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알아 가야 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경영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최선을 다해 그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비록 자신의 본체는 감추어 왔지만, 계속 인류와 함께하면서 인류에게 사역하고 그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본질로 온 인류를 인도하고 있고, 그의 큰 능력과 지혜와 권병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역하고 있다. 그렇게 율법시대가 있었고, 은혜시대가 있었으며, 지금의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가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본체는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성품, 소유와 어떠함, 그리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조금도 남김없이 사람에게 나타내 사람이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류는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인류가 접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완전한 하나님 자신의 발현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냐?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위치에 서서 사역하더라도, 그는 그의 참된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과 말씀을 한다. 셋째 하늘의 높이에서든, 육신의 위치에서든, 심지어 보통 사람의 위치에서든,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든 하나님은 마음과 뜻을 다하고, 어떠한 거짓도, 숨김도 없다. 그는 사역하는 동안 말씀을 선포하고, 자신의 성품, 소유와 어떠함을 나타낸다. 조금도 남김없이 말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인류를 인도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지 감추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의도적으로 어느 누군가를 피한 적도 없고, 스스로를 숨긴 적도 없다. 도리어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공개되어 있고, 숨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마주한다. 또한 그의 사역은 모든 사람에게 행해진다. 그는 이런 사역들을 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고,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인도하며 공급하고 있다. 좋은 환경이든 열악한 환경이든, 각 시대와 각 단계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 역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다. 그의 생명이 쉼 없이 사람에게 공급되고 사람을 붙들어 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3단계 사역은 전체 경영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이 모두 3단계 사역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는 방식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이 사역하는 지혜도 모르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다양한 방식과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모른다. 3단계 사역은 인류 구원 사역을 오롯이 나타내므로 3단계 사역을 모르면 성령이 역사하는 다양한 방식과 원칙도 알 수 없다. 한 단계 사역에서 남겨진 규례만을 고수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규례에 국한하는 자들이자 막연한 신앙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은 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만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구원의 전 과정을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얻은 증거이자 하나님이 승리한 증거이며, 또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발현이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의 사역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 알 뿐이다. 그나마 알고 있는 그 한 단계도 사람의 관념 속에서 규례로 변질되어 하나님을 규정하기 쉽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체하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까지 가득 뒤섞어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 지혜와 사역의 원칙을 유한한 범위에 단단히 국한시킨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한 번 그리한 것은 영원히 그러할 것이며, 영세까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3단계 사역을 알고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정확하고 전면적으로 알 수 있으며, 최소한 하나님을 이스라엘인의 하나님이나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단계 사역으로만 하나님을 안다면, 그런 앎은 그야말로 백사장의 모래 한 알과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원로 종교가들이 왜 하나님을 무참히 십자가에 못 박았겠느냐? 하나님을 한 범주 안에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3단계 사역은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과 인류 구원의 실제 기록이지, 지어낸 것이 아니다. 너희가 정말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이 행한 3단계 사역을 알아야 하며, 한 단계도 빠트려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식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앎은 사람이 스스로 지어내거나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며, 성령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푼 결과는 더더욱 아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얻은 앎이자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을 체험한 후에야 생겨나는, 하나님에 대한 앎이다. 이런 앎은 아무렇게나 얻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완전히 개인의 체험과 관계되는 일이다. 이 3단계 사역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지만 이 구원 사역에는 또 여러 가지 사역 방식과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는 방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발견하기 가장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것이다. 시대가 나뉘고, 사역이 달라지고, 사역의 장소와 대상이 바뀌는 등등은 모두 3단계 사역에 포함된다. 특히 성령 역사의 방식 차이,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 이름, 신분 또는 다른 변화들은 모두 3단계 사역 안에 있다. 한 단계의 사역은 그저 한 부분만 대변하고 한 범주에만 국한되기에 시대의 구분은 물론, 사역의 전환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그 밖의 다른 부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3단계 사역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전체 사역이다. 사람은 구원 사역에서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알아 간다는 것은 근거 없는 헛소리이자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노아 이야기의 기록 가운데 너희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을 보았겠지? 인류의 패괴와 더러움과 포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점에 달하면 그는 더 이상 인내하지 않고 새로운 경영과 계획을 시작하고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여 그의 행사와 다른 측면의 성품을 나타낸다. 그의 ‘행함’은 그의 거스를 수 없음을 나타내기 위함도 아니고, 그에게 권병과 진노가 가득함을 나타내기 위함도 아니며, 그가 인류를 멸할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성품과 그의 거룩한 본질이 더 이상 패괴된 인류가 그의 앞에서 사는 것을, 그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을 용납하거나 인내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온 인류가 그와 적대적이고 온 땅에 그가 구원할 만한 대상이 하나도 없을 때, 그는 이런 인류를 더 이상 인내하지 않고 주저 없이 멸할 계획을 시행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자 하나님의 권세하에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이 응당 감내해야 하는 결과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그의 계획을 완성하고, 그가 구원하고자 하는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를 아예 따르지 않거나 본래 그와 적대적이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고 그에게 대항하는지, 혹은 인류가 어떻게 그를 비방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는 오로지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경륜 속에서 그가 구원할 대상이 그에 의해 온전케 되었는지, 그가 흡족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끔 소소한 ‘징계’를 내려 그의 진노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해일, 지진, 화산 폭발 등과 같은 징계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를 잘 따르고 곧 구원받을 사람을 힘써 보살핀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가 온전케 하려는 인류에 대해 엄청난 인내와 관용을 베풀고, 최대한도로 기다린다. 또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를 따르지 않고 그와 적대적인 사탄의 부류를 극도로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는 사탄의 부류가 그를 따르는지, 그를 경배할 수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사탄의 부류에 대해 인내하는 동시에 증오한다. 또한 사탄 부류의 결말을 정하는 동시에 그의 경륜의 시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원래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는, 하나님이 보기에 매우 좋고,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한 인류였지만, 하나님을 거역한 후 홍수로 멸망했다. 이런 한 인류가 순식간에 소멸되었을 때 하나님은 마음 아프지 않았을까? 당연히 마음이 아팠다! 그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어디서 나타났느냐? 성경에는 어떻게 기술되어 있느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 간단한 말씀 속에 하나님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그는 그때 세상을 멸한 것이 무척 마음 아팠던 것이다.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참으로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홍수로 세상을 멸한 뒤 원래 생기로 충만했던 땅이 어떻게 변해 버렸을까? 인류로 가득했던 땅이 어떻게 변해 버렸을까?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생물도 없이 도처에 물만 있는데, 물 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그런 광경이 과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본의였을까? 분명 아니다! 하나님의 본의는 곳곳에 활기가 넘치고, 그가 창조한 인류가 그를 경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노아 한 사람만이 그를 경배하고 그의 부름을 받아 그가 준 사명을 완수하는 것, 이건 적어도 하나님의 본의가 아니었다. 인류가 사라지자 하나님이 보게 된 것은 그가 애초에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 정반대의 광경이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품을 나타냄과 동시에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면서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어떤 결정이었을까? 구름 속의 무지개[주: 우리 눈에 보이는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에게 하나님은 일찍이 홍수로 세상을 멸했었던 적이 있다고 알려 주며,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했는지 영원히 기억하게 했다.

……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성품의 어떤 부분을 알아야 할까? 하나님이 인류를 증오한 것은 인류가 하나님을 적대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근심과 긍휼은 시종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인류를 멸했지만 그의 이 마음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인류가 심히 패괴되어 하나님을 극도로 거역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과 본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원칙대로 인류를 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로 인해 여전히 인류를 불쌍히 여긴다. 심지어 인류가 계속 생존해 가게 하려고 각종 방식으로 인류를 되돌리려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과 대립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부르고 깨우쳐 주고 공급하고 도움을 주고 관용을 베풀어도,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감사히 여기지 않으며 등을 돌려 버린다. 하나님은 상심했을 때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최대한도의 관용을 베풀면서 사람이 돌이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그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겠다고 계획하면서부터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기한이 있고 과정이 있었다. 이 과정은 인류가 돌이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최후의 기회였다. 그러니 인류를 멸하기 전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했을까? 하나님은 대대적으로 깨우쳐 주고 권면하는 사역을 했다. 하나님은 아무리 상심하고 괴로워도 인류를 끊임없이 염려하고 보살피고 크게 긍휼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우리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함을 분명히 보았다.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이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거짓이나 가식, 기만, 불순물이 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지금껏 그 어떤 거짓된 수단이나 허상으로 인류에게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보인 적이 없다. 또한 하나님은 지금껏 거짓 증거로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보여 자신의 사랑스러움과 거룩함을 과시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런 측면들의 성품은 사람이 사랑할 만하지 않느냐? 사람이 경배할 만하지 않느냐? 사람이 귀하게 여길 만하지 않느냐? 여기까지 말을 했는데 너희에게 물어보겠다. 이런 말을 듣고 난 후에도 너희는 하나님의 위대함이 속 빈 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이 빈말에 불과하느냐?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지고지상함, 위대함, 거룩함, 관용, 사랑 등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본질의 면면은 매번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구체화되었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구현되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서 구체화되었고, 모든 사람들에게서 구현되었다. 네가 일찍이 그 느낌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세심히 보살피고 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그의 지혜와 다양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고 모든 사람의 영을 일깨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은 불로 소돔 성을 멸망시켰다. 이 방식은 하나님이 인류나 물체를 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불을 이용해 인류를 멸한 것은 그 육체뿐 아니라 영, 혼, 육 전부를 멸하여 소돔 성 사람들이 물질세계와 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진노를 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런 발현은 하나님의 진노 본질의 일면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할 때 더 이상 그 어떤 긍휼과 자비,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어떤 이유도 하나님이 계속 인내하도록 설득할 수 없고, 다시 긍휼과 관용을 베풀도록 설득할 수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 없이 그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고 또한 깔끔하고 마음에 들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는 방식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걱정하고 사랑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볼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없는데, 이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오직 긍휼, 관용, 사랑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멸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인류를 멸하는 그의 노와 위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피조물도 상상할 수 없고, 피조물이 아닌 어떤 것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으며, 사칭이나 모방은 더욱 불가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하나님 성품을 인류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러한 성품을 갖추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런 성품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공의로운 성품을 갖춘 것은 하나님이 사악함, 암흑, 패역, 인류를 패괴시키고 집어삼키는 사탄의 온갖 악행을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고 또 하나님의 거룩하고 무결한 본질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이든 비피조물이든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하나님이 긍휼히 여겼던 자일지라도, 설령 하나님이 택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의 원칙을 거슬렀다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주저하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행사에는 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한 가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장기간의 감찰과 생각을 거치며, 때가 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결정이나 판단도 단호하게 내리지 않는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는 그 결정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성안에는 의인이 40명, 30명, 20명은 물론이고 10명조차도 없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안의 의인은 롯 한 명뿐이었다. 하나님은 성에서 일어나는 일과 성안의 상황을 감찰하여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결정은 잘못될 리가 없었다. 하나님의 전능에 비하면 사람은 한없이 무감각하고, 우매하고 무지하며, 근시안적인 존재라는 것이 두드러진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현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 숫자는 지극히 단순하며 어떤 문제도 설명하지 않지만,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의인이 50명 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관용으로 말미암은 것 아니더냐? 너희는 하나님의 이 부분 성품을 보았느냐? 더 나아가 의인이 10명밖에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의인 10명을 생각하여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관용과 사랑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그 의인들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고, 그들을 염려하여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용이다. 우리가 마지막에 본 결과는 무엇이었느냐? 아브라함이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멸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였다. 그 후, 아브라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성에는 그가 말한 10명의 의인이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로 뜻을 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너희는 여기서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어떤 결정을 하였느냐? 그 성에 의인이 10명도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성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며, 반드시 그 성을 멸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는 하나님의 노 아니겠느냐? 그 ‘노’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변하지 않느냐? 그 성품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의 발현 아니겠느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본질의 발현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의인이 10명이 안 될 경우, 반드시 그 성을 멸할 것이며, 또한 그 성의 사람들을 엄하게 벌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너무나 더럽고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는 그가 노할 때 사람에게 그의 거스를 수 없는 면을 드러낸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반면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끝없이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 노는 어느 정도까지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분출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노가 사라진다. 즉, 누구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길 원하든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된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하나님이 성 하나를 멸하려고 한 일이 사람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죄악으로 가득한 그 성은 하나님이 보기에 더 이상 존재할 수도, 남아 있을 수도 없으니 그 성을 멸하는 것이 이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 전후에 발생한 일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볼 수 있다.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지만,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고, 나아가 하나님이 시종일관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두 가지 측면이다. 즉,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여호와는 인류를 창조한 후,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기까지 어떤 지시나 인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부터 노아의 후손이자 아담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을 본격적으로 인도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역과 말씀으로 이스라엘 전역 모든 백성들의 삶을 이끌어 주었다. 나아가 여호와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의 생명을 갖추게 하고, 사람을 흙에서 소생시켜 창조된 인류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불태우고 저주할 수 있고 그의 채찍으로 인류를 다스릴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낮과 밤의 시간에 맞춰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사역함으로써 인류의 삶을 인도해 줄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그저 피조물로 하여금 사람은 본래 여호와가 땅에서 취한 흙에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여호와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먼저 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이유는 이스라엘 외의 나라들과 족속들(사실은 이스라엘 외의 나라들과 족속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과 족속들이다. 그들의 조상 역시 아담과 하와이다.)이 이스라엘을 통해 여호와의 복음을 받게 함으로써 온 우주 아래의 모든 피조물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높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율법시대의 사역> 중에서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수많은 계명을 정했고 모세를 통해 그를 따라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포했다. 그 계명은 여호와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것으로, 애굽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 계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하는 여호와의 요구였다. 안식일을 지키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우상을 숭배하는지 등을 원칙으로 죄와 의로움을 판단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임했고, 어떤 이는 돌에 맞아 죽었으며, 어떤 이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다. 그런 것들은 모두 계명을 지켰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일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돌에 맞아 죽었고,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불이 임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인정하는 바였다. 여호와가 계명과 율법을 정한 것은 사람의 삶을 인도하는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말에 순종하며, 그를 거역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율법으로 갓 난 인류를 통제한 것은 앞으로 행할 사역의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행한 사역을 근거로 첫 시대를 율법시대라 부르는 것이다. 여호와는 수많은 말씀과 사역을 했지만, 사람을 긍정적으로 인도하기만 했다. 즉, 그 무지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고, 생활할 줄 알며, 여호와의 도를 깨닫도록 이끌어 준 것이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 대부분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도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준행하게 한 것이었다. 이는 패괴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므로 성품의 변화라든가 생명의 성장 등을 논할 수는 없다. 그는 다만 율법을 통해 사람을 단속하고 통제했을 뿐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 여호와는 단지 성전에 거하는 하나님이자 하늘의 하나님이었으며, 구름 기둥이자 불기둥이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하라고 한 것은 오늘날의 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과 계명뿐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규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여호와가 행한 사역이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이 지음 받은 후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해 사람에게 그런 것을 많이 베풀어 주고 친히 알려 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사람이 땅에 살면서 갖춰야 할 것들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었으며, 그것을 통해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인류를 그들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보다 낫게 하였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베풀어 준 것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은 단지 사람을 인도해 주고,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주를 인정하게 한 것뿐이다. 정복하는 것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라 그저 인도해 준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행한 사역의 전부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행한 사역의 배경이자 실상이며 본질이다. 또한 이는 모든 사람을 여호와의 수중에서 다스리는 6천 년 경륜의 시작 사역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6천 년 경륜에 더 많은 사역이 생겨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율법시대의 사역> 중에서

예수의 사역은 그 시대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이뤄졌다. 그는 그의 사역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해 겸손, 인내, 사랑, 경건함, 포용, 긍휼 그리고 자비의 성품을 가져왔으며,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와 축복, 그리고 온갖 누릴 것들을 베풀어 주었다. 사람이 누리는 모든 것은 평안과 희락이었고,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으며, 그의 긍휼과 자비였다. 당시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함, 영적인 위로, 예수에 대한 의존감 등 온갖 누릴 것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런 것은 다 그들이 살던 시대와 관련이 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있었다.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행하고 그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풍성한 은혜와 한없는 포용, 인내, 나아가 사람의 죄를 충분히 사해 줄 수 있는 속죄 제물이 있어야 했다. 은혜시대의 사람은 죄를 사해 주는 속죄 제물, 즉 예수만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포용한다는 것만 알았으며, 그들이 본 것 또한 예수의 긍휼과 자비뿐이었다. 이는 다 그들이 은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속되기 전에 반드시 예수가 베풀어 주는 수많은 은혜를 누려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은혜를 누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예수가 베풀어 준 포용과 인내를 누림으로써 속죄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인해 사람은 죄 사함 받을 자격을 얻었고, 그가 베풀어 준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예수가 ‘의인을 구속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러 온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성육신한 예수가 심판과 저주의 성품을 지니고 와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영원히 구속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영원히 죄에 속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6천 년 경륜은 율법시대에서 정지되고, 그 상태로 6천 년 동안 지속되면서 사람의 죄는 갈수록 많아지고 깊어졌을 것이고 따라서 인류를 창조한 의의도 사라졌을 것이다. 사람은 율법하에서만 여호와를 섬기게 되지만 인류의 죄는 최초로 지음 받은 인류의 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줄수록, 사람에게 충만한 긍휼과 자비를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예수에게 구원받을 자격이 더 생기고, 예수가 비싼 값을 들여 사 온 길 잃은 양이라 일컬어지게 된다. 반면 사탄은 그 사역에 끼어들 수 없다. 예수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아기를 대하듯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했기에, 노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진노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고 그들의 죄를 포용해 주었고 나아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그의 마음으로 감화시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의 포용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속시대 사역의 실상> 중에서

예수는 사람이 계속 생존하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더 잘 생존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을 죄에서 구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계속 타락하여 음부나 지옥에서 살지 않게 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음부, 지옥에서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말세가 도래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멸절하고 인류를 완전히 멸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패역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으로는 시대를 끝낼 수 없고, 6천 년 경륜을 완성할 수도 없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특별한 성품이 있고,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그 자신이 나타내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그의 이름과 사역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에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사역을 했고, 땅에서 첫 단계의 사역을 전개했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으며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그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것은 땅에서 하나님이 사역할 근거지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 근거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 외부로 사역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은 점차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여호와가 천지 만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사역한 첫 성지이다. 하나님이 땅에서 처음으로 사역한 곳은 이스라엘 전역이었고, 그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었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은 바로 은혜와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그리고 관용이었다.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이유는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였다. 그는 자신의 긍휼과 자비에 따라 반드시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며, 그것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인류를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했고, 그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이 모든 사람과 함께했다. 사람은 오직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누리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극히 크고 많은 은혜를 받고, 그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다시 말해,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구약 성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역을 행했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의 사역은 끝이 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했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얻으며, 마지막에는 시대를 끝낸다. 각 시대와 각 단계의 사역에서 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시대를 끝내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으로 나타나며, 온갖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이라야 시대를 끝낼 수 있다. 말세가 되었으니 만물은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며,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나뉠 것이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는 모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결말은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서만 오롯이 드러나고, 사람은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만 본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은 악한 자는 악한 자끼리, 선한 자는 선한 자끼리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형벌과 심판을 통해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상선벌악하며, 그리하여 만인이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게 한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이 극도로 패괴되었고 사람의 패역은 너무나 심해서,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 있다. 이로써 모든 불의한 자들을 강하게 징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품은 모두 시대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모든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아무 의미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는 말세에도 여전히 끝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며 사랑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 없이 사랑하기만 하면서 관용을 베풀고 인내하고 죄를 사해 주며,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언제나 용서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지 않는다면, 전체 경영은 언제 마무리할 수 있겠느냐? 그런 성품으로 언제 사람들을 인류에게 적합한 종착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사람들을 언제나 사랑하기만 하는 재판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이 무슨 죄를 저지르든 사랑해 주고, 그 누구든 아껴 주고 감싸 준다면, 공정한 판결은 언제 할 수 있겠느냐? 말세에는 오직 공의로운 심판만이 인류를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있고, 사람을 더 새로운 경지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판과 형벌의 공의 성품으로 전체 시대를 끝내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지금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정죄하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 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든, 그것은 모두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옛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함으로써 즉,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형벌이나 심판, 저주가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려 감동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원은 거래적인 구원일 뿐이다. 하나님이 백배로 주는 전제하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빛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모든 긍휼과 자비를 다 베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줌으로써 전 인류와 맞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너희를 구원함에 있어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마지막 때이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닌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한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너희는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에게 임하는 것은 그저 무정해 보이는 말들뿐이며, 나의 분노가 아무리 클지라도 너희가 받는 것은 여전히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도,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지금은 내가 사람을 만드는 사역을 시작하는 단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결말을 확정할 때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위, 그리고 그가 따라온 과정과 원래 지니고 있는 속성, 혹은 그의 최종적인 태도를 하나하나 나의 기록부에 적어 놓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내 손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모두 나의 배정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는 것이고, 그들 스스로 저지른 갖가지 악행으로 인해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버리는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 악인들이 받는 징벌 또한 내 공의로운 성품의 증거이자, 나아가 내 진노의 증거가 된다. 재난이 닥칠 때, 나를 대적한 모든 자는 기근에 빠지고 전염병에 걸려 슬피 울 것이며, 오랜 세월 나를 따랐지만 온갖 악을 저지른 자들 역시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천만년 이래 보기 드문 재난 속에 떨어져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르면서 나에게 일편단심 충성한 사람들은 오히려 기쁘게 손뼉 치며 나의 큰 능력을 찬양할 것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한 마음으로 내가 인간 세상에 한 번도 베푼 적 없는 즐거움 속에서 살 것이다. 나는 사람의 선행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의 악행을 극도로 증오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오면서 나와 한마음 한뜻인 사람들을 얻기를 기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와 한마음 한뜻이 아니었던 자들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속으로 미워했다. 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걸 보며 통쾌해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마침내 나의 날이 왔으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사역은 사람을 징벌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종착지를 안배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모든 사람이 나의 행사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행한 모든 것이 옳고,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내 성품의 발현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대자연이 한 것은 더욱 아니라 만물 가운데 있는 모든 생령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내’가 한 것이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고 재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구도 다시는 아름다운 해와 달과 푸르른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인류는 음산하고 차디찬 암흑의 밤과 저항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원(원문: 救贖)이자 희망이며, 나아가 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의지처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오직 멸망의 재앙을 당하고 온갖 유령에게 짓밟힐 것이다. 나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사역을 행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사람들이 조금의 선행으로 나에게 보답하는 것뿐이다. 나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을지라도 나는 인간 세상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다음 단계에 전개할 사역을 행할 것이다.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바쁘게 일한 결과가 이미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선행이다. 요컨대, 나는 너희가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나를 만족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엄습할 재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재난은 내가 일으키며 또 당연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내 앞에서 선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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