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1) 무엇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인가? 무엇이 종교 단체인가?

성경 참고: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12~13)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계 18:2~3)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오늘 무릇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현실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밖에 있는 사람인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 성령의 현실 말씀 밖의 섬김은 모두 육체에 속하고 관념에 속하는 섬김이니 그런 것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성령 역사를 따르는 것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현시 뜻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 요구에 따라 할 수 있고, 오늘의 하나님께 순복하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따라 진입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 역사를 따르는 사람이고 또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다 성령의 함께함과 징계가 있고, 성령의 흐름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오히려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으므로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 협력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이 시기에 요구한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면, 징계를 받게 되고 심각하면 성령께 버림받는다.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인 이상, 성령의 흐름 속에서 살면서 성령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깨우침이 있고,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있고 심지어 징벌도 임한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각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다.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기꺼이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의 축복을 받고, 그를 거역하고 그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들이니 성령의 징계나 책망 같은 것은 아예 논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은 온종일 육체에서 살고 있고, 자신의 생각(원문: 頭腦)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사람들이 행하는 것은 자신의 머리로 분석하고 연구해 낸 도리이지, 결코 성령의 새로운 사역에서 나온 요구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함께함이 없고, 더욱이 축복이나 보호 같은 것은 논할 수도 없다. 그 사람들의 언행은 거의 다 이전의 성령 역사에서 나온 요구를 지키는 것이고, 거의 다 진리가 아니라 도리이다. 그런 도리와 규례는 그 사람들의 집합이 단지 종교임을 충분히 설명할 뿐, 결코 선민이나 하나님의 역사 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 모든 사람들의 집합을 종교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뿐, 결코 교회라고는 할 수 없다. 이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왜 교회당에 다니는 사람들의 실행을 뒤떨어졌다고 하는가? 바로 그 사람들이 실행하는 것이 현재의 사역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서는 그 사람들이 실행한 것이 옳았지만, 시대의 전이와 사역의 변천에 따라 그 사람들의 실행은 점차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졌는데,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빛에 의해 뒤처지게 된 것이다. 성령의 사역은 원래의 기초에서 또 몇 단계나 더 심화되었는데, 그 사람들은 아직도 본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과 이전의 깨달음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앞으로 발전한다.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변화가 있어야지 어떤 상태에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오직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그 사람들만이 원래의 사역에 정체되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직 패역한 그 사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한다. 사람의 실행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따르지 못한다면 그 실행은 분명 현시(現時)의 사역과 동떨어진 실행인데, 그런 실행은 또한 틀림없이 현시의 사역과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뒤떨어진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고, 더욱이 마지막에 하나님의 증거를 굳게 서는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 경영 사역도 이런 한 무리 사람들에게서는 끝날 수 없다. 이전에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 그 사람들과 십자가를 위하여 고통받은 그 사람들이 만일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사람들이 한 모든 것은 다 헛수고이고, 다 쓸데없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어떤 상태에 멈추어 있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과 새로운 빛에 닿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바뀌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데, 사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하던 사역을 일찍이 정지시켰으므로 그 사람들에게는 전혀 성령 사역이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이미 다른 한 무리 사람들에게 옮겨졌는데, 하나님은 이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새로운 사역을 이루려고 한다. 교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전의 옛 사역만 지키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버리고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사람의 실행도 끊임없이 높아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하고 있고, 사람도 언제나 필요한 것이 있어 양자는 모두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결합되는 것은 바로 큰 공을 세운 하나의 표현이고, 전체 경영의 최종 결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은 여호와를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명명하였느냐? 유대교다. 교파가 되었다. 그러면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규정하였느냐? 기독교가 아니냐? (맞습니다.) 하나님은 유대교, 기독교를 종교 단체로 본다. 하나님은 왜 이같이 규정했을까? 가장 간단하게 묻겠다. 무릇 하나님이 규정한 이런 교파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들,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고 하나님의 도(道)를 준행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없습니다.) ……

……하나님 집의 사람이 아닌 그런 사람들, 하나님에게 교파로 인식되고 또한 명의로는 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느냐?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하나님의 도(道)를 준수하지 않는 길을 가고,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리는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도(道)를 준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길을 가고, 하나님을 믿지만 사탄을 경배하고, 마귀를 경배하고, 사람의 경영을 하고, 독립 왕국을 세우는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은 실질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관계가 있느냐? (없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든 믿는 방식이 일단 하나님에게 교파나 단체로 정해진다면, 하나님 편에서 그 사람들은 이미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왜 이렇다고 할까? 하나님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하나님을 전혀 경배하지 않는 집단이고 무리라면, 그들은 누구를 경배하는 것이냐? 누구를 따르는 것이냐? 그들이 겉으로는 사람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누구를 따르는 것이냐? (사탄입니다.) 그들은 의식상에서, 명의상에서는 아마 사람을 따랐을 것이고, 또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사실상 사람에게 좌우되고 사람의 지배를 받으며 사람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따르는 것은 사탄이고 마귀이며,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고 하나님의 원수이다. 이런 사람들의 무리를 하나님이 구원할까? (하지 않습니다.) 왜 구원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은 회개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걸고 사람의 사업을 하고 사람의 경영을 하며,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엇나가기 때문에 그들의 결말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구원할 리가 없고, 그런 사람들 또한 회개할 리가 없다. 그들은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힌 것이고,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에서 발췌

『왜냐하면 기독교는 단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 인정할 뿐,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적대시하였는데, 그것으로 인해 신앙 단체로 몰락되었다. 기독교를 하나의 신앙이라고 한 이상, 틀림없이 그저 신앙과만 관련되고, 하나의 의식(儀式)이고, 하나의 교파이며, 하나의 종교일 뿐,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신앙과는 별개의 일이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이 5대 종교 부류에 열거한 까닭은 기독교가 이미 유대교, 불교, 이슬람교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종교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의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고, 단지 성경으로 신학을 강의하고, 신학으로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좋은 일을 하라고 가르칠 뿐이다. 바로 그러한 종교인데, 단지 신학 이론만 중시하는 종교이고, 사람을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종교이며, 하나님을 따르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종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0>에서 발췌

『예수가 말씀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에서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매우 분명하다, ‘이’는 곧 말씀이 육신 된 주 예수를 말한다. 그것은 예수만이 성전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 주느냐? 사람에게 성전에서 나와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성전에서 나왔고 거기에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성전 밖에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그 말씀을 한 배경은 율법 아래의 사람들이 이미 성전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성전이란 그 곳을 경배한 것이지,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해야지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였다. 보다시피, 예수의 눈에는 율법 아래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여호와를 경배하지 않고 제사를 드리는 과정만 거칠 뿐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그 과정을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정했다. 우상을 섬기는 그 사람들은 성전을 하나님보다 더 크고 더 높게 보았으며,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고 성전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성전이 없으면 머물 곳을 잃게 되는 것이고, 성전이 없으면 경배할 곳도 사라지고 제사드리는 일도 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머물 곳’이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명목으로 성전 안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도록 허가받은 곳이다. 그리고 소위 ‘제사를 드리는 것’이란, 그들이 성전 안에서 섬기고 있다는 것으로, 자기 자신들의 부정한 행동을 숨길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사람들이 왜 성전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겼는지에 대한 원인이다. 그들은 성전으로 덮어 감추고, 제사를 구실로 삼아 사람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에, 예수는 그런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일러 준 것이다. 그 말씀은 지금에 가져와도 마찬가지로 유효하고, 마찬가지로 겨냥하는 바가 있다. 비록 지금의 사람들과 율법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각기 다른 역사를 경력했지만, 그 본성 실질은 똑같다. ……다만 2천년 전의 사람들은 형태가 있는 성전에서 개인의 경영을 하였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무형의 성전에서 개인의 경영을 할 따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