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1)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주님 위해 전도하고 사역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가?

성경 참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7~39)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 14:23~24)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1)

관련된 하나님 말씀:

『현재 성령이 가는 길 또한 하나님의 현실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령이 가는 길에 들어서려면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의 현실의 말씀에 순복하고 현실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말씀의 사역이다. 전부 다 그의 말씀에서부터 말을 시작하며, 전부 다 그의 말씀 위에 세워지고 그의 현실의 말씀 위에 세워진다. 도성육신 하나님을 확신하려 하든지 아니면 도성육신 하나님을 알아가려 하든지 다 그의 말씀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모두 아무런 성취도 없고 아무것도 없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기초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점차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가장 잘 협력하는 것이고, 자민(子民)의 간증을 가장 굳게 설 수 있는 실행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현실의 말씀 실질을 터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순복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성령이 인솔하는 길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성령이 가는 길을 따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각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때 사람에게 얼마의 말씀을 베풀어 주고 얼마의 진리를 알려 주는데, 그런 진리가 바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道)이고, 사람이 준행해야 할 도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도이고, 또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인생의 역정에서 실행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발표해 주는 목적이다. 그런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발표되었으니, 사람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사람은 그 말씀을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그런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실행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내지 못한다면,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하면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면, 사람의 결말은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와 하나님의 역사가 도달하는 효과>에서 발췌

『하나님의 도(道)를 준행하는 것은 겉면으로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그 일이 임했을 때, 너는 먼저 그것을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 하나님이 너에게 맡겨 준 책임이나 혹은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일이 임했을 때, 너는 그것을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으로 여겨야 한다. 그 일이 너에게 임했을 때, 너는 마음속에 기준이 하나 있어야 하며, 그 일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네가 어떻게 해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겠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와 하나님의 역사가 도달하는 효과>에서 발췌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순복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을 의식적으로 다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하고, 참으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며, 모든 행위에 원칙이 있고,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억지로 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그런 실행이야말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방식은 모두 규례가 아니라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사역을 언급하면 사람은 모두 사역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각처에서 전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인식은 비록 정확하지만 너무나 단면적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단지 하나님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 많은 영적인 봉사와 공급이다. ……사역은 결코 하나님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살아냄과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께 누리도록 바칠 수 있는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역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과 인식으로써 하나님을 증거하고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람의 책임이고 사람이 인식해야 할 바이다. 너희의 진입이 바로 너희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과정에서 추구하여 진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증거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하며 사람에게 봉사하고 공급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역이자 또한 너희의 진입이며, 사람마다 해내야 할 바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각처에서 설교하는 것만 중요시하고 오히려 자신의 경력을 잊고 영적 생활의 진입을 소홀히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2)>에서 발췌

『예를 들어,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은 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너는 피조물의 본분을 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진리가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만 중요시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조물주에 대해 모르고 인식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조물주에게 순복하지도 않고 조물주를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천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조물주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겉보기엔 사람이 모두 분주히 뛰어다니면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사역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모두 다음 단계에 어떻게 복을 얻을 것인가 또는 왕이 되어 권력을 잡을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누리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하나님을 추측하고 있었다. 사람의 이런 정형이 바로 하나님이 극도로 미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어떠한 사람도 그를 속이고 그를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부분 내용 소개>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오직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경영을 언급하기만 하면, 침묵을 지키고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무미건조한’ 문제는 안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없고, 어떤 유익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설령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것을 건성으로 대할 뿐 결코 보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명의 일부분으로는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단 하나의 목표, 즉 복을 받는 것이다. 그것 외에 그들은 자신의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일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은 가장 정당한 목적이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가치라고 여긴다. 만약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현 상태이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듣기에는 아주 정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동시에 다 화비하고 봉헌하고 본분을 하고 있으며, 또한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오랜 세월 밖에서 동분서주하며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종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향을 바꾸고,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추구 방향도 바꾸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이 얼마나 멀든, 도중에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뛰어다닌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계속 바칠 수 있게 하였을까? 그들의 양심인가?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인가?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려고 하는 그들의 의지인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도 보수를 바라지 않는 그들의 믿음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그들의 충성심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나친 요구가 전혀 없는 그들의 봉헌 정신인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과 대가를 바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바쳤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잠시 논하지 말자.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해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그 속에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이익을 제외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우리는 사람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단지 적나라한 이익 관계로,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로 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일 뿐이다. 피고용인이 수고하는 것은 다만 고용인이 주는 삯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이익 관계에는 혈육 같은 친밀한 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주고 받는 사랑은 없고 베풀어 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만 있으며,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으면서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사이는 없고 영원히 넘어갈 수 없는 깊은 골만 있을 뿐이다. 일이 이미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그런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또 그런 관계가 위급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확신하는데, 사람이 모두 복받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빠져 있었을 때는 아무도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민망하고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고, 교회에 대해 많은 부담이 있었고 덕이 되었으며, 바울의 13권 서신은 은혜시대를 2천년 동안 유지하였고, 4복음서를 제외하면 바울의 13권 서신인데, 누가 그와 비교할 수 있겠어요? 요한의 <계시록>은 아무도 풀지 못하지만 바울이 쓴 서신은 다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지요. 그가 한 사역은 교회에 유익한 것인데, 다른 사람은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베드로가 한 사역은 뭐가 있는데요?”라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가늠하는 것은 사람의 공헌도에 근거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근거한다. 바울은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겸손히 순복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의 실질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를 세부적인 경력이 없는 사람이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면과 자신의 연약한 면에서, 그리고 피조물의 패괴 성정 방면에서 모두 인식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성정 변화에 대해서도 실행할 길이 있었다. 그는 도리만 있고 실제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변화된 사람은 구원받은 새 사람에 속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합격된 사람에 속한다. 변화되지 못한 사람은 천성적인 옛 사람에 속하는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 즉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다. 설령 그가 한 사역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는다. 너는 자신의 추구를 대조해 보면 너 자신이 도대체 베드로 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바울 같은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너의 추구에 여전히 진리가 없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바울처럼 교만하고 난폭하고 또한 공담을 늘어놓는다면, 의심할 바 없이 너는 실패한 인간쓰레기일 것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베드로와 같은 실행과 진실한 변화이고, 교만하지도 않고 방자하지도 않고 본분하기를 추구한다면, 너는 이길 수 있는 피조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네가 늘 개인의 욕심에 따라 살고 늘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킨다면 하나님 앞에서 간증이 없고 사탄 앞에서 간증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기호(記號)이고 매사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입니까?”라고 너는 말하는데, 네 마음과 생각, 일하는 속셈, 일하는 목적, 일하는 동기, 일을 저지른 결과는 매사에 사탄을 만족시키고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또한 사탄에게 약점을 잡혀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간증이 조금도 없다. 네가 매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진실한 간증이 없다면 하나님이 네가 한 것을 기억하겠는가? 마지막에 하나님은 너의 모든 행위와 네가 한 본분에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공정한 결론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에 주 예수가 말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무엇 때문에 주 예수가 이 말씀을 했는가? 주의 이름으로 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전도하면서 뛰어다닌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악을 행한 사람이 되었는가? 악을 행한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그 사람들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인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또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포기하며 자신의 본분도 다했지만, 본분을 함에 충심이 없고 간증이 없으면 이런 사람은 악을 행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심을 하나님께 맡기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에서 발췌

『수년간 고생했어도 헛고생만 한 너희를 나는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나의 요구에 이르지 못한 어느 누구에게든 ‘벌’만 주고 ‘상’은 없으며 더욱이 동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혹시 너희는 너희가 수년간 따르면서 어차피 고생한 보람도 있으니 어쨌든 효력자가 되어 하나님 집에서 밥그릇이라도 얻을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너희들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한 다수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너희가 항상 이익만 보려 하고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현재 정식으로 너희에게 알리겠다. 나는 네가 고생하여 큰 공을 세웠든지, 자격이 대단하든지, 곁을 따랐든지, 명망이 하늘에 닿았든지, 태도가 좋아졌든지 상관없이 네가 나의 요구대로 하지 않았다면 너는 영원히 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너희는 그래도 자기의 이런저런 생각과 계획을 일찌감치 청산하고 나의 요구를 진지하게 대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모든 사람을 잿더미로 되게 하여 나의 사역을 끝마칠 것인데, 기껏해야 나의 오랫동안의 역사와 고난이 수포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원수와 사악한 냄새를 띠고 사탄의 원형을 지닌 사람을 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다음 시대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너는 네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받고,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환난을 함께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한 말씀을 살아내지는 못하였다. 너는 날마다 하나님을 따라 뛰어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려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너는 어쨌든 하나님을 공의로운 분이라고 믿고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고 뛰어다니며 봉헌하면 공로는 없어도 고생한 것은 있기에 하나님이 분명히 기억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공의롭다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공의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고, 사람의 뜻이 전혀 없으며, 육체의 것이 섞여 있지 않고, 사람의 거래가 섞여 있지 않다. 무릇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징벌받을 것이다. 하나도 용서치 않고, 아무도 놓아주지 않는다! ……나의 공의 성품은 너 같은 사람에게는 단지 형벌과 심판이고 공의로운 보응이며,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공의로운 징벌이다. 무릇 내 도를 준행하지 않는 사람은 설령 끝까지 따른다고 해도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공의이다. ……공의는 바로 거룩이고 또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성품이다. 무릇 더러운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는 다 하나님이 혐오하는 대상이다. 공의 성품은 법률이 아니라 행정인데, 바로 하나님 나라의 행정이다. 이런 행정은 진리가 없고 변화되지 않은 그 누구에게나 다 공의로운 징벌이어서 만회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될 때에 상선벌악(賞善罰惡)하는데, 그때는 인류의 결말(원문: 歸宿)이 드러날 때이고 구원 사역이 끝날 때이므로 더 이상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않고 악을 행한 각 사람을 보응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에 “제가 당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했는데, 공로는 없다고 할지라도 수고는 했으니 하다못해 천국에 들어가 생명 과실이라도 먹게 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수년간 사역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면,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어떤 사람에게도 편의를 봐준 적이 없다. 이것은 천상의 법칙으로,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너는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 내가 오늘날 온전케 하려는 사람은 베드로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고, 자신의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증거하기 원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가령 네가 상 받기만을 위하고 자신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추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헛수고가 될 것이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내가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이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관록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사람의 가련한 정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모두 징벌받게 된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고, 그들 스스로 갖은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인해 보응을 받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의 귀숙을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