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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 이행과 봉사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람의 본분은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도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라 한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이 변화되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지 화를 입든지 사람은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당할까 두려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거절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건성으로 대할 뿐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도태될 것이다. 그런 자는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아니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변화되지 않아서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는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악이 가득 차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일을 할 때 자신이 가진 장점, 은사, 기술을 쓰는 데 급급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오로지 상상, 관념, 본능에 따라 일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법이 없다. ‘본분을 이행 중이니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그런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일을 잘 해내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행동할 뿐이다. 이런 사람은 은사, 장점, 능력, 기술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냐?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힘만 쏟으려고 하고, 자신의 노동력과 기술을 쓰기 바쁘다. 특히 하나님 집에서 맡긴 사무적인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생각으로 임한다. 즉, 힘을 쏟는 데에 그치는 것이다. 입만 놀리고, 손을 사용하여 힘을 쓸 때가 있는가 하면 눈을 쓰거나 열심히 뛰어다닐 때도 있다.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힘만 쏟는 것일 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집에서 맡긴 임무를 재빨리 완수해서 리더에게 보고하여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바쁘다. 수많은 계획을 하나씩 늘어놓으며 제법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완수하였음을 보여 주기에 급급할 뿐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 놓고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만족스럽고 흐뭇할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함에 이를 수 있을지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계획과 기준을 세우든 그것이 진리와 무관하다면, 즉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거나 확인한 다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행동하거나 흐지부지하게 행동한다면, 힘만 쏟는 것이다. 즉, 자신의 생각, 은사, 재능, 기술에 의지해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어떤 결과가 있겠느냐? 일이 성사되어 나무라는 사람이 없고 스스로도 흐뭇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다. 둘째, 마음도 다하지 않았고, 뜻도 다하지 않았고, 힘도 다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진리의 원칙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그 일에서 90%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고, 진리의 실제에 들어갈 것이며, 네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일을 했음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마음을 쓰지 않고 제멋대로 일을 한다면 임무는 완수했다 해도 잘한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기준을 잡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나 진리에 부합하는 일을 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통틀어 ‘힘만 쏟는다’고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만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르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지도 구하지도 않고, 마음을 진리에 두고 힘쓰지도 않는다면, 그러니까 그저 머리로만 기억하고 손으로만 일하고 다리로만 뛰어다니면서 그 임무를 끝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할 때는 기준이 있다. 어떤 기준이겠느냐? 예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한 바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한 가지 요구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명을 줄 뿐이고,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할 뿐이다. 여기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마음은 다른 데 가 있거나, 머리로는 알면서 마음을 들이지 않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일을 해낸다면,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어떤 기준에 이르러야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느냐, 혹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했다고 할 수 있느냐?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이다.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선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되고 강렬할수록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떤 문제에 직면하든 진리를 찾지 않고, 자신의 관념이나 바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고, 타락한 성품의 지배 아래 행동한다. 그래서 주어진 본분을 이행하고도 진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본분을 이행한 것이냐? 진리를 따르거나 하나님께 의지해 본분을 이행한 것이 아니다. 그나마 알고 있던 콩알만큼의 진리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은사, 능력, 습득한 지식, 재능과 자신의 의지나 선의를 바탕으로 본분을 이행한 것이다. 천연적인 것과 상상, 생각, 지식, 학문을 바탕으로 본분을 이행해도 원칙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때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은 것 같지만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본분을 이행하는 내내 진리 대신 자신의 관념이나 의견을 고수하고,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결국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바로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가> 중에서

『베드로는 다듬어지고 연단받는 과정을 거쳐 온전케 되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겠나이다. 제가 하는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만을 원하나이다. 설사 형벌과 심판을 받을지라도 기꺼이 받겠나이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쳤다. 베드로의 사역과 말, 모든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체험할수록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커졌다. 반면 바울은 외적으로만 사역했다. 비록 그도 공을 들이긴 했지만 그것은 사역을 잘해서 상을 받기 위함이었다. 만약 그가 자신이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곧장 사역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마음에서 우러나 진실하게 사랑하고 현실적으로 닿을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자신이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성품이 변화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바울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사역하는 것에 치중하고 외적인 사역과 기여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정상인의 체험에 없는 도리적인 것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는 깊은 곳의 변화와 진실한 사랑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베드로의 체험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과 참된 인식을 갖기 위함이며, 또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실제적으로 살아 내기 위함이었다. 바울의 사역은 예수에게 받은 사명을 위한 것이자 자신이 얻고자 소망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것들이 그 자신이나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는 무관했다. 그의 사역은 전적으로 형벌과 심판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순결한 사랑을 추구했고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추구했다. 베드로는 여러 해 동안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그리스도에 대해 실제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순결했다. 여러 해 연단을 겪으며 예수와 생명에 대한 그의 인식도 높아졌다. 그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자발적인 사랑이었다. 그는 보수를 바라지 않았고 그 어떤 이득도 바라지 않았다. 반면 바울은 오랫동안 사역했지만 그리스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전혀 없었다. 그가 사역하고 열심히 뛰어다닌 것은 결국 월계관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최고의 면류관이지 가장 순결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는 자발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추구했으며, 본분을 이행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붙들려 어쩔 수 없이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추구한 것으로는 그가 피조물로서 합격임을 증명할 수 없다. 베드로야말로 피조물로서 합격이고 본분을 이행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바울이 한 사역은 교회에 공급하고 교회를 붙들어 주는 것이었지만, 베드로가 체험한 것은 생명 성품의 변화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네가 그들의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이가 누구이고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는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했고, 한 사람은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성품의 변화가 있었고, 한 사람은 성품의 변화가 없었다. 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을 섬긴 까닭에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았고,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숭상받았고 위대한 형상을 가졌다. 한 사람은 거룩해지기를 추구했고, 한 사람은 거룩해지기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더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순결한 사랑은 전혀 없었다. 한 사람은 진정한 인성이 있었고, 한 사람은 진정한 인성이 없었다. 한 사람은 피조물의 이성이 있었고, 한 사람은 피조물의 이성이 없었다. 이것이 바울과 베드로의 본질적인 차이다. 베드로가 간 길은 성공의 길이다. 즉, 정상적인 인간성을 회복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회복하는 길이다. 베드로는 성공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바울이 간 길은 실패의 길이다. 바울은 겉으로는 순종하고 헌신하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진리가 없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참고 설교: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지 않았거나, 생명 성품에 아무런 변화가 없거나,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열의만 가지고 복을 받겠다는 불순한 마음으로 힘쓴다면, 이는 봉사하는 것에 해당됩니다. 진리를 조금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생긴 사람,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인식한 사람, 하나님의 사역은 오로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이 싹튼 사람, 그런 사람만이 본분 이행에서 선행을 예비할 수 있고, 본격적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꺼이 모든 본분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가짐과 내적 상태는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본분 이행과 봉사의 차이입니다. 봉사한다는 것은 복을 받겠다는 마음과 열의에 휩싸여 본분을 조금 이행하는 것입니다. 본분을 올바르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에 눈을 떠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르고 참되게 본분을 이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집(2)ㆍ선행을 예비하는 것의 중요한 의의> 중에서

『생명을 중요시하고 백성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본분 이행을 마땅히 져야 할 책임으로 간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본분을 이행하며,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모든 행동이야말로 본분을 이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사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복을 받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힘을 좀 쓰면서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에 불순물이 너무도 많고, 양심이나 이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진리와 생명은 더더욱 추구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되기에는 자신의 본성이 너무도 악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포기하고 시종일관 소극적인 상태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이들이 한 모든 행동은 봉사하는 것에 해당되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고 스스로를 옭아매어 벌어진 결과입니다. 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인지, 봉사하는 것인지는 그 사람이 가는 길에 의해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을 중시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기 위해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며, 백성이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 같은 이상이 있는 사람이 바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반면, 진리가 없고, 자포자기하여 소극적인 상태로 살아가며 힘을 좀 쓰는 것으로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고 속이는 사람은 모두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양심과 이성이 결여되어 있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생명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진리를 추구할 의지가 없거나 생명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은 봉사자가 될 자격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본성이 악하기 그지없고,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까지 의심합니다. 이들의 간사함이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속이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자격을 갖춘 참된 봉사자이며, 이런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봉사자의 복도 상당히 큰 편이며, 진정한 봉사자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상부의 교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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