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6)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하고 사용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성경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내가 오늘날 성경을 이렇게 분석하는 것은 성경을 혐오하거나 성경의 참고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늘 캄캄 절벽 상태에 있지 않도록, 성경의 원래 가치와 성경의 기원을 명확히 설명하고 천명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대한 사람의 견해는 너무 많고, 또한 대부분은 부정확한 견해이기 때문이다. 또 성경을 그렇게 보면 사람이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려는 사역까지 가로막아 이후의 사역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폐단만 있고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깨달으라고 하는 것은 단지 성경의 실질과 내막이다. 그리고 성경을 보지 말라거나 성경을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널리 알리라고 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성경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정확한 견해를 가지라는 것이다. 너무 편면적이지 말아라! 비록 성경을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라고 하지만, 그 책에는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겼던 원칙과 근대 사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경력이 많이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참된 깨달음과 인식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 것은 모두 본 시대에서 참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 참고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도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생명의 도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도는 모두 역대의 선지자나 사도들이 경력한, 성령이 역사했던 생명의 도이고, 또한 많은 말들은 상당히 귀하여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 성경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는 은밀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책을 바라보는 사람의 견해는 그 어떤 영적 위인의 저작물을 대하는 견해와 같지 않다. 성경에는 신구약시대에 여호와와 예수를 섬긴 사람들의 경력과 인식이 기록되었고 한데 모아졌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들은 그 책에서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 그리고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이 그 어떤 영적 위인들의 저작물보다 훌륭한 까닭은, 영적 위인의 그 어떤 저작물도 다 성경에서 취한 것이며, 그들의 경력도 다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고 게다가 성경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사람이 어떤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기에, 성경은 너무나 높고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비록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과 같은 생명에 관한 말씀 책이 일부분 모아져 있고, 또 사람들이 그런 책 속에서 공급을 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또한 구시대의 책이다. 그런 책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한 시기에만 적용될 뿐, 영원히 보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 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용될 뿐, 마지막 때의 국도시대(역주: 왕국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자들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국도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공급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여호와의 창세 사역처럼, 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처럼, 그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고 흘러갈 때가 있는 것과 같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십자가의 사역에 어떤 설득력이 있거나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든, 사역은 어디까지나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디까지나 시대이다. 사역은 계속 어느 한 기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성경이 사람을 동반한 지 몇천 년 역사(歷史)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모두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대하였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 사람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혐오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가한 시간에 하나님은 성경의 내막과 그 기원을 하나하나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가 여전히 하나님을 대체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모두 성경의 글귀로써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정죄하고 가늠한다. 하나님이 성경의 실질과 구조 그리고 그 속의 허점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거기에 적합하고 합당한 설명을 하여 성경의 본질을 복원하는 것이고, 성경에 대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견해가 있게 하는 것이며, 더는 성경을 숭배하지 말고 더는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즉 성경을 미신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고, 심지어 성경의 실제 배경과 그 속의 허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성경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인식이 있은 후에야 조금도 꺼림없이 그것을 방치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려는 진리는 바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와 말씀을 대체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만족함에 도달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부분 내용 소개>에서 발췌

『너는 오늘날의 새로운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혹은 역사서의 범위를 초월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역사에 진입할 수 있다. 지금은 왜 성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지, 왜 성경 외에 또 다른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 왜 성경에서 더 새롭고 더 세밀한 실행을 찾지 않고 성경 외에 또 더 큰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신구 사역의 대비점을 알아야 한다. 비록 성경을 보지 않지만 성경을 분석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성경을 숭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새로운 역사에 진입하기 어렵고, 새롭게 변화되기 어렵다. 더 높은 도(道)가 있는데, 구태여 그 낮고 시대에 뒤떨어진 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더 새로운 말씀과 더 새로운 사역이 있는데, 구태여 묵고 낡은 역사(歷史) 기록 속에서 살 필요가 있겠느냐? 새로운 말씀이 너를 공급할 수 있으면, 그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낡은 기록은 너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사(歷史)이고 오늘날의 사역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가 곧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게 되면,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은 것일지라도 다 사람이 회상하는 역사(歷史)가 되고, 아무리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역시 낡은 도이다. 비록 ‘성서’에 기록되었다고 할지라도 낡은 도는 역사(歷史)이며, 비록 ‘성서’에는 한 페이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새로운 도는 현실적이다. 그 도가 너를 구원할 수 있고, 그 도가 너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