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떻게 해야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지금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얕다. 자신의 본성 안에 있는 것들을 전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 있는 일부 패괴 상태나, 어떤 일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 또는 어떤 부족한 점들이 있는지 등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여긴다. 또한, 일부 규례를 지키고 몇 가지 잘못을 절대 범하지 않으며 몇 가지 과오를 범하지 않는 정도에 이르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실제가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이는 완전히 사람의 상상에 불과하다. 네가 이런 것들을 지킨다고 정말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정말 성품이 변화되겠느냐? 정말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내게 되겠느냐? 정말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단언하건대 절대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높은 기준이 있어야 하고, 진리를 얻어야 하며, 생명 성품에 얼마간 변화가 생겨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얕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생명 성품도 결코 변화될 수 없기에 반드시 스스로를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 알아야 한다. 바로 자신의 본성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본성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그것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 그 외에 그러한 것들을 증오할 수 있고, 자신의 추한 영혼과 사악한 본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진실로 자신의 본모습을 본다면 자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증오하게 됐을 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육을 버릴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힘을 갖게 되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많은 사람이 일을 할 때 육적인 기호를 따르겠느냐? 그 이유는 그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고 정당하며 어떤 문제도 없고, 심지어는 완전히 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본성이 어떤지, 얼마나 추하고 비열하며 가련한지 정말로 알게 되면, 그 뒤로는 건방지고 교만하게 굴지 않을 것이며, 예전처럼 기고만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실천해야겠어. 그러지 않으면 나 같은 인간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살 염치도 없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보잘것없다고 여기고,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 수월하게 진리를 실천하게 되고, 비로소 조금이나마 사람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사람은 진실로 자신을 증오해야 육을 버릴 수 있다.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육을 버리지 못한다. 진실로 자신을 증오하려면 갖추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둘째, 자신이 딱할 정도로 가진 게 없고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가엾고 더러운 영혼을 보는 것이다. 진실로 자신의 본모습을 꿰뚫어 보는 성과를 얻었다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한 것이며, 스스로에 대해 확실히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을 증오하고, 나아가 자신을 저주하며,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나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면모를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날 정말 죽음의 위협이 닥치면 그는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이구나. 역시 하나님은 공의로우셔. 나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하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때의 그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자신이 딱할 정도로 가진 게 없고 너무나도 더럽고 패괴되었으니 마땅히 하나님께 멸망되어야 한다고, 그런 영혼은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만약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추구했으며,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 고난을 겪었는데, 하나님은 결국 내게 죽음을 내리시는구나.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하나님은 왜 내게 죽음을 내리시는 걸까? 나 같은 사람마저 죽어야 한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인류는 끝장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첫째로 하나님께 관념을 가지고 있고, 둘째로, 원망을 하며, 순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바울처럼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중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사람은 모두 아름다운 종착지에 이르길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는 행운이 갑작스레 찾아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국의 한 자리에 무사히 안착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하늘에서 떨어질 행운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천국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너희는 모두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지막 날에 닥칠 재난과 악한 자를 벌하는 전능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꿈을 꾸고, 좋은 일을 원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만의 걸작이 아니라 사탄에 의해 패괴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의 지나친 욕망과 복을 받으려는 절박한 마음을 버리도록 할 것이다. 너희의 과오가 아주 많고, 패역의 사실이 켜켜이 쌓여 가고 있는데, 이것이 어찌 너희가 그리는 행복한 미래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 만약 네가 아무 제한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계속해서 단잠을 자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너의 꿈은 한낱 공허한 꿈에 불과하다. 공의로운 하나님은 너를 위해 선례를 깨뜨릴 리가 없다. 꿈을 이룰 생각밖에 없다면, 영원히 꿈을 꾸지 말고 진리와 사실을 직시하여라. 이것이 너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 그 방법은 어떤 구체적인 단계로 이루어질까?

첫째, 너의 모든 과오를 성찰하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너의 모든 행위와 생각을 반성하고 살펴라.

이는 손쉽게 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오와 진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은 예외이다. 이런 사람은 아예 ‘생각’이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정직하며, 행정 법령을 심각하게 위반하지 않고, 자신의 과오를 쉽게 찾아내는 사람을 대상으로 말을 한다.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이 조건은 충족시키기 쉽지만 너희에 대한 나의 유일한 요구 사항은 아니다. 어쨌거나 나의 요구를 몰래 비웃지 말고, 이 요구를 무시하거나 얕보지 말기를 바란다. 무심하게 대하지 말고 진지하게 대하여라.

둘째, 너의 과오와 패역 하나하나를 그에 상응하는 진리를 찾아 해결하여라. 진리를 실행하여 너의 과오, 패역한 생각과 행동을 대체하여라.

셋째, 꾀를 부리지 않는 착실한 사람이 되어라. 간사한 사람이 되지 말라(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다시 한번 요구하는 것임).

네가 이 세 가지를 모두 해냈다면 몹시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런 네가 바로 꿈을 이루고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너희가 하찮게 보이는 이 세 가지 요구를 진지하게 대할 수도 있고, 무책임하게 대할 수도 있다. 여하튼 나의 목적은 너희의 꿈과 이상(理想)을 실현시키는 것이지 너희를 비웃는 것도, 놀리는 것도 아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중에서

누구나 다 많든 적든 과오를 범한다. 그것이 과오인지 모르고 있을 때, 그 과오를 대하는 네 마음은 몽롱한 상태일 것이다. 어쩌면 너는 네 관점과 행동 방식, 인식법을 계속 고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형제자매들의 교제나 하나님의 드러냄으로 그것이 과오이며 하나님께 죄짓는 일임을 알게 된다면, 너는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이치를 따지며 변명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면서 네 행동이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겠느냐? 이는 하나님을 대하는 네 태도와 관련이 있다. 다윗은 과오를 대할 때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 후회하면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럼 그는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께 자신을 벌해 달라고 기도했다. “제가 또다시 이런 과오를 저지른다면 바라옵건대 저를 벌하여 죽게 하옵소서!”라고 말이다. 그에게는 이런 결심이 있었고, 이는 진실한 후회였다. 평범한 사람이 여기에 이를 수 있겠느냐?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치를 따지지 않고 묵인하기만 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더 이상 아무도 이 일을 언급해선 안 돼. 그랬다간 내 체면이 깎일 테니까.’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진실한 후회겠느냐? 진실한 후회를 했다면 기존의 악을 버리고 내려놓으며, 다시는 그렇게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버리고, 그렇게 행하거나 생각하지 않기만 하면 그만이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어떤 태도로 대하겠느냐? 너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냄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 가지 측면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하나님의 감찰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받아들이면 어떤 다짐이 생기겠느냐? 앞으로 또 그런 환경, 그런 일이 임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이 진실한 후회를 하지 않으면 그 악을 버릴 수 없고, 언제 어디서든 똑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똑같이 그릇된 일을 하고 똑같은 과오를 범할 수 있으며, 몇 번이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이는 진리와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과오를 완전히 벗어 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필요하다. 그럼 사람이 어떤 행동 방식과 태도를 지녀야 진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갖췄다고 하겠느냐? 이런 일이 임했을 때 또다시 시험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피한다’는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동시에 그런 과오를 또 범하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일을 증오하는 것이며, 그 일을 가장 역겨운 일, 악행, 하나님께 죄짓는 일, 영원한 오점으로 보는 것이다. 성경에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 22:3)라는 말이 있다. 그게 어디 어리석은 것이겠느냐? 그야말로 멍청한 것이다. ‘피한다’는 이 실행법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그럼 피할 수 없을 때는 없겠느냐?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이 배치하게 해야 한다. 어떤 시련은 시련이면서 시험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네게 그런 일이 임하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며, 너에게 시련을 주고 검증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이 네게 배치한 환경과 시련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경시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기도하지도 구하지도 않고 실행의 길을 찾지도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어떤 이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고, 그런 속셈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그런 속셈이 없었다면 너는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 어떤 태도는 고의가 들어 있고 속셈이 있지만, 어떤 태도는 무의식중에 나온다. 너는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 하나님을 경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자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진리와 하나님을 장난으로, 공기로 여기니,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 아니다.

― 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뜻에 따라 일을 한다. 그들은 원칙을 어기고는 자신이 교만했으며 진리가 없어 잘못을 저질렀다고 인정할 뿐, 속으로는 이렇게 원망까지 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내가 나선 건데 결국 책임만 뒤집어썼으니 바보짓 한 거 아닌가? 다음엔 나서지 말아야지. 나서면 안 되는 거였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러한 태도는 어떠하냐? 회개하는 태도이냐? (아닙니다.) 그럼 이것은 어떤 태도이냐? 이 일을 빌미로 교활하고 간사해지니, 꾀만 늘어 이렇게 생각한다. ‘이번에는 다행히 큰일을 저지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옥에 떨어져 멸망했을 거야.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지.’ 그런 사람은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잔꾀와 계략으로 일을 처리하고 대한다. 이렇게 하는데 진리를 얻을 수 있느냐? 얻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회개할 줄 모른다. 회개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자신이 한 일을 인식하고,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자신이 드러낸 성품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반성하고 받아들인 후 진리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는 태도이다. 예전보다 노련한 방법을 궁리해 내고, 수완이 더 뛰어나고, 더 잘 은폐시키고, 더 잘 다루게 된다면, 이는 더 이상 간사함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수완과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사악한 것이다. 하나님 눈에 너는 너무 강퍅하고 사악하다. 네가 겉으로는 잘못을 인정하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만, 회개하는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일이 끝난 후 혹은 이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네가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에 따라 실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사탄의 방법과 수단 그리고 철학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이 문제를 회피한다. 그럴듯하게 이 문제를 포장해 아무런 흔적이나 빈틈이 보이지 않게 하고, 나중에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이 본 것은 이런 모습이지, 일이 임했을 때 네가 진실로 반성과 자백을 하고 회개한 후 진리를 구하며 진리에 따라 실행하는 모습이 아니다. 너의 태도는 진리를 구하거나 실행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한 것도 아니라 사탄의 수단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다른 이들에게 허상을 보여 주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냄에 반발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 대항하고 경계함으로써 네 마음을 더 닫아 버린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마음을 더 닫아 버렸는데 광명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 평안과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너는 진리에서 멀어졌으며, 하나님과도 멀어졌다. 사람이 이러한 내적 상태인 경우가 많으냐, 많지 않으냐? ‘이번에 책망을 들었으니 다음에는 조심해야겠어. 잔꾀를 좀 더 부려야겠어. 잔꾀가 삶의 근간인데, 잔꾀 없는 사람이 바보지.’라며 자신을 늘 지도 편달하니,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하면 한 방면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그 방면의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진리를 깨달으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겠느냐? 한 방면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 방면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이 왜 너에게 이 일을 하려 하는지, 하나님이 왜 네게 이런 요구를 하는지, 하나님이 왜 네게 이러한 채찍질과 징계를 주는 상황을 배치해 주는지, 왜 이 일로 징계를 주는지, 그리고 네가 왜 이 일로 넘어지고 실패하며 드러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생명 진입이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고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 무조건 거부하거나 반항하면서 수단을 써서 이를 은폐하고 허상으로 모든 사람과 하나님을 대한다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성령은 일반적으로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역사하며, 사람이 어려움에 부딪혀 진리를 구할 때 역사한다. 조금의 인성과 이성, 양심도 없는 사람을 하나님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매우 정직한 한 사람이 있는데, 최근 들어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기도도 하지 않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협력하지도 않는다. 잠시 내적 상태가 어두워지고 타락한 이런 상황에서도 성령은 역사하지 않는다. 하물며 아예 인성과 지각이 없는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겠느냐? 더더욱 역사할 리 없다. 그럼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해결 방법이 있겠느냐? 진실한 회개를 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되겠느냐?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으면 실행하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관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너는 먼저 자신의 체면과 허영, 이익을 내려놓아야 한다. 일단 내려놓으려고 노력해 보아라. 그리고 내려놓은 후에는 몸과 마음을 전부 네 본분과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데 바쳐라.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너를 인도하는지, 네 안에 평안과 기쁨, 그러한 확신이 드는지 보아라. 먼저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한다. 일단 자신을 내놓으며, 마음을 하나님 앞에 활짝 열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들을 지닌 채 하나님께 요구하려고 한다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성령이 역사하는 데는 조건이 있다. 하나님은 사악을 증오하는 하나님이며, 거룩한 하나님이다. 사람이 늘 그러한 것들을 지닌 채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의 사역과 인도를 거부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너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는 강요하는 법이 없다. 악령이 역사할 때만이 사람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강요하고 심하면 들러붙어 사람을 통제한다. 반면, 성령 역사는 매우 온화하여, 네게 감동을 주어도 너는 느끼지 못하고, 너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해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성령이 주는 감동인 것이다. 사람이 순종할 수 있으면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어리석음과 무지 때문에, 또 갖가지 패괴 성품 때문에 자주 패역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심지어 원망하기까지 하면서 잘못된 길을 걷곤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한동안 소극적이 되어 사역을 게을리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잃기도 한다. 사람은 일생의 몇 단계에서 자주 패역 행위를 한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또 하나님의 행사임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런 생각을 고치지 못한다. 겉으로 볼 때는 순종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그가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겠느냐? 여기에는 한 가지 태도가 있다. 그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지만, 자신이 행한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잘못을 인정하며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뜻을 구하여 당신이 하라는 대로만 하겠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말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렸고 패역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사람이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태도겠느냐? (뉘우치는 태도입니다.) 양심과 이성, 그리고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을 지녔지만, 잘못한 일에서 뉘우치지 못한 채 지난 일은 넘어갔으니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면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어떤 행위겠느냐? 이런 행위의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강퍅함이며, 융통성 없는 완고함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날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어떻게 말했느냐?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라고 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하나님이 그들을 멸할 거라는 말을 듣고는 급히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이다. 이런 회개는 사람에게 크나큰 기회이다. 무슨 기회겠느냐?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이다. 본분 이행이든 구원받기를 추구하든 이런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너는 계속 걸어나가기 힘들 것이다. 모든 단계에서 하나님이 너를 징계하고 벌하든 아니면 깨우치고 권하든, 너와 하나님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는데도 네가 늘 스스로의 생각만 고수하며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고집한다면, 네 걸음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고 해도 너와 하나님 사이에 발생한 충돌과 하나님에 대한 네 오해, 원망, 패역이 해결되지 않고 네가 뉘우치지도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도태시킬 것이다. 비록 네가 손안의 본분을 놓지 않았고 네 본분을 지키며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받아들이고 그 사명에 충성을 다한다고 해도 한 가지, 너와 하나님 사이에 발생한 의견 충돌은 너에게 영원히 응어리일 것이다. 네가 그것을 풀거나 내려놓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틀렸다고 여기고 네가 원통해한다면 이는 뉘우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왜 사람의 뉘우침을 중요하게 생각하겠느냐?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마땅히 어떤 태도를 보여야겠느냐? 창조주가 어떻게 행하든 모두 옳은 것이다. 이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창조주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는 말은 너에게 빈말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이 너에게 빈말인데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겠느냐? 그럴 리 없다. 너에게는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너 같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직 많은 일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금 뉘우쳐 본들 늦은 것 아닐까요?”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럼 제가 무엇을 뉘우쳐야 할까요? 과거의 일들은 모두 지나갔고 이미 잊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네 성품이 하루라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네가 네 행동에 진리에 맞지 않는 부분,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하루라도 깨닫지 못한다면, 너와 하나님 사이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은 해결되지 않은 것이고 지나가지도 않은 것이다. 이런 성품이 네 안에 있고, 이런 생각과 관점, 태도가 네 안에 있으면, 적당한 환경이 임했을 때 그 관점이 또 튀어나와 하나님과 갈등이 폭발한다. 그래서 과거의 일은 해결하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발생할 일들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뉘우치고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네가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이 또한 순종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고 창조주를 대하는 일종의 뉘우치는 태도이며, 창조주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는 이 사실에 대한 인정이자 긍정이다. 뉘우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패괴된 인류가 옳다고 공인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긍정적인 사물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 네가 이런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창조주의 신분과 본질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여기기 때문에 그 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

사람이 어떤 일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응어리가 생긴다. 이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니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어떤 태도를 지녀야겠느냐? 먼저 되돌아서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되돌아서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예를 들어, 한 사람이 20년 동안 리더를 했지만, 자질이 부족하여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도 못해 교체되었다고 해 보자. 그는 교체된 후에 몹시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 소극적인 태도 안에는 어떤 성분이 있겠느냐? 만약 교체된 후에도 본분 이행에 합격하고 충성을 다하며 순종하고, 되돌아서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겠느냐? 어떤 모습을 보여야겠느냐? 먼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틀림이 없다. 나는 자질이 떨어져서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했고, 하나님 집의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지장을 주었다. 하나님이 나를 출교시키지 않으신 것만 해도 다행이다. 나는 얼굴이 두꺼워서 계속 이 자리에 버티고 있으면서 대단한 사역이라도 한 양 생각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증오하고 후회하는 것은 되돌아서려는 마음이 있는 모습 아니겠느냐? 첫째, 그가 이렇게 실행했다는 것은 되돌아서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만약 그가 “나는 자질이 부족하다. 예전에도 제대로 사역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고 이행하는 본분에는 리더 본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글을 쓸 수 있으면 글을 쓸 것이고, 새 신자들을 양육할 수 있으면 양육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합격한 본분 이행을 요구하셨으니 나도 이러한 면에서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이 밖에, 그가 “그동안 나는 리더 자리에 있으면서 늘 지위의 복을 추구하고, 도리를 말하고 갖추는 것을 추구했다. 그러나 생명 진입은 추구하지 않았고, 무엇이 순종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번에 교체되고 나서야 내게 부족한 점도 모자란 점도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은 틀림이 없으니 순종해야 한다. 예전에는 지위가 있으니 사람들이 나한테 무척 잘해 주었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증오받고 혐오당하고 버림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싸다. 이는 내가 받아야 할 응보이다. 게다가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지위를 갖겠는가? 지위는 결말도 종착지도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사명을 주신 것은 본분을 잘 이행하라는 뜻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배와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대해 순종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순종하기가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신 것은 틀림이 없다. 설령 내게 천 가지, 만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부 진리가 아니니, 순종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다 되돌아서려는 모습이다. 이러한 것들을 갖췄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겠느냐? 하나님은 그를 가리켜 양심과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평가가 높은 것 같으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높지는 않다. 양심과 이성을 갖췄을 뿐, 하나님이 온전케 할 기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조차 매우 찾아보기가 힘들다. 앞으로 어떻게 추구해야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을 바꿀 수 있는지는 네가 어떻게 가느냐에 달려 있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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