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3 성경은 사람이 편집한 것이고 하나님이 편집한 것이 아니며, 성경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성경 참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행한 일을 기록한 역사(歷史) 책에 속한다. 그중에는 수많은 옛 선지자의 예언들이 기록되었고, 여호와가 그 당시에 역사했던 말씀들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그 책을 ‘거룩하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마음이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 책을 그렇게 칭한 것은 단지 피조물이 조물주를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천서(天書)’라고 칭하였다. 사실, 그 책은 단지 사람의 기록일 뿐,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친히 지도하여 만들어 낸 것은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성’경이라고 칭한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 책을 대하는 존칭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함께 연구하고 토론한 후에 같이 결정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 사도, 예언자들이 기록하고 후세 사람들이 수집하여 종합 편찬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 책을 아주 거룩한 고서라고 보며, 그 가운데는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심오한 비밀이 많이 있고, 후세 사람들이 풀어야 할 것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책을 더욱더 ‘천서’라고 여기게 되었다. 신약 성경 가운데는 4복음서 및 <계시록>을 더했는데, 그 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떠한 책을 대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그리하여 아무도 그 ‘천서’를 감히 해부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책이 너무도 ‘신성(神聖)’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이전에 이스라엘 사람이 보았던 것은 다 구약이다. 즉, 은혜시대의 그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다 구약 성경이다. 신약은 은혜시대가 되어서야 있게 된 것인데, 예수가 역사할 때에는 신약이 없었다. 예수가 부활 승천한 후에 후세 사람들이 예수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어 비로소 4복음서가 있게 되었고, 거기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 이런 책들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예수가 승천한 후 3백여 년 뒤에, 후세 사람들이 또 그 책들을 편집하고 선택해 한데 묶어서야 신약서가 있게 된 것이다. 당시 그 단계 사역을 끝낸 후에야 신약이 있게 된 것이지, 사전(事前)에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고, 사도 바울도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는데, 나중에 바울과 베드로가 쓴 서신을 같이 한데로 모았고, 요한이 기록한 밧모섬에서 본 가장 큰 이상을 마지막 한 권의 책에 제본하였다. 그것은 말세에 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다 후세 사람들이 계획한 것으로……그들이 기록한 것은 그들의 배움의 정도와 소질에 근거한 것이고, 기록한 것은 사람의 경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마다 기록 방식이 다르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인식이므로, 기록된 것은 다 다르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을 하나님으로 여겨 숭배한다면, 너무나 우매하고 너무나 어리석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도대체 성경이 큰가, 하나님이 큰가? 왜 하나님은 역사할 때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에게는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한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예수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예수는 왜 안식일은 지키지 않으면서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그런 것은 다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예수가 구약대로 한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타파했겠는가?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안식일의 주인만 되고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면 참 도를 찾은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정말로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성경의 실제 내막이 어떤지를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일을 기록한 역사(歷史)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증거일 뿐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을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는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로,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지에 대해 기록되었다. 신약에는 예수가 땅에서 했던 사역을 기록한 4복음서도 있고, 바울이 한 사역도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역사(歷史)를 기록한 것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에 속하게 되고,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歷史)일 뿐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만 알고, 하나님이 지금 하고자 하는 사역을 알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네가 오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歷史)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 이상,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네가 고고학자라면 성경을 봐도 좋다. 하지만 고고학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하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이고 진리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의 인도와 부축 그리고 공급이 없다면, 네가 얻는 것은 단지 글귀이고, 도리이며, 더욱이 사망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은 동시에 공존한다. 네가 만약 진리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생명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네가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온몸은 상상과 관념을 제외하고 너의 육체뿐인데, 비린내로 가득 찬 너의 그 육체이다. 너는 알아야 한다, 책의 글귀를 생명이라고 할 수 없고, 역사(歷史)의 기록을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발표한 말씀만이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역사 방식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난 시대의 말씀 기록을 오늘에 가져와 지킨다면, 너는 바로 고고학자이다. 그러므로 너를 역사문물 연구 전문가라고 하면 가장 적합하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이 이전에 역사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이전에 인간 세상에서 역사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이전에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려 준 도만 믿고, 오히려 하나님이 현재에 역사하는 동향은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영광의 얼굴은 믿지 않고, 하나님이 현재에 발표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기 때문에, 너를 뛰어난 비현실적인 공상가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만약 지금 네가 여전히 사람으로 살게 할 수 없는 그 글귀를 지킨다면, 너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옛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꽉 막혔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두면서 오히려 진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나의 발자취를 찾는 데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나와 적이 되는 자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성경에 제한하고, 성경에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 대한 크나큰 모독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나의 앞에 올 수 있겠는가?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나의 행사와 나의 뜻, 그리고 진리가 아니라 글귀인데,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글귀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그들은 날마다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기도 하고, 마음대로 ‘적합한’ 구절을 한 단락 찾아 읽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며, 또한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도 한다. 그들은 어떻게 나와 합해야 하는지 모르고, 나와 적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저 ‘성경’만 읽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전혀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제한해 놓고, 한가할 때면 꺼내어 본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에서 나의 존재를 신앙하고, ‘나’와 ‘성경’을 동등하게 보며, ‘성경’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존재에 관심이 없고 나의 행사에 관심이 없지만, 각 성경 구절에는 아주 특별하게 관심을 가진다. 심지어 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내 자신이 하려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데, 그것은 그들이 글귀를 너무 중요하게 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내 말의 마디마다 성경 구절로 가늠하고 성경 구절로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나와 합하는 도가 아니고 진리와 합하는 도가 아니라, 성경의 글귀와 서로 부합되는 도이다. 그들은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기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이 아닌가?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구하지 않고, 율법의 모든 구절을 진지하게 대하다 못해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성경’의 구절에만 마음을 기울였을 뿐, 나의 뜻에는,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해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단지 성경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었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 구절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성경에 규정된 내용과 맞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설마 그들은 모두 성경 구절의 앞잡이가 아니란 말인가?

오늘날의 사람은 또 어떠한가? 사람은 모두 천국에 가기 위해, 은혜를 받기 위해 이미 와서 진리를 내놓은 그리스도를 인간 세상에서 몰아내려고 하였고, 성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도래를 전부 말살해 버리려고 하였으며, 성경이 영원히 존재하게 하기 위해 두 번째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였다. ……사람은 모두 글귀와 합하고 성경과 합하기를 추구하지만,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늘에 있는 나를 앙망하고, 하늘에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육신에서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내가 그야말로 너무나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의 글귀와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 오직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은 나의 눈에 비천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숭상하는 것은 죽은 글귀이고,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거액의 재산을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의 지배를 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비천함은 그야말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다. 나와 적이 되는 그 사람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그 사람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그 사람들, 나를 거역하는 그 사람들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여기서 내가 설명하려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영원히 무진장한 것이며,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고 만물의 근원이며, 하나님은 어떠한 피조물도 측량할 수 없는 분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일깨워 주겠다. 하나님을 또다시 책 속에 규정하지 말고 글귀 속에 규정하지 말며 하나님의 이전 말씀 속에 규정하지 말라. 하나님 역사의 유일한 특징은 오직 하나의 글자―신(新)에 있다. 그는 옛길을 가기 싫어하고 중복 사역을 하기 싫어하며, 사람이 그를 한 범위에 규정해 놓고 경배하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후기>에서 발췌

『하나님이 성경의 실질과 구조 그리고 그 속의 허점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거기에 적합하고 합당한 설명을 하여 성경의 본질을 복원하는 것이고, 성경에 대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견해가 있게 하는 것이며, 더는 성경을 숭배하지 말고 더는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즉 성경을 미신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고, 심지어 성경의 실제 배경과 그 속의 허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성경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인식이 있은 후에야 조금도 꺼림없이 그것을 방치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몇 편의 말씀을 하여 이르려는 목적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려는 진리는 바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와 말씀을 대체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만족함에 도달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부분 내용 소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