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은혜시대 교회 생활과 하나님나라시대 교회 생활의 차이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실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셋째 하늘로 돌아갈 때, 온 인류를 구속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땅에는 예수가 졌던 십자가, 그의 몸에 감싸졌던 세마포, 그가 썼던 가시 면류관, 그가 입었던 자색 옷(유대인이 그를 희롱하며 사용했던 물건들)만 남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역은 한바탕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잠잠해졌고, 그 후 예수의 제자들은 곳곳의 교회에서 양육하고 목양하며 그의 사역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역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게 했고, 또 세례받게 했다. 사도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내막과 실제 상황을 전하여 사람들이 절로 ‘예수’ 앞에 엎드려 죄를 자복하게 했으며, 또 곳곳에서 예수의 말씀을 전했다. 이때부터 은혜시대의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6> 중에서

예전에는 각 지역에서 특별 예배를 하거나 대예배를 하면, 한 부분의 실행 길만 강조했다. 그런 실행은 모두 은혜시대에 실행해야 했던 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별로 깊은 관계가 없다. 은혜시대의 이상은 기껏해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뿐, 그 외에 더 큰 이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한 사역밖에 없었으므로 은혜시대에는 사람에게 알려 줄 이상이 더는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람에게는 예수의 자비와 긍휼을 아는 것 외에 단순하고도 초라한 실행만 조금 있었을 뿐이다. 이는 오늘날과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떤 모임을 가져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말할 수 없었고, 사람이 진입해야 할 가장 적합한 실행의 길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포용과 인내를 바탕으로 단순한 세부 내용들만 조금 더해졌을 뿐, 그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은 동일한 시대에 더 새로운 사역을 전혀 행하지 않았고, 사람에 대한 요구 역시 포용하고 인내하거나 십자가를 지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실행 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보다 더 높은 이상이 더는 없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정상적인 영 생활이란 생생하고 활기찬 영 생활을 하는 것으로서 기도와 찬양, 교회 생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등등의 방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즉, 방식이 아니라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거나 묵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성과가 있든 없든, 참된 인식이 있든 없든, 겉으로 보이는 과정만 중시할 뿐, 그 성과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종교 의식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 교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나라의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와 찬양,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은 모두 규례를 지키는 것에 속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혹은 주변 분위기에 따라서 하는 것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찬송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그들이 실행하는 것은 종교적인 규례와 의식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법만 중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규례 삼아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육체를 만족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해 행동할 뿐이다. 그러한 종교적 의식과 규례는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되었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규례도 율법도 지키지 않으며, 날마다 새로운 일과 실제적인 사역을 한다. 삼자교회의 사람들처럼 매일 새벽 기도와 저녁 기도, 식전 기도를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등의 제한적인 것만 실행한다면, 그런 실행은 아무리 많이, 또 아무리 오래 해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지 않는다. 사람이 규례 속에서 살면서 행위에만 마음을 쏟는다면 성령은 역사할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이 규례와 관념에 점령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역사할 수가 없고, 사람은 계속 율법의 통제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진입하는 과정에 있는 삶은 언제나 무미건조하다.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거나 예배하는 등 몇 가지의 단조로운 영 생활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늘 하나님을 믿는 것에 이렇다 할 즐거움이 없다고 느끼곤 한다. 이런 영적인 활동은 사람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사람은 때로는 성령의 깨우침을 얻기도 하지만, 고유의 사상, 성품, 생활 방식과 습관이 여전히 내면에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 … 사실 하나님은 한 단계의 사역을 끝내면, 당시 그가 사용했던 도구와 ‘풍격’을 흔적도 없이 전부 없애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신자’들은 여전히 형상이 있는 물질을 경배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은 언뜻 보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을 문밖으로 내쫓고 ‘사탄’을 집 안에 모셨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사람들은 ‘예수의 초상화’, ‘십자가’, ‘마리아’에서 ‘예수의 세례’, ‘예수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것들을 ‘천주’로 여겨 경배하고 말끝마다 ‘주님,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짖으니 가소로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냐?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이 혐오하는 이와 비슷한 말과 행동들이 수없이 많이 전해 내려와 하나님의 앞길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으며, 나아가 사람의 진입에 더욱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사탄이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패괴시켰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위트니스 리의 이론’, ‘로렌스의 체험’, ‘워치만 니의 개론’, ‘바울의 사역’ 등이 이미 사람의 내면에 가득 차 있어,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손을 대 사역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돼 버렸다. 사람 내면에 ‘개인주의’, ‘이론’, ‘법도’, ‘규칙’, ‘제도’ 따위가 너무 많이 들어 있는 데다가, 여기에 봉건 미신적인 색채까지 더해져 사람을 약탈하고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마치 감동적인 신화를 다룬 컬러 영화와 같아 뜬구름처럼 허황되고, 상상만 해도 심금을 울리며,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사실 오늘날 하나님이 와서 하는 사역은 주로 사람의 이러한 미신적 색채를 다루고 없앰으로써 사람의 정신적 면모를 완전히 바꿔 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조상들의 유전을 이어받음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친히 시작하고 친히 끝내는 것이다. 영적 위인들의 유전을 계승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과거 어느 한 시대에 행한 대표적인 일을 이어받을 필요도 없다. 사람은 이런 것들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늘날 독특한 형태의 말씀과 사역을 하는 하나님이 굳이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할 리가 있겠느냐? 사람은 오늘날의 흐름 속에서 ‘조상’들의 유전을 이어받아 오늘날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길의 끝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연월일을 증오하듯, 사람의 그런 작태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3> 중에서

찬미가 시온에 다다르고, 하나님의 거처가 나타났도다. 영광의 성호는 만백성이 찬양하며,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도다. 아!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의 머리, 말세의 그리스도, 그는 빛나는 태양이요, 온 우주의 위엄 넘치는 광활한 시온산에 솟아올랐도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당신을 향해 환호하고, 춤을 추며 노래하나이다. 당신은 진실로 우리의 구속주이며, 우주의 큰 왕이시나이다! 당신은 이기는 자들을 만들고 하나님의 경륜을 완성하셨나이다. 만백성이 반드시 이 산으로 모이고,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리이다! 당신은 유일무이한 참하나님이며,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시나이다. 모든 영광, 찬양, 권병을 보좌로 돌리겠나이다! 보좌에서 생명 샘이 흘러나와 만백성에게 공급하고 양육해 주니, 생명은 날마다 변화하고, 새로운 빛과 계시가 우리를 따르며, 시시각각 하나님을 새롭게 깨닫게 되나이다. 체험 중에 참하나님을 확신하게 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나타나고 옳은 사람 안에 나타나나이다. 우리는 복이 차고 넘치나이다! 매일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범사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이 주권을 잡도록 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고 하나님 안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빛 비춤을 받을 것이리이다. 매일의 삶, 행동, 언사, 마음, 생각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니 언제든 분별할 수 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견인해 주니 안에 숨겨진 것들이 줄줄이 드러나나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나이다.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에 의해 폭로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매 순간을 살며, 그 앞에서 심판을 체험하나이다. 우리 몸의 구석구석은 여전히 사탄에게 점령되어 있으니 오늘날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케 해야 할 것이나이다. 하나님께 완전히 점유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결사전을 벌여야 할 것이나이다.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권을 잡을 수 있나이다.

지금 성령이 우리의 구석구석을 향해 돌격하며 쟁탈전을 벌이고 있도다! 우리가 기꺼이 스스로를 버리고, 하나님과 협력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수시로 빛을 비추어 우리의 내면을 정결케 하고, 사탄이 점령했던 것을 되찾아 와 하루속히 우리를 온전케 하리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며 성도들 모두와 함께 건축하면, 하나님나라로 인도되고 하나님과 함께 영광에 들어가리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편> 중에서

오늘날 당신께서 교회들, 즉 빌라델비아 교회를 이루셨사오며, 당신의 6천 년 경륜이 실현되었나이다. 성도들은 당신 앞에 겸허히 순종하며, 영 안이 서로 통하고 서로 사랑하며, 샘의 근원에 연결되나이다. 생명수가 끊임없이 흘러 교회의 모든 더러운 물을 씻어 없애사 당신의 성전을 다시 깨끗게 하셨나이다. 실제의 참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니, 하나님 말씀으로 행하며, 자신의 역할과 본분을 알고,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헌신하리이다. 언제나 당신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성령의 역사에 마음을 기울이고, 당신의 뜻이 우리에게서 막힘없이 이뤄지게 하리이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장점을 배워 각자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나이다. 언제나 영적으로 행하면 성령의 빛 비춤과 깨우침이 함께하나이다. 진리를 깨달으면 즉시 실천하며, 새로운 빛을 따르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리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하나님이 권세를 잡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자기 생각, 자기 관념과 견해, 세상의 짐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리이다. 우리 영 안에서 하나님이 왕권을 잡으시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초월하게 되며, 세상을 이기며, 영은 자유롭게 날며 해방받았나이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왕이 되신 결과로다. 우리 어찌 춤추며 찬양하지 않겠나이까, 어찌 찬미와 새 노래를 바치지 않겠나이까.

찬미의 방식은 실로 많도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말씀으로 기도하고 교제하며, 묵상하고 되새기고 기도를 올리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도다. 이러한 찬미에는 누림이 있고 기름 부음이 있으며, 찬미하면 능력이 있게 되며, 사명감과 믿음이 생기고, 새로운 깨달음이 있게 되나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서로 조화롭게 섬기며 하나가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리이다. 하루빨리 거룩한 영체가 되어 사탄을 짓밟고 사탄의 운명을 끝내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들림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나타났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2편> 중에서

열국이 환호하고 만민이 노래하며, 시온산이 기쁘게 웃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오늘 이렇게 보게 되었다. 또 날마다 얼굴을 마주해 말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먹고 마시는 것은 모두 그가 마련하고 공급하며, 삶, 말과 행동, 마음과 생각에 그의 영광이 빛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가 인도해 주나, 마음에 패역을 품는 자에게는 즉시 심판이 임한다.

하나님과 함께 먹고 지내고 생활하며, 그와 함께 살고 동행하고 누리며 함께 영광과 축복을 얻는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고 하나님나라에 거하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이 얼마나 감미로운가!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고, 날마다 이야기하며, 늘 대화하고, 매일 새로운 깨우침과 깨달음이 있다. 영의 눈을 뜨니 모든 것이 보이고, 영적 비밀이 우리에게 보여진다. 거룩한 삶은 실로 여유롭다. 멈추지 말고 빨리 뛰어가라.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라. 더 놀라운 삶이 눈앞에 있다. 달콤함을 맛보았다고 만족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 안으로 좇아 들어가라. 만유가 망라되어 진실로 모든 것이 갖추어졌고, 부족한 것은 전부 다 채워졌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여라. 이 안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바뀐다. 삶을 초월하게 되고 어떤 사람과 일, 사물도 우리를 간섭할 수 없다.

초월하였다! 초월하였다! 참으로 초월하였다! 하나님의 초월적 생명이 그 안에 있으니, 모든 것이 홀가분하다! 세상과 세속을 초월하고, 배우자와 자식에 대한 정에 연연하지 않으며, 질병과 환경의 제약을 초월하니 사탄이 감히 방해하지 못한다. 모든 재난을 초월하는 것, 이는 하나님이 왕권을 잡게 하는 것이다! 사탄을 짓밟고 교회를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고,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철저히 폭로한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건축되며 영광의 몸이 나타났다. 이는 들림 받은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5편> 중에서

하나님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면 백성의 생활을 하게 된다. 너는 이 훈련을 받을 마음이 있느냐? 긴박감 있는 분위기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의 징계 아래에서 살 마음이 있느냐? 하나님의 형벌 아래에서 살 마음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 때, 너는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직면하게 될 갖가지 사실 앞에서 너는 또 어떻게 하겠느냐? 여태까지 생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제는 생명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과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해야 하는 것이다. 백성이라면 모두 생명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나라의 훈련을 받아야 하며,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나라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주는 사명을 받아들일 것, 즉 하나님이 말세에 사역하면서 한 모든 말씀을 받아들일 것.

2. 하나님나라의 훈련에 들어갈 것.

3.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곧 자유로운 경지에서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살핌과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4. 하나님께 얻어질 것.

5.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가 될 것.

이 다섯 가지 사항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사명이다. 나의 말은 모두 백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 사명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자에게는 나도 강요하지 않겠다. 그러나 네가 진정 이 다섯 가지 사명을 받아들인다면 너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다. 이제부터 너희는 하나님이 주는 사명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나라 백성의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진입의 첫걸음이다. 완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면 이 다섯 가지 사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다섯 가지를 다 행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며, 반드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것이다. 지금 하나님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는 것은 영 생활에 관련된다. 예전에는 영 생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오늘 하나님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면 정식으로 영 생활에 들어가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알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중에서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로, 네가 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는지를 알려면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갔는지, 하나님 말씀이 너의 생명 실제가 되었는지를 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결국에는 모두를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하고, 각자에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준다. 만약 네가 이 기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읽고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네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네가 말씀 시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성령의 역사가 없을 것이고, 들어가면 성령의 역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 시대의 출발점에서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 시대에 너희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일을 이루고자 한다. 너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고, 진리를 실행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 삼고 실제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말씀을 실행하여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면 되겠느냐? 현재 많은 이들이 하루 이틀만 하나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매우 답답해하며, 매일 말씀을 봐야 하고, 시간이 없으면 듣기라도 해야 한다고 한다. 성령은 사람에게 이런 느낌을 주고,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제어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네가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어둠과 목마름을 느끼게 되어 답답해할 것이다. 이는 네게 성령의 감동이 있으며, 성령이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너는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하루 이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며 아무런 감동도 없다면, 이는 성령이 너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고 말씀 시대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이니, 뒤처진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제어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좋다고 느껴지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행할 길을 잃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양식과 동력이 된 것이다. 예전에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한 바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 사역을 이룰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서 이 사실을 이루고자 한다. 과거에는 며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밥도 잘 먹고 일도 잘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온전케 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에게 생명과 광명, 그리고 실행할 길을 줄 수 있다. 특히 하나님나라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떠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중에서

지금은 하나님 말씀 시대에 접어든 까닭에,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도를 적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측면의 진리와 실행 방법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기에 사람이 나서서 구하거나 찾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눈에 보이는 삶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찾고 구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모든 일들을 명확하게 알려 주었다. 결혼에 관해, 세상적인 것에 관해, 생활, 의식주, 인간관계에 관해, 섬김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육체를 저버려야 하는지 등등, 너희에게 일러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지금도 기도하며 찾을 필요가 있느냐? 전혀 그럴 필요 없다! 네가 아직도 그리하고 있다면 어리석고 무지하여 괜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 하나님은 분명하게 다 말해 주었다. 특히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성품, 그리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명확하게 말씀했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멋대로 기도하며 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찾고 구하는 기도를 많이 하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진리를 교제해야 한다. 평소 기도할 때도 하나님 말씀에 비춰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알아 가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된다. 아직도 하늘을 바라보며 구한다면 막연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겠느냐? 예전에는 그렇게 구하면 응답을 받았고 성령의 감동이 조금 있었다. 그때는 은혜시대였고 하나님을 볼 수 없었으므로 그렇게 찾고 구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지금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왔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났기에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은 더 이상 예전처럼 역사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면서 성령의 역사 방식도 바뀐 것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기도를 적게 하지만 하나님이 땅에 있으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를 얻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래서 언제든지 “하나님, 당신이 너무도 좋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렵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몇 마디의 말만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데 이는 오로지 하나님과의 사랑을 깊게 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패역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저는 왜 이리도 깊이 패괴된 것입니까?”라고 고백을 하기도 한다. 그때의 심정은 당장 뺨이라도 때리고 싶고, 눈물이 글썽거리며, 마음은 후회스럽고 괴롭지만 어떻게 표현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지금 성령이 역사하는 방향에 맞는 것으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너를 몹시 사랑한다고 느끼고, 특별한 느낌이 들 것이다. 명확한 말로 기도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이 바다처럼 깊다고 느끼며 이런 상태를 적합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는 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도와 교제는 올바른 것이다.

지금은 모색하고 구하는 시대가 지나갔다고 해도 이것이 영원히 기도로 구할 필요가 없다거나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역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은 사람의 편견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와서 함께 생활하며 사람의 빛이 되고, 생명이 되고, 길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땅에 온 이상 반드시 사람의 분량에 적합한 생명과 현실적인 도를 주어 누리게 할 것이다. 절대로 사람의 모든 실행 방법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이제 더 이상 모색하고 구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말씀과 사역으로 그 과정을 대신했고, 이로써 사람을 막막하고 어두운 삶에서 밝은 빛이 보이는 삶으로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사람이 실행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짚어 주고 말해 주며, 직접적으로 알려 주고 명문으로 규정하는 형식으로 사역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때,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성전을 건축하는 방법을 알려 준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예수가 떠난 후 그래 왔던 것처럼 모색하고 찾으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 앞으로 복음 사역을 어떻게 할지 모색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색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할지 모색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 몰라 땅에 엎드려서 구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입고 쓰는 면에서 더 이상 금식 기도하며 구할 필요가 있느냐? 하나님의 정복 사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계속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구하며 기도에 힘쓸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지 몰라 밤낮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실행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역을 전혀 중시하지 않는다! 나는 일찍이 많은 말을 하였으나 너희는 전혀 유의해서 보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오늘날 이 시대에도 성령은 사람을 감동시켜 기쁨을 누리게 한다.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데, 그것은 바로 생활 속에서 흔히 느끼게 되는 특별한 누림이다.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의 사랑은 너무도 아름답고, 당신의 형상은 위대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쳐 평생 동안 헌신하고자 합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만 해 주신다면…”라고 기도하는 날이 간혹 있다. 이는 성령이 주는 누림으로, 깨우침이나 빛 비춤이 아니라 감동이다. 이는 자주 할 수 있는 체험이다. 출근하는 길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되어 적합한 곳을 찾아 마음속의 열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때로는 공적인 장소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 들고, 자신의 출신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누구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더 강렬해진다. 또한 그것은 다 하나님이 높여 준 것이자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형언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다고 느낀다. 그 사랑은 왠지 알 듯하면서도 형용하기 어렵고, 너무도 깊어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에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조차 잊고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오묘하시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라고 말하여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때도 있다. 이 모두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너희는 이 같은 일을 굉장히 자주 경험할 것이다. 이 모두는 오늘날 성령이 네게 준 삶이며, 지금 네가 살아야 할 삶이다. 이는 네 삶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형용하기 어렵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아나는 삶이다. 그 감정은 진실로 우러나는 것이며 더더욱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이다. 속으로는 알 것 같지만 누구에게도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것은 표현력이 떨어지거나 말이 어눌하기 때문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에게 이러한 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데, 이는 네가 살아야 할 삶이다. 물론 너의 다른 삶도 헛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감동이 네 삶의 즐거움이 되어 항상 성령의 감동을 누리고 싶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감동은 육을 초월하여 셋째 하늘에 올라가거나 세계를 일주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오늘날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직접 맛보게 하는 것이며, 오늘날 하나님이 사역하는 의의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다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더 잘 알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이 이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에는 모색하며 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때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없었으므로 모색하고 구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오늘날에는 하나님을 보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그가 직접 알려 주었으므로 더 이상 모색하며 구할 필요가 없다. 그가 인도하는 길이 곧 진리의 도요, 그가 알려 준 것과 사람이 받은 것이 곧 생명과 진리이다. 길, 생명, 진리를 얻었거늘 여기저기에서 계속 찾고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성령은 동시에 두 단계의 사역을 하지 않는다. 내가 할 말을 다 했음에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먹고 마시거나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은혜시대 때 그랬던 것처럼 맹인이 더듬더듬 길을 찾듯 끊임없이 기도하며 구한다면 내가 하는 말씀 사역은 헛수고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나의 말이 끝났음에도 사람의 자질이 형편없어 아직도 온전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교회 생활이나 서로의 교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과거 은혜시대에는 성육신했어도 말씀 사역을 하지 않았으므로 당시 성령이 그런 방식으로 사역을 유지했었다. 그때는 기본적으로 성령이 일을 했고, 지금은 성육신 하나님이 직접 한다. 즉, 성령의 역사를 대신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자주 기도하기만 하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거나, 책망 또는 징계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다. 반면 지금은 이런 경우가 드물다. 성령은 시대별로 한 가지 사역만 한다. 만약 동시에 두 가지 사역을 한다면, 즉 육신은 육신대로 사역하고, 성령은 또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역을 하며, 영의 역사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육신이 하는 말씀이 뒷전이 된다면, 그리스도가 진리, 길, 생명이란 말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러면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데, 성령이 그렇게 역사할 리 있겠느냐? 하나님은 전지(全智)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롭기에 절대 잘못할 리가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1> 중에서

사람은 예수를 믿을 때 진리를 몰랐던 관계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매우 많이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게 했고, 사람을 오늘날까지 인도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내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부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회 건축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봉사자’ 단계의 사역을 하여 사람을 무저갱 속으로 빠뜨렸다. 봉사자 그 당시의 말씀은 모두 저주의 말이었다. 너의 육을 저주하고, 네가 가지고 있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저주했으며, 너에게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지 못하는 것들을 저주했다. 그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것은 위엄이었다. 곧이어 하나님은 또 형벌 사역을 했고, 죽음의 시련을 주었다. 사람은 그러한 사역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 심판과 형벌을 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긍휼도 보았다.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과 나타내는 성품은 전부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사람의 분량에 따라 사람에게 공급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올 수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본래 모습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의 분량에 맞춰 조금씩 사람에게 공급해 주어 그에 대한 인식이 사람 내면에 점차 생겨나게 했다. 사람은 오늘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의 심판이 더없이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봉사자 단계의 사역은 하나님이 창세 이래 행한 첫 번째 저주 사역으로, 사람을 저주하여 무저갱 속에 넣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통해 비로소 정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람은 모두 봉사자의 시련을 통해 드러났고, 자신의 충성심이 형편없고, 분량이 너무도 보잘것없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없으며, 언제든지 하나님을 흡족게 하겠다는 것은 말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봉사자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저주했지만,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하나님의 그 단계 사역이 몹시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으며, 사람의 생명 성품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봉사자 단계 전에 사람은 생명 추구는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지혜롭게 사역한다는 것을 몰랐으며,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에게 시련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봉사자 단계의 사역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이 지극히 기묘하여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으며, 사람의 머리로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사람의 분량이 몹시 보잘것없고, 사람의 패역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한 것은 한 가지 성과를 얻기 위함이었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가 사람을 저주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저 말씀의 저주였을 뿐, 사실이 임한 적은 없었다. 하나님이 저주한 것은 사람의 패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한 저주의 말씀 역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도, 저주도 전부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 내면의 깨끗하지 않은 것들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에게 연단을 주었고, 사람 내면의 부족한 것들은 그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온전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이 행한 각 단계의 사역은 엄한 말씀이든 심판과 형벌이든 할 것 없이 전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며, 너무나도 적절한 것이다. 하나님은 만세와 만대에 이런 사역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 너희에게 이런 사역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한 것이다. 너희는 내적으로 고통을 조금 겪었지만, 늘 마음이 든든하고 평안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너희의 행복이다. 나중에 무엇을 얻게 되든 어쨌든 오늘날 하나님이 너희에게 행한 사역이 전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연단을 겪지 않아 늘 겉으로만 행하고, 겉으로만 열성적일 뿐, 성품이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현재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방자하고 오만한 것들이 많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성품이 많이 안정되었다.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는 것 역시 너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 당시에는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 네 성품이 변화했을 때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행한 사역이 지극히 지혜로웠다고 느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겪으면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나아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고난받게 하지 않았다면, 솔직히 말해 너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더욱 고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을 더욱 의미하며, 사람은 마음으로 더욱 참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으로 도달하게 되느냐? 만약 고난과 연단, 고통스러운 시련이 없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 긍휼만 베푼다면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천박하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마련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 잘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고통이 너무 커서 이겨 내지 못할 때도 있고, 심지어 극도의 비통에 빠질 때도 있지만, 체험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사역이 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토대로 사람에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사람은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긍휼만으로는 자신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없고, 사람의 본질은 더더욱 인식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과 연단을 통해야만 사람이 연단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연단과 심판을 토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이 평안하거나 물질적 축복만 받았다면,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와서 은혜의 사역을 하며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물질적 축복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은혜와 자비, 긍휼만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체험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 느끼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보았다. 그러나 한동안 체험한 후에는 그의 은혜와 자비, 긍휼로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의 내면에 있는 패괴된 것들을 들춰내지 못하며, 사람의 패괴 성품을 벗겨 버릴 수 없고, 사람의 사랑과 믿음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 사역일 뿐,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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