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3 왜 하나님의 각 단계 새 사역마다 종교계의 미친 듯한 대적과 정죄를 받는가?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3 왜 하나님의 각 단계 새 사역마다 종교계의 미친 듯한 대적과 정죄를 받는가?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성경 참고: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혹은 죽인지라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막 12:1~9)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 11:47~48, 53)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취지는 바뀌지 않지만 그가 역사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 하나님이 하는 역사가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더욱 전면적이고, 또한 사람의 성정도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그에 맞게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그릇되고 망령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늘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항상 새롭고, 하나님은 옛 사역을 중복하지 않고 이전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중복 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역사로 오늘날의 하나님의 역사를 가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각 단계에 하는 새 시대의 사역은 전개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의 어려움은 너무나 많다!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보수적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서도 또 규정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잃고, 진리를 잃고, 하나님의 축복을 잃게 되었지만, 또 모두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다 큰 축복은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이 고정불변한 것이고, 언제나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을 다만 율법 아래의 하나님으로, 다만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으로 여기고, 하나님은 성경을 초월해서는 안 되고 초월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을 낡은 율법 아래에, 죽은 규례에 단단히 묶어 놓았다. 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을 하든지 모두 예언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또한 각 단계에 새 사역을 하는 동시에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계시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은 본래부터 하나님을 알기 어려운 데다가, 사람의 그릇된 마음과 자고자대(自高自大)하는 패역의 본성이 더해져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3단계 사역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에 대한 전부의 발표이다. 3단계 사역을 모르면 성령 역사의 각종 방식과 각종 원칙을 모른다. 한 단계 역사에서 남겨진 규례만 고수하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규례에 제한하는 사람들이고, 또한 막연 중에서 신앙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3단계 역사로만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전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발표될 수 있고, 전 인류를 구원하는 전체 과정도 다 발표될 수 있다. 그것은 사탄을 패배시키고 인류를 얻는 증거이고, 하나님이 승리한 증거이며, 또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발표이기도 하다. 3단계 역사 중에서 한 단계 역사만 아는 사람은 하나님 성품을 일부만 알 뿐이다. 그 한 단계 역사만으로는 사람의 관념 속에 또 규례가 쉽게 형성되고, 사람은 하나님을 쉽게 규정하게 된다. 단지 하나님의 일부 성품만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체하게 되고, 사람의 적지 않은 상상까지 뒤섞여 하나님의 성품, 소시, 지혜, 역사 원칙을 한사코 유한한 범위에 제한하고는 하나님이 한번 그러하면 영원히 그러하고 또한 세세토록 변할 리가 없다고 여긴다. 오직 3단계 사역을 인식하고 이해한 사람만이 정확하고도 전면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적어도 하나님을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나 유대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을 것이고, 적어도 하나님을 영원히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한 단계 사역에서만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그 인식은 너무 적다 못해 그야말로 바닷물의 한 방울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많은 원로 종교가들이 잔혹하게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겠는가,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한 범위에 규정해 놓은 연고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의 다종다양한 역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조금밖에 없는 자신의 지식과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경력(역주: 체험)이 천박하면서도 천성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성령의 역사를 경시하고 성령의 징계를 소홀히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잘것없는 그 낡은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입증’하고, 또 일부러 자신의 학식이 해박하여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고 티를 낸다. 그런 사람은 모두 성령께 버림받는 사람이고, 새 시대에 도태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하나님 앞에 와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모두 경망스럽게 구는 지식이 얄팍한 소인배들이 아닌가? 얼마 안 되는 성경 지식으로 천하의 ‘학술계’를 종횡무진하려고 하고,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볼품없는 빈약한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돌려세우려 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려고 하며, 그 짧은 식견으로 하나님의 6천년 사역의 풍채를 한눈에 보겠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또 무슨 이지(理智)를 논할 수 있겠는가? 사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사역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의 현시 사역에 대한 인식만 조금 말할 뿐 제멋대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교만하여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소시를 더욱 제멋대로 선전하는데, 모두 도리이고 실제 증거는 조금도 없다. 그런 사람은 가장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성령의 사역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은 모두 경망스러운 사람이다!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만나서도 신중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제멋대로 평가하며, 자신의 성미대로 성령 사역의 정확성을 부인하고 또한 욕설하거나 모독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거만한 사람은 모두 성령 사역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성적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자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은 어느 날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관용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런 악당은 금생과 내생에도 사함받지 못할 것이고, 그들은 영원히 지옥에 멸망될 대상이다! 거만하고 방종한 그 사람들은 또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로, 그런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행정을 더 쉽게 범한다. 천성이 방탕하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굽힌 적이 없는 그 교만한 자들은 모두 그런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늘 새로운 하나님을 하루 또 하루 대적하고 있지 않은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이 3단계 역사 중의 각 단계 역사는 앞 단계에서 역사한 기초에서 한 것이지 단독으로 구원 사역 외의 또 다른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비록 시대나 역사가 크게 다르지만 그 역사의 핵심은 여전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그 구원 사역은 한 단계 한 단계 더 깊어진 것이다. 각 단계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앞 단계 사역을 폐하지 않는 기초에서 계속하여 또 이 단계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늘 새로운 사역을 하면서 사람에게 발표하지 않았던 그의 성품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언제나 그의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소시를 사람에게 공개한다. 비록 원로 종교가들이 극력 대적하고 공개적으로 반대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가 해야 할 더 새로운 사역을 한다. 그의 역사가 언제나 새롭게 바뀌고 있으므로 사람은 늘 반대를 한다. 그럼에도 그의 성품은 늘 바뀌고 있고, 역사하는 시대와 대상도 늘 바뀌고 있다. 게다가 항상 이전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을 하고, 심지어 사람이 보기에 이전에 한 사역과 서로 모순되거나 상반되는 사역도 한다. 사람은 모두 한 가지 사역과 한 가지 실행만 받아들이고 그와 상반되거나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사역이나 실행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한다. 그러나 성령은 또 항상 새로운 사역을 한다. 그리하여 새 사역을 대적하는 한 무리 또 한 무리의 종교 전문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전문가’가 된 까닭은 하나님은 ‘항상 새롭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에 대해 인식이 없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에게는 성령으로부터 온 역사인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 한 사역인지에 대해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수하고 있는 태도는 곧 이전의 논법과 맞으면 받아들이고, 이전의 역사와 다른 점이 있으면 반대하고 거절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알아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거나 자신의 관념으로 오늘날의 역사를 가늠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 성령 사역에 대해 너무 경솔하였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 사역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너희의 관념과 너희의 천성적인 교만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고, 너희의 천성이 너무 패역한 탓이지,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너희는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원을 알고 싶은가? 너희는 바리새인의 실질을 알고 싶은가? 그들은 메시아에 대해 환상으로 가득 찼고, 또한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과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우매하고 완고하고 그렇게 무지한데,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예수가 말씀한 진리의 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메시아에 대해 알지 못한 연고이다. 그들이 메시아를 본 적도,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만 헛되이 지키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아의 실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그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교만방자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치는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병이 얼마나 위대하든, 당신이 메시아라고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관점은 매우 그릇되지 않은가?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우매무지한 사람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점으로 본다. 그가 어떻게 신성의 소시를 표현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든지 사람은 그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순복과 낮춤을 표현할수록 우매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욱 경시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배척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위대한 형상이 있는 ‘위인’들을 책상 위에 놓고 공양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이 도성육신 된 실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데에 있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성으로 가려지지 않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으며, 비범한 인성을 갖고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좋아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에게는 인성이 없고 피조물의 속성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멸하는 태도를 갖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추대하고 환영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볼 수 없는 영이기만 하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가 너무 쉬울 것이다. 사람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형상을 제멋대로 하나 택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삼아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시원하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은 스스로 그 자신만이 ‘하나님’께 가장 충성하고 가장 경건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은 모두 이방 개이고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막연함과 도리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데, 대동소이하여 별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각 사람이 상상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각기 다를 뿐, 그 실질은 다 같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는데,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이것은 ‘인권 자유’이고,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믿는 것은 모두 자신의 하나님이지 결코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거의 다 이런 사유 재산을 가지고 있다. 이 재산은 비록 사람이 보기에 상당히 보배롭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오히려 가장 비천하고 무가치한 것들이다. 그것은 사람의 이 사유 재산이 바로 가장 뚜렷하게 하나님과 서로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도성육신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있는 형상이 있는 육신이 되었는데, 형상이 없는 영이 아니라 사람이 접촉할 수도, 볼 수도 있는 육신이다. 그러나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대다수가 모두 형상이 없으면서도 자유 형상이 있는 비육신인 하나님이다. 그리하여 도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대다수 사람들의 원수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도성육신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사람에게 관념이 있는 것은 결코 사람의 사유로 인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패역으로 인한 것도 아니라, 사람의 이 사유 재산으로 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재산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는데,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막연한 하나님을 믿기에 목숨을 잃게 된 것이지, 결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 때문이 아니고 더욱이 하늘의 하나님 때문도 아니다. 사람 자신이 상상한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사람은 모두 예수의 참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모두 예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나는 어떤 형제자매든지 예수를 만나고 싶지 않다거나 예수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희가 예수를 만나기 전, 즉 너희가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너희는 예수가 어떤 모습일지, 말씀은 어떻게 하실지, 어떻게 생활하실지 등등의 매우 많은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정말로 그를 만날 때에는 너희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텐데, 그 원인은 무엇인가? 너희는 알고 싶은가? 물론 사람의 생각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리스도의 실질은 더욱더 사람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신선으로 여기고 성인(聖人)으로 여기지만, 그리스도를 신성의 실질이 있는 정상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때문에 자나깨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하나님과 적이 되고,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의 잘못이 아니란 말인가? 너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너희의 믿음과 충성심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는데, 그래도 나는 너희가 실제적인 것들을 많이 쌓아가기를 권한다! 그것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이후에도 그리스도와 접촉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 실패하고 모두 바리새인의 역을 맡기 때문이다. 너희가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너희의 관념 속에 너희가 앙모할 만한 크고 높은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높지도 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왜소하고,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며, 하늘에 올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고, 그와 함께 지낼 때에 함부로 대하였으며, 그와 말할 때에도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여전히 ‘진정한 그리스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는 이미 돌아온 그리스도를 보통 사람으로 여겼고, 그의 말씀을 보통 사람의 말로 대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고,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빛 가운데서 완전히 드러내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왜 종교계 사람들을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들이고 마귀와 같은 부류라고 하는가? 그들이 악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행한 일을 지금까지 그들에게 나타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눈먼 사람들로,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했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전혀 없으며, 성령의 역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 원인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의 패괴로 인해 사람은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이 패괴되었으며, 사상이 부패해졌고, 정신 면모가 낙후해졌다. 사탄의 패괴를 겪지 않은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복하는 사람이었으며, 본래 이지와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탄의 패괴를 겪은 후에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지와 양심 그리고 원래 있었던 인성은 마비되었고, 모두 사탄에게 파괴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사랑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람의 이지가 정상적이 아니고 사람의 성정도 짐승의 성질처럼 변하여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 갈수록 많아지고 갈수록 심해지지만, 사람은 여전히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한사코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사람의 성정의 유로(역주: 흘러나옴)는 바로 사람의 이지, 견식, 양심의 발표이다. 사람의 이지와 견식이 모두 불건전하고 양심이 이미 극도로 마비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성정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성정이 되었다. ……

사람의 패괴 성정이 유로되는 근본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의 마비된 양심과 악독한 본성 그리고 사람의 불건전한 이지인 것이다. 만일 사람의 양심과 이지가 정상으로 회복된다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양심이 줄곧 마비된 상태에 있고 사람의 이지가 건전한 적이 없으며 게다가 갈수록 마비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점점 많아지고, 심지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으며, 또한 말세에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문전박대하고 하나님의 육신을 정죄하며 또 하나님의 육신을 비천하다고 여긴다. 사람이 만일 인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이렇게 잔혹하게 대할 수 없고, 만일 이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이렇게 악독하게 대할 수 없으며, 만일 정말로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에게 이같이 ‘감사’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성육신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하나님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오신 것에 대해 악담하고, 혹은 하나님이 도성육신한 사실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치 반대하는 듯하고, 마치 귀찮아하는 듯하다. ……사람의 성정은 극도로 악독해졌고, 사람의 이지도 이미 극도로 마비되었으며, 사람의 양심은 일찍이 그 악한 자에게 전부 짓밟혀 이미 원래의 그 양심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