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2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만 누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간증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네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만 누리고 가정의 평안을 누리거나 물질적 축복을 받는 것만 누린다면, 이것은 네가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믿음에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육신에 와서 한 단계 은혜의 사역도 하였는데, 사람에게 확실히 얼마간의 물질적 축복을 베풀어 주었다. 그러나 은혜만 있고 자비와 긍휼만 있어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경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마간의 사랑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보았다. 그러나 한동안 경력하고서 그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 안의 패괴된 것들을 폭로해 낼 수 없고 패괴 성정도 벗어 버릴 수 없고 사람의 사랑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의 믿음도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의 사역이니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은혜만 누려서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에 평안이 있고 누림이 있는 데에 만족하고, 생활이 평안하여 재앙도 없고 화도 없는 데에 만족하며,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면서 싸우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는 데에 만족하고, 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긴다. 사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에 불과하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은 너무나 범속하다. 설사 네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날마다 기도하여 영 안이 특별히 누림 있고 아주 평안할지라도 최종에 네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조금도 말하지 못하고 조금의 경력(역주: 체험)도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먹고 마시든지 다만 영 안의 평안과 누림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이 비할 바 없이 달콤하여 네가 못다 누리는 것 같다고 느낄 뿐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제 경력이 조금도 없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가 전혀 없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너의 먹고 마심이나 기도는 모두 종교적 신앙이다. 이러한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고 얻어질 수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에서 발췌

『하나님의 은혜만 누려서는 온전케 되거나 변화될 수 없고, 겉면의 순복과 경건, 겉면의 사랑과 인내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만 누려서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없다. 설사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인식은 얄팍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분이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이런 것은 결코 사람에게 생명이나 진실한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연단할 때나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 때, 순복하지 못하고 또한 의혹이 생기고 넘어지기까지 하는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성분이 전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은 다만 은혜받는 것과 평안 누리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징으로 삼고 복받기를 추구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근본으로 삼을 뿐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적합한 귀숙과 온갖 은혜를 달라고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그의 종이 되어 달라고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그와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어느 때든지 충돌이 발생하지 말게 해 달라고 추구하는 것이다.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사람의 모든 요구를 승낙할 것을 요구하고 사람이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성경에서 본 “무릇 너희가 구하는 것이라면 내가 다 들어주리라”는 이 말씀과 같다. 하나님께 사람을 심판하지도 말고 사람을 훈계하지도 말라고 요구하며, 하나님이 언제나 인자한 구주 예수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좋은 관계가 있기를 요구한다. 사람의 믿음법은 모두, 사람이 비록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요구할지라도 사람이 거역하든지 아니면 순종하든지 하나님이 그저 줄곧 사람에게 베풀어 주기만 하며, 사람이 계속 끊임없이 하나님께 ‘빚을 독촉’하여도 하나님이 반드시 아무런 반항도 없이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배로 갚아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뭘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다만 사람의 지배대로 해야 하고 사람을 임의대로 지배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오랫동안 감추었던 그 자신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마음대로 ‘사사로이’ 사람에게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오로지 영원토록 사람의 죄를 사하고 싫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경에 “하나님이 온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섬기게 함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섬기려 하고 사람의 종이 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시키기만 하면 하나님이 오로지 순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너희는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믿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로부터 뭘 얻지 못하면 내빼려 하며,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노기충천하고 심지어 욕까지 퍼붓는다. 너희는 하나님 자신이 그의 지혜와 기묘를 전부 다 발표해 내는 것을 아예 용인하지 않고, 일시적인 안일만 탐하고 누리기 위할 뿐이다. 오늘날까지도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태도는 여전히 이전의 낡은 관점이다. 너희에게 위엄을 조금 나타내면 너희는 기뻐하지 않는다. 현재 너희는 자기의 분량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를 보았는가? 너희가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말라. 사실 너희의 낡은 관점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일이 없을 때면 너는 모든 것이 다 순조롭다고 여기면서 최고봉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다가도 작은 일이 좀 있으면 음부에 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모두 평안을 위하고 이득을 위해서이다. 너는 이득이 없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고 은혜를 얻지 못하면 입을 삐죽거리는 사람이다. 이것이 어찌 너의 진실한 분량이겠는가? 평소에 피하기 어려운 가정 사고(아이가 병에 걸리고, 남편이 입원하고, 농작물이 감산되고, 가족이 핍박하는 등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런 일들도 네가 감당할 수 없고 이런 일이 닥치면 언제나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또한 다수가 모두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이 하는 말씀이 다 너를 속이는 것이라고 원망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다 너를 조롱하는 것이라고 원망하는데, 이런 것은 다 너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이런 일들이 너희들 가운데서 발생한 것이 아직도 적다고 여기는가? 너희는 온종일 이런 일 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믿음에 성과가 있겠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겠는지를 전혀 생각해 볼 뜻도 없다. 너희의 진실한 분량이 너무 작아 그야말로 병아리만큼도 크지 못하다. 남편의 장사가 본전을 밑져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환경이 닥쳐 하나님의 보호가 없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며 심지어 집의 병아리가 죽고 마구간의 소가 병이 들어도 원망하고 아들이 결혼해야 하는 데 돈이 없어도 원망하며 사역자가 너의 집에서 밥을 두 끼 더 먹어도 교회에서 돈을 주는 사람이 없고 채소를 보내 주는 사람이 없어도 너는 원망한다. 너의 뱃속에 가득 채운 것은 다 원망이다. 때로는 이로 인하여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지 않는데, 얼마나 오래 소극적이 될지 모른다. 지금 임하는 이런 일들은 전혀 너의 전망과 운명에 관련되지 않는다. 설사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이런 일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이런 일들의 책임을 다 하나님께 미루고 하나님이 너를 도태시킨다고 우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도대체 어떠한가, 정말 목숨을 바쳤는가? 만일 너희들 몸에 욥과 같은 시련을 한다면 무릇 오늘 따르는 너희 사람들이 아무도 굳게 설 수 없고 다 넘어질 것이다. 너희가 베드로와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땅 차이이다. 오늘 만일 너희의 재산을 절반 빼앗아 간다면 너희는 대담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만일 너희의 아들딸을 빼앗아 간다면 너희는 길거리에 앉아 큰소리로 욕할 것이며, 만일 너의 얼마 안 되는 생활 연줄마저도 막아버린다면 너는 ‘하나님’을 찾아 결판을 낼 것이고 나에게 그 당시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말로 너를 겁주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무슨 짓이나 다 해낼 수 있다. 이로부터 보다시피, 너희는 결코 진실한 깨달음이 없고 진실한 분량이 조금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3)>에서 발췌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만 살면서 평안과 희락이 있고 육체의 안일을 조금 얻는 것에 만족하는가? 이는 가장 비천한 사람이 아닌가? 구원의 은혜를 보고서도 그것을 얻으려고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제일 미련한 사람이고, 육체를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누리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이나 환난이 조금도 없고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네가 늘 가치 없는 그런 것들만 추구하면서 오히려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고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 앞에 놓는데, 너 같은 사람은 너무나 가치 없다! 네가 돼지처럼 살아간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짐승이 아닌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은 모두 산송장이 아닌가? 너희들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하였는가? 너희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그래 적은가? 너희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공급한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너는 왜 얻지 못했는가? 너에게 또 무슨 불평이 있는가?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체를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닌가? 너의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닌가? 네가 너무 우둔한 탓이 아닌가? 네가 이 복을 얻지 못하였으면서도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하겠는가? 너는 하나님을 믿은 후 평안 얻기를 추구하는데,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가문에 시집가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일년 내내 날씨가 농사에 좋기만을 바란다. 너는 사는 것이 안일하여 집에 일이 생기지 않고, 바람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고, 홍수가 나도 너의 집 곡식은 잠기지 않고, 무릇 재난은 다 너에게 미치지 않고, ‘하나님의 품’ 속에서 살고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추구한다. 너같이 못난 놈은 무턱대고 육체만 추구하는데, 네가 말해 봐라, 너에게 마음이 있는가, 영이 있는가? 너는 짐승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참 도를 값없이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닌가?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모르고 날마다 실컷 배불리 먹고는 잠만 잔다. 참 도를 베풀어 주었어도 네가 얻지 못하고 두 손이 텅 비어 있는데, 너는 돼지와 같은 그런 삶을 계속하고 싶은가? 그런 사람이 살아 있어도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삶이 비열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한 가운데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조금도 없는데,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이 아닌가? 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는가? 그렇게 경력해 나가면 여전히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비, 긍휼만 있다면 사람이 진실로 자신을 알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본질을 인식할 수도 없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심판과 연단을 통해야만 연단 속에서 네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일무소유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연단과 심판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너는 경력하는 가운데서 연단과 고통을 크게 받는 사람들, 훈계와 징계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투철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한 번도 훈계를 겪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인식하는 것은 아주 얕다. 그는 “하나님은 참 좋아요. 그분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을 누리게 하시지요.”라고 말할 줄밖에 모른다. 만일 훈계와 징계를 겪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일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가 있고 더욱 의의가 있으며, 너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할수록,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할 수 있고 너를 얻을 수 있으며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지금 너희는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알았는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그런 종교적인 믿음법을 없애야 한다. 하나님이 이적 나타내 주기를 추구하고,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 주기를 추구하며, 평안과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추구하고, 육체의 앞날과 육체의 평안 얻기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종교적인 믿음법이다. 이런 믿음법이 바로 막연한 신앙이다. 오늘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너의 생명 실제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를 알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분이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하는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