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체험하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하고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점을 더더욱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역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내적 상태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맞추어 새로운 사역을 하고, 이로써 사람이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를 사랑하고 증거하게 한다. 이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와 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진실하게 사랑하거나 증거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한 측면의 성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의 성과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진리를 구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연단의 사역을 하고, 이로써 사람의 의지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구하기 원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므로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의 성품을 알기가 쉽지 않다. 진리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천하려는 의지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사람이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도 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의지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는 한편,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질적으로 책망하며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함으로써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하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하며, 이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연단의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멸하여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또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오직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하나님이 사역을 통해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는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클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이 더 많이 나타난다. 반대로 받는 연단이 적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아지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도 더 적게 나타난다. 많은 연단을 받을수록, 큰 고난을 받을수록, 많은 시달림을 받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더 갖게 되며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체험하는 과정에서, 너는 큰 연단과 고통을 받고 많은 책망과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고 하나님에 대해 더 깊고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망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식이 매우 얕은 관계로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어 그분을 누리게 하십니다.”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한다. 책망과 징계를 겪은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와 의의가 있고, 네가 헤아릴 수 없고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하고 얻을 수 있으며 온전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지 않고 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성과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 하나님은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택하였고 또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세에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특별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희에게 큰 사역을 행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더 깊어지고 순결해지며, 하나님이 큰 사역을 행할수록 사람이 그의 지혜를 더 잘 깨닫게 되고 그에 대한 인식도 깊어진다.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은 말세에 끝나겠지만, 그렇게 쉽게 끝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하면 끝이겠느냐?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사람은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행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의 어느 한 부분도 사람은 온전히 측량할 수가 없다. 네가 온전히 측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측량할 수 없고 네 관념에 크게 어긋난다. 네 관념에 어긋날수록 하나님의 사역이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네 관념에 부합하면 의미가 없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사역이 몹시 기묘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이 기묘할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을 측량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하나님의 행사가 아주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사역만을 행하여 사람을 정복하고 끝낸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이 지닌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지금 얼마간 연단을 받지만 이는 네 생명이 자라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이 고난은 너희에게 너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네가 연단을 조금 받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될 것이고, 결국 너는 “하나님의 행사가 실로 기묘하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 연단(봉사자 시련, 형벌시대)을 겪은 후 마지막에 “하나님을 믿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했다.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사를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하는 일은 참으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고, 사람이 소중히 여길 만하다는 의미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네가 전혀 알지 못한다면 내가 한 사역이 가치가 있겠느냐? 나는 네 입에서 “하나님을 섬기기는 정말 쉽지 않구나. 하나님의 행사는 실로 기묘하다. 하나님은 정말 지혜롭고 사랑스러우시다!”라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다. 한동안 체험을 한 후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이 네게 한 사역을 통해 무언가를 얻었음을 말해 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에게 행한 것과 보여 준 것은 모두 그를 사랑하게 하고 그를 진실로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겪으면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나아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고난받게 하지 않았다면, 솔직히 말해 너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더욱 고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을 더욱 의미하며, 사람은 마음으로 더욱 참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으로 도달하게 되느냐? 만약 고난과 연단, 고통스러운 시련이 없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 긍휼만 베푼다면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천박하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마련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 잘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고통이 너무 커서 이겨 내지 못할 때도 있고, 심지어 극도의 비통에 빠질 때도 있지만, 체험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사역이 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토대로 사람에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사람은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긍휼만으로는 자신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없고, 사람의 본질은 더더욱 인식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과 연단을 통해야만 사람이 연단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연단과 심판을 토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이 연단할수록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고통받으면 사람의 생명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더 평온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과 구원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수백 번의 연단을 겪었고, 욥도 여러 차례 시련을 겪었다. 너희도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수없는 연단을 겪어야 하고 또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드시 이 절차를 거쳐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연단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오직 연단과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야만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우러나오게 할 수 있다. 사람은 고난 없이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지 못하며, 내면에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을 겪지 않고서는 마음이 항상 밖에서 떠돌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 연단을 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많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 낼 수 없음을 알게 되며, 자신에게 패역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련 속에서만이 자신의 실제 상태를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사람을 더욱 온전케 할 수 있다.

베드로는 평생 수백 번의 연단을 받았으며, 수많은 고통의 단련을 받았다. 그런 연단은 모두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토대가 되었고, 그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체험이 되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연단과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초는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길에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그에게 가장 잊기 힘든 일이 되어 주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연단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그 사랑이 불순물과 사람의 기호로 점철된다. 그런 사랑에는 사탄의 뜻이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흡족게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사람 자신의 뜻은 전혀 없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하나님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는 없다. 설령 사람이 모든 진리를 분명히 알고 깨달았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징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도 할 수 없다. 사람이 비록 연단을 받기 전에 수많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런 진리를 다 실천할 수는 없다. 사람은 연단 속에 있을 때 비로소 그런 진리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고, 진정으로 그런 진리에 내포된 뜻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다음에 다시 그런 진리를 실천한다면 정확하게 실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할 것이다. 그때의 실천에는 개인의 뜻이나 사람의 패괴, 사람의 감정이 적어진다. 그때의 실천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동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연단 사역은 주로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이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도 믿음을 버리지 않으며, 자기 앞날에 대해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는 정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연단이 끝나게 된다. 사람이 죽도록 힘든 지경에 이르러 죽음의 맛을 보기 전까지는 이 연단이 끝나지 않는다. 봉사자의 단계에서도 연단은 극한에 이르지 않았다. 욥은 극한의 연단을 받아 의지할 곳이 전혀 없었다. 사람은 반드시 그 수준까지 연단을 받아 희망도 의지할 곳도 전혀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연단이다. 봉사자일 때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평온히 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계속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한다면, 이 길 끝에서 너는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너는 욥의 시련을 겪는 동시에 베드로의 시련 또한 겪게 된다. 욥이 시련을 받을 때 굳게 서자 마지막에 여호와가 그에게 나타났다. 굳게 섰기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생긴 것이다. 어째서 “나는 거룩한 나라에는 나타나지만 더러운 땅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했겠느냐? 다시 말하자면, 네가 성결하게 되고 굳게 서야만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있는 것이지, 굳게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연단을 받는 과정에서 떠나거나 원망하고 굳게 서지 못해 사탄의 조롱거리가 된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저주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를 증오할 수는 있어도 절대 불평하지 않으며, 입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어느 정도로 연단을 받아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에게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며, 관념도 갖지 않는다면, 그때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너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너에게는 수많은 관념과 선입견이 있고, 사심, 잡념, 사사로운 요구, 육적인 이익이 많아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만나면 너 자신의 관념을 가지고 평가할 것이므로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많은 일이 닥쳤을 때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아도 내려놓을 수 있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으며,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굳게 선 것이다. 만약 네 가정이 평안하고 육체적으로도 누릴 수 있으며 아무도 너를 핍박하지 않고 교회의 형제자매들 또한 너에게 순종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너의 마음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 그러면 너를 연단할 수 있겠느냐? 연단 속에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너의 마음을 나타낼 수 있고,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닥쳐야만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많은 일을 역이용하고, 또 사탄의 수많은 행위, 참소, 교란과 미혹 등 다양한 모습을 통해 네가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똑똑히 보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탄을 분별하게 하고 나아가 사탄을 증오하고 저버리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지금 너희는 모두 시련과 연단을 겪고 있다. 연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느냐? 사람은 연단을 겪고 나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찬미하게 되고, 연단 속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단을 많이 겪을수록 육을 더 잘 저버릴 수 있고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어째서 연단을 받아야 하겠느냐? 연단으로 거두려는 성과는 어떤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연단 사역에는 어떤 의의가 있겠느냐?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구해 어느 정도까지 체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연단이 아주 좋은 것이고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연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로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들이고, 연단 속에서 내적으로 고통받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플지라도 육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내적으로 괴롭고 고통이 심하더라도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할 것이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비록 제 내면은 어둡지만 저는 당신을 흡족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는 제 마음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 안에 당신의 사랑을 더 많이 심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이것이 연단 속에서의 실행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연단이 너를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맡겨야 한다. 네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면 너는 연단 속에서 결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정상적으로 바뀔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통도 점점 더 빈번해질 것이다. 네가 늘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시간도 많아질 것이며, 성품도 점점 변화되고 인식도 나날이 늘어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너에게 하나님의 시련이 닥칠 때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면, 그때 너는 욥과 베드로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너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증인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연단을 거친 사랑이라야 약하지 않고 굳건하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시련을 주든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며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다면, 너의 사랑은 순결해질 것이고, 너의 믿음도 실질적인 믿음이 될 것이다. 그때 너는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진정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욥은 처음의 시련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나아가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나님의 거두어 감에 순종했고,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까지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에서 욥이 보여 준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욥이 증거한 것이다. 두 번째의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어 욥에게 갖은 해를 가했다. 욥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지만, 그의 증거는 오히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강인함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가 보여 주고 증거한 것은 또다시 하나님께 인정받고 열납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욥은 자신의 실제 행동을 통해 사탄에게 선포했다. 육체의 고통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순종을 바꿔 놓을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을 빼앗아 갈 수도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또한 그는 죽음이 다가왔다고 해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욥의 의연함을 본 사탄은 겁이 났다. 사탄은 욥의 믿음에 두렵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사탄과 사생결단하겠다는 욥의 기세를 보고 침통해졌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 앞에 사탄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래서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짓도 그만두었다. 이는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죽음을 이겨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욥은 두 차례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섰으며,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로 살아 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의 생존 법칙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 욥의 인생 경험은 더욱 풍부해졌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하고 원숙해졌으며, 더 강인해지고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욥은 자신이 지킨 순전함의 정확성과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으로 인해 욥은 사람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에 욥은 천 리 밖으로 밀려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으로 하나님께 더 다가갔다.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을 느낀 욥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다. 그런 모습은 그가 일찍이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욥의 그 ‘자연스러운 발현’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욥은 자신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의 욥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데서 하나님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경지로 자신을 승화시켰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순종과 경외심을 헤아림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욥은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상처 주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신의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을 슬프게 하거나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신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에 욥은 여전히 똑같은 욥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께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에 명실공히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섰으며, 온전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켰으며, 초월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받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욥은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에게 참소당하고 시험당했으며,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의 손에 넘겨졌지만, 또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물리치고 굳게 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빛 속에서, 그리고 사탄의 감시와 해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너에게 간증이 있을 것이다. 그럼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 한 단계 한 단계 사역에서 저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을 얻고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었지요. 그분의 형벌이 저를 구원했습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이 임하여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되었고요. 바로 그분의 심판과 형벌로 보호를 받고 정결케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없고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 저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알지도, 구원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오늘날 저는 피조물로서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공의로운 심판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누릴 가치가 있기에 사탄에게 패괴된 피조물은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누려야 합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심판과 형벌도 있지만 크나큰 사랑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그 사랑을 깨달았어요. 이건 제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케 되는 것을 체험한 사람이 가는 길이자 말하는 인식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고, 베드로의 체험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마지막까지 체험하면 반드시 심판을 통해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지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렇게 많은 사역에서 진실한 체험을 한 사람들은 전부 그에게 탄복을 넘어선 경외심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의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을 보았으며, 그로 인해 그에게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경외심과 순종을 자아낸다. 그의 어떠함과 성품이 피조물과 같지 않고, 피조물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피조물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경외와 순종을 받을 자격이 있고, 사람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을 체험하고, 또 그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은 다 경외심을 갖게 된다. 그에 대한 관념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들, 즉 그를 아예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일말의 경외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른다고는 하나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천성이 패역한 자들이다. 그의 이러한 사역이 이루려는 성과는 바로 피조물로 하여금 창조주에게 경외심을 갖고, 그를 경배하며, 조건 없이 그의 권세 아래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역으로 이루려는 최종 성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심판하면 너희가 궁극적으로 얼마나 깨닫게 되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지위가 높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높여 주심을 누렸다고 말할 것이며, 지위가 없는 것은 너희의 출생이 미천하기 때문이고, 지위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과 베풀어 주심 때문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너희가 직접 하나님께 훈련받고, 하나님께 형벌과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하나님이 높여 주신 덕분이다. 또한 직접 하나님께 정결함과 불사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 덕분이다. 역대 이래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정결케 함과 불사름을 받지 못했고,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지 못했다. 지금 하나님이 너희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며, 너희를 정결케 하고 너희 속에 있는 패역을 드러내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를 높여 준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다윗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니 자랑할 것이 없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요구가 없다. 너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제게 지위가 있든 없든 저는 이제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제 지위가 높다면 그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이고, 제 지위가 낮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결정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달렸으니 저는 어떤 선택도,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서 살게 하셨으니 저는 당신의 권세에 오롯이 순종할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지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피조물일 뿐이니까요. 당신께서 저를 무저갱에, 유황불 못에 넣으신다고 해도 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쓰셔도 저는 피조물이고,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셔도 저는 피조물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온전케 하지 않으셔도 저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일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자, 당신께서 지으신 인류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저를 만드셨고, 오늘날 또 저를 당신의 손안에서 지배하시니 저는 당신의 도구, 당신의 부각물이 되길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당신의 손안에 있습니다.” 이러면 너는 지위 따위를 중시하지 않고 해방을 받게 된다. 그래야 너는 담대하게 추구해 나가고, 너의 마음이 그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게 된다. 사람은 거기에서 풀려나면 어떤 염려도 하지 않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그렇게 수년을 겪으며 보냈고, 인류는 연단과 형벌의 고난을 통해 풍상고초를 다 겪어 본 사람으로 거듭났다. 비록 과거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됨의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이 오랫동안 사람을 구원한 그 고심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차츰 자신의 야만성을 증오하는 한편, 길들이기 어렵고 하나님을 수없이 오해하며 하나님께 지나치게 바랐던 스스로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나간 일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은 사람이 새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은 날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몸이 건강해지면서 우뚝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줄곧 내 곁에 있었다. 그의 미소와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그렇게 감동적이었다. 그의 마음은 늘 그렇게 자신이 만든 인류를 염려하고 있었으며, 그의 두 손은 늘 처음처럼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 사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더 이상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한다. 또한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보며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친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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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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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이 바로 크고 흰 보좌의 심판 사역이다

3단계 역사의 취지는 전 인류를 구원하는 것인데, 바로 인류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 내는 것이다. 3단계 역사에서 비록 각 단계 역사는 그 목적과 의의가 다르지만 모두 인류를 구원하는 한 부분의 사역이며, 또한 인류의 필요가 다름에 따라 서로 다른 구원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 간의 관계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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