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1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의 실제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전 인류와 관련되는 사역이고, 또한 전체 시대를 대표하는 사역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성령 역사의 모든 동태와 추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역사한 후에 이어 나가는 것이지, 시대를 이끄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모든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사람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지 경영 사역에는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경영 사역 중의 항목이고,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본분이므로 경영 사역과는 무관하다. 신분과 행하는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다 성령의 역사일지라도 하나님 자신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는 언제나 뚜렷한 실질적인 구별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도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개척하고 전 인류를 인도하며, 심오한 비밀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의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준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단지 일부 간단한 실행이나 인식일 뿐,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도록 인도할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의 심오한 비밀을 밝힐 수도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실질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도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새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이고, 그의 사역을 이어서 하는 사람은 그에게 쓰임받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육신에 있는 하나님의 직분 내에 있는 사역이니 결코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낡은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새로운 시대도 가져올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당연히 해야 하는, 즉 사람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사역을 조금 하는 것일 뿐, 결코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 하나님이 와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해야지 그 밖에 누구도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물론 내가 한 말은 모두 도성육신의 사역에 대해 말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도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실질상에서 전혀 다르다. 도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의 시작에서 하나님의 영이 친히 말씀하여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의 말씀이 끝난 후, 바로 하나님의 신성 사역이 끝난 후에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생명 경력에 진입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에서 발췌

『……선지자들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말을 하고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본분을 하는 것이고, 하나의 피조물로서 자기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어 말씀하고 역사하는 것은 직분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의 외형도 피조물의 외형이지만, 그가 역사하는 것은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하는 것이다. 본분은 피조물에 대해 말한 것이고, 직분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결코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없다.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단지 본분을 하는 것일 뿐이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경영을 하는 것이고 직분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많은 사도들이 성령께 쓰임받고 또 많은 선지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이 사역한 것과 말한 것은 단지 피조물의 본분을 한 것일 뿐이다. 비록 그들의 예언이 도성육신 하나님이 하신 생명의 말씀보다 높고, 심지어 그들의 인성이 도성육신 하나님보다 훨씬 비범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본분을 하는 것이지 직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기능에 대해 말한 것으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직분은 경영에 관련되는 일인데, 이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다. 도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든지 혹은 역사하든지 혹은 표적을 나타내든지 어쨌든 그가 하는 것은 경영 사역 중의 큰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의 어느 한 단계 경영 사역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경영이 없다면, 즉 도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이 없어진다면 피조물의 본분도 없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직분을 하는 것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은 자기의 직책을 이행하는 것이고, 조물주의 요구를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므로 직분을 하는 것이라고는 아예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 즉 영에 대해 말하면 경영을 하는 것이고, 도성육신 되어 피조물의 외형이 있게 된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 직분을 하는 것이다. 그가 무슨 사역을 하든지 다 직분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그의 경영 범위 내에서, 그의 인도하에서만 자기의 능력을 다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며, 또한 새 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고, 아무도 한 적이 없었던 사역을 한 것이다. 그가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였는데, 대표한 것은 여호와이고 대표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윗이 무엇이라고 칭함받았든지 그들은 단지 피조물의 신분을 대표하였고, 예수나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이 아무리 많고, 행한 이적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영을 대표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거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사역한 것이고, 예수나 여호와가 전개한 시대 내에서 사역한 것이지 그 외의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요한은 시작의 사역만 하였으며, 더 많은 새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것이다. 요한도 새로운 사역을 하였지만 결코 새 시대를 개척한 것은 아니다. ……요한도 비록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였고 천국의 복음을 전한 자이지만, 그의 사역은 심화되지 않았고 시작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였고 낡은 시대도 끝마쳤지만 구약 율법도 완전케 하였는데,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하였다. 또한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러 왔기에 그 단계 사역을 한 것이다. 요한, 그는 길만 닦아 놓았을 뿐이다. 비록 그가 한 사역도 아주 크고 한 말도 아주 많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에게 하나의 새로운 시작만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사람은 그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전혀 얻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은 큰 선지자(엘리야)이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해 장소를 개척하고 택한 사람을 예비하였는데,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봉이었다. 이런 것은 정상 사람의 외형으로는 전혀 분간할 수 없다. 더더구나 요한이 한 사역도 상당히 크고, 또한 요한은 성령이 약속한 자이며, 그가 한 사역은 성령이 수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그들이 한 사역에서 각자의 신분을 분별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외형으로 사람의 실질을 식별할 수 없고, 또 도대체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를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한이 한 사역과 예수가 한 사역은 다르고 사역 성질도 다르다. 마땅히 이런 것으로부터 그가 도대체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예수는 시작, 계속, 마침, 성취의 이 몇 단계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시작만 하였다.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에 관해 복음을 전하였고, 후에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어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을 완성하였다. 그도 역시 각처에서 사람에게 전도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였다. 그것은 요한과 같지만, 다른 것은 그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여 사람에게 은혜시대를 가져다준 것이다. 그는 은혜시대에 사람이 실행해야 할 것과 가야 할 길을 모두 그의 입으로 말하고, 마지막에는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다. 요한은 오히려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였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사람이 하는 사역은 범위가 있고 국한적인 것이다. 사람은 어떤 일정한 단계의 사역만 할 수 있을 뿐, 결코 그 시대의 모든 사역은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한 가지 규례로 이끌어 들어가게 된다. 사람이 경력하는 것은 모두 범위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사역은 어느 일정한 시기 또는 일정한 단계에만 적용될 뿐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결코 하나님의 사역과 서로 비교될 수 없다. 사람이 실행하는 길과 깨달은 진리는 모두 어느 한 범위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사람이 가는 길을 완전히 성령의 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령께 깨우침만 얻을 수 있을 뿐 완전히 성령으로 충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력할 수 있는 일은 다 정상 인성의 범위 내에 있으므로 정상 인성의 두뇌 사유, 이 범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무릇 실제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이 범위 내에서 경력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하나님은 한 시기에 여러 항목의 서로 다른 역사를 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몇 가지로 이끌 수 있기에 사람에게는 늘 새로운 진입이 있고, 늘 새로운 변화가 있게 된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너는 그가 역사하는 법칙을 알 수 없다. 또 그래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규례에 빠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일은 늘 사람의 관념을 비켜 가고, 또한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고 있다. 그를 진심으로 따르고 추구하는 사람이라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자유로운 방식에서 살 수 있으며, 어떤 규례의 통제도 받지 않고 어떤 종교적 관념의 제한도 받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사역하면서 자신의 경력과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에 따라 사람에게 요구한다. 이런 요구 기준은 어느 한 범위에만 제한되고 실행하는 방법도 매우 유한하여 따르는 사람마저도 부지중에 유한한 범위에서 살게 되고, 그 시간이 오래되면 규례와 의식이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이든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이든 다 성령의 역사이다. ……하나님 자신의 역사는 본래부터 성령의 역사이기에 도성육신한 하나님의 역사도 성령의 역사이다.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 역시 성령의 역사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조금도 틀림없는 성령의 완전한 발표이다. 그러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에게 속하는 것들이 많이 뒤섞여 있으므로 성령의 직접적인 발표가 아니고, 완전한 발표는 더더욱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所是)이고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 즉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전 인류를 이끌어 가는 사역을 발표하는데, 사람의 세부적인 경력과는 관련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경영과 관련된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경력이고,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시이다. 이 소시는 바로 하나님의 원래 성품이고,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경력은 하나님이 소시를 발표한 기초에서 있게 된 깨달음과 인식이다. 그런 깨달음과 인식은 모두 사람의 소시로 불린다.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이 경력한 것이고, 이미 본 것이며, 사람 자신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의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은 사람이 교통해 낼 수 있다. 도성육신한 하나님의 육신이 하는 말씀은 영의 직접적인 발표인데, 발표하는 것은 영이 이미 했던 사역이다. 육신이 경력하지 않았고 보지도 못하였지만 발표하는 것은 여전히 그의 소시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실질은 영이고 발표하는 것은 영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설사 육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영이 이미 했던 사역이다. 도성육신 된 후에, 육신에서의 발표를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는 사역을 보게 한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에게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도록 하는 것이고, 사람을 이끌어 진리를 깨닫게 하고 경력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것은 부축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인류를 위해 새로운 출로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사람을 위해 사람이 모르는 것을 밝혀 주어 그의 성품을 인식하게 한다. 그가 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사람의 사역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이 경력한 요소가 많고,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소시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도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그의 소시는 결코 사람의 소시와 같지 않다. 사람의 소시는 사람의 경력과 사람의 생애(원문: 身世)(사람이 일생에서 어떤 것을 경력했는지, 어떤 불행을 겪었는지, 또는 어떤 처세 철학을 갖게 되었는지)를 대표하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발표하는 소시도 서로 다르다. 네가 사회를 경력한 적이 있는지, 가정에서 네가 도대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경력했는지는 모두 네가 표현하는 것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성육신 역사에서 너는 그에게 도대체 사회 이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금 보듯 하여 각 부류 사람의 여러 가지 행실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사람의 패괴 성정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 ‘세상 사람’ 가운데서 생활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소시이다. 그는 비록 세상을 접하지 않았지만 갖가지 처세의 조목들을 알고 있다. 이는 그가 사람의 본성을 이미 다 측량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오늘이나 지난날의 것을 다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과는 전혀 다른 지혜와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기묘가 담겨 있다. 이것이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공개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그가 발표한 것은 결코 비범한 사람의 소시가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소시이다. 그는 결코 열국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오히려 천하의 일을 알고 있다. 그가 접촉하는 것은 지식이 없고 식견이 없는 일부 ‘유인원’이지만 오히려 지식보다 높고 위인보다 높은 말씀(원문: 言論)을 발표해 낸다. 또 인성이 전혀 없고, 인성의 상식과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마비된 한 무리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라고 요구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비천한 인성도 드러내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소시인데, 혈기에 속한 어느 사람보다도 높은 그의 소시이다. 그는 복잡하고 자질구레하고 추한 사회생활을 부질없이 경력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고,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다. 추한 사회생활은 결코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될 수 없다. 그의 역사와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드러내는 것일 뿐, 결코 사람에게 처세의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함에 있어 사회를 조사할 필요도, 사람의 가정을 조사할 필요도 없다. 그가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육신이 경력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일찍이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하여 비로소 사람의 불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오직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혈기에 속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역사를 놓고 말해도, 사람은 그가 도대체 어느 부류의 사람에 속하는지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의 역사에 따라 그를 피조된 사람 가운데 소속시킬 수 없고, 그의 소시로도 그는 피조된 사람 가운데 소속될 수 없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비인류로 분류했다. 그러나 또 어느 부류에 넣을지 몰라 어쩔 수 없이 그를 ‘하나님’ 류에 분류시켰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도 전혀 이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육신의 경력을 대표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자신의 경력을 대표하는데, 저마다의 경력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직접 발표할 수 있으나 사람은 진리를 경력한 후에야 거기에 상응하는 경력을 발표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역사할 때 규례가 없고 시간과 지리적인 제한도 받지 않기에 언제 어디서나 그의 소시를 발표할 수 있으며, 그는 자유롭게 역사한다. 사람은 사역할 때 조건이 있고 배경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진리에 대한 경력도 발표하지 못한다. 하나님 자신의 역사인지, 사람의 사역인지는 대조해 보기만 하면, 너는 사람의 사역과 하나님 역사의 구별점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역사는 없고 사람의 사역만 있다면, 너는 사람이 고차원적으로 말하는 것에 누구도 이를 수 없음을 알게 되고, 그가 말하는 어조, 일처리하는 원칙, 진중하고 노련하게 사역하는 것에 누구도 도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너희는 인성 품격이 높은 그 사람들에게 탄복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서 그에게 대단히 높은 인성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인성은 아주 보통이어서 역사할 때는 정상적이고도 실제적이지만 보통 사람은 또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에게는 경외심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의 사역에서는 아마 사람이 경력하는 것이 아주 높고, 상상하고 추리하는 것이 매우 높고, 인성이 아주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을 탄복하게만 할 뿐이지, 경외하거나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사역 능력이 있고 경력한 것이 매우 깊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탄복하지만, 어쨌거나 경외하지는 않고 그저 탄복하고 부러워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탄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할 수 없고 사람이 측량할 수도 없으며 새롭고 기묘하다고 느낀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처음으로 그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신묘막측’하고, 지혜롭고도 기묘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였고, 그가 하는 사역의 심오한 비밀은 사람의 사유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하였다.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의 사유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고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그의 요구에 달하고 그의 마음을 흡족케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 그를 초월할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 본인마저도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지만, 그는 오히려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을 더 새롭고 더 아름다운 하늘과 땅으로 이끌어 들어갔다. 그제야 인류는 새로운 진전이 있게 되었고, 더 새로운 시작이 있게 되었다. 사람에게 생기는 것은 그에 대한 탄복이 아니다. 또한 탄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가장 깊이 체험하게 되는 것은 경외이고 사랑이다. 하나님이 확실히 기묘하다고 느끼고,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해낼 수 없는 것이고, 그의 말씀은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데, 그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에게는 늘 말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다. 더 깊이 경력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 특별히 사랑하는데, 언제나 그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가 하는 사역이 너무 지혜롭고 기묘하여 사람들에게 무한한 힘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고 가끔씩 추대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깊이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한 사람은 또 그의 위엄은 범접할 수 없다고 느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만약 사람이 사역한다면 너무나 유한하여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만 이르게 할 수 있을 뿐, 영원한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는 없다. 인간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사람의 앞날과 이후의 귀숙은 더더욱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르다. 그는 사람을 창조한 만큼 사람을 이끌고, 사람을 구원하는 만큼 철저히 구원하여 완전히 얻으며, 사람을 인도하는 만큼 적당한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만큼 사람의 운명과 앞날을 책임진다. 이것이야말로 조물주가 하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