 순복이 있는 데에 달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렇게 많은 역사 중에서 무릇 진실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하여 탄복보다 높은 경외심이 생겼다. 사람은 모두 그의 형벌ㆍ심판의 사역으로 인하여 그의 성품을 보게 되었는데, 이로부터 그에 대하여 경외심이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경외받는 분이고 사람에게 순복받는 분이다. 왜냐하면 그의 소시와 그의 성품은 피조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피조물보다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피조물이다. 오직 그만이 사람에게 경외받고 사람에게 순복받을 자격이 있으며, 사람은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무릇 그의 역사를 경력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은 모두 경외심이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관념을 버리지 않는 그 사람들, 즉 그를 하나님으로 아예 여기지 않는 그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다. 비록 따르기는 하지만 정복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천성적으로 패역한 사람이다. 그의 이와 같은 역사가 달하려는 효과는 바로 피조물로 하여금 모두 조물주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를 경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무조건 그의 권세 아래에 귀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역사가 달할 최종 효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15. 『성령이 역사하는 데는 비록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여러 가지 원칙이 있지만 어떻게 하든지, 어떤 사람 몸에서 하든지 그 서로 다른 실질이 있다. 서로 다른 사람 몸에서 하는 사역은 모두 원칙이 있고 모두 역사 대상의 실질을 대표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역사하는 데는 상당히 범위가 있고 상당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된 육신 중에서 하는 사역은 사람 몸에서 하는 사역과 다르고, 소질이 서로 다른 사람 몸에서 하는 사역도 같지 않다. 사람 몸에서는 도성육신 중에서 하는 사역을 하지 않고, 도성육신 중에서는 사람 몸에서의 사역과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아무튼, 어떻게 하든지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하여 하는 사역은 같지 않다. 각종 사람의 정형과 각종 사람의 본성에 따라 그의 역사하는 원칙도 각기 다르다. 성령이 서로 다른 사람 몸에서 역사하는 것은 모두 그 원래 실질에 따라 역사하는 것이다. 사람의 원래 실질을 초월하여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고 사람의 원래 소질을 초월하여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 몸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성령이 역사하는 대상의 실질을 보게 한다. 사람의 원래 실질은 불변한 것이고, 사람의 원래 소질은 유한한 것이다. 성령이 사람을 쓰거나 사람 몸에서 역사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유한한 소질에 따라 역사하는 것으로써 사람에게 소득이 있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쓰임받는 사람 몸에서 역사할 때 그 사람의 천재와 원래 소질을 발휘해내어 그것을 보류하지 않게 하며, 모두 그 원래 소질을 발휘해내어 사역에 복무하게 한다. 가히 말해서, 그는 역사 효과에 달하도록 사람 몸에서의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을 이용하여 역사한다. 그러나 말씀으로 된 육신 중에서 하는 사역은 바로 영의 사역을 직접 발표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사유가 뒤섞여있지 않다. 이것은 사람의 은사, 사람의 경력,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으로는 달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 역사는 형형색색의 사람에 의하여 완전하게 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 완전히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이 전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뭇교회를 인솔하는 그 사람들도 성령의 사역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고 다만 인솔하는 일부분 사역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성령의 역사를 대략 몇 부분으로 나누는데, 하나님 자신의 역사와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과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모든 사람 몸에서의 역사, 이 세 부분이다. 이 세 부분 중에서 하나님 자신의 역사는 전체 시대를 인솔하는 것이다.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역사한 후 보냄을 받거나 부탁을 받고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는 것이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하는 사람이다. 흐름 속에 있는 사람 몸에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모든 역사를 수호하기 위한 것, 즉 전부의 경영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역시 그의 간증을 수호하는 동시에 온전케 될 만한 그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이 세 부분 사역이야말로 성령의 완전한 사역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역사가 없다면 전체 경영 사역도 정체된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전 인류에 관련되는 사역이고 역시 전체 시대를 대표하는 사역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성령 역사의 모든 동태와 추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역사한 후에 잇는 것이지 시대를 인솔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시대에서의 성령의 역사 동향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이 해야 할 사역이니 아예 경영의 사역에 관련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경영 사역 중의 항목이며,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다만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본분이므로 경영 사역과 무관하다. 신분과 하는 사역이 대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모두 성령의 역사일지라도 하나님 자신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는 언제나 뚜렷한 실질적인 구별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분이 다른 역사 대상의 몸에서 성령이 하는 사역의 경중(輕重) 정도도 각기 다르다. 이것이 바로 성령 역사의 원칙과 범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16. 『설사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자신을 대표할 수 없다. 단지 이 사람만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하는 사역도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경력을 직접 하나님의 경영에 놓을 수 없으며, ‘사람의 경력’은 ‘하나님의 경영’을 대표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모두 그 자신의 경영 계획이 하려는 사역이고 큰 경영에 관계되는 일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즉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개인의 경력을 공급하는 것이고, 모두 이전 사람이 밟아낸 길이 있은 후에 또 따로 경력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며, 성령의 인솔 하에서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솔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공급하는 것은 모두 개인의 경력이나 영적 인물의 영적 저작이다. 비록 성령께 쓰임받지만 그들이 하는 사역은 6천년 계획 중의 큰 경영과 관계되는 사역이 아니고, 다만 각기 서로 다른 단계에서 성령께 일으킴을 받아 그들이 할 수 있는 기능이 끝날 때까지, 또는 그들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성령의 흐름 속의 사람을 인솔할 뿐이다. 그들이 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적합한 길을 예비하는 것이고, 또는 하나님 자신의 땅에서의 경영 중의 한가지를 잇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경영 중의 더 큰 사역을 할 수 없고, 더 새로운 출로도 개척할 수 없으며, 더욱이 아무도 하나님의 옛 시대의 사역을 끝마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는 사역은 하나의 피조물을 대표하여 자기의 기능만 하고 있을 뿐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직분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은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고, 모두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 아래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인솔하는 것은 모두 일상 생활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실행하는가 하는 길과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지 않으며 영의 사역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서로 다르며, 그들의 신분과 대표하는 대상도 서로 다르다. 이것은 모두 성령이 하려는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면 똑같이 사역하는 사람의 서로 다른 신분과 지위를 결정하게 된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은 아마 새로운 사역을 좀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마 옛 시대의 사역을 좀 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새 시대의 성품과 새 시대의 뜻을 발표해낼 수 없으며, 다만 옛 시대의 사역을 폐하기 위하여 사역을 하는 것일 뿐 새로운 사역을 하여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직접 대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낡은 행실을 얼마나 폐하였든, 새로운 행실을 얼마나 가져왔든, 여전히 사람을 대표하고 피조물을 대표한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역사할 때에는 옛 시대의 행실을 폐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지 않고, 시대를 전개하려는 것도 직접 선포하지 않는다. 그가 사역을 하는 것은 단도직입적이어서 그가 하려는 사역을 직접 하는데, 바로 그가 가져온 사역을 직접 발표하는 것이고, 그가 원래 하려던 사역을 직접 하여 그의 소시와 성품을 발표하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성품이 과거의 시대와 다르고 그의 역사도 과거의 시대와 다르다. 하지만 그 자신이 보기에는, 단지 사역을 잇고 사역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발표하고 새로운 사역을 직접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퇴고나 연구를 거치고 또는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깊이 인식하고 계통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는 사역의 실질은 바로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진행하고”, “새 신을 신고 옛길을 걷는” 격이다. 즉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걷는 길일지라도 하나님 자신이 친히 개척해낸 길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고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비밀 (1)≫에서 발췌

17. 『이 선지자들과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사역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본분을 하는 것이고 하나의 피조물로서 자기의 기능을 하는 것인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말씀하는 것과 역사하는 것은 직분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의 외각도 역시 하나의 피조물의 외각이지만 그가 역사하는 것은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하는 것이다. 본분은 피조물을 놓고 말한 것이고, 직분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을 놓고 말한 것이다. 이 양자에는 본질적인 구별이 있으므로 결코 호용(互用)할 수 없다.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다만 본분을 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경영하고 있는 것이고 직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많은 사도들이 성령께 쓰임받고 또 많은 선지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이 사역한 것과 말한 것은 단지 피조물의 본분을 한 것이다. 또 비록 그들의 예언이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말씀한 생명의 도보다 높고 심지어 그들의 인성이 도성육신인 하나님보다 훨씬 비범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본분을 하는 것이지 직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기능에 대하여 말한 것이고 사람이 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하는 직분은 경영과 상관되는 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달할 수 없는 것이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말씀하든지 아니면 역사하든지 아니면 표적을 나타내든지 어쨌든 그가 하는 것은 경영 사역 중에서의 큰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다만 하나님의 어느 한 단계 경영 사역 중에서 피조물의 본분만 할 뿐이다. 만일 하나님의 경영이 없다면, 또한 가히 말해서 하나님의 도성육신의 직분을 잃게 된다면 피조물도 본분을 잃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직분을 하는 것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은 자기의 직책을 이행하는 것이고 조물주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아예 직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 즉 영에 대하여 말하면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은 경영하고 있는 것이며, 말씀이 육신 되어 피조물의 외각이 있게 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면 직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슨 사역을 하든지 다 직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그의 경영 범위 내에서, 그의 인솔 하에서만이 자기의 능력을 다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과의 구별≫에서 발췌

18. 『사람이 하는 사역은 범위가 있고 국한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느 한 단계의 사역만 할 수 있을 뿐 전체 시대의 사역은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한가지 규례로 이끌어들어가게 된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어느 한 시기 또는 어느 한 단계에만 적응될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경력은 모두 범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과 서로 비길 수 없다. 사람이 실행하는 길과 인식한 진리는 모두 어느 한 범위에 적응되는 것이지 사람이 걷는 길을 완전히 성령의 뜻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만 성령께 깨우침받을 수 있을 뿐 성령께 완전히 충만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력하는 진리의 범위는 모두 개인의 서로 다른 조건으로 인하여 다르다. 이리하여 동일한 진리에 대하여 서로 다른 사람이 발표하는 인식도 같지 않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경력은 모두 유한한 것이어서 성령의 뜻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으며, 사람의 사역을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 없다. 설사 사람이 발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아주 부합될지라도, 설사 사람의 경력이 성령이 하려는 온전케 하는 사역에 아주 가까울지라도. 사람은 다만 하나님의 종으로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부탁한 사역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다만 성령의 깨우침에서의 인식과 사람이 직접 경력하여 얻은 진리에 불과하다. 사람은 성령의 출구(出口)로 될 자격도 없고 조건도 없으며, 사람이 하는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사역 원칙이 있으며, 또한 사람에게는 모두 서로 다른 경력이 있고 서로 다른 조건이 구비되었다. 사람의 사역에 포괄되는 것은 성령의 깨우침에서의 모든 경력이다. 이 경력은 다만 사람의 소시를 대표할 수 있을 뿐 하나님의 소시거나 성령의 뜻은 대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걷는 길을 성령이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역사를 대표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의 사역과 사람의 경력이 완전히 성령의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흔히 쉽게 규례에 빠지게 되고 사역하는 방식도 쉽게 유한한 범위에 국한되어, 사람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다. 따르는 사람도 대다수가 모두 유한한 범위에서 생활하는 것이고, 경력하는 방식도 모두 유한한 범위에서이다. 사람의 경력이 모두 유한한 것이고 사역 방식도 유한한 몇 가지이므로 성령의 역사와 비길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과 비길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경력은 필경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어떻게 하든지 규례가 없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의 방식에 국한되지 않으며, 아무런 규례도 없고 모두 자유와 해방이다.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따르든지 그의 역사 방식에 대하여 법칙을 총결해낼 수 없다. 비록 그의 역사는 원칙이 가득하지만 또 언제나 새로운 방식 중에 있고 늘 새로운 발전이 있으며, 또한 사람이 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시기에 몇 항목의 서로 다른 역사가 있을 수 있고 몇 가지 서로 다른 인솔이 있을 수 있기에 사람으로 하여금 늘 새로운 진입이 있게 하고 늘 새로운 변화가 있게 한다. 너는 그의 역사하는 법칙을 더듬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방식 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래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규례에 빠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육체에 부합되지 않고 사람의 사유에 부합되지 않으며,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며, 막연한 종교 색채가 뒤섞여있지 않다. 그의 역사 효과는 그에게 온전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사유로 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19. 『은혜시대에 요한은 예수를 위하여 길을 닦는 사역을 하였다. 그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없었고, 다만 사람이 해야 할 본분만 하였을 뿐이다. 요한은 비록 주의 선봉장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그는 단지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이다. ……요한은 성령의 쓰임에 속한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또한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지도 못한다. 그가 만일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한다면 성령이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요한은 성령이 증거한 사람이기도 하고 성령이 드러내어 길을 닦게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성령이 그의 몸에 한 사역은 상당히 분수가 있었으며 단지 그로 하여금 길을 닦는 사람이 되게 하였고 예수를 위하여 길만 닦게 한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길을 닦는 그의 사역만 수호하였고 그로 하여금 길을 닦는 사역만 하게 하였으며, 그 외의 사역은 다 그로 하여금 하지 못하게 하였다. 요한은 엘리야를 대표하고 길을 닦는 선지자를 대표하였는데, 이런 것은 성령이 다 수호하였다. 길을 닦는 그의 사역을 위한 것이기만 하면 성령은 다 수호하였다. 하지만 만일 그가 하나님의 자신이라 하고 그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자라고 하였다면 성령은 그를 징계하였을 것이다. 요한이 한 사역이 아무리 크고 또한 성령의 수호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가 한 사역은 범위가 있는 것이다. 성령이 그의 사역을 수호한 것은 틀림없지만 당시에 그에게 준 능력은 그로 하여금 길을 닦게 하는 것에만 한정되어 정한 이외의 사역은 그가 조금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길을 닦는 요한이지 예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가 관건적인 일환이지만 사람이 하는 사역을 성령이 허락하는 것은 더욱 관건적인 일이다. 요한도 당시에 매우 높이 증거되지 않았는가, 한 사역도 매우 크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가 한 사역은 예수를 초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일 뿐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사역은 다만 일단락의 유한한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비밀 (1)≫에서 발췌

20. 『만일 사람이 사역을 한다면 너무나 유한하여 다만 사람을 어느 정도에 이르게 할 뿐 사람을 영원한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전망과 이후의 귀숙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르다. 그는 사람을 창조한 이상 사람을 인솔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이상 사람을 철저히 구원하여 사람을 완전히 얻고, 사람을 인솔하는 이상 사람을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으며, 그는 사람을 창조한 이상, 사람을 경영하는 이상 사람의 운명과 전망에 대하여 책임을 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조물주가 하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간다≫에서 발췌

21. 『이사야ㆍ에스겔ㆍ모세ㆍ다윗ㆍ아브라함ㆍ다니엘 그들은 이스라엘 선민 중의 지도자나 선지자에 속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으로 불리지 않았는가? 성령이 무엇 때문에 그들을 증거하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예수가 역사하고 말씀하자 성령이 그를 증거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을 증거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육신이며, 또한 모두 주로 불렸다. 그들을 어떻게 호칭하든지 그들의 역사가 그들의 소시와 실질을 대표하며 그들의 소시와 실질이 그들의 신분을 대표한다. 하나의 호칭은 그들의 실질과 관련되지 않으며, 그들이 발표하고 살아낸 것으로써 그들의 실질을 대표하는 것이다. ‘주’로 불리는 것은 구약에서는 극히 평범한 일이니 마음대로 어떻게 호칭해도 된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과 고유한 신분은 영원토록 변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22.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경력과 사역하는 사람의 인성을 대표하고, 사람이 공급하는 것과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을 대표해낸다. 사람의 보임, 사람의 추리, 사람의 논리 그리고 사람의 풍부한 상상도 사람의 사역에 포괄되어 있다. 특히 사람의 경력은 사람의 사역을 더욱 대표해낼 수 있다. 사람 몸에 그의 경력한 것이 어떤 것이 있으면 그의 사역에 어떤 성분이 있다. 사람의 사역은 사람의 경력을 발표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는 또 종종 사람의 정형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사람의 경력에 의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사람이 정상적으로 경력하는 과정에 의하여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교통은 하나님이 하는 말씀과 같지 않다. 사람이 교통하는 것은 개인의 보임과 경력을 교통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한 사역의 기초에서 사람의 보임과 경력을 발표하는 것이다. 그들의 책임은 하나님이 역사하거나 말씀을 한 후에 실행해야 할 것과 진입해야 할 것을 찾아내어 따르는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역은 사람의 진입과 사람의 실행을 대표한다. 물론, 이런 사역에는 사람의 경험 교훈 또는 사람의 얼마간의 사유도 뒤섞여있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본 것이고 사람이 경력한 것이며 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다. 설사 도리거나 관념일지라도 모두 사람의 사유로 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이 크든 작든, 사람의 경력과 사람의 보임이나 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과 구상할 수 있는 이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이며, 사람이 달할 수 없는 것이고 즉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전 인류를 인솔하는 그의 사역을 발표하는데, 사람의 세부적인 경력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경영에 관련되는 것이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경력이며,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시이다. 이 소시가 바로 하나님의 원래 성품이고, 사람이 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경력은 하나님이 소시를 발표한 기초에서 있게 된 보임과 인식이다. 이런 보임과 인식은 모두 사람의 소시로 불린다. 이는 사람의 원래 성정과 소질의 기초에서 발표해낸 것이므로 역시 사람의 소시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23. 『사람의 사역은 찾고 구하고 모색하는 것이며 모두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모방하거나 퇴고하여 더 깊은 진입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그의 소시를 공급하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사역에서 좀 인식하고서 교회에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형에 근거하여 현시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역사하면 사람이 하는 것보다 몇천 배나 자유롭다. 심지어 사람이 보기에 ‘분수를 지키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지만 하는 사역은 다 새로운 사역이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 도성육신이 역사함은 전혀 느낌에 따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5)≫에서 발췌

24. 『사람의 두뇌 속의 사역은 사람이 매우 쉽게 달하는 것이다. 마치 종교계의 목사와 지도자들이 은사와 직함에 의거하여 사역하기에 장구하게 그들을 따르는 사람도 모두 그들의 은사에 전염될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얼마간의 소시에 감화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사람의 은사를 중요시하고 사람의 재간과 지식을 중요시하며, 또한 얼마간의 초자연한 것들과 심오하고 비현실적인 허다한 도리를 중요시한다(물론 이런 심오한 도리는 모두 사람이 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성정 변화를 중요시하지 않으며, 사람의 설교 능력과 사역 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을 중요시하고 사람의 지식과 풍부한 종교적 도리를 제고시키는 것을 중요시하며, 사람의 성정 변화가 어떠한가 하는 것과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사람의 실질에 대하여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더욱이 사람의 정상 정형과 비정상 정형을 장악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지 않고 사람의 관념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더욱이 사람의 부족한 점과 패괴된 점을 수리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다수가 모두 천성적인 은사 중에서 섬기는 것이며, 발표해내는 것은 지식과 종교적인 막연한 진리이고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기에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생명을 얻게 할 수 없다. 그들이 사역하는 실질은 사실 인재를 배양(培養)하는 것이며, 일무소유인 사람을 신학원을 졸업한 수재로 배양한 다음 사역하게 하고 인솔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역사하였는데 네가 그 법칙을 더듬을 수 있는가? 사람이 하는 사역은 규례가 많고 격식이 많으며, 사람의 대뇌는 너무나 교조적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발표해내는 것도 역시 모든 경력 범위 내의 사람의 얼마간의 인식과 체득이다. 사람은 이런 것 이외의 것을 발표해낼 수 없다. 사람에게 경력이나 인식이 있는 것은 선천적인 은사에서 온 것이 아니고 또는 사람의 본능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솔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양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은 오직 이런 목양을 받아들일 기관만 있을 뿐 직접 신성 소시를 발표할 기관은 없다. 사람은 원천으로 될 수 없고 다만 원천의 물을 받는 그릇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이고 사람으로서 있어야 할 기관이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기관을 잃고 사람의 본능을 잃는다면 사람은 곧 가장 귀중한 것을 잃게 되고 피조된 사람의 본분을 잃게 된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인식이 없고 경력이 없다면 사람은 자기의 본분이 없게 되고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잃게 되며 피조물의 존엄도 잃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25. 『사람의 천성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반드시 하나님의 온전케 함을 거쳐 벗어버린 후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의거하고 또한 성령의 역사를 거쳐야만 사람의 살아냄이 하나님께 인가(認可)된다. 육체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대표할 수 없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제외하지마는 이러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성정과 그의 살아냄이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고, 다만 그가 살아내는 것이 성령의 지배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사람의 성정도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사탄의 패괴 성정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는가? 만일 어느 누가 그의 성정이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이는 성령에 대한 모욕이다! 성령의 역사 방식으로부터 보면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은 다만 정복 사역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허다한 사탄의 패괴 성정은 아직도 정결함을 받지 못하여 살아내는 것은 여전히 사탄의 형상이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며 사람의 육체 행위를 대표하는 것이다. 좀 더 적절하게 말하면 사탄을 대표하는 것이기에 절대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설령 어떤 사람이 이미 어느 정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여 땅에서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습니다.”라는 이러한 말도 할 수 있고, 또한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살아내고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사람과 하나님의 실질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살아낼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으로 될 수 없다. 성령이 지배한 살아냄도 다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랐을 뿐이다.

사탄의 모든 행위는 다 사람 몸에서 표현된다. 현재 사람의 모든 행위는 다 사탄의 발표이므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사람이 바로 사탄의 화신(化身)이므로 사람의 성정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좋아서 하나님이 그의 성격을 빌려 얼마간의 일을 하는데, 그가 하는 일은 성령이 지배하는 것이지만 그의 성정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하나님이 그의 몸에 하는 것은 다만 차제발휘(借題發揮)하고 취지취재(就地取材)하는 것이다. 역대의 선지자든,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든,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을 직접 대표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사람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에서 발췌

26. 『하나님의 역사는 어쨌든 사람의 사역과 다른데, 하물며 하나님의 발표가 사람의 표현과 또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특정된 성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그의 역사 중에서 발표되며,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경력 중에서 체현되고 또한 사람의 추구 중에서 표현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표인지 아니면 사람의 표현인지는 사역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 자신이 해석하거나 사람이 전력을 다해 간증할 필요가 없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이 그 어떤 사람을 억누를 필요도 없다. 이것은 다 자연스럽게 유로되는 일이지 강요할 일이 아니고 사람이 간섭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경력 중에서 알 수 있기에 사람이 별도로 체험 사역을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본분을 하는 동시에 사람의 실질을 다 유로하고, 하나님은 역사하는 동시에 고유한 성품을 다 발표해낸다. 사람의 사역이라면 감출 수 없고, 만약 하나님의 역사라면 하나님의 성품은 더욱 누구도 감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면 하나님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그의 사역과 말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거나 변경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면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그가 육신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역사를 사람의 사역이나 사람의 본분으로 정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의 발표와 바울의 서신을 동등히 대하거나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사람의 교훈의 말을 동등히 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인가 아니면 사람의 사역인가 하는 이것은 모두 원칙적인 구별이 있는 것이고 실질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지 결코 역사 범위의 크기나 잠시적인 역사 효율에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이 방면에서 원칙적인 착오를 범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13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에서 발췌

27.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에 단지 사람의 각도와 사람의 높이에 서서 모든 것을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되신 육신은 패괴된 인류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되신 이 육신이 얼마나 보통이든지, 얼마나 정상적이든지, 얼마나 비미(卑微)하든지 심지어 사람들이 얼마나 깔보든지 그분의 생각과 인류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사람도 구비할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신성의 각도에 서서, 조물주의 높이에 서서 인류를 관찰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실질로, 하나님의 마음 상태로 인류를 대하십니다. 그분은 절대로 보통 사람의 높이에서, 패괴된 사람의 각도에서 인류를 대하실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인류를 보는 것은 사람의 안목으로 보고 사람의 지식, 사람의 규례, 사람의 학설 등등을 가늠 표준으로 하는데, 이 범위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범위이고 패괴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범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안목,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가늠 표준으로 하시는데, 이 범위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되신 육신과 패괴된 인류와의 전혀 다른 부분입니다. 이 다른 부분은 각자의 실질로 인해 결정된 것이며, 바로 실질의 다른 부분이 각자의 신분과 지위를 결정하였고 사물을 대하는 각자의 각도와 높이도 결정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8. 『세계에 비록 몇 개 큰 파별로 나뉘어져 각 파별에 모두 교주가 있고 모두 통솔자가 있으며, 따르는 사람도 지구 표면의 서로 다른 국가에 분포되고 서로 다른 구역에 분포되었으며, 한 국가에도 서로 다른 몇 가지 파별이 있으며, 대국이든 소국이든 국가마다 거의 다 이러하지만 그러나 세계 각지에 파별의 종류가 얼마나 있든, 결국에는 전 우주 아래의 사람이 모두 한 분의 하나님의 인솔에 따라서 생존하는 것이지 파별의 교주거나 통솔자가 그들을 인솔하여 생존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를 인솔하는 것은 어느 교주거나 통솔자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창조하고 또 인류를 창조한 조물주가 전 인류를 인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비록 세계에 몇 개 큰 종파가 있다 하더라도 종파가 얼마나 크든지 다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하는 것이다. 어느 한 종파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발전, 사회의 교체, 자연 과학의 발달은 다 조물주의 안배를 떠날 수 없다. 이런 사역은 어느 한 교주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주는 다만 어느 한 종파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천지만물을 창조한 분을 대표하지 못한다. 교주는 전체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는 있지만 천하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람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주는 다만 하나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조물주)과 동등할 수 없다. 만물은 모두 조물주의 수중에 있으므로 최종에는 또 조물주의 수중에 돌아와야 한다. 인류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어서 무슨 교파든지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중의 지고자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인류를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할 수 없다. 여호와가 친히 인류를 창조하여 사람을 모두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였으며, 마지막 때에도 여전히 그가 친히 그 자신의 사역을 하여 만물을 역시 다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는데,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어느 한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시작부터 현재까지 한 3단계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한 것이고 또한 한 분의 하나님이 한 것이다. 3단계 역사의 사실은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인솔한 사실이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3단계 역사를 끝마치기만 하면 만물을 다 각기 종류대로 하고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전부 돌아오게 한다. 왜냐하면 전 우주 아래위에 오직 이 한 분의 하나님만 존재하고 다른 파별이란 논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면 세계를 끝마칠 수 없고, 세계를 창조한 분이면 틀림없이 세계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니,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수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아니고 틀림없이 인류의 주가 아니며, 그는 이렇게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하는 이는 오직 한 분밖에 없다. 무릇 하지 못하는 자라면 틀림없이 하나님 이외의 원수이다. 사교라면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원수이다. 모든 사역은 이 한 분의 참 하나님이 하는 것이며, 온 우주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29. 『만일 이 단계 새 사역의 시작이 없다면 너희들 이 대전도자ㆍ설교자ㆍ성경 해석가 그리고 소위 영적 위인들이 어느 지경까지 발전될지 모른다! 이 단계 새 사역의 시작이 없으면 너희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그 낡아빠진 것들이 아닌가? 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면 왕이 될 분량을 예비하는 것이고, 자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면 자기의 몸을 굴복시키는 것이며, 인내하는 것이 아니면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것이고, 겸손하는 것이 아니면 사랑하는 것인데, 그래 옛날 곡조를 다시 연주하는 격이 아닌가? 모두 형식만 바꾸고 내용을 바꾸지 않는 격이다! 머리에 쓰고 떡을 떼는 것이 아니면 안수 기도하고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것인데, 그래 무슨 새로운 사역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 무슨 발전 전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너로 하여금 이렇게 이끌어나가게 한다면, 규례를 고집스레 지키는 것이 아니면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진행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사역도 대단히 훌륭하다고 여기는데, 모두 고대의 그 ‘노인’들이 남겨놓은 유전과 유교인지 모른단 말인가? 너희들이 말하는 것과 하는 것은 그래 모두 노인의 유언이 아닌가? 그래 모두 노인의 임종 전의 부탁이 아닌가? 너는 너희들이 한 것이 역대의 사도ㆍ선지자를 초과하고 심지어 만유를 초월한다고 여기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30. 『네가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여태껏 하나님께 순복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더러 너에게 순복하여 너의 관념대로 하라고 한다면 너는 가장 패역한 사람이고 불신파이다. 이러한 사람이 어찌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하나님의 그런 역사와 말씀에 순복할 수 있겠는가? 가장 패역한 사람은 고의로 하나님께 불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의 원수이고 적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대하여 언제나 적대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여태껏 순복하려는 뜻이 조금도 없고 여태껏 진심으로 순복하고 낮춘 적이 없다. 사람 앞에서는 자기가 제일 높은 체하며 여태껏 어느 한 사람에게도 순복할 줄 모른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가 ‘도’를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역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자기의 원래 있던 보배를 여태껏 버리지 않고 가전 보물로 삼아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데, 이것으로써 자기를 숭배하는 그 바보들을 훈계한다. 이러한 사람이 교회에 확실히 일부 존재하고 있다. 가히 말해서, 이 사람들은 ‘위무(威武) 불굴의 영웅 세가’이며, 대대로 하나님 집에 기거하고 있다. 그들은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최고 직책으로 여기며, 한 해 또 한 해, 한 세대 또 한 세대, 그들은 모두 그들의 신성불가침의 직책을 엄격히 실시하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그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어느 한 사람도 그들을 감히 공개적으로 질책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의 ‘거물’로 되어 매 시대마다 권세를 부리며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 무리의 악마들이 연합하여 나의 사역을 헐려고 시도하는데, 내가 어찌 이러한 산 귀신이 내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용인하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31. 『네가 천연적인 개성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개인의 애호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또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완전히 자기의 애호에 의거하여 사역을 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하는가? 결국에는 너의 생명 성정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섬기면서 더욱더 완고해져 너의 패괴 성정이 깊이 뿌리박히게 되는데, 이러면 네 안에 너의 개성을 위주로 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조목들이 형성될 것이다. 개인의 성정대로 섬기면서 총결한 경험은 사람의 경험 교훈이고 사람의 처세 철학이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바리새인과 종교 관원에 속한다. 이러한 사람이 더는 각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때에 가서는 필연코 말세에 나오는 거짓 그리스도, 사람을 미혹하는 자로 될 것이다. 이른바 거짓 그리스도와 사람을 미혹하는 자는 바로 이 부류 사람들에게서 생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개성에 따라 자의대로 한다면 수시로 도태될 위험이 있다. 사람의 다년간 총결한 경험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인심을 농락하고 사람을 훈계하고 사람을 통제하고 높은 지위에 서며 여태껏 회개하지 않고 죄를 자백하지 않고 지위의 복을 버리지 않는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꼭 넘어지고야 말 것이다. 이는 바울과 같은 사람에 속하며, 거만하게 행세하고 고참 티를 내는데,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섬김은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종교적인 섬김을 마땅히 취소해야 한다≫에서 발췌

32. 『너희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너희에게 한 작은 지역이나 한 구역을 맡기고 6개월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비뚠 길을 걷게 될 것이고, 1년간 계속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 사람들을 세상으로 이끌어가고 치우친 데로 이끌어갈 것이며, 2년간 계속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끌어갈 것이다. 이것은 무슨 원인인가? 이 문제를 너희는 고려해보았는가? 너희들이 말해보라, 너희가 이럴 수 있는지 없는지? 너희들의 인식은 단지 사람에게 한동안만 공급할 수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네가 늘 그런 것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분별해내고 네가 너무 얕고 깊은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너는 방법이 없어 도리만 말하여 사람을 미혹할 뿐이다. 언제나 이렇게 하면 아랫사람들이 모두 너의 방식에 따라, 너의 절차에 따라, 너의 그 모식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력하며 그런 글귀를 실행하게 된다. 나중에 네가 자꾸 반복해서 설교해도 너를 본보기로 삼는데 네가 사람을 인솔함에 있어서 도리를 말하면 아랫사람들도 따라서 도리를 배우게 되며, 가다가다 사람의 비뚠 길이 생겨 아랫사람들이 다 너를 따라가게 된다. 너는 ‘이제는 권력도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내 말을 들으니 국면을 좌지우지할 수 있겠구나.’라고 여긴다. 사람 안의 이 배반이 부지중에 하나님을 배척하여 실권을 잃게 하였는데, 나름대로 어느 종파, 어느 파별이 형성되었다. 각종각파가 어떻게 생겼는가? 바로 이렇게 생긴 것이다. 각종각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오만 자시하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모두 단장취의(斷章取義)하고 자기의 상상에 근거하는 것이며, 모두 은사와 지식에 의하여 사역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낼 수 없다면 그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는가? 그가 필경 지식도 좀 있고 도리도 좀 말할 줄 알고 또는 사람을 농락할 줄 알고 수단도 좀 쓸 줄 알다 보니 사람을 그의 앞에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인 것이다. 사람은 명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 그를 따르는 것이다. 만약 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일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자면 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네가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이것이 골칫거리가 아닌가? 그럼 인솔자는 뭐가 되는가? 바리새인이 되고 거짓 목자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되고 사람이 참 도를 받아들이는 데의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닌가?』

≪좌담 기요ㆍ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33.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난측(難測)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이리하여 설사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할지라도 헛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본다’는 그 사람들을 모두 무능한 따위들이고 모두 오만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눈에는 그야말로 한 마리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는가? 말끝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은 저렇게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다, 하나님은 저렇다”고 하는 그 사람들은 다 광언(狂言)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다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고 본성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어서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계책을 세울 수도 없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인솔하는가 하는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복해야 하지 이러저러한 견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만 진토(塵土)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려는 생각이 있는 이상, 자기의 관념을 하나님의 역사 중에 내놓고 하나님더러 참고하라고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자기의 패괴 성정으로써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극력 대적해서도 안 된다. 이는 바로 적그리스도가 아닌가? 이러한 사람이 그래 그 무슨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 하고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이상, 마땅히 진리의 도를 찾고 구해야 하고 하나님과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해야지 목을 곧게 세워 하나님과 맞서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무슨 좋은 열매를 먹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34. 『큰 교당에서 성경을 보는 그 사람들은 온종일 성경을 암송하지만 그들은 누구도 하나님 사역의 취지를 깨닫지 못하고 또한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더욱이 누구도 하나님 뜻에 맞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쓸모없는 소인들이고 모두 높은 곳에 서서 ‘하나님’을 교훈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명의를 내걸지만 하나님을 고의로 대적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걸지만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악마들이고 모두 정도(正道)에 들어서는 사람을 고의로 방해하는 마귀 두목들이며 모두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사람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그들이 비록 ‘체백이 건장’하지만 그들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어찌 그들이 바로 사람을 인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적그리스도임을 알겠는가? 어찌 그들이 바로 전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산 귀신임을 알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35.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 또한 진실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마음을 점유하게 하려 하지 않고 자기의 욕망만 만족시키려 하고 자기의 상상과 자기의 야심만 만족시키려 합니다. 그러므로 이 일부분 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가정과 직업도 버렸지만 그들의 악행은 끊임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제물을 훔쳐먹고 어떤 사람들은 제물을 낭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암암리에 하나님을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위를 이용하여 계속 자신을 간증하고 높이며 하나님과 더불어 사람을 빼앗고 하나님과 더불어 지위를 다투며 여러 가지 방식과 수단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숭배하게 하고 늘 사람들의 마음을 농락시켜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하여 자기를 하나님으로 대하게 합니다. 그는 전혀 사람에게 자기는 패괴된 사람이고 자기에게도 패괴가 있고 오만이 있으니 자기를 숭배하지 말고 자기가 한 것이 얼마나 좋든지 다 하나님의 높여주심이고 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그가 사람 마음속의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전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간증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간증하지 않는 원인은 그가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에서 발췌

36. 『이 못된 무리들은 인간 세상에 와서 소란스럽고 불안하게 하여 몰래 사람을 모두 벼랑 끝으로 이끌고 가서 밀어 던져 분신쇄골이 되게 한 다음 사람의 해골을 삼켜버리려 하였다……추악한 몰골은 정체가 드러나 사람으로 하여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하는데, 실로 언급하기 어렵다. 이는 그것의 본질이 아닌가? 추한 영혼을 또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여긴다. 이 악당의 졸개들아! 속세에 내려와 향락만을 추구하며, 소동을 일으켜 세태염량하게, 인심황황하게 교란하며 사람을 흉측한 몰골이 되게, 추하기 짝이 없게 희롱하여 원래 거룩한 사람의 흔적이 조금도 없게 해놓고도 세상에서 독판치려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거의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게 가로막으며, 사람을 철벽같이 봉쇄하는데, 이렇게 많은 죄를 짓고 이렇게 많은 화를 자초하고도 형벌받기를 기다리지 않는가? 요괴와 악마들이 세상에서 한동안 횡포한 짓을 하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심혈을 물샐틈없이 봉쇄하여 정말로 죄악이 극도에 달하였는데, 어찌 하나님으로 하여금 조급해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하나님으로 하여금 노를 발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역을 엄중하게 가로막고 대적하는데, 너무나 패역하다! 크고 작은 그 요괴들마저도 상전을 믿고 세도를 부리며, 남이 말하는 대로 술렁거리며, 진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대적하는데, 패역한 자식들이다! 마치 그것의 염라대왕이 현재 ‘왕’이 새겨진 보좌에 오른 듯하여 그것이 곧 유유자적하며 안하무인격이다. 진리를 찾고 구하고 정의를 따르는 자가 몇이나 되는가? 모두 개돼지 같은 짐승들이 더러운 파리 떼들을 데리고 거름더미 속에서 의기양양해하고 못된 짓을 하여 말썽을 일으키며 자기의 ‘염라대왕’이 가장 큰 ‘왕’이라고 스스로 여기는데, 어찌 자기가 더러운 파리임을 생각이나 했으랴? 하지만 자기는 오히려 개돼지 같은 아비어미를 믿고 하나님의 존재를 모욕한다. 보잘것없는 파리가 자기의 아비어미는 이빨고래만큼 크다고 여기는데, 어찌 자기는 너무 작고 아비어미는 오히려 자기보다 몇억 배나 더 큰 더러운 개돼지임을 생각이나 했으랴? 자신의 비천함을 모르고 오히려 개돼지 몸의 ‘썩은 냄새’를 힘입어 도처에서 횡포한 짓을 행하며 후대를 번식하려고 망상하는데, 수치를 모른다! 푸른 날개를 달고는(하나님을 믿는다는 명의를 내건 것을 가리킴)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가는 곳마다 자기의 아름다움과 멋짐을 뽐내고 자기 몸의 더러움마저도 슬그머니 사람의 몸에 뿌리고, 또한 자기의 다채로운 빛깔을 띤 한 쌍의 날개로 자기 몸의 더러움을 덮어 감춘 듯이 득의양양해하며, 따라서 참 하나님의 존재를 핍박한다(종교계의 내막을 가리킴). 파리의 날개가 설사 아름답고 매혹적일지라도 그것이 필경 배 속에 더러움이 가득하고 몸에 독균이 가득한 하나의 작디작은 파리임을 사람들이 어찌 알랴? 개돼지 같은 아비어미를 믿고 세상에서 횡포한 짓을 행하며(하나님을 핍박하는 종교계의 관원들이 국가의 대대적인 지지를 믿고 참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는 것을 가리킴) 극도로 미쳐 날뛰는데, 마치 유대 바리새인의 유혼이 또 하나님을 따라 큰 붉은 용 국가로 이사 오고 그것들의 소굴로 이사 와서 또 한차례 핍박 사역을 시작하여 그것들의 몇천 년의 사역을 계속하는 듯하다. 이 무리 인간쓰레기들은 결국 땅에서 멸망되고야 말 것이다! 마치 몇천 년 후의 더러운 귀신들이 더욱더 ‘교활하고 간사하여’ 언제나 암암리에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려고 궤계가 많음으로써 몇천 년 전의 비극을 다시 그것의 고국(故國)에 ‘상영’하려는 듯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7)≫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