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2) 만약 사람이 성경 신학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

성경 참고: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 15:8~9)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후 3: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람이 글귀 도리를 말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멀어진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6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무엇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데에 모두 적지 않은 공을 들였지만 후에는 인식만 있을 뿐 실제의 길을 말하지 못하는가? 너는 인식이 있으면 바로 진리가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가? 이것은 어리석은 견해가 아닌가? 네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어도 그중에 실제의 길이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모두 사람을 해치는 행실이다! 이론이 높을수록 더욱 실제가 없기에 더욱 사람을 실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가지 못하며, 이론이 높을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된다. 최고의 이론을 보배로 간주하지 말라. 그런 것들은 화근이고, 쓸모가 없다! 혹시 어떤 사람은 최고의 이론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중에는 실제가 조금도 없다. 그것은 그 본인이 아직 경력(역주: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행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정상 궤도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기에 사람을 모두 잘못된 길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최소한 너는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 사람이 진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헌신했다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늘 비현실적인 큰소리를 치지 말고, 적합하지 않은 많은 행위로 다른 사람을 속박하여 너에게 순복하게 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효과가 없기에 사람을 이끌수록 더욱 흐리멍덩하게 하고, 이렇게 저렇게 이끌다가 많은 규례를 만들어 내어 사람으로 너를 혐오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부족한 면인데, 정말로 사람을 난감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제를 많이 말하여라>에서 발췌

『네가 겨우 인식한 것은 다 어떤 것이냐? 다 도리이다! 하나님 앞에 가져와서 보면 듣기 좋은 말과 형식적이고 얼버무리는 말로 너 자신을 포장한 것이고, 속의 것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 속에는 뒤섞임과 기만이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지금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기만하는 수법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도리적인 기초나 이론적인 지식이 조금 있고, 겉면의 간단한 일들을 조금 알고, 도리에 대한 정의(定義)를 약간 파악하고는 더욱 자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런 정형에 처해 있을수록 더 위험한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수록 자신의 실제 정형에 대해 더 투철하게 파악할 수 있고, 또한 더 겸손하게 순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책망하거나 질책할 필요가 없다. 일정한 기간 사역을 하면서 도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사람의 어떤 정형을 어떤 도리로 해결(원문: 答对)해야 할지, 어떤 일들을 도리로 훈계하고, 책망하고, 억누르고, 가로막고, 억지로 죄를 덮어씌워야 할지 알게 된다. 사람은 이런 사역을 잘할수록 더욱 교만해진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사람이 바른길을 가거나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치우친 길을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네가 뛰어다니면서 사역하고 교회(원문: 底下)에서 교회 생활을 수호하고 있다지만 사실, 네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고, 진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네 자신은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새 신자가 하는 어떤 일들은 딱 보면 대적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말들은 모르면서도 함부로 말하고, 어떤 일들은 모르면서도 함부로 논단하며, 어떤 일들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함부로 말하는데, 그것은 현저하게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이 도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감춰져 있는 대적과 기만, 감춰져 있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 저촉하고 배반하는 것들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런 것이 당연하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미안할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 자만자족하게 되는데, 결국은 여전히 바울의 길을 가게 되고, 베드로의 길에는 근접하지도 못한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얼마 동안 사역하면서 질책하는 사람도 없고, 예배도 드리지 않게 되면 교회(원문: 底下)에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에휴, 인간이란 존재는 어찌할 수 없구나! 정말 내 자신의 본성을 제어하지 못하겠네.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때가 되면 일을 저지르게 돼……”라고 말한다. 보라! 사람은 말을 해도 얼마나 뻔뻔스러운가! “때가 되면 일을 저지르게 돼.”라고 하는데, 왜 일을 저지르겠느냐? 사람이 그 방면의 진리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다 의의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일이 임했을 때 도리적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그 일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한다.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냐? 네게는 그것에 관한 진리가 전혀 없고, 너는 접촉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전혀 없고, 또한 그것이 진리임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저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리만 안다고 해서 진리를 깨달았다고는 하지 못하며, 도리는 진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도리를 많이 알수록 오히려 더 심하게 대적하게 되는데, 마치 고무줄과 같아 아무리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고 아무리 잡아당겨도 더 늘어나지도 않는다. 지금 교회(원문: 底下)에서 어떤 사람은 도리를 말하는 것이 너희보다도 더 능숙하다. 오래 믿은 사람이든, 새 신자이든 이것은 교회(원문: 底下)에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정형이다. 새 신자라고 해도 너희가 말하는 그런 도리는 알고 있고, 대략적으로 말할 줄 안다. “소질이 낮아요.”, “인성이 안 좋아요.”, “성정이 나빠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소극적이 되면 안 돼요.”, “하나님의 날이 가까웠는데, 아직도 소극적이라니요.”, “하나님께서 오셨는데도 소극적이 되다니요.”,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하시기가 얼마나 힘드신데, 아직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다니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인간이란 정말 진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입에 달고 있는 이런 간단한 말들은 입버릇처럼 되어 버렸는데, 이런 정형은 위험하지 않으냐? 내가 보기에 너희 각 사람은 다 아주 위험하다. 일단 다음 단계 사역이 시작되어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너희는 다 넘어질 것이다. 너희가 어느 곳에서 어느 구역이나 매우 넓은 지역의 형제자매들을 이끌게 된다면, 산을 차지하여 왕 노릇 하는 산적이 될 것이다. 너희는 자기가 맡은 구역마다 자신의 방식이 있다. 겉으로 보면 같이 모여서 교통도 하고, 서로 문제점들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사실 자신의 구역에서 일을 할 때는 자기의 뜻에 따라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가다보면 치우친 길로 가게 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왜냐하면 네가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따라간다면, 설령 내가 너에게 날마다 교통해 줘도 네가 날마다 도리만 기억하고, 날마다 도리를 마음에 새기면서 도리에서 뿌리내리고, 실제적인 면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진입도 하지 않는다면, 역시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은 얼마나 되고, 남은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 예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 마지막에 하나하나 다 넘어지지 않았느냐? 깨달은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더 흐리멍덩하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도리를 아는 것은 영원히 진리를 깨닫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에서 발췌

『너희의 인식은 겨우 한동안만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네가 오랫동안 늘 그런 것들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분별해 낼 수 있어 너에게 깊은 것이 없고, 있는 것은 너무 얕다고 말한다. 너는 별수 없이 도리만 말해 사람을 미혹시키게 된다. 네가 늘 그렇게 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너의 방식에 따라, 너의 절차에 따라, 너의 그 형식대로 하나님을 믿고 경력하면서 그런 글귀 도리들을 실행하게 된다. 네가 그렇게 설교하다 보면 나중에는 모두가 너를 본보기로 삼게 된다. 네가 사람을 인솔하면서 도리를 말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따라서 도리를 배우게 된다. 그렇게 가다 보면 사람의 잘못된 것들이 나오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너를 따라가게 될 것인데, 그러면 너는 ‘이제는 권력이 있게 되었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내 말을 들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라고 여기게 된다. 사람 안에 있는 이 배반으로 인해 부지중에 하나님을 배척하여 실권을 잃게 하고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종파, 어떤 교파를 형성한다. 각종각파가 어떻게 생겼겠느냐? 바로 이렇게 생긴 것이다. 각 교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모두 성경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상상에 따라 해석하면서 모두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 낼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느냐? 그는 어쨌든 지식이 좀 있어 도리를 좀 말하거나 사람을 구슬릴 줄 알고 수단도 좀 쓰니까 사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명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만약 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우리가 그에게 물어보아야 해요.”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이러면 큰일이 아니겠느냐? 그럼 인솔자는 뭐가 되느냐? 바리새인이 되고, 거짓 목자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되고, 사람이 참 도를 받아들이는 데의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그들은 날마다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기도 하고, 마음대로 ‘적합한’ 구절을 한 단락 찾아 읽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며, 또한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도 한다. 그들은 어떻게 나와 합해야 하는지 모르고, 나와 적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저 ‘성경’만 읽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전혀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제한해 놓고, 한가할 때면 꺼내어 본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에서 나의 존재를 신앙하고, ‘나’와 ‘성경’을 동등하게 보며, ‘성경’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존재에 관심이 없고 나의 행사에 관심이 없지만, 각 성경 구절에는 아주 특별하게 관심을 가진다. 심지어 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내 자신이 하려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데, 그것은 그들이 글귀를 너무 중요하게 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내 말의 마디마다 성경 구절로 가늠하고 성경 구절로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나와 합하는 도가 아니고 진리와 합하는 도가 아니라, 성경의 글귀와 서로 부합되는 도이다. 그들은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기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이 아닌가?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구하지 않고, 율법의 모든 구절을 진지하게 대하다 못해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성경’의 구절에만 마음을 기울였을 뿐, 나의 뜻에는,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해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단지 성경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었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 구절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성경에 규정된 내용과 맞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설마 그들은 모두 성경 구절의 앞잡이가 아니란 말인가?

오늘날의 사람은 또 어떠한가? 사람은 모두 천국에 가기 위해, 은혜를 받기 위해 이미 와서 진리를 내놓은 그리스도를 인간 세상에서 몰아내려고 하였고, 성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도래를 전부 말살해 버리려고 하였으며, 성경이 영원히 존재하게 하기 위해 두 번째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였다. ……사람은 모두 글귀와 합하고 성경과 합하기를 추구하지만,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늘에 있는 나를 앙망하고, 하늘에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육신에서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내가 그야말로 너무나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의 글귀와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 오직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은 나의 눈에 비천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숭상하는 것은 죽은 글귀이고,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거액의 재산을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의 지배를 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비천함은 그야말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다. 나와 적이 되는 그 사람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그 사람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그 사람들, 나를 거역하는 그 사람들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두면서 오히려 진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나의 발자취를 찾는 데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나와 적이 되는 자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성경에 제한하고, 성경에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 대한 크나큰 모독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나의 앞에 올 수 있겠는가?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나의 행사와 나의 뜻, 그리고 진리가 아니라 글귀인데,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글귀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너는 알아야 한다, 책의 글귀를 생명이라고 할 수 없고, 역사(歷史)의 기록을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발표한 말씀만이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역사 방식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난 시대의 말씀 기록을 오늘에 가져와 지킨다면, 너는 바로 고고학자이다. 그러므로 너를 역사문물 연구 전문가라고 하면 가장 적합하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이 이전에 역사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이전에 인간 세상에서 역사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이전에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려 준 도만 믿고, 오히려 하나님이 현재에 역사하는 동향은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영광의 얼굴은 믿지 않고, 하나님이 현재에 발표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기 때문에, 너를 뛰어난 비현실적인 공상가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만약 지금 네가 여전히 사람으로 살게 할 수 없는 그 글귀를 지킨다면, 너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옛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꽉 막혔기 때문이다!

……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 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만 지키려고 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원 상태만 유지하려고 하면서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歷史)를 도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호호탕탕하여 용솟음치는 파도와 같고, 진동하는 우렛소리와 같은데, 네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만일의 요행을 바란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누렇게 된 너의 그 책 속의 글귀가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시대를 뛰어넘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찾을 수 있게 하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천당에 가게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잠시 너에게 위안이 되게 할 수 있는 글귀일 뿐, 네게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네가 읽는 글귀와 경문은 너의 혀를 충실케 하는 경문일 뿐, 인생을 알게 하는 철리(哲理)가 아니고 더욱이 너를 온전케 되게 하는 길도 아니다. 그런 차이가 설마 너를 반성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네게 그 속의 비밀을 깨닫도록 할 수 없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