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1) 진리란 무엇인가? 성경 지식과 도리란 무엇인가?

성경 참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 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막 7:6~9, 13)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진리ㆍ길ㆍ생명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나타남은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다>에서 발췌

『진리를 인류의 언어로 말하면 바로 인류의 참뜻인데 인류는 영원히 다 투철히 경력하지 못하며, 인류는 이것에 의해 살아야 한다. 한 가지 진리는 전체 인류로 하여금 몇 천년 생존하게 한다. 진리는 곧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며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대표하고 하나님 자신의 실질을 대표하고 그의 안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너는 아는가?>에서 발췌

『네가 경력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 네가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과 인식하게 된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표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진리와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 그 자체가 바로 진리이다. 다만,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에서 유로되는 진실한 체현으로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모두 구체화하고 명문화하여 더욱 직설적으로 너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하나님은 어떤 것을 허락하고 어떤 것을 허락하지 않는지를 알려 주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기뻐하는지를 알려 줄 뿐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발표한 그런 진리 뒤에 있는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하나님의 실질을 보게 되었다. 그런 것이 곧 하나님 성품의 유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나의 말이 곧 진리, 길, 생명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진리’는 가장 실제적인 것이고 또한 인류의 최고 인생 격언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제출한 하나님의 요구이고, 게다가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 격언’이라고 칭한다. 이 격언은 귀납해 낸 것이 아니고 위인의 명언도 아니라 천지 만물의 주재자가 인류에게 발한 음성이며, 사람이 귀납하여 있게 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인생 격언’이라 칭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다 진리이고 생명이다. ‘진리’란 사람을 놓고 말하면, 사람의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사람이 항상 떠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가장 큰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비록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너에 대한 진리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는 네 심령에 안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진리란 바로 정상 인성의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었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인데, 모든 정상 인성(인성, 이지,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진리는 무엇이냐? ……(사람이 살아가는 일처리 원칙입니다.) 맞다. 사람이 살아가는 실행 원칙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토대이다. 네가 무엇으로 사는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을 하는 방향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을 때, 너에게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진리 실제가 바로 네가 살아가는 목표와 방향과 원칙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長久)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이 사역하고 설교할 때,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 같지만 전부 말씀의 글자 표면의 뜻으로 하고 실질적인 것은 전혀 없다. 그 사람이 설교하는 것은 마치 국문학을 가르치는 것처럼 한 조목씩, 한 방면씩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설교가 끝나면 다들 또 분위기에 맞춰 치켜 주며 “와, 저 사람은 실제가 있고, 설교도 꼼꼼하게 참 잘하네.”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설교를 마치면 그것을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전부 그릇된 논리만 말하는 것인데, 겉으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 같고 매우 진리에 부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세하게 분별해 보면 그 속에 있는 것은 전부 글귀 도리이고 전부 그릇된 논리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람의 상상과 관념이 있고 또한 하나님을 규정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설교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섬김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너희가 그렇게 ‘진리 귀납’을 한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에서 생명을 얻거나 성정 변화를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진리에서 얼마간의 지식과 도리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은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이 얼마간의 글귀 도리만 갖추었을 뿐 그 속의 함의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였다. 마치 신학교를 다니고 성경을 읽는 것과 같다. 네가 늘 이런 책들을 정리하거나 저런 재료들을 정리하고 나서는 이 방면의 도리를 갖추고 저 방면의 지식도 있게 되어 도리를 말하는 데는 훌륭한데, 말을 하고 나서는 어떠하였는가? 사람은 모두 경력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며, 최종에 사람이 얻은 그런 것들은 다 공식과 규례가 되어 버렸다. 사람은 그저 그 몇 가지 방면만 말할 줄 알 뿐이지 더 많으면 없다. 하나님이 만약 다시 하나의 새로운 일을 한다면 네가 알고 있는 그 도리에 맞출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의 그런 것들은 다 규례이고 너의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학을 배우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경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그런 책들은 사람을 신학 속으로 이끌어 가고 지식 속으로 이끌어 가며 새 공식으로 들어가고 규례와 틀 속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는데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할 리 없다. 그런 말을 한 문제 한 문제씩 질문하고는 대답하고, 그 무슨 요점이며, 종합이며 너는 그렇게 하면 아랫사람들이 깨닫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것 외에 또 이런 문제들을 한눈에 환히 알 수 있다고 여긴다. 너의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좋지만, 타인이 깨달은 것은 진정한 함의가 아니고 실제와 맞지 않으며 다만 글귀 도리뿐이다.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을 이끌어 지식을 알게 하고 지식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네가 사람을 도리 안으로 이끌어 들어가고 종교 안으로 이끌어 들어가 모두 종교 도리 안에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데, 이는 바울과 같은 사람이 아닌가? 너희는 진리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외우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도리를 말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은 공식을 발견할 수 있는지 등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늘 그런 것을 체계화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모두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말을 하게 하고, 똑같은 도리를 말하게 하며, 똑같은 지식이 있게 하고, 똑같은 규례를 지키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의 목적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더욱 깨닫게 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도리어 사람을 하나님 말씀 진리 밖의 규례로 이끌어 간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구나!』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다>에서 발췌

『네가 만일 참으로 이 말씀을 깨닫고 실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네가 만일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성실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절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네가 만일 하나님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참으로 깨달으려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너는 ‘내가 글자 표면에서 다 해석할 줄 알고 다른 사람도 듣고는 다 좋다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이러면 내가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어.’라고 여기지 마라.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과는 다르다. 만일 하나님 말씀에서 빛 비춤을 조금 얻고 또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진정한 함의를 더듬는다면, 하나님 말씀의 의의가 무엇인지, 최종에 도달할 효과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다 투철하게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는 여간 간단치 않다. 하나님 말씀을 글자 표면에서 그럴듯하게 멋있게 해석한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글자 표면에서 아무리 해석해도 사람의 상상과 사유이니 쓸데없다! ……네가 만약 글자 표면에서 해석하거나 너의 사유와 상상으로 해석한다면, 설사 네가 그럴듯하게 멋있게 해석한다 할지라도 참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자칫하면 단장취의하여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할 것이다. 그러면 더욱 큰 일이다. 그렇지 않으냐? 네가 만약 글자 표면으로 해석하거나 너의 사유 상상으로 해석한다면, 설사 그럴듯하게 해석한다 할지라도 참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얻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데서 성령의 깨우침으로 얻는 것이지 글자 표면에서 좀 깨닫거나 해석한다 해서 진리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글자 표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성령이 깨우칠 필요가 있겠느냐? 그저 일정한 언어 지식만 구비하면 된다. 그러면 언어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두뇌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로 성령의 깨우침을 통해야만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진리를 얻는 과정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도 그 많은 말씀을 글귀로만 깨달을 뿐, 실제 경력으로 체험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아니라 죽은 글귀이다. 네가 죽은 글귀만 지킨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실제 경력으로 경력한다면 그때에야 하나님 말씀 속의 영적인 뜻이 너에게 열리게 된다. 오직 경력으로만 진리의 영적인 뜻을 많이 더듬을 수 있고, 오직 경력으로만 하나님 말씀의 심오한 뜻을 풀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명확해도 네게는 텅 빈 글귀 도리가 되고 너의 종교적인 규례가 된다. 이것은 바로 바리새인이 행하던 것이 아니냐?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 경력하기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있어서는 실제이다. 만일 실행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는 마치 셋째 하늘의 전설과 같을 것이다. ……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겉면의 뜻을 알고 있음에 만족하고 도리상으로 장비하기를 중시하지만 실행 방면에서 심도 있게 경력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리새인의 행실이 아닌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다”는 이 말의 실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 후에야 자라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 자라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생명이 있고 분량이 있다고 여긴다면 너의 인식은 치우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참으로 깨닫는 것은 진리를 실행할 때에 도달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도달하는 것이다”라는 이 말을 너는 깨달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깨달았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진리에 대해 경력이 없으면서도 말하려고 한다면 네가 어떻게 말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고 아무리 말해도 글귀이다. 네가 깨우침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도리상에서 깨달은 것이지 실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들어도 실제적인 것을 더듬을 수 없고 그 당시에 들을 때는 아주 맞는 것 같다고 여기지만 후에는 전부 잊어버린다. 만일 실제 정형을 말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고, 사람이 기억하려 해도 그것을 기억할 수 없으며, 더욱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너는 아는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