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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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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나님의 교회와 종교 단체의 차이

2) 하나님은 왜 그분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하는 교회만을 축복하시는가? 왜 종교 단체는 저주하시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령 사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실적이고, 옛것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사역을 따르지 못하는 자와 오늘날의 실행과 동떨어진 자는 모두 성령의 역사를 대적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자이다. 이런 자는 모두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적하는 자이다. 그들이 이전의 빛을 지키고 있다 해서 성령의 역사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자들은 늘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지만, 사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던 사역을 일찍이 중단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사역할 대상을 이미 다른 사람들로 바꾸었고, 그들에게서 자신의 새 사역을 이루려고 한다. 종교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과거의 옛 사역만 지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고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새 사역을 행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현재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생명 진입을 추구하는 것이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든, 모두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네가 교제하는 내용도, 진입하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이므로 절대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발걸음을 따라오는 사람을 원한다. 과거에 네가 깨달은 것들이 아무리 순수하고 좋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앞으로 너의 진입에 큰 방해가 될 것이다. 성령의 현재 빛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 있는 사람이다. 만세와 만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랐지만, 오늘날까지 따라오지는 못했다. 그러니 이는 말세 사람들의 복이다. 성령의 현재 역사에 발맞추고, 하나님의 자취를 좇아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 따라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할 것이다. 성령의 현재 역사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사역 안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고 아무리 큰 고난을 받으며 아무리 많은 길을 달렸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흐름 안에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현재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성령의 현재 말씀에서 벗어난 섬김은 전부 육적인 것과 관념에 속하는 섬김이다. 그러한 섬김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 사람이 종교 관념 속에서 살아가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상상에 따라, 관념에 따라 섬길 뿐, 전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의 뜻에 맞는 섬김이지, 관념적이거나 육적인 섬김이 아니다.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섬김은 방해이자 교란이고, 그러한 섬김은 하나님과 반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오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현재 뜻을 깨닫고 하나님이 현재 요구하는 대로 행하고, 또한 오늘의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며,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따라 진입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의 역사를 따라오는 사람이자, 성령의 흐름 안에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사람의 관념과 패역, 사람의 본성과 본질도 알 수 있다. 또 섬기는 과정에서 성품이 점차적으로 변화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며, 진정으로 참도를 찾은 사람이다. 성령의 역사에 의해 도태된 사람은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최신 사역에 등 돌린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의 관념 속 하나님의 형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여 하나님께 미움받고 버려졌다.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 사역에 순종하는 마음, 하나님의 사역을 찾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볼 기회와 성령의 최신 인도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저지하는 자들은 모두 성령의 깨우침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얻을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선대에 달렸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추구와 마음가짐에도 달렸다고 하는 것이다.

성령의 현재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떠했는지, 예전에 성령이 그 사람에게 어떤 역사를 했는지에 상관없이 최신 사역을 얻은 사람은 모두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반면, 오늘날 최신 사역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알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글귀나 이치만을 고집스레 지키는 자는 모두 성령의 역사에 의해 도태될 자이다. 하나님이 시기마다 새 사역을 전개하므로 시기마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어느 한 시대에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도, 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바짝 따라간다면, 사람이 어찌 성령에 의해 도태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사람이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느냐? …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역할과 ‘메시야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야를 대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한 단계 성령의 사역을 받아들였음에도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패역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냐? 오늘날의 새 사역에 뒤처진 세계 각지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요행을 바라며 하나님이 그들 각자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왜 하나님이 그들을 셋째 하늘로 올려 주어야 하는지, 예수가 어떻게 흰 구름을 타고 와서 그들을 맞아 줄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다. 더욱이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그들이 상상하는 그날에 정말로 오는지를 확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도 없다. 그들은 저마다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하나님이 과연 다양한 교파에 속한 하나하나의 ‘작은 무리들’을 끌어 올릴 수 있는지 그들 자신마저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금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하루하루 날만 꼽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린양의 발자취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만이 마지막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얻었다고 여기는 ‘똑똑한 자’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계속 발전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아무런 까닭 없이 중단시킨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충성하면서 그를 따르고 그의 말씀을 지킨 자’들을 끌어 올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충성’할지라도 그들의 언행은 여전히 너무도 역겹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대적하고, 간계를 부리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도 뒤따라가지 못하면서 옛 사역만 고수하는 자는 하나님께 충성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새 시대에 버림받으며, 징벌을 받는 자가 된다. 그들은 가장 가련한 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낡은 율법을 버리고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양심’만 따지고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자신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앞날을 망칠 것이다. 하나님도 사역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고, 자신이 행한 사역일지라도 미련을 두지 않으며, 부인할 것은 부인하고 도태시킬 것은 도태시킨다. 그런데 사람이 오히려 경영 사역의 사소한 부분을 고집하면서 하나님을 적대시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그릇됨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무지함이 아니겠느냐? 복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자일수록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없고, 마지막 복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자들은 모두 율법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그들은 그렇게 율법에 충성할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자가 된다.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시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역을 과거의 사역과 함께 논해서도 안 되고, 과거의 사역을 오늘날의 사역과 비교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었으니 사람의 실행 또한 바뀌어 율법을 지키는 것도,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십자가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잡귀와 요괴가 세상에서 잠시 횡행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심혈을 물샐틈없이 차단시켰다. 이토록 말할 수 없이 극악무도하거늘 어찌 하나님이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이 크게 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심히 가로막고 대적하니 이보다 더한 패역이 어디 있겠느냐! 크고 작은 잡귀조차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덩달아 풍파를 일으키며, 진리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대적한다. 패역한 자식들! 그것의 염라대왕이 ‘왕’이라고 새겨진 보좌에 오르기라도 한 듯 유유자적[1]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구나. 진리를 찾고 정의를 따르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개돼지,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역겨운 파리 떼를 이끌고 거름 더미 속에서 의기양양해하며 못된 수작을 부린다[2]. 자신의 ‘염라대왕’이 가장 대단한 ‘왕’이라고 생각하며 우쭐한다. 자신이 역겨운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는 것이냐? 개돼지만도 못한 부모의 힘에 기대어 하나님의 존재를 모독한다. 보잘것없는 파리가 자신의 부모는 이빨고래[3]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보잘것없이 작고, 제 부모는 자신보다 수억 배나 큰, 더러운 개돼지임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자신의 비천함을 모른 채 개돼지의 ‘썩은 냄새’를 믿고 곳곳에서 횡포를 일삼고, 후대를 번성하겠다는 헛된 생각에 빠져 부끄러움도 모른다! 초록색 날개를 달고(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가리킴) 잘난 체하며, 여기저기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뽐낸다. 자신의 더러움을 슬그머니 사람에게 내던지고, 오색찬란한 날개로 자신의 더러운 것들을 감추었다는 듯 득의양양해하며 참하나님의 존재를 핍박한다(종교계의 실상을 가리킴). 파리가 날개는 아름답고 매혹적일 수 있어도 배 속은 불결함으로 가득 차 있고, 온몸은 독을 가진 균으로 들끓는, 작디작은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 파리는 개돼지 부모에 기대어 횡포를 부리고(하나님을 핍박하는 종교계의 관계자들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믿고 참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는 것을 일컬음), 미쳐 날뛴다. 마치 떠돌던 유대 바리새인의 영혼이 하나님을 따라 큰 붉은 용의 나라, 자신의 소굴로 되돌아와 또다시 핍박을 시작하고, 수천 년 동안 해 온 일을 이어 나가는 듯하다. 이 인간쓰레기들은 결국에는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 수천 년 후 더러운 귀신은 더욱더 ‘교활하고 간사해진’ 듯하다. 속으로 늘 하나님의 사역을 허물겠다는 생각을 품고, 온갖 술수를 쓰며, 수천 년 전의 비극을 자신의 고국에서 ‘재연’하려 한다. 하나님은 핍박을 받다 못해 큰 소리로 부르짖을 뻔했고, 당장이라도 셋째 하늘로 되돌아가 당장 그것을 멸해 버리고 싶게 만든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7> 중에서

『여호와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규정지었느냐? ‘유대교’라 하였다. 그들은 하나의 교파로 전락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정의 내렸느냐? (‘기독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종교 단체로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규정한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규정한 그 교파 사람 중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똑똑히 보아라. 하나님이 명목상으로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겠느냐? 하나님이 보기에, 그들이 모두 하나님과 관계있는 사람들이겠느냐?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언젠가 하나님 눈에 교파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교파 사람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교파 사람으로 전락한다면, 이들이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겠느냐? 하나님 집의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생각해 보고 정리를 해 보자. 명목상으로는 참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교파의 사람에 불과한 자들, 하나님 집의 사람이 아닌 그들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를 들고 있지만, 종래로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도,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저버리는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 다시 말해, 그들이 가는 길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저버리며 사탄과 마귀를 경배하고 사람의 경영을 하며 독립 왕국을 세우는 길이다. 이것이 본질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계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든 그 믿음의 방식이 하나님께 교파나 단체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할 사람으로 규정되었다는 의미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가 없고, 전혀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는 단체나 무리가 경배하는 대상은 누구겠느냐? 따르는 대상은 누구겠느냐? 형식상으로, 명목상으로는 한 사람을 따르는 것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누구를 따르는 것이냐?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들은 사람의 조종과 통제하에 있다. 그들이 따르는 것은 사탄과 마귀, 하나님의 적대 세력, 하나님의 원수이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이 구원할 리 있겠느냐? (아니요.) 왜 그렇겠느냐? 그들이 회개할 수 있겠느냐? 회개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걸고 사람의 사업, 사람의 경영을 하고 있으며,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과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맞이할 결말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 또한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혔고 완전히 그것에게 넘겨졌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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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유자적[悠閑自得]: 여기에서는 표정이나 태도가 오만하고 무례하여 혐오감을 유발하는 것을 의미함.

[2] 못된 수작을 부린다[興妖作怪]: 여기서는 마귀에 속한 자들이 곳곳에서 횡포를 부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것을 가리킴.

[3] 이빨고래[齒鯨]: 여기서는 작디작은 파리가 ‘개돼지’를 ‘고래’로 생각한 것을 풍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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