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묵상해야 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로, 네가 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는지를 알려면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갔는지, 하나님 말씀이 너의 생명 실제가 되었는지를 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결국에는 모두를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하고, 각자에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준다. 만약 네가 이 기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읽고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네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네가 말씀 시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성령의 역사가 없을 것이고, 들어가면 성령의 역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 시대의 출발점에서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 시대에 너희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일을 이루고자 한다. 너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고, 진리를 실행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 삼고 실제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말씀을 실행하여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면 되겠느냐? 현재 많은 이들이 하루 이틀만 하나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매우 답답해하며, 매일 말씀을 봐야 하고, 시간이 없으면 듣기라도 해야 한다고 한다. 성령은 사람에게 이런 느낌을 주고,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제어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네가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어둠과 목마름을 느끼게 되어 답답해할 것이다. 이는 네게 성령의 감동이 있으며, 성령이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너는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하루 이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며 아무런 감동도 없다면, 이는 성령이 너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고 말씀 시대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이니, 뒤처진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제어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좋다고 느껴지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행할 길을 잃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양식과 동력이 된 것이다. 예전에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한 바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 사역을 이룰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서 이 사실을 이루고자 한다. 과거에는 며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밥도 잘 먹고 일도 잘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온전케 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에게 생명과 광명, 그리고 실행할 길을 줄 수 있다. 특히 하나님나라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떠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생명이 자라는 것은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므로 생명 추구에 있어 성급히 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모든 사역에는 다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예수가 성육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완성하는 데에도 33년 반이나 걸렸는데,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의 생명을 변화시키는 사역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는 무엇보다 어려운 사역이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정상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장기간의 말씀과 사역이 필요하다. 그러니 서둘러 결실을 맺으려 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 실제로 실행하여 인식과 식견, 분별력, 지혜를 키운다면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보고 인식하며,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할 것이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급할 게 뭐 있느냐? 분량이 어느 정도 자라면 실행할 수 있다. 네댓 살 된 아이가 부모를 부양하거나 효도하지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자신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여 실행할 수 있는 만큼 실행하되, 하나님의 경영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만 신경 쓰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일단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을지 등은 상관하지도, 생각하지도 마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다 보면 틀림없이 온전케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도 원칙이 있으니 무턱대고 먹고 마셔서는 안 된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네가 인식해야 할 것, 즉 이상(異象)에 관한 말씀을 찾아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실제로 실행해야 할 것, 즉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에 관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하나는 인식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입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즉 네가 어떤 것들을 인식하고 어떤 것들을 실행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아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원칙에는 인식에 관한 것과 진입에 관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이 인식에 관한 것일까? 이상에 관한 내용(하나님의 사역이 지금 어느 시대에 들어섰는지, 혹은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성육신이란 무엇인지 등등은 다 이상에 해당됨)이다. 어떤 것이 진입해야 할 길일까? 사람이 실행해야 하고 진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는 이 두 가지가 있으니, 이렇게 먹고 마시면 된다. 단, 이상에 관한 것들은 확실히 이해하고 난 후에는 자주 보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진입에 관한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해야 마음을 하나님께 향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는지, 육을 버릴 수 있는지 등등의 내용은 다 실행이 필요한 것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은 진실한 교제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먹고 마실 줄 알고 핵심을 짚을 수 있으면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하다. 즉, 어떤 문제를 내놓든 교제할 수 있고 실제적인 것을 짚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을 교제할 때 실제적인 것이 없다면, 다시 말해 핵심을 잡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모른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정상적인 상태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싫증을 내지 않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언제나 하나님 말씀이 좋다고 느껴야 정상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실제적으로 진입한 사람의 먹고 마심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실제적이고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이라고 느낀다면, 또 사람에게 더없이 도움이 되고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그 느낌은 성령이 준 것, 즉 성령의 감동이다. 그것은 너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이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싫증을 느껴 하나님의 말씀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고 여기는데, 그것은 비정상적인 상태다. 그런 사람은 실제에 진입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며, 온전케 되기를 바라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네가 언젠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외면했는지를 판단할 때 그 사람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실제가 되었는지,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의 실제로 사람을 가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므로 네가 즐겨 본다면 깨우침을 얻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깨우침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깨우침을 준다. 간혹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는데도 깨우침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가 하나님 말씀을 어떤 식으로 보았겠느냐?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대충 보고 실제적인 것을 중시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깨우침을 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온전케 할 리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실제도 없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실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쁘든 한가하든, 상황이 좋든 안 좋든, 시련이 있든 없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생존의 토대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 세끼 끼니 챙기듯 먹어야지,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겠느냐? 네가 지금 이해하든 못 하든, 하나님의 사역을 분명하게 알든 그렇지 못하든,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진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본 뒤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실행하고, 진입할 수 없는 것은 일단 내버려 두어라.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는 말씀이 많겠지만, 2~3개월, 혹은 1년 정도 지나면 깨닫게 될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일은 하루 이틀 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많은 경우 보자마자 바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봐도 글자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한동안 체험하고 나면 그제야 그 뜻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수많은 말씀을 하였으니, 네가 가능한 한 먹고 마시면 시나브로 이해하게 될 것이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성령의 깨우침을 얻게 될 것이다. 성령의 깨우침은 흔히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진다. 네가 갈급해하고 찾을 때,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인도해 줄 것이다. 성령의 사역 원칙은 네가 먹고 마시는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한다. 하나님 말씀을 중요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늘 다른 태도를 가지며,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고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자에게는 성령의 역사도, 깨우침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자는 밥이나 빌어먹고 사는 사람이요, 머릿수만 채우는 남곽 선생(南郭先生) 같은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먹고 마실 때 현재 하나님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협력하며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다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것이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입의 길을 찾을 수 있고 현재 하나님 역사의 동향과 성령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다면, 이는 곧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어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지 못했다면, 너는 아직 말씀을 먹고 마실 줄 모른다는 의미이며, 먹고 마시는 방법과 원칙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는 반드시 자신의 실제 상태와 결부시켜야 한다. 즉, 실제 체험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실행의 길을 찾고 자신의 그릇된 마음가짐과 관념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네가 늘 이런 면에서 노력하고 이런 일들에 마음을 쏟으면, 실행의 길이 생길 것이고 공허한 느낌이 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야 자신의 생명에 부담을 갖고 있는 사람이자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핵심적인 것들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생명에 무책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핵심을 잡지 못하면 실행의 길도 없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도 자신의 상태에 결부시키지 못하고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 자신의 상태와 연관시켰습니다. 또한, 제가 패괴되었고 자질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표면적인 것만 조금 알게 된 것이다. 육적인 즐김과 독선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할지, 이런 것들에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자신의 자질을 높여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등등 실제에 속하는 것들을 너는 전혀 모르고 있다. 단지 일부 외적인 것들만 잡아내고 자신이 확실히 패괴되었다는 것만 인식할 뿐이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을 만나 자신의 패괴에 대해 말을 하면, 자신을 인식한 것처럼 보이고 생명에 대해 부담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너의 패괴 성품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 이는 네가 실행의 길을 찾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수록 부담을 갖게 되고, 부담을 가질수록 체험은 더욱 풍성해진다.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때, 하나님은 이 부담을 너에게 더해 주며, 너에게 맡겨 준 일에서 너를 깨우쳐 줄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이 부담을 더해 줄 때,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면 이 방면의 진리를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형제자매들의 생명 상태에 부담을 갖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이 네게 준 부담이다. 그러면 네가 평소에 기도할 때 늘 이 부담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이 네게 더해지면, 하나님이 하려는 것이 바로 네가 원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담을 너의 부담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말씀을 먹고 마셔도 이런 부분을 중심에 둘 것이다. 너는 속으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형제자매들이 자유를 얻고 영 안에서 누리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너는 교제할 때도 이러한 문제 해결에 역점을 둘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도 주로 이 방면의 말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부담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의 요구를 알게 된다. 그러면 실행의 길이 더 잘 보인다. 이는 너의 부담으로 생긴 성령의 깨우침이자 빛 비춤이며, 너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느냐? 만약 네게 부담이 없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에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부담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 말씀의 본질과 길을 찾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응당 하나님께 더 많은 부담을 달라고, 더 큰 사명을 맡겨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실행 길이 더 있게 되고, 더 효과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찾아내고, 나아가 성령의 감동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 중에서

올바른 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질이 있어도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 깨달아도 실행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깨닫는 것은 도리를 깨닫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관한 진리를 먹고 마시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하나님은 “‘사랑’이란 티 없이 순수한 감정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느끼고 헤아리는 것이다. ‘사랑’에는 조건도 간격도 거리도 없다. ‘사랑’에는 의심도 추측도 없고 기만도 간교도 없다. ‘사랑’에는 거래도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라고 말씀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정의한 사랑이며,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 남편? 아내? 모든 형제자매?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한 사랑이란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이런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다. 어떻게 이 진리를 알아야 하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티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티 없다’란 하나님에 대해 사치스러운 욕망과 요구가 없으며, 무조건적이고 이유를 달지 않는 것이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마음을 채우는 것이 티 없고 순수한 감정이다. ‘감정’은 사람의 마음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너는 시시각각 그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언제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헤아리고 살피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 너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리워할 수는 있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고 헤아릴 수 있으며, 기도하고 부르짖을 수도 있다. 심지어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과 생각을 함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하나님, 저는 당신을 위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야 실제적인 것이다.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남편(아내)과 자녀, 부모는 내려놓을 수 있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되고,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낀다면, 이것이 바로 사랑이 있고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느끼고, 헤아리는 것’은 많은 것을 포함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다. 즉, 마음으로 사랑하고 헤아리며 시시각각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지, 입으로만 말하는 것도 아니며,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네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 마음이 너의 모든 행위를 지배하며, 그 마음에 속셈이 없고 불순물과 의심이 없을 때 이러한 마음이 훨씬 순수하다. 마음속에 의심이 있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냐? 바로 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이 맞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시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이유가 없으면 난 듣지 않겠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지만 공의롭지 않다면 일단 순종하지 않겠어. 일단 미뤄 두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어떻게 행하든 모두 옳고, 하나님께는 옳고 그름이 없으니 사람은 순종하며 헤아리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과 생각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모든 일이 네가 보기에 의미가 있든 없든, 사람의 관념과 상상, 이치에 부합하든 안 하든, 순종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표현 아니겠느냐?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한 의도, 말씀으로 이루려는 목적과 효과를 모르고, 사람에게서 무엇을 이루려는지, 무엇을 온전케 하려는지를 모른다면 이는 네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말씀했는지, 왜 그런 어조로 말씀했는지, 구구절절 왜 그리도 간절한지, 왜 그런 단어를 사용했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말씀한 배경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데 네가 어떻게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고, 네가 이해한 후 실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어 너의 실제가 되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가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다> 중에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싶다면 먼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마음을 기울이며 진리를 구해야 한다. 진리를 구할 때의 핵심 중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목적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한 함의를 이해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등을 구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실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진리의 실제를 이해하면 실행의 원칙을 파악하게 되며,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너도 모르는 새에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에서 일깨움을 얻을 것이며, 새로운 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것들은 조금씩 네 실제가 된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언제나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깨닫고 얻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는 법,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진리를 묵상하는 데 형식이 필요하겠느냐? 거기에 규례가 있겠느냐? 시간의 제약이 있겠느냐? 공간의 제약이 있겠느냐? 그런 제약은 없다. 언제 어디서든 묵상하면 된다. 너희는 평소에 멍하니 있는 시간과 잡생각 하는 시간을 아껴 진리를 묵상하여라. 그럼 하루 중 대다수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느냐? 온종일 시답잖은 한담이나 잡담을 하고 흥미 갖는 일, 시시한 일들만 하며 쓸데없는 지난 일들만 생각한다. 또 자신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미래의 하나님나라는 어디에 있을지, 지옥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등등을 상상하는데, 이것이 시시한 일 아니겠느냐? 이 시간들을 올바른 곳에 쓴다면,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묵상하며 진리를 많이 교제한다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가져와 감찰받은 후에 자신이 의식하거나 알아채지 못한 큰 문제가 없는지 살펴본다면, 특히 하나님을 거역하는 가장 치명적인 부분에 있어 상응하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해결한다면, 조금씩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묵상해야 하겠느냐? 먼저 영적 용어, 영적인 단어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리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실행 원칙을 가져와 교제해야 한다. 이런 것은 꼭 제대로 알아야 하는 내용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난 이런 영적인 단어나 말들을 이론적으로 전부 잘 알고 있어. 표면적인 글귀도 이해하고 있고. 그런데 이것들의 실제적인 면은 뭐지? 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묵상하며 먼저 이러한 측면에서 시작하여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줄 모르면 진리에 진입하고 진리를 깨닫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하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기는 몹시 힘들다. 늘 이야기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말을 예로 들어 보자. 너는 이를 두고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건 어떤 거지? 말 한마디 잘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게 되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 악행인 걸까? 하나님이 기억하실까? 정죄하실까? 어떤 것들이 악이지? 자신의 마음과 뜻, 속셈, 생각, 관점, 언행의 동기, 근원, 드러내는 각종 성품 등을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어떤 것을 칭찬하실까? 또 어떤 것을 증오하고 정죄하실까? 사람은 어떤 일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기 쉽지?’ 이러한 것들 모두 묵상할 가치가 있다. 너희는 평소에 진리를 묵상하느냐? 너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느냐? 진리와 관련된 일을 얼마나 생각했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 생명 진입,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관련된 일은 얼마나 생각했느냐? 언젠가 너희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거나 하나님을 믿는 일, 진리와 관련된 일을 묵상하여 성과를 얻는다면 생명 진입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너희는 묵상할 줄 모르고 생명 진입도 없다. 사람이 생명 진입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줄 알며 문제를 생각할 수 있으면,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할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언제나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길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생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도리나 구호나 논조가 아니며 일종의 철학과 지식도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삶과 생명, 사람의 행동 및 성품, 사람이 드러내는 모든 것,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상 관점과 관련이 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이러한 것들과 연관 짓지 않는다면,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 교제를 들을 때 이러한 것들과 연관 짓지 않는다면, 네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피상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은 많다. 혼자 말씀을 조용히 읽고 기도하며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구하는 방법이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그들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는 방법도 있으며, 물론 설교 교제를 결부해서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을 깊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법도 있다. 방법은 많고 다양하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깨닫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말씀을 암송하거나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반면 그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한 후 이러한 말씀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하나님이 한 이러한 말씀들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말씀에서 실행해야 할 길을 찾고 자신의 길을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드러낸 다양한 내적 상태와 각 부류 사람을 분별하고, 각 부류 사람을 대하는 정확한 실행의 길을 찾게 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스스로가 잘못된 길로 빠지거나 하나님이 싫어하는 길에 발을 내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네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는 법과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자주 실천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네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너의 생명이 될 수 있다.

― 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어떤 부분의 진리 실제에 대해 듣든 그것을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라. 그 말씀을 네 삶 속으로 가져와 실천할 수 있다면, 분명 수확이 있을 것이고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배 속에 채우고 머릿속에 기억해 두는 데 그친다면 너는 영원히 변화될 수 없다. 교제하는 것을 들으면 너는 ‘이 말씀은 어느 측면의 내적 상태를 얘기하는 것인가? 어느 측면의 실제를 가리키는 것인가? 나는 어떤 일에서 이 측면의 진리를 운용해야 할까? 이 측면의 진리와 관계된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이 측면의 진리에 따라 실행하고 있는가? 실행할 때 나의 내적 상태가 이 말씀과 맞아떨어질 수 있는가? 만약 이 말씀과 다르다면 나는 모색하거나, 교제하거나, 기다려야 하는가?’라고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너희는 생활 속에서 이렇게 실행하고 있느냐?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희 생활 속에 하나님이 없고 진리가 없으며, 피상적인 도리에 따라 살거나, 자신의 흥미, 믿음, 열성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실제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가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사람이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으면 언젠가 굳게 서지 못하고 쓰러지게 된다. 시련이 임했을 때,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글귀나 도리 몇 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귀나 도리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다양한 진리를 제대로 깨닫고, 평소에 그런 것들을 잘 묵상해서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일이 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묵상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듣고 아무리 많은 것을 말할 줄 알아도 영원히 표면적인 글귀에 머물 뿐이다. 그 글귀와 관련된 것들은 종종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 네게는 열정과 힘이 있기에,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이미 성과를 냈으며 분량도 매우 크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임하면, 너는 그러한 것들이 순조롭게 각 시련을 통과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순조롭게 각 검증을 통과하게 해 주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이 임했을 때 사람은 종종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빨리 하나님 말씀과 여러 원칙을 찾아봐야겠어. 그런데 이건 어느 측면의 진리와 맞출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멍해진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신이 갖춘 진리가 너무도 적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의 실제 역시 너무도 적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늘 적용할 때가 되어서야 아는 것이 적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적용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자신이 갖춘 것이 아주 많아서 넘칠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럼 정말로 넘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 얼마간의 글귀나 도리, 표면적인 글자뿐이다. 넘칠 것 같은 그 느낌은 옳지 않다. 넘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위험한 것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많은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면 어떻게 진입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언제나 너 자신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으며, 이미 충분하다고, 이거면 됐다고, 너는 자신을 알고 있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위험한 신호이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어떤 진리의 실제도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잘 묵상해 보아라. 진리를 묵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환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언제나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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