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떻게 해야 진실로 자신을 알 수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여 체험 과정에서 조금씩 스스로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 방식이 시련이든, 심판과 형벌이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리고 사실을 통해 사람이 끊임없이 체험하게 한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징계,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체험하는 동시에 자신의 패괴와 패역, 본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모든 사람에게 사람이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럼 ‘사람이란 무엇인가’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겠느냐? 사람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 본분과 책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하고 너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스스로를 알게 하는 최종 목표이다.

― 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성품 변화를 이루는 관건은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하나님이 드러낸 것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이 자신의 추악한 본성과 본성에 있는 각종 사탄의 독소, 무지몽매함, 그리고 약점과 소극적인 부분을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철저히 깨달은 후에 진실로 스스로를 증오하고 육을 버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히 실천하고,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결심을 하게 됐다면 베드로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없다면 이 길은 가기 힘들 것이다. 사람은 진리가 없고 자신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걸은 온전케 되는 길을 가려면 의지와 믿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며, 또한 성령 역사에 순종해야 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 말씀을 떠나선 안 된다. 이는 핵심적인 몇 가지 부분으로, 하나라도 어겨선 안 될 것이다. 체험 속에서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성령 역사 없이는 진입하기 어렵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중에서

자신을 알려면 반드시 자신에게서 드러나는 패괴와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 성품, 본성과 본질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내는 모든 면면을 알아야 한다. 집에서나 외부에서, 예배할 때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또는 매번 일이 임할 때마다 네가 품은 마음과 관점, 그리고 각각의 일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자신을 알아 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깊게 알아 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받아들일 때, 고생스럽지 않을까 또는 고통스럽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마라. 나아가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르지 않을까 겁낼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 우리의 패괴된 본질을 폭로한 말씀을 많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많이 비추어 보되 그 말씀을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비추어 보아라.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든 적지 않게 존재하므로 전부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해 볼 수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체험해 보아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도 그것을 스스로에게 비추어 보지 못하며, 그 말씀들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람을 음녀, 기생이라고 폭로했는데, 이를 두고 어떤 자매들은 자신은 남편에게 충실하니 그 말씀은 자신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자매들은 자신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음란한 짓도 한 적이 없으며, 그 말씀은 자신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어떤 형제들은 그 말씀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말씀이 너무 듣기 불편하다면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도 틀린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겠느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지 못한다. 여기에서 ‘기생’, ‘음녀’란 사람의 음란함과 패괴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네가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사람에게는 모두 음란함과 패괴함이 있는데, 이 말이 어찌 너와 무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폭로한 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이며, 남녀를 막론하고 패괴된 정도는 모두 동일하다. 이것이 사실 아니더냐?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듣기 좋든 나쁘든, 괴롭게 느껴지든 달콤하게 느껴지든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이다. 이것은 어떤 태도겠느냐? 경건한 태도겠느냐, 인내하는 태도겠느냐, 아니면 고통을 감내하려는 태도겠느냐? 내가 알려 주겠다. 전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고 확신해야 한다. 그의 말씀이 진리인 이상,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이성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것을 알 수 있든 없든, 인정할 수 있든 없든,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태도는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은 그에 상응하는 내적 상태를 겨냥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표면적인 현상을 다루는 것도, 더욱이 외적인 규례나 사람의 단순한 행위에 대해 폭로하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네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사람의 단순한 행위나 표면적인 현상을 폭로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너는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며,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오하다. 어떤 점이 심오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폭로하는 것은 사람의 패괴된 성품과 사람의 생명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본질적인 것이다. 이는 본질적인 것이지 표면적인 현상도 더욱이 외적인 행위도 아니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추구의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 중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이론적인 이해를 중요시하지 않았고, 나아가 신학적 지식을 얻는 데에도 중점을 두지 않았다. 그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스러움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사람의 각종 패괴된 모습과 본성, 진정으로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다양한 요구에 부합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실행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가장 좋은 협력 방법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준 시련을 수백 번 겪으면서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엄격히 자신에게 비추어 보며 성찰했고, 하나님 말씀의 뜻을 찾았다. 베드로는 예수가 그에게 한 모든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 좋은 결실을 맺었다. 그는 이렇게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는데, 사람의 각종 패괴된 모습뿐만 아니라 사람의 본질과 본성, 각종 부족한 점까지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사람의 본성을 알아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살피는 것이다. 마귀에 속한 사람은 모두 스스로를 위해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주로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와 같은 사탄의 말을 인생관이나 좌우명으로 여기며, 세상의 마왕, 위인, 철학자들의 말을 생명으로 삼는다. 특히 중국인들이 ‘성인’으로 떠받드는 공자의 말 중에서 대부분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이것 외에도 불교나 도교의 명언, 유명인 입에서 나온 전형적인 격언들은 모두 사탄 철학, 사탄 본성의 정수이자 사탄 본성에 대한 최고의 설명이고 해석이다. 인류의 마음에 주입된 이러한 독소는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하나도 없다. 그 궤변들은 또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는 하나님에게서 오고, 사람을 해하는 모든 부정적인 사물은 다 사탄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통해 그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탄은 국가 정부, 유명 인사와 위인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키며, 그들의 허튼소리는 사람의 생명 본성이 되었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는 말은 사탄의 명언으로,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침투해 생명이 되었다. 이 밖에 처세 철학에 관한 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이용해 사람을 교육함으로써 끔찍한 재난의 망망대해로 빠뜨리며, 사람은 결국 사탄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멸망당하고 만다. 사회에서 수십 년간 분투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당신은 그 나이까지 세상에서 살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뤘습니다.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명언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가장 중요한 건, 공직에 있으면서 뇌물 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과 아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이 그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지 않겠느냐? 공직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의 본성이 되었고, 관직에 머무는 것은 그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의 삶과 행위, 사람됨에는 아직도 사탄의 독소가 많이 들어 있고, 진리는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의 처세 철학, 일 처리 방식, 사람의 좌우명에는 모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가득하며, 이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뼛속과 핏속에 흐르는 것은 모두 사탄의 것이다. 공직에 있는 자, 권세를 잡은 자, 성공한 자에게는 모두 그들만의 성공의 길, 성공 비법이 있다. 그 비법이 곧 그의 본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들이 세상에서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숨겨진 음모와 간계를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본성이 매우 음험하고 악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되었고, 모든 사람의 혈관에 흐르는 것은 사탄의 독액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본성이 패괴되고 사악하고 불온적인 것이며, 사탄의 철학으로 점철되고 뼛속까지 물들어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대시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을 이렇게 해부한다면 쉽게 자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여 진리를 얻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한 것들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가 무엇인지는 말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그는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이것도 위하고 저것도 위하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하늘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 떠나 먼 타향까지 와서 관리가 된 것은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이다”라는 것처럼 말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이자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사탄의 이 말이 바로 사탄의 독소이며, 사람의 내면에서 사람의 본성이 되었다. 이 말은 사탄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탄의 본성을 완전히 대변한다. 이 독소는 사람의 생명이 되고, 생존의 토대가 되었으며, 패괴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독소의 지배를 받으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뛰어넘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권세를 잡으려 하며, 하나님이 지은 만물을 점령하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이 곧 사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의 많은 좌우명들은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고 보여 주고 있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언행을 어떻게 위장하든 본성을 감추지는 못한다. 어떤 이는 단 한 번도 솔직한 말을 한 적이 없고 위장에도 능하지만, 그와 함께 오래 지내다 보면 그의 본성이 너무나도 간사하여 정직한 면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그는 단 한 번도 솔직한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간사한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이 말은 그의 본성을 대표하는데, 그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고 증거이다. 그 사람의 처세 철학은 누구에게도 솔직한 말을 하지 않고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사탄 본성에는 수많은 철학이 들어 있다. 어떨 때는 스스로도 의식하거나 알지 못하지만, 너는 매분 매초 그것으로 살아가며, 그것이 옳고, 일리가 있고, 아무 문제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이는 사탄의 철학이 이미 사람의 본성이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말해 준다. 사람은 완전히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며, 거기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사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사탄 철학으로 살아간다고, 사탄의 본성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 가야겠느냐? 본성을 알아 간다는 것은 사실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것, 즉 네 생명 안에 있는 것, 네가 살면서 따랐던 그런 사탄의 논리와 사탄의 관점을 해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네가 기대어 살아가던 그 사탄의 생명을 해부하는 것이다.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파내야만 본성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파내야겠느냐? 한두 가지 일만 통해서는 파헤치거나 해부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 일을 다 하고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3년, 5년이 지난 후에야 약간의 깨달음과 인식을 얻을 것이다. 반드시 많은 일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깊이 파헤쳐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끊임없이 깊어짐에 따라 다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때 점차 본성과 본질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측면을 통해야만 본성을 알 수 있다. 먼저, 네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옷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부러워하는지, 어떤 것을 숭배하고 추구하는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중요시하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과 접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네 마음속 우상은 어떤 사람인지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위대한 사람, 언행에 기품이 있는 사람, 또는 가볍고 능청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 겉으로 잘 위장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는 접하기 좋아하는 사람 측면에서 본 것이다. 좋아하는 사물 측면에서 보면, 자기에게 익숙한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남들이 좋게 보는 일, 동조해 주고 칭찬해 주는 일을 하기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 안에는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즉, 사람은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것, 화려한 것, 매우 사치스러운 것, 특히 남들의 숭배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일, 사물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들은 모두 높고 크고 눈부시고 화려하고 고귀한 것들이며, 사람은 모두 이런 것들을 숭배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사람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면모 또한 없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숭배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들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매우 좋게 생각하고 몹시 추구하기 원한다. … 이런 것들을 동경하는 것은 세상의 못된 자들과 동류가 되어 나쁜 짓을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이며 진리와 인성이 없는, 사탄에게 속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서 사람의 본성을 파헤친 것이다. 사람의 차림새와 꾸밈새에서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주목하는, 색깔이 화려한 옷이나 색다르고 특이한 옷을 좋아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소품들을 착용하며, 이성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이러한 것들을 착용한다는 것은 생명 속에서, 영혼 깊은 곳에서 이러한 것들을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그가 좋아하는 이런 것들은 단정하고 깔끔한 것들이 아니며, 진정으로 사람에게 속한 것도 아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 안에는 불의가 있으며,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과 완전히 똑같아 조금의 진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네가 좋아하는 것, 중요시하는 것, 숭배하는 것, 부러워하는 것, 매일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은 너 자신의 본성을 대표하며, 네 본성 안에 불의를 좋아하는 성분이 있고, 심각한 경우 그 본성이 극도로 사악하여 구제 불능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해부해야 한다. 즉, 삶 속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 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일시적으로 누구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네 본성 안에 있는 것이다. 네 뼈를 부러뜨릴지라도 너는 그것을 좋아하여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변화하기 어려운 점이다. 결혼 상대를 찾는 일을 예로 들어 보겠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녀의 다리를 부러뜨린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할 것이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와 결혼하려고 할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사람의 뼛속 깊이 박혀 있는 것은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육체가 죽어도 그의 영혼이 좋아하는 것은 여전히 똑같다. 이것이 바로 본성 안에 있는 것으로, 사람의 본질을 대표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는 불의한 것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확실히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고, 어떤 자는 심하게 좋아하지만 어떤 자는 그렇지 않으며, 어떤 이는 자제가 가능하지만 어떤 이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어두운 것에 빠져들 수 있는데, 이는 그에게 생명이 조금도 없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그런 것들에 점령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면, 이는 성품에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으며, 얼마간 분량을 갖췄다는 의미이다. 약간의 진리를 깨닫고는 자신에게 생명이 있다고,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아직 이른 얘기다. 성품 변화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본성을 알기가 쉽겠느냐? 설령 얼마간 알 수 있다고 해도 변화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모두 사람이 직면한 어려움이다. 언젠가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이 어떻게 변해도, 천지개벽할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네 내면에서 진리가 주된 작용을 하고 뿌리내렸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네 삶과 취향, 체험, 생존을 인도한다면, 네게 진정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현재 말하는 소위 변화란 사람이 얼마간 협력하고 열정과 믿음을 갖는 것을 뜻하지만, 그것을 변화라고 볼 수는 없으며, 그런 사람에게 생명이 있다고도 증명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사람의 취향에 불과하다.

사람의 본성적인 취향을 파헤쳐야 할 뿐만 아니라 본성에 속하는 다른 부분들도 파헤쳐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 살아가는 방식과 목표, 살아가는 가치관과 인생관, 진리와 관계된 모든 일들에 대한 관점과 생각 등은 모두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놓인 것들로, 성품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럼 패괴된 인류의 인생관은 어떤 것이겠느냐?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육을 위해, 먹을 것을 위해 살아간다. 이것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조금의 가치도, 나아가 어떤 의미도 없다. 인생관은 네가 세상에서 생존하면서 무엇에 의존해 살아가는지, 왜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것이며, 이는 전부 사람의 본성 안에 있는 본질적인 것들이다. 너는 사람의 본성을 해부함으로써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며, 전부 마귀이고,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해부해야 진실로 사람의 본질과 패괴를 알 수 있고, 사람이 대체 무엇에 속하는지, 사람에게 진정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사람의 본성을 해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줄 모르거나 진실한 체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에 대해 가져야 할 인식> 중에서

사람이 자신을 알려면, 반드시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내적 상태를 아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다. 시기마다 사람의 생각은 중요한 무언가의 지배를 받게 되니 그 생각을 붙잡으면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지만, 너는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출발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것에 지배받고 있는지, 어떤 성질에 속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의 성품이 변화하면 변화된 부분에서 나오는 생각, 마음속 바람, 추구하는 관점도 달라진다. 변화하지 않은 것들, 네가 확실히 깨닫지 못한 것들, 진리의 체험으로 대신하지 못한 것들, 그런 생각은 더럽고 불결하며 추한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역을 몇 년 동안 체험한 사람은 이러한 일을 어느 정도 느끼고 의식한다. 반면, 체험이 적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러한 것을 인식하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며,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쉽게 쓰러지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너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어도 정작 자신은 감조차 없다. 평소 자신에게 어떤 생각이나 속셈이 있는지 스스로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며, 그러한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측면에 대한 인식이 점점 깊어지면 그 측면에서 변화가 생긴다. 그렇게 되어야 네가 행한 일이 진리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맞으며,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렇게 추구해야만 효과를 낼 수 있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늘 요구하는 자는 가장 이성적이지 못하다> 중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알아 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자신이 잘했거나 옳게 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거나 자랑할 만하다고 여기는 부분일수록, 더 깊이 파 보며 자신에 대해 알아 가야 한다. 그 안에 대체 어떤 불순물이 있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보아야 한다. 바울을 예로 들어 보겠다. 바울은 배운 지식이 무척 많았으며, 전도하고 사역을 할 때도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이 그를 매우 우러러보았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역을 한 후, 자신을 위해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여겼다. 이로 인해 그는 잘못된 길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 당시에 그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해부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바울은 예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는 데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을 믿었다. 좋은 행실과 행위만 있으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관념과 상상이 그의 마음과 영혼을 가렸고, 그의 본모습을 숨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드러내기 전까지 사람들은 계속 바울을 자신들의 목표, 본보기로 삼았으며, 바울이야말로 자신들이 동경하고 추구하고 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다. 바울의 일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있는 모든 이에게 한 가지 경고를 준다. 바로 스스로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혹은 자신이 어떤 방면에 매우 은사가 있다고 느껴질 때일수록, 혹은 스스로가 변화할 필요도, 책망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분명 그 부분은 더 파고들거나 신경 쓰지도 않고, 그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해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의 본질을 어떻게 알아야 하겠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할 때 그 사람의 본성과 본질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평소에 드러내는 것, 일을 하는 출발점과 속셈, 욕망, 그가 가는 길을 보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이 임하거나 하나님이 친히 그에게 어떤 일을 행할 때, 시련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가 임하거나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빛을 비춰 인도할 때, 그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무엇과 관계가 있느냐? 그 사람의 행동, 삶, 처세 원칙,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 목표, 방식과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생존의 토대는 무엇인지 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바울의 본성과 본질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은 긍정적인 것을 통해서도, 부정적인 것을 통해서도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 결과는 네가 체험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자 하는 사람인지에 달려 있다. 네가 정말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자 한다면 부정적인 부분에서 해를 입지 않을 것이고, 더욱 실질적인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고, 자신의 실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이런 것을 알 수 없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너는 예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행사였고 보호였음을 깨닫게 된다. 시련에 직면하는 순간 사랑과 믿음이 사라지고, 기도가 부족해지며, 찬양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시련 속에서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나님은 다양한 환경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루며, 또 다양한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사람을 책망하는 한편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하며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을 모조리 파헤치고 밝힌다. 수많은 내적 상태를 폭로함으로써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를 통해, 또한 책망, 연단, 형벌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며, 하나님이 매우 실제적임을 알게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은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천박하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마련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 잘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고통이 너무 커서 이겨 내지 못할 때도 있고, 심지어 극도의 비통에 빠질 때도 있지만, 체험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사역이 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토대로 사람에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사람은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긍휼만으로는 자신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없고, 사람의 본질은 더더욱 인식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과 연단을 통해야만 사람이 연단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보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네가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것도, 드러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든 드러나든 이것을 명심해라. 사람이 드러나는 것은 정죄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네게 생명 체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너는 자신의 패괴된 본모습을 알 수 있는 기회도 조건도 배경도 얻지 못한다. 네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 깊이 숨겨져 있어 인식하기도 찾아내기도 힘든 면면들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진실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개과천선하여 새사람이 되고 거듭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면 진리가 생명이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 수 있게 되고, 진리를 갈망하며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네가 이 기회를 잡아 실패하고 쓰러졌을 때 진지하게 스스로를 반성하여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면,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 고비를 넘기면 크게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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