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2) 종교계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고 다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다고 여기는데, 이 말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경 전체가 다 하나님이 친히 발한 음성을 기록한 것은 결코 아니고, 단지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실제적인 기록일 뿐이다. 그 가운데 일부분은 선지자의 예언들을 기록한 것이고, 일부분은 역대에 하나님이 사용했던 사람들이 쓴 경력(역주: 체험)과 인식이다. 사람의 경력에는 자신들의 견해와 인식이 뒤섞여 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많은 책 가운데서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에 속하고, 어떤 것은 사람의 편견에 속하며, 어떤 것은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방식으로 터득한 것에 속한다. 물론 말의 대부분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비롯된 것이고 정확한 깨달음에 속하지만, 완전하고 정확한 진리의 발표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일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자신이 경력하여 있게 된 인식이나 혹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이 친히 지시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들을 일으켜 자신을 위해 예언을 하게 하였고, 각 나라, 각 족속 사람들에게 효유하게 하였으며, 자신이 하고자 했던 사역을 예언하게 했다. 여호와가 일으킨 그 사람들은 다 여호와가 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볼 수 있었고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에게서 계시를 받아 예언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들이 했던 그런 사역도 여호와의 음성을 발표한 것이고, 여호와의 예언 사역을 대체한 것이다. 여호와는 그 당시에 역사할 때, 단지 영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을 뿐 도성육신하지는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여호와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선지자들을 일으켜 자신의 사역을 하였고, 그들에게 묵시를 주어 이스라엘 각 나라, 각 족속 사람들에게 알려 주도록 하였다. 그 사람들의 사역은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여호와가 그들에게 효유한 말씀을 다 기록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제공해 주었다. 여호와가 그 사람들을 일으킨 것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곧, 이후에 할 사역이나 혹은 그 당시에 아직 하지 않은 사역을 예언하여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기묘함과 지혜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예언서들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다. 예언서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 즉 여호와로부터 이상(異象)을 보거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했던 말이거나 혹은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 책은 다 여호와가 사역을 마친 후에 사람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들은 여호와가 일으킨 선지자의 예언을 전혀 대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창세기>, <출애굽기>는 <이사야서>, <다니엘서>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언은 사역을 하기 전에 한 말이다. 예언 외의 다른 책들은 사역을 다 마친 후에 기록한 것인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것은 순전히 그 당시 이스라엘의 사역이다. 선지자들이 했던 말, 곧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 그들이 했던 말은 땅에서 행할 다른 사역을 예언한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그 선지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그 당시에 여호와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의 경력을 기록한 것에 속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지금의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만큼만 말씀을 했고, 성경에 있는 고만큼의 말들이 전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신구약 66권은 비록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사람이 치우치고 그릇된 방식으로 터득한 것이고, 사실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다 역사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의 어떤 것은 사람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떤 것은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울이 쓴 서신과 같은 것은 사람이 행한 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뭇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고 뭇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권면과 격려이지, 결코 성령이 한 말씀은 아니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을 할 수 없고, 게다가 바울은 선지자도 아니고 이상(異象)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는 그 당시의 에베소, 빌라델비아, 갈라디아 등 몇 곳의 교회들에 써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바울 서신은 다 바울이 그런 교회들에 써 보낸 편지인데, 성령이 묵시한 것이 아니고 성령이 직접 했던 말씀도 아니며, 그저 사역하는 기간에 뭇 교회에 대한 바울의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고, 또한 그 당시에 바울이 했던 많은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권유를 듣고 주 예수의 모든 도(道)를 준행하도록 한 것이다. 바울은 결코 오늘날의 교회이든, 이후의 교회이든 다 자신의 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이 했던 그런 말들이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바울은 단지 그 당시 교회의 정형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과 교통하고 그들을 권면하여 믿음을 분발시켰을 뿐이며, 단지 설교하거나 일깨워 주고 권면해 주었을 뿐이다. 바울은 자기의 부담에 결부시켜 말했는데, 그런 말로 그 사람들을 부축하였다. 바울은 그 당시 뭇 교회의 사도의 사역을 하였는데, 주 예수가 쓰는 일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고, 교회 사역을 담당해야 했으며, 형제자매들의 정형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던 것이다. 바울이 했던 말들이 무릇 사람에게 덕이 되거나 긍정적인 말이라면 모두 맞는 것이지만, 결코 성령의 말씀을 대표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만일 사람의 경력을 기록한 것과 사람의 서신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그릇된 방식으로 인식한 것이고, 크나큰 모독이다! 특히 바울이 뭇 교회에 보내 준 서신이다. 그것은 바울이 그 당시에 각 교회의 정황과 각 교회의 현실적인 상황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서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권유하여 주 예수에게서 은혜를 받도록 한 것이고, 당시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바울 본인의 부담이고 또한 성령이 그에게 더해 준 부담이다. 어차피 바울은 그 당시에 뭇 교회를 이끄는 사도였기에, 뭇 교회에 편지를 보내 권면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바울의 신분은 그저 사역하는 사도이고 보냄받은 사도일 뿐, 선지자도, 예언자도 아니기에, 그에게 있어 자신의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다. 바울이 했던 말은 성령의 말씀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단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도성육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과 예수의 신분은 같지 않다. 예수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신분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어떻게 예수와 동등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바울의 서신이나 바울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성령의 음성으로 여기고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한다면, 너무나 분별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좀 심각하게 말하면, 사람이 하는 것은 완전히 모독이 아닌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람의 말과 사람이 쓴 서신의 기록을 ‘성서’로 삼고 ‘천서(天書)’로 삼아 엎드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말해 보아라, 그러한데 바울이 교회에 써 보낸 편지에 자신의 생각이 뒤섞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울의 인의적인 것들이 뒤섞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울은 자신의 경력과 생명 정도에 따라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다. 마치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일종의 견해이고, 베드로가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가 또 다른 일종의 견해인 것과 같다. 도대체 어느 것이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그 누구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저 그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편지 한 통은 그들의 분량을 의미하고,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들의 공급과 부축을 의미한다. 또한 교회에 대한 그들의 부담을 의미하고, 사람이 사역하는 한 면만을 의미할 뿐, 절대 성령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네가 그의 서신이 성령의 말씀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그릇된 것이다. 그것은 모독에 해당된다! 바울의 서신과 신약의 다른 서신은 근대 영적 인물의 전기(傳記)에 해당하는데, 워치만 니의 책 또는 로렌스의 경력 등등, 이 사람들이 쓴 영적 전기와 함께 논할 수 있다. 다만 근대 인물들이 쓴 책은 성경 신약에 편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은 같은 것이고, 성령이 한 단계에서 사용하는 인물들이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신약 성경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족보가 기록되었는데, 첫머리에 예수를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다윗의 자손이고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며, 아래에 또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낳았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며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족보의 기록은 예수와 요셉을 억지로 엮어 놓았다. 족보 아래에는 예수가 강생한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또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라고 하였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족보에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족보는 예수를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요셉의 그 세대까지 42대 인물을 기록하였다. 그 뒤에 얼른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은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상하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족보에 기록된 것은 분명히 요셉 가문의 인물들이고, 분명히 요셉의 족보이다. 그러나 마태는 억지로 예수의 족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마태가 쓴 족보와 같은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가? 더욱이 황당한 논조이다! 그리하여 너는 그 책이 완전하게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오늘 너희 중에 누가 감히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이 한 말이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왜 에스라의 예언서와 옛 선지자들이 쓴 책마저도 다 삭제해 버렸는가?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왜 너희는 또 감히 제멋대로 선택하였는가? 너에게 성령 역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많은 이야기를 그들이 삭제하였는데, 네가 이전에 기록한 그런 책들이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면 왜 일부 책들은 삭제해 버렸는가?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면 다 남겨서 뭇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나눠 주어 보게 해야지 사람의 뜻을 뒤섞어 함부로 삭제하거나 선택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옳은 것이다. 바울과 요한, 그들의 경력에 자신의 깨달음이 섞여 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경력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개인적으로 경력하고 깨달은 것에서 왔다고 말할 뿐이다. 그들은 당시에 그들이 현실적으로 경력한 배경에 근거하여 인식한 것인데, 누가 감히 그런 것이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4복음서가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그들 네 사람이 당시에 예수가 한 사역에 대해 말한 것이 서로 다른가? 믿어지지 않으면 너희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아라.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내용도 다 다르고 각기 ‘특색’이 있다. ……너희가 4복음서를 잘 보아라. 예수가 한 일과 말씀에 대해 그들이 기록한 것을 좀 보아라. 그야말로 사람마다 다 다른데, 제각기 자신의 견해가 있다. 만일 책의 저자가 쓴 것이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같아야 하고 통일적이어야 하는데, 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이전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여러 서신을 쓰고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이 일부만 선택하여 성경에 넣었고 또 일부는 이미 소실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한 말이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는가? 왜 선택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가? 정말 성령의 말씀이라면, 그래 사람이 골라서 선택할 필요가 있겠는가? 왜 예수의 말씀과 사역이 4복음서에 서로 다르게 기록되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사실, 그 책은 단지 사람의 기록일 뿐,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친히 지도하여 만들어 낸 것은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성’경이라고 칭한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 책을 대하는 존칭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함께 연구하고 토론한 후에 같이 결정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 사도, 예언자들이 기록하고 후세 사람들이 수집하여 종합 편찬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 책을 아주 거룩한 고서라고 보며, 그 가운데는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심오한 비밀이 많이 있고, 후세 사람들이 풀어야 할 것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책을 더욱더 ‘천서’라고 여기게 되었다. 신약 성경 가운데는 4복음서 및 <계시록>을 더했는데, 그 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떠한 책을 대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그리하여 아무도 그 ‘천서’를 감히 해부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책이 너무도 ‘신성(神聖)’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