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외식하는 것이란?

관련된 하나님 말씀: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태도와 모습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진실한 면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둔 채 드러내지 않는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람이 얻은 이론들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입에 달고 다니는 글귀상의 도리가 되지 않겠느냐? 사람은 이렇듯 ‘올바른 것 같은’ 도리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포장한다. 그래서 그들이 설교하고 말하고 겉으로 행동하는 것들은 모두 올바르고 훌륭해 보이며,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경건하고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할 줄 알고 타인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전부 거짓된 것이고, 위장하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건성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고생을 마다치 않으며 헌신하는 것 같지만 뒤로는 교회 밥을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겉으로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과 행동은 전부 거짓된 것이다. 그런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이다. ‘바리새인’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이방인 가운데서 생겨났겠느냐?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났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들이 가는 길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를 무장하는 도구로 삼아 자신을 무장하고 그것을 밑천으로 밥벌이를 하며 밥을 얻어먹었다. 그들은 도리를 전했을 뿐, 실행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도를 행한 적이 없으면서 글귀나 도리를 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이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다. 그들의 그 소위 ‘좋은’ 행위와 모습, 버림과 헌신 등은 다 사람의 의지로 억누르고 꾸며낸 것으로, 전부 거짓된 것이며 위장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티끌만큼도 없고 심지어 경외심은커녕 참된 믿음조차 없다. 더 나아가 그들이 바로 불신파이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런 길에 들어서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이것이 끔찍하지 않으냐?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바리새인은 과거 이스라엘에서 일종의 직함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일종의 꼬리표가 되었느냐? 그것은 한 부류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냐? 구호만 외치고, 거짓과 포장, 위장에 능하다. 자신을 아주 고상하고 성결하고 올바르고 광명정대한 사람으로 가장하지만, 결국 진리는 전혀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행위를 하느냐?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하나님께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착한 행동을 하고 뒤에서는 제물을 훔쳐 먹는다. 예수는 이들을 가리켜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라고 했다. 바로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겉면의 좋은 행위라는 말이다. 그럴듯하게 구호를 외치고 고상한 이론을 떠들며 듣기 좋은 말만 하지만 정작 하는 짓은 엉망인데, 온통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뿐이다. 행위와 겉모습은 전부 거짓된 것이고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속으로는 전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싫어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의와 공평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느냐? (예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실 때 그들은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죄했습니다.) 그들이 정죄하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겠느냐? 예수가 사역하러 오기 전에는 어떤 일들에서 그들이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들의 행위를 보면 온통 가식적이다. 이런 가식적인 좋은 행위로 사람들을 속여 신임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허위적이고 간사한 것 아니냐? 이렇게 간사한 사람이 진리를 좋아할 수 있겠느냐? 그런 좋은 행위 뒤에 숨은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는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을 미혹하고 구슬려 사람에게 높임 받고, 마지막에는 상까지 받으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속임수이냐. 수완이 대단하지 않으냐? 그런 사람들이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겠느냐?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지위, 명리 그리고 포상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실행하지 않고, 그중 단 하나도 살아 내지 못한다. 그저 가장하고 포장하여 사람들을 기만하고 구슬리고, 자신의 지위와 명망을 공고히 할 뿐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자격을 만들고 밥그릇을 얻는다. 이것이 비열하지 않으냐? 이런 행위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본질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전혀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서 알 수 있느냐? 가장 큰 일, 예수가 사역하러 와서 한 말은 모두 옳은 말이고 진리인데, 그들은 어떻게 대하였느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아니면 옳은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옳은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그들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씀은 모두 옳고 어느 하나 틀린 데가 없고 흠잡을 데도 없다. 그러다가 아무런 약점도 찾지 못하자 예수를 정죄하려 하였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자. 그를 살리면 우리가 죽으니, 우리가 살고 그를 없애야 하느니라.”라며 음모를 꾸몄다. 이렇게 겨룬 것이다.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예수는 좋은 사람이고 법을 어긴 것도 율법을 범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예수를 정죄하려고 했겠느냐? 왜 예수를 그렇게 대했겠느냐? 그걸 보면 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악독한지 드러난다. 그자들은 너무나 악한 자들이다! 그 바리새인들이 드러낸 사악한 몰골은 그들이 겉으로 꾸며낸 선량한 모습과 너무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이 그 진면목과 가면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수의 현현과 사역으로 그들의 모습이 낱낱이 드러났다. 바리새인들이 평소에는 좋은 사람인 척하고 겉으로는 너무나 선량해 보이기 때문에 만약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진실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 실행이다> 중에서

‘거짓으로 꾸민다’는 말의 중점은 ‘거짓’이 아닌 ‘꾸밈’에 있다. 그럼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거짓으로 꾸미겠느냐? 무엇을 거짓으로 꾸미겠느냐? 물론 그의 거짓된 꾸밈은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위한 것이며, 이것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는 거짓으로 꾸미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행위가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혐오감을 일으키며 증오받는데 왜 그렇게 하겠느냐? 거기에는 분명 그의 목적과 동기가 있으며, 동기와 속셈이 들어 있다. 적그리스도가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얻으려면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겠느냐? 그는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행위와 모습을 꾸며 내는 것 외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꾸며 남들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교회에서는 영적인 척하는 사람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오래되었고 매우 영적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영적인 사람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좋아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사칭한 것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분명 좋아 보이고 대단해 보이며 귀해 보이는 부류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 사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사탄을 사칭한다면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겠느냐? 그가 불량배, 건달, 무뢰한을 사칭하고 음탕한 여자를 사칭한다면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겠느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자신은 바리새인이고 유다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인물, 나쁜 사람으로 보인다면 그는 절대 사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떤 사람을 사칭하겠느냐? 사람들 마음속에서 대단해 보이고 좋아 보이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을 사칭한다. 먼저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오래되고 영적인 체험과 간증이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이적과 기사를 체험한 사람들, 엄청난 이상(異象)을 보고 독특한 체험이 있는 사람들을 사칭한다. 또 사람들 가운데서 큰소리칠 수 있고, 2~3시간, 심지어는 더 긴 시간도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사칭한다. 그리고 일을 하는 방식과 방법, 원칙이 상대적으로 교회의 규정에 부합하는 사람을 사칭한다. 이 밖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 보이는 사람을 사칭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럼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영적인 사람을 사칭하겠느냐? 그 역시 그런 일들을 해서 영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가 하는 그런 일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는 겉으로 모방하고 규례를 지킨 것이다. 그가 한 일 중 일부는 사람들 눈에 옳은 행위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이 임했을 때 급히 기도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는 기도를 해도 형식만 따를 뿐, 사실 진심으로 구하거나 기도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크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일이 임할 때마다 기도할 뿐이다. 이 밖에, 몸이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에서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병은 약을 먹지 않으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약은 약대로 먹고 기도하십시오. 믿음을 갖고, 본분을 내려놓지만 않으면 됩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아닙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있으니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겉으로는 억지로 의연하고 두렵지 않으며 믿음이 가득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죽을 것처럼 무서워하면서 뒤에서 몰래 약을 먹고, 어디가 불편한 것 같으면 남들 모르게 바로 병원에 간다. 약을 먹다가 들켜서 뭘 먹었냐는 질문을 들으면 그는 “영양제를 먹었습니다. 이걸 먹으면 졸리지 않아서 본분을 이행할 때 지장이 없죠.”라고 말하고, 또 “병에 걸렸다는 건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병 안에서 살면 병이겠지만,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면 병이 아닙니다. 저는 병 안에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살면 이 병은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늘 이렇게 사람들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으로 남을 돕지만, 막상 일이 임하면 뒤에서 몰래 자신의 방법대로 해결한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한다고,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렸다고 말하지만, 사실 뒤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진실한 믿음이 없다. 일이 임하면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한다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됐으니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충성하고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데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병에 걸리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입으로는 감히 원망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께 의혹을 품고 하나님이 한 일이 꼭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그가 병에 걸려도 구애받지 않고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거짓으로 꾸민다고 하면 그 안에 불순물이 있는 것이고, 사람의 믿음과 순종, 충성심이 모두 거짓된 것이다. 그 안에 진실한 순종은 없고, 진실한 믿음도 없으며, 진실한 의지와 의탁은 더더욱 없다.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배치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또 자신의 패괴와 문제를 성찰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구애받지 않고 순종하며 믿음을 지니고 굳게 서는 모습을 꾸며내면서 속으로는 ‘내가 하나님께 혐오를 받아서 이런 병에 걸린 걸까? 하나님께 혐오받는다면 나는 이제 봉사자가 되는 것 아닐까? 하나님은 나를 힘만 쓰는 자로 이용하시는 것 아닐까? 내게 앞으로 결말이 있을까? 하나님이 이 일로 나를 드러내 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건 아닐까?’ 등을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영적인 사람인 양 꾸미고, 무슨 일이 임하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으니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는 입으로는 원망하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혹, 의문이 전부 밖으로 쏟아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결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본분을 포기한 것이다. 이것이 거짓으로 꾸미는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0)>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어느 곳에 가든, 어디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믿음이 가득하고 결코 소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어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을 대하는 그의 마음속 진실한 태도와 관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실, 그가 정말 진심으로 자기는 못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겠느냐? 정말 자기에게는 연약함이 없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럼 그는 자신에게 연약함과 패역,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겠느냐? 그 목적은 분명하다.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연약한 말을 하며 패역을 드러내고 자신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해가 되고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연약함과 소극적인 모습이 있으며, 자신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말을 죽어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자신 역시 패괴 성품이 있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고분고분 그 지위를 버리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쟁취하려 한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임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지만, 그랬다가 밑천이 드러나고 남들이 자신을 꿰뚫어 볼 것 같으면 급히 물러선다. 그 일에 여지가 있고,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있으며, 전문가인 양 굴 수 있고, 그 문제를 알고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는 재빨리 그 기회를 잡아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자신이 그 부분에 특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어떤 자리에서 누군가 그에게 그 일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의 관점은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는 가볍게 말하지 않고 모두에게 먼저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 그가 가볍게 말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관점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관점을 바로 말했다가 못난 꼴을 보이거나 문외한처럼 무게 없는 말을 하여 모두의 동조를 얻지 못할까 봐 겁내는 것이다. 이것이 한 가지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관점이 없어서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 또는 다양한 이유로, 그는 함부로 입을 열어 자신의 관점을 말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실제 분량과 관점을 드러내 자기 이미지에 영향을 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자신의 관점과 생각, 인식을 교제할 때, 그는 누군가의, 또는 어떤 사람들의 고매한 말, 상대적으로 근거 있는 말을 가져다가 자기 것인 양 종합한 뒤 모두에게 교제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 마음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다. 정말로 관점을 발표해야 하는 때가 오면 그는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를 모두에게 드러내 자신의 진실한 생각이 무엇인지, 자질이 어떠한지, 인성은 어떠한지, 이해 능력은 어떠한지, 진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지 등을 알게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허풍과 큰소리를 치며 영적이고 완벽한 사람인 양 위장을 하는 동시에 자신의 실제 모습과 분량을 애써 숨긴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형제자매들에게 드러낸 적도 없고, 자신의 부족함과 약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극력 숨겨 왔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으면서 하나님께 의혹을 품은 적이 없었습니까?”라고 하면 그는 “없었습니다.”라고 답하고, “가족이 죽었을 때 울었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니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하며, “당신은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으면서 그렇게 많은 것을 버리고 헌신했는데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몸이 아픈데 돌봐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슬프거나 집이 그립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는 자신을 더없이 강인하고 의지력이 강하며, 버리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람, 빈틈과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사람으로 포장한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어떤 단점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를 형제자매로 여겨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면 그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애써 변호하고 변명하여 그 국면을 만회하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네 말이 성립하지 못하게 하고, 네가 한 말을 거두게 하며, 결국에는 그에게 그런 문제가 없고, 그는 남들에게 완벽하고 영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 거짓으로 꾸미는 것 아니겠느냐? 자신이 완벽한 사람, 못 하는 것이 없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부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어째서 일괄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느냐? 완벽한 사람이 있겠느냐? 못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 못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겠느냐? 전능하다는 것 아니겠느냐? 이 우주 세상에 못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못 하는 것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전능하다. 그럼 만약 누군가 자신이 못 하는 게 없고 전능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바로 천사장이자 마귀이며, 사람들 속에 있는 적그리스도이다. 적그리스도는 못 하는 게 없는 척, 완벽한 사람인 척 사칭한다. 적그리스도가 스스로를 알겠느냐? (알지 못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 그럼 그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교제하겠느냐? (일부 외식하는 자들은 교제합니다.) 그렇다. 그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인식한 척 거짓으로 교제한다. 그럼 그 교제와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외식하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교제하는 이유는 남들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해서이고, 자신의 좋은 면을 치켜세우고 싶어서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패괴 성품을 교제하고 해부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스스로를 진실로 인식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여기에는 차이가 있다. 적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인식할 때, 모두가 공인하고 보는 일에서 자신을 위해 설명하고 변명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게 한 후에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또 그는 아무 잘못이 없으면서도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잘못을 인정하며 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가 이루려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그의 목적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지, 진실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부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이것이 무슨 효과겠느냐? 이는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남을 기만하는 것으로, 자신을 인식한다는 말과 행동으로 남들을 미혹하여 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0)> 중에서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좋은 행위, 좋은 말을 만들어 내고 규례들을 지키는 데 누구보다 능하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들이다. 또한,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뼛속에 있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의 본질이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이것들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올바른 추구와 동경이 아니라, 그저 표면적으로 좋아 보이고 옳아 보이는 것들이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또는 그의 본질과 성품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와는 정반대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표면적으로 남들과 이야기하고 일 처리를 할 때 매우 사근사근하고 겸손하며, 말할 때도 남을 상처 주는 법이 없다. 듣는 이에게 여지를 주고, 남의 단점을 까발리지도 않으며,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을 때, 그는 적시에 도움의 손을 내밀어 마음씨가 착하고 따뜻한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남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말로 도와주기도 하고 힘을 써 주기도 하며, 심지어는 금전적, 물질적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겉으로 볼 때 무척 좋아 보이지 않느냐?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고 교제하고 싶은 부류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남에게 어떤 위협이나 방해도 주지 않으며, 오히려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물질적인 도움, 사상 측면의 도움, 심지어는 생명 진입 측면의 규례적인 도움 등등을 말이다. 겉으로 볼 때, 이 부류의 사람은 나쁜 일을 저지르지도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방해하거나 교란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들 가운데 있든, 그가 있으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며, 그의 활동과 중재 아래에서 모두가 즐겁고 화목하며, 또 말다툼이나 분쟁도 없어 서로 잘 융합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가 있으면 모두들 어쩜 이렇게 사이가 좋고 친밀하냐고 생각한다. 반면 그가 없을 때 몇몇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서로 논쟁을 벌이고 배척하며 질투를 하고 투닥거린다. 그러다가도 그가 가운데서 중재하면 모두가 다툼을 멈춘다. 그는 사역도 매우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하는 사역이란 대체 무엇인지, 한 가지를 보면 똑똑히 알 수 있다. 그의 인도와 인솔 아래에서 사람들은 사교를 하는 법,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첨하는 법, 남들 앞에서 듣기 좋은 말을 하는 법, 진실한 말, 남을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가 교회를 무엇으로 변질시킨 것이겠느냐? 사회단체로 만들었다. 적그리스도는 형제자매를 이 길로 이끌어 놓고는 자신의 공로가 꽤 크다고, 자신은 형제자매를 위해 큰 공을 세웠고 큰일을 했으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늘 형제자매들에게 겸손하라고, 우아하게 말하라고, 앉아 있을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서 있을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하라고, 말할 때는 시선을 어디에 두고 옷은 어떻게 입으라고 가르친다. 또 그는 늘 어떻게 진리를 깨닫고 어떻게 진리의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규례를 지키고 좋은 행위를 갖추라고 가르친다. 그의 가르침하에서 사람들은 함께 있을 때 진리에 근거하거나 진리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무골호인의 처세 철학으로 지내며, 표면적으로 아무도 상처 주지 않고 누군가의 단점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와 마음속 말을 하거나 마음을 열고 자신의 패괴와 패역을 교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의 부족한 점과 과오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저 겉으로만 누가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렀더라, 누가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더라, 누가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이 되었더라, 누가 하나님 집에 큰 공을 세웠더라, 누가 감옥에 들어가 형을 선고받았더라 등의 이야기만 할 뿐이다. 적그리스도는 좋은 행위, 즉 표면적으로 겸손하고 인내하며, 남을 포용하거나 다양한 측면에서 남을 도와주는 행위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위장할 뿐 아니라,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이 좋은 행위를 남들에게 전염시키고 모방하게 하려고 한다. 그의 이 좋은 행위 배후에 숨겨진 목적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이야기할 때, 형제자매들 간에 패괴 성품을 발견하고 서로 책망할 때, 오직 그만이 겸손하고 인내하며 모두를 포용하고 누구도 책망하거나 훈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 어떤 사람의 단점도 폭로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잘 지낸다는 것을, 그는 교회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주목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위장된 행위이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0)>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눈앞의 상황을 모면하거나 스스로를 희생해 남을 돕기 위해 진리를 갖출 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공평무사’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진리의 허수아비로, 자기 자신은 진리의 주인으로 여기며, 진리를 잘 지키고 소극적이 되지 말라고 남을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진리의 글귀를 좀 갖췄다고 남들을 훈계하면서 자신은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으니 이보다 더 가련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그의 글귀가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면, 어째서 스스로는 돕지 못한단 말이냐? 이런 사람은 실제가 없고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 그는 진리의 글귀를 남들에게 공급해 실행하라고 하지만, 막상 자신은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다. 이런 자는 몹시 비열한 사람 아니겠느냐? 분명 자신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남에게 억지로 강요하며 실행하라고 하니, 이보다 더 잔인한 수단이 어디에 있겠느냐? 그는 실제로써 남을 돕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남에게 공급하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사람을 미혹하고 해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서 한 명 한 명 그렇게 물들다 보면 모두가 글귀만 말할 뿐 진리는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이 변화할 수 있겠느냐? 그는 자신의 문제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데, 어떻게 길이 있겠느냐?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실행할 길이 있다> 중에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다른 꿍꿍이를 부린다. 이들이 종교 바리새인과 다를 바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꺼이 진리를 실천하며, 양심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모든 일을 지혜로이 해결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원칙 있게 일한다. 이런 자들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말로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온종일 울상을 짓고, 능청스럽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니 정말 못 봐줄 노릇이다! “왜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마디도 못 하면서 말이다. 네가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겉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줘야 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성의하게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자들은 모두 위선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령의 감동이 없음에도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이들은 종교 의식과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그것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겉으로 보이는 경건함이나 슬픔의 눈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자들이 발전성이 있겠느냐? 어떤 자는 겸손해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말한다. 또 어떤 자는 순한 양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 아무 힘도 없는 양 행동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정말 그렇단 말이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활발하고 자유로우며,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또한, 정직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존엄성을 갖추어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새 신자들은 형식적인 것이 너무 많아 한동안 훈계와 깨뜨림을 받아야 한다. 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사람이다. 네가 매일 여기저기 복음만 전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데에만 급급해하면서 정작 자신은 규례와 도리 속에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종교 인사에 속하며 외식하는 사람이다.

종교인들은 함께 모이면 “자매님,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저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몇 마디, 몇 자의 말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힌 더러운 것을 뱉어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혐오스럽고 극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그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 거기엔 솔직함만 있을 뿐 거짓도, 체면치레도, 꾸밈도 없고 세속적인 규율도 없다. 하지만 겉면의 열정이 많고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은 누가 찬송가를 부르면 춤추느라 밥솥의 밥이 다 타 버린 것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함과 존귀함이 없고 너무나 경박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실제가 없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제할 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죄스러워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표면적인 열의나 행동이 아닌,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적인 좋은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육을 의미한다. 외적인 행위는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 사람의 성품만을 의미할 뿐, 생명을 의미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네가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다른 사람의 생명에 공급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영적인 것이라 여기겠지만, 사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의 기호가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성격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네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요, 너의 습관은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것들이다.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고 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겉으로만 행동을 취하는 것은 네가 누구보다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인 좋은 행위만 있을 뿐 실제가 없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냐?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요, 종교 인사이다! 외적인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한다면, 가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가식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이전: 2) 거짓 리더, 거짓 목자란? 거짓 리더와 거짓 목자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다음: 4) 불신파란? 불신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콘텐츠

1)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을 정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

사실은 이러하다. 땅이 없었을 때, 하늘에서 천사장이 가장 큰 천사였고 하늘에 있는 모든 천사를 관할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준 권병이었다. 하나님 외에는 그가 천사 중에서 가장 컸다. 후에 인류를 만들자 천사장은 또 땅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더 큰 일을 저질렀다.

2) 사탄은 타락한 천사로, 천지 만물을 창조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권병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사람이 늘 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내가 말세에 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였고 더 새로운 사역을 전개한 것은 모르고 어리석게 구주 예수의 강림만 계속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모두 나를 믿지 않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또한 거짓으로 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

1)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권병은 유일무이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영구불변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맞기는 하지만 이 말은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이 영구불변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이름이 바뀌고 사역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의 실질이 바뀌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영구불변한 것이다.

설정

  • 텍스트 설정
  • 테마

색상

테마

폰트

폰트 사이즈 조정

줄 간격 조정

줄 간격

페이지 너비

목차

검색

  • 페이지 내 검색
  • 도서 내 검색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