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창조한 인류를 땅에 두고 오늘날까지 인도하였으며, 또한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었다. 마지막에 그는 인류를 정복하고 철저히 구원하며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역, 즉 사람의 원래 형상과 모습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행한다.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세우고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킨다 함은 땅에서의 권병과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의 권병을 회복함을 의미한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피조물로서의 기능을 잃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가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기에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사역할 수 없었고, 피조물의 경외는 더더욱 받지 못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었으므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을 경배하며 사탄을 마음속 우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리를 잃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지은 의의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의의를 되찾으려면 반드시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고, 패괴 성품을 없애야 한다. 또한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되찾아 오려면 필히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을 조금씩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원래 기능을 회복시키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에 패역한 자식들을 철저히 멸하는 까닭도 사람이 하나님을 더욱 잘 경배하고 땅에서 더욱 잘 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지은 이상 사람이 그를 경배하게 할 것이고, 사람의 원래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이상 불순물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도록 철저히 회복시킬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권병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그를 경배하고 순종하게 하며, 그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그의 원수가 모두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의 모든 것을 사람 가운데 남기며, 그 누구도 대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그 자신의 나라이며, 그가 원하는 인류는 그를 경배하고 그에게 완전히 순종하며 그의 영광을 가진 인류이다.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지은 의의는 사라지고,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가졌던 권병은 없어질 것이며, 땅에는 더 이상 그의 나라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님을 거역한 원수들을 멸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영광을 얻을 수 없고,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지도 못할 것이다. 인류 가운데의 패역자들을 철저히 멸하고 온전케 된 자들을 모두 안식으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그의 사역이 완성되고 그의 대업이 이루어졌다는 표징이다. 인류가 처음의 모습을 회복하고, 각자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며, 자신의 본래 자리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은 땅에서 그를 경배하는 사람들을 얻고 그를 경배하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사역은 시대마다 서로 다르다. 네가 이 기간의 사역에 잘 순종했더라도 다음 기간의 사역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거나 순종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버릴 것이다. 하나님이 이 단계로 올 때 네가 따라왔다면 다음 단계로 갈 때도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시종일관 변함없이 순종해야 한다. 기분이 좋을 때만 순종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런 순종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내가 새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따라오지 못하고 과거의 견해를 고집한다면 너의 생명이 성장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말씀을 통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네가 순종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성령은 내가 말하는 대로 역사하므로 너희가 내 말대로 한다면 성령이 곧바로 너희에게 역사할 것이다. 나는 새 빛을 너희에게 보여 주고 너희 모두를 현재의 빛 속으로 인도한다. 네가 현재의 빛 속으로 들어가면 성령은 즉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누군가 인정하지 못하고 “저는 당신의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나는 네게 이제 길이 없으며 메마르고 생명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품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빛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부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더욱이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에게 역사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네게 역사한다면 너는 체험할 것이고,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역사한다면 너는 빨리 따라야 할 것이다. 현재의 빛을 따를수록 생명은 더 자란다.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령이 역사한 것이라면 너는 따라야 한다. 네가 체험하는 가운데 그의 체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면 더 높은 것을 얻게 되는데,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요, 생명이 성장하는 경로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종교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사역을 머리로 가늠할 필요 없이 바로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의 현재 사역이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할지라도 과거의 관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바로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예전에 어떻게 했든 현재 하나님의 사역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너는 고정 관념을 내려놓은 사람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지난날의 사역을 ‘잊어버린’ 것처럼 너 역시 ‘잊어버려야’ 한다. 현재는 현재이고 과거는 과거이다. 현재 하나님은 과거에 행한 사역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너도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종교 관념을 완전히 내려놓은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것에는 실제적인 행동과 살아 냄이 있어야 한다. 겉으로만 순종한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인 것에만 순종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것은 본래 같은 뜻이다. 하나님께만 순종할 뿐 하나님의 사역에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순종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만 아첨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서 어느 정도 얻는 것이 있고, 또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 새로운 사역 가운데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인정받은 사람이고, 온전케 된 사람이며,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옳은 사람이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성육신 기간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순종은 사람의 상상처럼 판단하지 않고 대적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에게 그의 말씀을 삶의 원칙과 생존의 토대로 삼고 절대적으로 말씀의 본질을 실행하여 그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를 요구한다. 성육신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요구는 그의 말씀을 실행하라는 것이며, 또한 그의 정상적인 면과 실제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이는 모두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한 사람은 모두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자기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하나님, 육신을 입은 하나님, 진리, 이 세 가지를 대할 때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춰야겠느냐? 말씀을 듣고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더없이 간단한 일이다. 말씀을 듣고 나면 마음으로 받아들이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계속 구하여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또 받아들인 후에는 순종해야 한다. 순종이란 무슨 의미냐?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말씀을 들은 후에 그걸로 끝이어서는 안 된다. 겉으로만 대답하며 공책에 적고 글자를 기억하고 귀로도 듣지만 마음에는 없다면, 막상 행동할 때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하고 공책에 적어 놓은 그 말씀들은 뒷전으로 하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니다. 진정한 순종은 마음으로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즉, 진실로 받아들이고, 임무와 명령, 미룰 수 없는 책임으로 여겨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고 그만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두 다리로 걸어온 길, 노력을 기울인 목표와 방향은 모두 네가 귀 기울여 들은 하나님의 요구이며, 네 손으로 행한 일, 네 마음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묵상한 것, 네가 치른 대가는 모두 하나님이 요구한 그 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곧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순종’에 내포된 뜻은 무엇이겠느냐? 시행하고 실행에 옮겨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를 종이에 적어 놓고 글로 남기지만 마음속에 그 말씀이 없고, 행동할 때가 되면 네가 생각한 대로 움직인다면, 겉으로 봤을 때는 그 일을 한 것 같지만 너 자신의 원칙대로 행한 것이라면, 이는 말씀을 듣거나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를 경시하는 것이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를 패역이라고 한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3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였는가(2)> 중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명대로 일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고,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려는지도 몰랐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하여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했을 뿐 많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노아는 명대로 행했지 사사로이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았고 두 마음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졌던 신념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대함에 있어 그토록 명쾌하고 단순했다. 노아의 본질, 즉 그 행위의 본질은 순종이다. 의심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개인적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다고 말씀하자 그게 언제냐고 묻지 않았고, 상세한 내용도 묻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왜 세상을 멸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대로 행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무엇으로, 어떻게 지으라고 명한 대로 그는 일일이 행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겠다는 태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 노아는 자신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냐?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얼마 후 세상을 멸할 것인지 물어보았느냐?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방주를 짓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하나님께 물어보았느냐? 아니면 노아 스스로 알고 있었느냐? 노아도 몰랐다. 그는 단순하게 순종하고 명령대로 행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율법시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하나 주겠다고 하자, 당시 아브라함이 뭐라고 했느냐? 그는 하나님이 말씀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태도였다. 그가 하나님을 판단했느냐? 비웃었느냐? 뒤에서 어떤 일을 꾸몄느냐? (아닙니다.) 이런 것이 바로 순종이며, 제자리를 지키고 본분을 지키는 것이다. 그의 아내 사라는 어떠했느냐? 사라가 하나님을 대했던 태도는 어떠했느냐? 의심하고 비웃었으며, 불신하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의 여종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보내는 얄팍한 수를 써서 결국 그렇게 많은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라는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하나님에게 의문을 가지고 불신했다. 사라는 왜 불신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과 배경이 있다. 우선은 아브라함이 너무 나이가 많은 데다, 자신도 이미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하나님이 한 말씀이 불가능하며 그저 아이들이나 속이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여 받아들이고 믿은 것이 아니라 거짓말, 농담으로 여겼다. 그것이 옳은 태도냐? 하나님 말씀을 사기꾼의 거짓말로 여기는 것이 창조주를 대하는 마땅한 태도냐? (아닙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장난으로, 사기꾼의 거짓말로 여기고, 진리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려는 일 또한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일련의 일들이 일어났다. 이는 모두 사람의 뜻에서 비롯되었고, 그녀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의 뜻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루시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내가 뭘 좀 해야겠다.’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오해와 판단, 추측, 의심이 들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바로 패괴 성품을 지닌 자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아브라함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축복을 내린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경외심과 충성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보고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하나 주어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려 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며, 사라에 대한 특별 혜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은 매우 중요하다. 순종에 의심이 들어 있느냐? 의심이 들어 있다면 과연 진실한 순종이라고 할 수 있느냐? 분석과 판단이 들어 있다면 순종이라 할 수 있느냐? (순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꼬투리를 잡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순종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실한 순종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태도와 행위, 드러냄은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진실한 믿음, 이것이 한 가지이다. 하나님이 한 말씀과 행한 일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옳고, 진리이므로 의심할 필요도, 남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고, 혼자 속으로 계산하거나 분석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한 부분의 순종이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옳다고 믿어야 한다. 만약 사람이 한 일이라면 어떤 사람이 했는지, 그 사람의 배경과 인품은 어떤지 알아보고 분석해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하나님이 한 것이라면, 즉시 입을 다문 채 그 어떤 의혹이나 물음표를 달지 말고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인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사람은 그 안에 있는 진리를 잘 모르고 하나님과도 거리가 있다. 비록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이 한 일이라고 인정도 하지만, 아직은 도리적으로만 이해하는 부분이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럴 때는 찾고 구해야 한다. ‘이 안에 어떤 진리가 있는 걸까? 내 생각이 어디가 틀렸을까? 하나님과의 거리는 어떻게 생긴 걸까? 나의 어떤 관점이 하나님 말씀과 맞지 않는 걸까?’ 이렇게 구하는 것이 바로 순종하는 태도이고, 실행이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순종한다고 말하지만 나중에 일이 임하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누가 알겠어요? 우리 같은 피조물은 간섭하지 못하니, 하나님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죠!” 이것이 순종이겠느냐? 이는 어떤 태도이냐?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것이며 하나님이 하는 일에 무관심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몇 가지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말씀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응한다는 것을 100%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의심하지 않고,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았으며, 그 어떤 얄팍한 수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순종의 태도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이 하나님께 가져야 할 태도> 중에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되지 않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보일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이해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드러났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때,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 ― 이삭을 바치라는 것 ― 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참으로 안심했고, 그를 진정으로 인정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람이 자신의 약속과 앞으로의 경륜을 맡아서 실행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비록 그 일이 시련과 검증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위안을 받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느꼈으며, 또한 처음으로 사람에게 위로를 받았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던 그 찰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더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삭의 생명을 가져갈 생각이 없었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바로 저지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순종은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 아브라함의 행동은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하나님은 자신이 하고자 한 일에서 결과를 얻었다.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그 결과에 만족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한 것, 보고자 기대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더냐? 비록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을 검증한다고는 하나,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진심임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무조건적인 것이었고, 이 ‘무조건’은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자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종하고자 했다. 그는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과 환난, 궁핍한 생활 역시 받아들였으며,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 아니겠느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 것 아니겠느냐? 형벌이든 심판이든 환난이든 너는 죽기까지 순종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경지이자,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한 요소이다. 사람이 이런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는 합당한 자격을 가진 피조물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은 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너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이다. 너는 진리가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자신에 대한 인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창조주를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할뿐더러 창조주께 순종하지도 않고 창조주를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천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창조주는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하는 것은 주로 네게 실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에게 순종할 수 있는지, 나아가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지와 관계된다. 네가 정말 이러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한다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뜻한다.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고, 판단도 비방도 하지 않으며, 관념도 다른 속셈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사람들이 경시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죽기까지 순종하고 전혀 관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참된 증거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하는 실제는 그가 하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실행하며, 실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패괴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이러한 말씀을 통해 그에게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에 네가 정복되어 그에게 완전히 순종한다면,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얻게 되며, 그것을 통해 사탄에게 수치를 주고 사역을 끝마칠 것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관념이 없다면, 즉 네가 그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너는 잘 증거한 것이다. 언젠가 네가 실제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되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종하게 된다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졌다고, 즉 온전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행하는 일이 네 관념에 맞지 않는 것은 너에게는 시련이다. 만약 네 관념에 맞는다면 고난을 겪을 필요도, 연단을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역이 너무나 실제적이고 너의 관념에 맞지 않기에 너는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너에게는 시련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제로 인해 모든 사람이 시련을 겪고 있다. 그의 사역은 초자연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다. 네가 실제의 말씀과 음성에 대해 분명히 알고 관념도 전혀 가지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역이 실제적일수록 더 참되게 그를 사랑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 즉 하나님의 실제를 아는 사람이자, 하나님의 실제 사역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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