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을 믿는 것과 종교를 믿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종교를 믿는 것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또 무엇이냐?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차이가 있느냐? 보통 종교를 믿는 것의 특징은 무엇이냐? 사람은 일반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종교를 믿으면 행위상의 변화가 생긴다. 남을 때리거나 욕하고,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자기 잇속을 차리고, 좀도둑질을 하는 등의 행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 행위상의 변화를 뜻한다. 사람이 종교를 믿으면 좋은 행위를 하고 싶어지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이는 표면적인 행위이다. 그럼 정신적 의지처와 사상적 경계의 측면은 어떻겠느냐? 신앙이 생겼기에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를 믿는 것은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다. 그것은 좋은 행위이며 정신적 지주가 생긴 것이다. 그저 여기까지이다. 그가 믿는 대상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것은 어떤 존재인지, 그에게 어떤 요구들을 하는지, 이 구체적인 것들을 사람은 모두 상상하고 추리하기만 할 뿐이다. 이것을 바로 종교를 믿는 것이라고 한다. 종교를 믿으면 주로 행위상의 변화와 정신적인 의지처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길과 목표 방향, 사람이 살아가는 토대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이것을 어떻게 정의했느냐? 요구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주재를 믿는 것, 이것은 가장 기본이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느냐? 이 요구들은 무엇과 관계되어 있느냐?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상 인성을 갖추는 것, 진리와 성품 변화,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럼 사람의 언행에 대해서는 어떤 요구를 하느냐? 표면적으로 성도로서 기본적인 품위를 갖추고 정상 인성을 살아 낼 것을 요구한다. 그럼 하나님을 믿는 것의 정의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존하고 생활하고 본분 이행하며, 모든 정상 인성의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살아가라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이러면 인생의 방향과 목표는 종교를 믿는 것과 완전히 다르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과 관계되느냐? 사람이 살아 내야 하는 정상 인성과 관계된다. 사람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면 그 말씀을 따르고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 모두 하나님 말씀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 말씀은 무엇이냐?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리와 관계된다. 이는 근원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바른길로, 이는 인생의 길과 관계된다. 종교를 믿으면 이러한 것들이 없다. 종교를 믿으면 표면적으로 좋아 보이는 행위를 중시하며, 자제하고 규례를 지키고, 정신적인 의지처가 생기면 그만이다. 그에게 좋은 행위와 정신적인 지주, 정신적인 의지처가 있다고 해서 인생길이 바뀌겠느냐? (바뀌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그럼 그가 하나님을 따랐겠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행위상의 변화와 정신적인 의지처를 추구할 뿐이며, 어떤 진리와도 관련이 없다. 그래서 그의 성품은 바뀌지 않는다. 또 진리를 실행하거나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얻지도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진실한 인식이 없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행위가 아무리 좋고 정신적인 의지처가 아무리 튼실하다고 한들, 그가 하나님을 따랐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따르는 것은 사탄이다. 그가 살아 내고 추구하고 동경하고 실행하는 것, 그리고 생존의 바탕은 어디에 근거하겠느냐? 전부 사탄의 패괴 성품과 본질에 근거한다. 처세할 때는 사탄의 논리와 처세 철학에 기대 진리라고는 조금도 없이 거짓말만 한다. 사탄 성품이 전혀 바뀌지 않았고, 그가 따르는 것은 여전히 사탄이다. 그의 인생관, 가치관, 처세 방식, 일 처리 원칙은 완전히 사탄의 본성을 드러낸다. 그저 표면적인 행위에만 약간의 변화가 생겼을 뿐, 그의 인생길, 생존 방식,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네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겠느냐? 너라는 사람의 생존 토대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너는 무엇에 근거하여 살고 있느냐? 네가 매일 말하고 일하는 것은 무엇에 지배되고 있느냐? 무엇에 근거하고 있느냐?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합니다.) 예를 들어 네가 지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겠느냐? 어째서 그렇게 말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거나 하지 않는 데는 근거가 있다. 너는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요구,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럼 그 인생의 길이 다르지 않겠느냐? 이제 결론을 내려 보자. 종교를 믿는 것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이냐? 종교를 믿는 것은 여전히 사탄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바로 이런 차이가 있다. 지금 너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한다. 그럼 너는 종교를 믿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이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르겠느냐? 무엇으로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길을 걷는지를 보면 된다. 만약 네가 좋은 행위를 추구하고, 정신적인 의지처를 추구하고, 규례를 지키는 것을 추구하고, 개인의 복을 추구하면서 진리는 조금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오직 표면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 추구할 뿐 본성과 본질, 패괴 성품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면, 이는 종교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진리에 근거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알아 갈 수 있고, 참되게 회개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다. 이런 자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종교를 믿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종교를 믿는 것, 그리고 신앙은 어떻게 다르겠느냐? 사람은 모두 관념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은 활로가 보이지 않거나 집안에 어려움이 있어서, 혹은 기댈 곳과 정신적인 의지처를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은 선행을 즐겨하고 남을 도우며 선의를 베풀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며 공덕을 쌓게 하는 것이다. 또 살인이나 방화, 악행을 하지 않고 폭력이나 욕설도 하지 않으며, 도둑질이나 강도 짓도 하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기만하지도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두의 관념 속에 있는 ‘종교를 믿는 것’의 개념이다. 현재 너희 마음속에는 종교를 믿는 것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있느냐? 너희는 그런 생각이 곧 종교를 믿는 것임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 내면의 상태에 차이가 있지 않으냐?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떻게 다르냐? 너도 믿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똑같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5년 이상 하나님을 믿은 지금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종교를 믿는 것과 차이가 있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의식을 지키는 것으로, 정신적인 쾌락과 위안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등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고,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과도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해, 네 영혼과 내면세계에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너는 여전히 너고, 네 본성과 본질에는 조금의 변화도 생기지 않으며,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는 일도 없다. 그저 좋은 일을 좀 하거나 얼마간의 의식과 규례를 지키고, 종교를 믿는 것과 관련된 활동을 좀 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럼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 바뀌는 것이다. 또 네가 생존하는 가치와 일생을 살아가는 목표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네 삶의 목표는 조상의 이름을 드높이고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여유롭게 살아가고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것 등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너는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사탄을 따르지 않으며, 사탄과 그 사악한 흐름을 저버리고자 한다. 너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네가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이고, 네가 걷는 길은 진리 추구의 길이다. 너의 인생 방향은 철저히 변한다. 즉, 살아가는 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법을 바꿔 창조주를 따라가고,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하며, 창조주의 구원을 받아들여 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살아가는 법이 변한 것 아니겠느냐? 이는 예전에 네가 살아가는 법, 추구하는 것, 일을 하는 동기와 의의가 180도 달라진 것으로,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정의(원문: 說法)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 안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하고, 진정한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 안배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행한 것에 늘 관념과 오해를 지니고, 원망과 불만을 갖고 있다. 또 언제나 갖가지 관념과 상상으로 판단하고 대하며, 자신만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러면 문제가 된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지 않고, 참되게 하나님을 따르지도 못하니,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대체 무엇이냐? 종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겠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사탄을 따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야말로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그가 하나님을 몇 년을 믿었든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종교 의식만 할 뿐,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너를 인정하겠느냐? 네가 매사에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는지를 본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판단하지, 네 표면적인 행위가 얼마나 변했는지, 네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를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걷는 길과 진리 추구 여부로 판단한다. 많은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찬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사랑하지 않고, 진리에 관심이 없다. 또 늘 사탄의 철학과 세상의 각종 학설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인이라고, 그래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가치 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무릇 위인, 명인에 속하는 사람의 말은 매우 철학적이고, 사람을 쉽게 미혹시킨다. 네가 그것을 진리나 좌우명으로 여겨 지키면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가장 평범한 한마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성실히, 참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착실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실행하지도 않고 진리로 여기지도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실행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너는 무엇을 실행했느냐? 네가 실행한 그것은 누가 한 말이냐? 네가 지킨 원칙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냐?”라고 따지며 물었을 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사탄의 말에 근거한 것이고 네가 살아 낸 것은 사탄의 말이다. 그런데도 네가 진리를 실행했다고, 하나님을 만족게 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하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 내고 드러내는 것이 정직한 것이고 정직하지 않은 것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의 본질을 묵상하지 않고 이방의 서적이나 찾아 읽으면서 보자마자 ‘이 말은 참 좋구나. 하나님 말씀보다 낫다. ‘성실한 사람은 늘 존재한다’라는 말은 하나님 말씀과 똑같지 않은가. 이것 또한 진리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말을 지킨다. 그가 그 말을 지키면 살아 낸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진리의 실제를 살아 낼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이 아주 많지 않으냐? 지식을 좀 익히고 책 몇 권 읽었다고, 식견을 좀 쌓고 명언과 민간의 속담들을 좀 들었다고, 그것들을 진리로 여기고 그대로 행동하며 본분 이행 과정과 하나님을 믿는 삶 속에 적용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했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가짜로 진짜를 바꿔치기하는 것 아니겠느냐? 기만행위 아니겠느냐?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일들은 사람에게서 적잖이 일어난다. 민간의 듣기 좋은 말, 옳은 도리를 전부 진리로 여겨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은 한 곳에 치워 둔 채 신경도 쓰지 않고 몇 번을 읽어도 마음속에 새기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지 않는 이런 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이런 사람은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고, 사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사탄이 한 그 말들에 철학적 이치와 심오한 뜻이 있다고, 정말 훌륭하다고, 최고의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무엇을 포기해도 그 말들은 포기하지 못하고, 그 말들을 포기하면 목숨이라도 잃는 것처럼, 마음이 텅 비기라도 하는 것처럼 군다. 이것이 어떤 사람이겠느냐? 이는 사탄을 따르는 사람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종교를 믿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중에서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오직 좋은 행위만 얼마간 있을 뿐, 육을 버리거나 지신의 이익과 체면을 조금도 포기하지 못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 같을지 몰라도 여전히 사탄의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사탄의 철학과 생존 방식을 조금도 버리거나 바꾸지 못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이는 종교를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버리고 헌신하는 것 같지만, 그가 걷는 길을 보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의 근원과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상상과 주관적인 판단, 욕망에 따라 일 처리한 것이다. 또 사탄의 철학과 성품이 여전히 그의 생존과 일 처리의 근거이다. 그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아는 일에 대해서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대한 분으로 여기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을 따르겠지만, 그것은 그저 말뿐이며, 행동의 본질은 전부 패괴 성품의 발현이다. 또 그에게서는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일하는 출발점과 마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일을 할 때 먼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자신의 욕망과 속셈을 충족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가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없는 자는 가련하지 않으냐? … 많은 사람이 별일이 없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하나님이 위대하고 공의롭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그에게 시련을 주고 책망하고 질책하고 징계하여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육을 버리며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려 하고 그의 운명을 주재하고 지배하려 하며 그의 인생을 주재하려 할 때는 패역이 고개를 들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틈이 생기며, 갈등과 깊은 골이 생긴다. 이때 그는 하나님이 조금도 사랑스럽거나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행한 것이 그의 바람을 충족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가슴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매우 불편하게 했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한다. 이런 행동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얼마나 많은 관념과 상상을 품고 있든, 지난날 어떻게 자기 뜻대로 행동하며 하나님을 거역했든, 정말로 진리를 추구한다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실행한다면, 구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모든 뜻과 바람, 타산, 속셈을 내려놓을 수 있고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네 뜻을 따르고, 자신의 의도와 타산이 들어가 있다. 하나님께 주도권을 주지 않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여전히 네 하나님이겠느냐?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따른다는 네 말은 빈말 아니겠느냐? 사람을 기만하는 말 아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너의 일거수일투족과 인생관, 가치관, 일을 대하고 처리하는 태도와 원칙은 전부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사탄의 원칙과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종교를 믿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규례로 여겨 지킨다면 종교 의식으로 바뀌기가 쉽지 않겠느냐? 그럼 그 종교 의식이 기독교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말에 깊이를 더하고, 어느 정도 앞서간 면은 있겠지만, 규례나 의식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곧 기독교로 바뀐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의는 새로운 것과 옛것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만약 교의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고, 사람에게는 하나의 의식이나 규례가 된다면, 사람 역시 거기에서 진리를 얻지 못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믿음법 아니겠느냐? 기독교의 본질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너희의 행위와 본분 이행 중 어떤 것들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과 같거나 비슷한 관점, 내적 상태겠느냐? (규례를 지키고 글귀나 도리를 갖추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영에 속하는 것, 겉면의 좋은 행위, 경건함, 겸손함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겉면의 좋은 행위를 추구하고, 영에 속하는 겉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기를 쓰고, 사람들의 관념과 상상에 그럭저럭 맞는 일을 하고, 외식하고, 높은 강단 위에 서서 글귀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진리를 깨달으라고 가르치고, 영적인 도리를 말하고, 영적으로 옳은 말을 하고, 영적인 사람인 양 가장하는데, 말과 행동, 드러내는 것이 전부 영적인 겉모습뿐인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거나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구하는 법이 없고, 일이 임하면 전부 사람의 뜻뿐이고, 하나님을 한쪽에 밀어 두고 진리의 원칙대로 일하지도 않는다. 또 진리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이러한 일들을 참답게 대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의 이 모든 표면적인 행위와 내적인 상태, 믿음법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 추구와 무관한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진리 추구와 무관한 사람은 몇 년을 믿든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이 어떤 길을 걷겠느냐? (바리새인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들은 온종일 무엇을 채우고 있겠느냐? 글귀나 도리를 채우고 있지 않겠느냐? 온종일 글귀나 도리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포장하여 더욱 바리새인에 가깝게, 더욱 영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소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지 않겠느냐? 그럼 이 모든 행위의 성질은 무엇이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겠느냐?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고, 대충 형식만 취하는 것이며, 종교 의식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하에 종교 의식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속이고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교회에 있는, 소위 하나님을 섬긴다는 그 사람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구원받는 길에 오를 수 있다> 중에서

만약 너희가 걷는 길이 종교 인사들과 같은 것이라면 너희는 기도교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오래되고 근거 있게 말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런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두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쯤 문제도 아니니 그는 배우기 시작한다. 그 영적인 어휘와 말을 배우고, 그 사람의 언행을 배우고, 또 영적인 장절들을 외우기 시작한다. 언젠가 세월이 충분히 흐르면 앉은 자리에서 끊임없이 장광설을 늘어놓고 물 흐르듯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 보면 전부가 헛소리이고 빈말이며, 글귀나 도리이다. 단언컨대 그는 종교 사기꾼이다. 자신을 속이고 또 남들을 속이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너희는 이런 길을 걷지 마라. 일단 이런 길을 걸으면 자신을 망치고 돌이키기 힘들다. 이런 것들을 보물처럼, 생명처럼 여기면서 어디를 가든 남들과 비교한다. 이는 사탄의 패괴 성품에 영적인 이론과 외식하는 성분이 더해진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냥 역겨운 게 아니라 진절머리 나게 역겹고 염치가 없으며 소름이 끼쳐서 봐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지난날 주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이 믿은 교파를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교파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직 형식에만 얽매일 뿐 어떤 생명 성품의 변화도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와 길과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리새인이 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기독교라고 정의 내린다. ‘기독교’라는 이름은 어떻게 비롯된 것이겠느냐? 자신은 성결하고 영적이라고, 자신은 선량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위장하며 모든 진리를 부인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부인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난날 했던 말씀으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무장하고 포장하며, 마지막에는 그것들을 밑천 삼아 곳곳에서 사기를 쳐서 먹고 마신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하에 가는 곳마다 협잡질을 하고 남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다투면서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밑천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서 온 복과 상을 사기 쳐 얻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걷는 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런 길을 걷기에 결국 기독교라고 정의 내려진 것이다. 이제 보면, ‘기독교’라는 명칭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그것은 치욕의 표식이지, 영광스럽거나 빛나는 일이 아니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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