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때 필요한 20가지 진리

목차

2) 은혜시대에 예수님이 사역하신 방식과 국도시대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었을 때는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줄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이 구속이기 때문이다.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그는 반드시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이 있어야 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그는 사람의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였는데, 그 사역은 그가 사람을 죄와 더러움에서 구원해 낼 것임을 예시한다. 은혜시대이기에 그는 반드시 사람에게 병을 고쳐 줌으로써 표적과 기사를 조금 나타내야 했는데, 그런 표적과 기사는 은혜시대의 은혜를 대표한다. 은혜시대에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을 위주로 하였는데, 평안과 희락 또는 물질의 축복이 은혜시대의 표징이 되었고, 사람이 예수를 믿는 표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며,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은 은혜시대 때 예수 육신의 본능이었다. 영이 육신에 실제화하여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예수가 한 사역은 그때 그 시대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그의 사역에 따라 그는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러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져온 모든 성품은 겸손, 인내, 사랑, 경건, 포용, 긍휼, 자비였고, 사람에게 가져온 것은 풍부한 은혜와 축복이었으며, 또한 사람이 누릴 온갖 물질이었다. 사람이 누리게 된 것은 다 평안과 희락이었고,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으며, 또한 그의 긍휼과 자비였다. 당시에 사람은 구주 예수를 의지했기 때문에 대량의 누릴 물질을 접할 수 있었고, 마음이 평안하고 영적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들이 그런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 처한 시대와 관계가 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의 패괴를 겪었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려면 그 사역 효과를 위해 반드시 풍부한 은혜가 있어야 하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포용과 인내가 있어야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죄를 충분히 사할 수 있는 속죄제도 있어야 하였다. 은혜시대의 사람은 내가 사람의 죄를 사하는 속죄제, 즉 예수라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포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예수의 긍휼과 자비만 보았는데, 그런 것은 모두 그들이 은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속되기 전에 반드시 예수가 베풀어 준 많고 많은 은혜를 누려야 하였다. 그렇게 해야 그들에게 비로소 유익이 있게 된다. 그들이 은혜를 누림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또한 그들에게 베풀어 준 예수의 포용과 인내를 누림으로 속죄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예수가 베풀어 준 풍부한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게 되었다. 마치 예수가 “내가 온 것은 의인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할수록, 사람의 죄를 사해 줄수록,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충분히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예수께 구원받을 자격이 더 있게 되고, 예수가 비싼 값으로 사온 길 잃은 어린양이라 칭함받을 자격이 더 있게 되며, 사탄도 그 사역에 틈탈 기회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아기를 대하듯 하였고, 그들에게 노하지도, 그들을 혐오하지도 않고 오히려 위로하는 마음이 가득하였으며, 또한 예수가 그들 가운데서 진노를 발한 적이 전혀 없었고, 그들의 죄업을 포용해 주고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도 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감화되는 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포용으로 인해 비로소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구속시대의 사역 내막>에서 발췌

『성령은 시대에 따라 사역하는 것이지, 임의대로 하거나 규례에 맞춰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시대는 반드시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게 되는데,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러하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중복된 적이 없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안수 기도하고, 사람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적지 않게 하였는데, 오늘 또 그렇게 한다면 의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성령은 당시에 그렇게 하였다. 은혜시대였기에 사람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고, 사람이 어떠한 대가도 치를 필요 없이 믿기만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다 특별히 은총을 베풀어 주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하나님의 사역이 또 앞으로 발전하였으므로, 형벌과 심판으로 사람의 패역과 사람 안에 있는 정결치 못한 것들을 제거한다. 그 단계는 구속하는 것이어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어 사람에게 누리도록 해 주어야 사람을 죄에서 구속해 낼 수 있었으며,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이 죄 사함을 받게 할 수 있었다. 이 단계는 형벌하고 심판하고, 말씀으로 채찍질하고, 말씀으로 징계하고 폭로하여 사람 안에 있는 불의한 것들을 드러낸 후에 구원받게 하는 것인데, 구속 사역보다 더 심화된 것이다. 은혜시대의 은혜는 사람이 누리기에 충분하였고, 사람이 이미 경력하였으므로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 사역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으므로 하지 않는다. 지금은 말씀의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이 심판, 형벌, 연단을 받고 성정이 변화된 것은 다 내가 한 이런 말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더냐? 각 단계 사역은 다 온 인류의 발전 상황에 따라 하고, 다 시대에 따라 한다. 행하는 사역은 모두 의의가 있다. 모두 최종의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훗날에 인류에게 아름다운 귀숙이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사람을 마지막에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의 이번 도성육신의 역사는 주로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여 그의 성품을 발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실행을 가리켜 줌으로써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겨 버리는 그 목적을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국도시대에서 사역을 하는 내막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오늘 내가 한 말은 바로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 사람의 교활함과 간사함 그리고 언행을 저주하기 위해서이다. 무릇 그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다 심판을 거치며 사람의 패역은 정죄받는다. 심판의 원칙을 중심에 놓고 말하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고 사람의 모든 추한 몰골을 파헤치는 것에 의해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2단계 정복 사역은 어떻게 효과에 도달하는 것인가>에서 발췌

『사람의 성정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고난, 연단이나 혹은 훈계, 징계, 책망을 거친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하며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속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 속에서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된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훈계를 겪은 사람이라야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침착하고 듬직하다.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관념을 버리고 진심으로 순복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또 훈계하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 또 형벌하는 것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지금 정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시작한다.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폭로, 심판, 형벌을 거치고 하나님 말씀의 시련과 연단(효력자와 같은 시련)을 겪어야 하며, 또 반드시 죽음의 시련도 이겨 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실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시련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미를 발할 수 있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자신을 배반하며, 그에 따라 진실하고 단일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며, 또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고 하나님이 성취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 방식에 대해 사람이 함부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사람은 다만 생명 진입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가장 근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 역사의 절차에 관하여>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공의, 진노, 위엄, 심판, 저주인데 그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주로 심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여 말한다. “왜 심판, 저주를 통해야만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면 사람이 죽지 않겠는가? 사람을 심판하면 사람이 정죄받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또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해 낼 뿐만 아니라 일부 엄한 말씀으로 사람 안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해 내지만 이러한 심판 방식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사람이 보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형벌, 심판과 저주일 수 없으며 구원하는 데는 반드시 긍휼, 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의하여 사람을 감동시켜 사람의 마음을 다 하나님께 드리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해 내는 것이고, 즉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구원은 거래의 구원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백배로 베풀어 주어야만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에 귀복할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분발하고 명예를 빛낼 수 있다는 이것도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조금도 틀림없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구원 방식은 그의 긍휼 자비를 전부 베풀고 심지어 자기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으로써 전 인류를 바꾸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전과 비길 수 없다. 오늘 너희를 구원하는 것은 마지막에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때이니 너희를 구원하는 방식은 긍휼 자비가 아니라 형벌과 심판으로써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아들인 것은 전부 형벌과 심판, 무정한 격타(擊打)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 무정한 격타에 아무런 징벌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어떻게 엄하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다만 너희가 보기에 조금도 인정미가 없는 몇 마디 말씀이고, 나의 노가 얼마나 크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여전히 교훈의 말씀이니 너희를 해치려는 뜻이 전혀 없고, 너희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닌가? 너희가 알다시피, 지금 공의로운 심판이든지 아니면 무정한 연단과 형벌이든지 그것은 다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지금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려 하든지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 하든지 모든 말씀과 역사는 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정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든 채찍질이든 다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구원 방식은 더 이상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오늘,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의 구원이 되었고, 너희를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제일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무정한 형벌은 너희의 크나큰 구원이 되었다. 이 형벌과 심판에 직면하여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너희가 시종 누리는 것은 모두 구원이 아닌가? ……너희가 생각해 봐라, 만일 내가 와서 너희를 대하는 뜻이 정죄와 징벌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너희의 날이 그래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겠는가? 죄에 속한 너희 이 혈기의 사람들이 그래 오늘까지 존류할 수 있겠는가? 만일 너희를 징벌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구태여 말씀이 육신 되어 이렇게 큰 공정을 움직일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만일 징벌한다면 한마디 말을 하는 시간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 일부러 너희를 정죄한 다음 너희를 멸할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는 아직도 나의 이 말을 믿지 못하는가?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데는 다만 긍휼, 자비의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단 말인가? 또는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써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순복하게 하는 데에 더 유리하지 않은가? 더욱더 사람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한 말은 비록 엄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구원이다. 왜냐하면 나는 말만 하고 사람의 육체를 징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 빛 가운데서 살게 하였고 빛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였으며, 빛의 귀중함을 알게 하였고 더욱이 이런 말씀이 사람에 대해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음을 인식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바로 구원임을 인식하게 하였다. 내가 비록 형벌 심판의 많은 말을 하였지만 결코 사실이 너희에게 임하지는 않았다. 내가 온 것은 바로 사역을 하는 것이고 바로 말을 하는 것이다. 말씀은 비록 엄하지만 모두 너희의 패괴와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여전히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기 위한 것이다.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엄한 것은 역사 효과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렇게 역사해야 사람이 자기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역 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