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2 역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나 영적인 사람이 말한 진리에 부합하는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즉, 결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진리’는 가장 실제적인 것이고 또한 인류의 최고 인생 격언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제출한 하나님의 요구이고, 게다가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 격언’이라고 칭한다. 이 격언은 귀납해 낸 것이 아니고 위인의 명언도 아니라 천지 만물의 주재자가 인류에게 발한 음성이며, 사람이 귀납하여 있게 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인생 격언’이라 칭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도대체 어느 범위가 진리에 속하는지를 너는 알아야 하며, 어느 범위가 진리에 속하지 않는지도 너는 알아야 한다. 말해 봐라, 진리의 말씀에서 사람에게 깨달음이 있고 경력한 인식이 있으면 이것을 진리라고 할 수 있는가? 기껏해야 진리에 대해 인식이 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릇 성령이 깨우친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지 못하고 진리를 대표하지 못하며 진리에도 속하지 못한다. 단지 진리에 대해 조금 인식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이 조금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진리는 각 사람마다 모두 경력하지만 각 사람이 경력한 정형은 모두 같지 않으며, 각 사람마다 같은 진리에서 얻은 것도 또 다르다. 하지만 사람의 인식을 모두 종합해도 이 진리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데, 진리는 곧 이렇게 깊은 것이다! 네가 얻은 것과 너의 인식이 무엇 때문에 진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겠는가? 너의 그 인식을 다른 사람과 교통하면 다른 사람은 이틀이나 사흘이면 다 경력한다. 하지만 진리에 대해 사람은 일생 동안에도 다 투철히 경력하지 못하는데 진리가 아주 심오함을 볼 수 있다. 진리는 언어로 투철히 말할 수 없다. 진리를 인류의 언어로 말하면 바로 인류의 참뜻인데 인류는 영원히 다 투철히 경력하지 못하며, 인류는 이것에 의해 살아야 한다. 한 가지 진리는 전체 인류로 하여금 몇 천년 생존하게 한다. 진리는 곧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며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대표하고 하나님 자신의 실질을 대표하고 그의 안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사람이 만약 사람에게 만약 진리가 있다고, 경력이 좀 있으니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면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할 수 있는가? 대표할 수 없다. 사람은 한 가지 진리의 어느 한 측면이나 어느 방면에 대해 경력이 좀 있고 빛비춤이 좀 있지만 한 사람에게 영원히 공급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말하니, 너의 이 빛비춤은 진리가 아니고 단지 사람이 달할 수 있는 한 정도 즉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경력, 정당한 경력, 정당한 인식이며, 바로 진리의 경력 실제의 한 방면이다. 그만한 빛비춤, 깨우침, 경력의 인식은 영원히 진리를 대체할 수 없다. 즉 모든 사람이 이 진리를 다 경력한 다음 그런 말을 다 함께 종합해 놓아도 그 한 마디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이전에 “나는 또 한 마디 격언을 총결해 낸다. 사람들 가운데 결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은 한 마디 진리이고 인생의 참뜻이며, 가장 심오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발표이고 한 마디 진리이다. 네가 경력을 하는데, 3년을 경력하면 너에게 얕은 인식이 조금 있고 네가 또 8년을 경력할 때에 너에게 또 인식이 조금 있지만 너의 그 인식은 영원히 그 한 마디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그가 2년 경력하면 인식이 고만큼 있고 10년을 경력하면 좀 높은 인식이 있다. 하지만 일생 동안 경력할 때에 또 인식이 좀 있지만 너희 둘의 인식을 종합해도 그 한 마디 말씀을 대신할 수 없다. 너희 둘을 종합하여 얼마큼한 인식, 얼마큼한 경력, 얼마큼한 깨달음, 얼마큼한 빛비춤, 얼마큼한 실례가 있어도 모두 이 한 마디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바로 사람의 생명은 영원히 사람의 생명이다. 네가 아무리 진리에 부합되고 아무리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아무리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되어도 영원히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사람에게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사람에게 실제가 좀 있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인식이 좀 있고 하나님이 한 말씀에 대해 실제 진입이 좀 있고 실제 경력이 좀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을 사람이 일생 동안 경력하고 여러 생(生)을 경력하고 몇 천 년을 경력해도 사람은 모두 하나의 진리를 완전히 투철하게 경력할 수는 없다.

…………

네가 진리의 한 방면에 대해 경력이 좀 있다면 이것이 곧 진리를 대표할 수 있는가? 절대로 진리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럼 너는 진리를 투철히 말할 수 있는가? 더욱 투철히 말할 수 없다. 너는 진리로부터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는가? 역시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실질을 발견할 수 있는가? 발견할 수 없다. 각 사람마다 진리를 경력하는 것은 모두 한 방면이고 하나의 각도이고 하나의 범위인데, 자신의 유한한 범위 안에서 경력하면 진리의 전면에 관련될 수 없다. 예컨대, 진리의 원뜻을 발표함에 있어서 그 근원이 바로 인류의 공통성을 다 말했는데, 네가 고만한 것을 경력한 것이 비로소 얼마의 비례를 차지하는가? 모래톱의 한 알이고 바닷물의 한 방울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네가 경력한 그 인식과 네가 얻은 그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심지어 끔찍이 사랑스러워도 그것을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진리의 근원과 진리의 내용이 포함된 면은 얼마나 넓은가! 그 어떤 것이라도 다 거꾸러뜨릴 수 없다. ……사람의 고만한 것, 사람의 고만한 빛비춤은 단지 한 범위 안에서 자신이나 한 부분의 사람에게만 적합할 뿐이지 다른 한 범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사람이 아무리 깊게 경력해도 너무 유한한 것이며, 어떻게 해도 진리가 적응되는 범위에 닿을 수 없다. 사람의 빛비춤과 사람의 인식은 영원히 진리와 비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너는 아는가?>에서 발췌

『사람이 실행하는 길과 깨달은 진리는 모두 어느 한 범위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사람이 가는 길을 완전히 성령의 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령께 깨우침만 얻을 수 있을 뿐 완전히 성령으로 충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력할 수 있는 일은 다 정상 인성의 범위 내에 있으므로 정상 인성의 두뇌 사유, 이 범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무릇 실제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이 범위 내에서 경력하는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경력하는 것은 다 성령의 깨우침하에 정상 인성의 생활을 경력하는 것이지 정상 인성 생활을 벗어나 경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 인성 생활이 있는 기초에서 성령이 깨우쳐 준 진리를 경력하는 것이다. 또한 그 진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그 심도는 사람의 정형과 관계 있다. 그들이 걷는 길은 단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정상 인성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고, 성령의 깨우침이 있는 정상인이 걷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성령이 가는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정상 인성의 경력에서, 추구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성령이 하는 사역도 같지 않다. 또한 사람이 경력하는 환경과 범위가 각각 다르고, 사람의 사고와 사유가 뒤섞인 것으로 인해 사람의 경력에는 서로 다른 정도의 뒤섞임이 있다. 각 사람이 어떤 진리를 인식하는 방식은 다 개개인의 서로 다른 조건에 따른다. 그들이 인식한 진리의 참뜻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어느 한 방면이거나 혹은 여러 방면일 뿐이다. 사람이 경력하는 진리의 범위는 개개인의 각기 다른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진리에 대해 발표하는 인식도 서로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경력하는 것은 다 유한한 것이기에 성령의 뜻을 완전히 대표할 수 없다. 설사 사람이 발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매우 부합될지라도, 또한 사람의 경력이 온전케 하려는 성령의 사역에 아주 근접할지라도, 사람의 사역을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 없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서 얻은 인식과 사람이 직접 경력하여 얻은 진리에 불과하다. 사람에게는 성령의 출구가 될 자격도 없고 조건도 없고, 또한 사람이 하는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다시 말하면, 사람의 교통은 하나님이 하는 말씀과 다르다. 사람이 교통하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과 경력인데, 하나님이 이미 한 사역의 기초에서 사람이 깨달은 것과 경력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다. 그들의 책임은 하나님이 역사하거나 말씀한 후에, 실행해야 할 것과 진입해야 할 것을 찾아내 따르는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역은 사람의 진입과 실행을 대표한다. 물론, 이런 사역에는 사람의 경험과 교훈 또는 사람의 사유도 어느 정도 뒤섞여 있다.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든, 곧 사람에게 역사하든 도성육신으로 역사하든 다 사역하는 사람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비록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지만 사람의 원래 있는 소시의 기초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근거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실제 정황과 조건에 따라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사람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사람의 낡은 관념과 사상이 변화될 수 있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본 것이고, 경력한 것이며,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인데, 설사 도리나 관념일지라도 다 사람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이 크든 작든, 사람의 경력과 사람의 깨달음, 혹은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과 구상할 수 있는 그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所是)이고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 즉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전 인류를 이끌어 가는 사역을 발표하는데, 사람의 세부적인 경력과는 관련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경영과 관련된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경력이고,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시이다. 이 소시는 바로 하나님의 원래 성품이고,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경력은 하나님이 소시를 발표한 기초에서 있게 된 깨달음과 인식이다. 그런 깨달음과 인식은 모두 사람의 소시로 불린다. 이것은 사람의 원래 성정과 소질의 기초에서 발표한 것이므로 또한 사람의 소시라고 한다. 사람은 경력한 것이고 본 것이면 교통해 낼 수 있지만, 만약 경력하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이거나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즉 사람 안에 없는 것이라면 사람은 교통해 내지 못한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이 사람이 경력하지 못한 것이라면 사람의 상상이거나 도리이다. 결론적으로, 그런 말에는 실제가 조금도 없다. 만약 네가 사회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너는 복잡한 사회 관계를 분명하게 교통할 수 없다. 가령 너에게 가정이 없다고 할 때, 다른 사람이 가정사를 교통한다면 너는 그가 말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교통하는 것과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소시를 대표하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발표하면 사람 안의 소시가 그것인데, 이것은 틀림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신약의 바울 서신은 다 바울이 그런 교회들에 써 보낸 편지인데, 성령이 묵시한 것이 아니고 성령이 직접 했던 말씀도 아니며, 그저 사역하는 기간에 뭇 교회에 대한 바울의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고, 또한 그 당시에 바울이 했던 많은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권유를 듣고 주 예수의 모든 도(道)를 준행하도록 한 것이다. ……바울이 했던 말들이 무릇 사람에게 덕이 되거나 긍정적인 말이라면 모두 맞는 것이지만, 결코 성령의 말씀을 대표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만일 사람의 경력을 기록한 것과 사람의 서신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그릇된 방식으로 인식한 것이고, 크나큰 모독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다. 바울이 했던 말은 성령의 말씀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단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도성육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과 예수의 신분은 같지 않다. 예수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신분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어떻게 예수와 동등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바울의 서신이나 바울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성령의 음성으로 여기고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한다면, 너무나 분별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좀 심각하게 말하면, 사람이 하는 것은 완전히 모독이 아닌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람의 말과 사람이 쓴 서신의 기록을 ‘성서’로 삼고 ‘천서(天書)’로 삼아 엎드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마치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일종의 견해이고, 베드로가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가 또 다른 일종의 견해인 것과 같다. 도대체 어떤 것이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그 누구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저 그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편지 한 통은 그들의 분량을 의미하고,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들의 공급과 부축을 의미한다. 또한 교회에 대한 그들의 부담을 의미하고, 사람이 사역하는 한 면만을 의미할 뿐, 절대 성령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네가 그의 서신이 성령의 말씀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그릇된 것이다. 그것은 모독에 해당된다! 바울의 서신과 신약의 다른 서신은 근대 영적 인물의 전기(傳記)에 해당하는데, 워치만 니의 책 또는 로렌스의 경력 등등, 이 사람들이 쓴 영적 전기와 함께 논할 수 있다. 다만 근대 인물들이 쓴 책은 성경 신약에 편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은 같은 것이고, 성령이 한 단계에서 사용하는 인물들이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그러나 너는 마땅히 한 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욱 안 되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 도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실질상에서 구별이 있다. 혹시 네가 이런 말씀을 본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단지 사람이 얻은 깨우침이라고만 인정한다면, 너는 너무나도 무지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사람이 얻은 깨우침과 같을 수 있겠는가? 도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개척하고 전 인류를 인도하며, 심오한 비밀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의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준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단지 일부 간단한 실행이나 인식일 뿐,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도록 인도할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의 심오한 비밀을 밝힐 수도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실질이 있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간단한 성령의 깨우침으로 보고 사도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다. 어쨌든 너는 절대로 시비를 전도하거나 높은 것을 낮다고 하고 깊은 것을 얕다고 해서는 안 되며, 진리임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각 사람으로서 모두 정확한 입장에서 문제를 고찰해야 하고, 모두가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와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