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 백성이란? 봉사자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지금의 상황은 예전과는 다르다. 나의 사역은 또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만큼 새로운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보고 생명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모두 나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다. 나의 나라에 있으니 내 나라의 백성이다. 내 말의 인도를 받았기에 백성이라고 불리지만, 이는 ‘아들’이란 호칭과 다를 것이 없다. 내 나라의 백성이 된 이상 모든 사람이 나의 나라에서 충성을 다하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나의 행정 법령을 위반하는 자는 모두 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이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 하는 충고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편> 중에서

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자는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즉, 시련 속에서 굳게 서야 한다. 나를 기만하고 내게 숨기면서 내 뒤에서 떳떳하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일률적으로 출교시켜 나의 집과 격리시키고, 나의 처분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이전에 나에게 충성하지도, 공경하지도 않은 자와 오늘날 또 나서서 공개적으로 나를 판단하는 자 역시 나의 집 밖으로 출교시킬 것이다. 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항상 나의 부담을 생각하고 내 말을 깨닫기 위해 추구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만 깨우쳐 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나의 깨우침과 인도하에 살게 되고, 형벌 또한 절대 받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부담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앞날만 중시하는 자들, 즉 모든 행위가 내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밥 빌어먹기’ 위함인 ‘비렁뱅이’ 같은 부류들은 내가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그자들은 천성적으로 나의 부담을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성도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그자들의 머리는 ‘영양’실조에 걸렸으므로 집으로 돌아가 ‘보양’해야 한다. 나는 그런 자를 쓰지 않는다. 나의 백성들은 저마다 반드시 나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을 자기 본연의 사역으로 여겨 끝까지 해 나가야 하고, 먹고 입고 자듯이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는 나에 대한 인식이 밥 먹듯이 ‘익숙’하고, 식은 죽 먹듯이 전혀 힘들지 않은 정도가 되어야 한다. 내가 한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확신을 가지고 철저히 이해해야지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나의 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는 나를 직접 대적하는 자이다. 나의 말을 먹지도 않고, 인식하려 노력하지도 않는 자는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이니 직접 내 집 문밖으로 깡그리 내칠 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 알짜이기 때문이다. 백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만이라도 내 말에서 나를 알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나머지 사람들을 도태시킬지라도 그 한 명만을 집중적으로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줄 것이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사람의 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나를 나타내고 살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밀(낱알이 꽉 차지 않았을지라도)을 원하지 가라지(낱알이 꽉 차고 사람들이 흡족해할지라도)는 원하지 않는다.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태만하기만 한 그런 자는 내 이름을 계속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자발적으로 떠나야 한다. 나는 그런 자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백성에 대한 요구는 잠시 이 몇 가지만 말하겠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다시 제재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5편>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점유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장담컨대 모두 절제함이 없이 제멋대로 구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생명을 중요시하는 사람이고, 영적 교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세상에 연연하는 허황된 사람이고, 생명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뿐이다.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온전케 하고 만들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는 사람은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시간이 아주 적고, 바깥일에만 정신없이 바쁘며, 생명 진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외식하는 자들로, 발전 전망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고 하나님과 진실한 교제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 집의 사람,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이라는 호칭은 어떻게 온 것이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이 호칭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고,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름으로써 어느 정도의 성품 변화를 이루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 집의 사람이 된다. 욥이나 베드로처럼 너는 더 이상 사탄의 박해나 패괴를 겪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집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것이다. 또 너는 더 이상 패괴 성품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너를 진정한 피조물이자 진정한 인류로 본다. 이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이 겪은 고난의 날들이 완전히 끝났으며, 기쁘고 평안한 날, 행복한 날이 왔음을, 창조주의 얼굴빛 속에서 살아가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9)> 중에서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사람을 완전히 온전케 할 것이다. 사람은 정복 사역 후에 연단과 환난으로 들어가게 된다. 환난 속에서 이겨 내고 굳게 서는 자는 최종적으로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그들이 곧 이긴 자이다. 환난 속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요구는 바로 그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연단은 마지막 사역이고, 전체 경영 사역이 끝나기 전에 받게 되는 마지막 연단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그 마지막 검증과 마지막 연단을 받아야 한다. 환난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성령 역사도, 하나님의 인도도 없지만, 진정으로 정복된 자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모두 굳게 설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인간성이 있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 이긴 자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든 이상을 잃지 않으며, 변함없이 진리를 실행하면서 증거를 잃지도 않는다. 그들이 바로 마지막에 대환난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표면적인 의미를 봤을 때, 사람의 언어적 이해에 기반해 따져 보면 봉사자는 임시직과 같다. 잠깐 어떤 업계나 일에 종사하는, 임시로 필요한 사람 말이다. 봉사자라고 불리는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의 경륜에서, 하나님의 사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부류이다. 그들은 하나님 집, 하나님이 사역하는 현장에 왔을 때,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이해하고 있는 것이 없는 문외한, 이방인이었다. 하나님 눈에 이방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님 집에 왔을 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과연 그들의 무엇을 필요로 하겠느냐? 사람은 패괴 성품과 본성, 본질 때문에 듣고 그대로 따르며, 하나님의 분부를 그대로 행하고, 하나님이 사역하는 만큼 따라갈 뿐이다. 또 하나님이 어디까지 말씀하면 거기까지만 알 뿐, 결코 이해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주동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모든 사역에 협력할 뿐이다. 네가 정말 주동적으로 움직인다면, 너는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동적’이란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려는지, 하나님이 네게 무언가를 시키는 의의와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너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너는 하나님 집에 와서 기계처럼 하나님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인다. 하나님이 네게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선포하여 심판할 대상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말씀할 대상이 필요하다. 또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네 은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냐? 정상 인성의 사유는 포함되느냐? 정상 인성의 사유를 지니고 있어야 하나님이 너를 쓸 수 있다. 만약 네 정신이 정상적이지 않다면 너는 봉사자로도 자격 미달이다. 또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사람이 지닌 기술과 특기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지닌 갖가지 기능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께 협력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포함된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바람, 그러니까 긍정적인 사물과 빛을 사랑하려는 소망이다. 정도를 보면 바람은 상대적으로 의지보다 좀 작지만,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바람이 있어야 비로소 조금씩 여러 가지 의지가 생기게 되는데, 의지는 좀 더 구체적이고 범위가 좁다. 바람이 포괄하는 범위는 그보다 넓다. 패괴된 인류에게 창조주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이 하나님 집에 오면 기계와 같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진리)과는 기본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방금 말한 이 몇 가지뿐이다. 첫째,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 갖춘 갖가지 은사이다. 셋째, 정상 인성의 사유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넷째, 사람이 지닌 각종 기능이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점으로,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려는 바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몇 가지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이 몇 가지를 갖추면 하나님의 사역과 경륜을 위해 힘을 쓰게 되며, 정식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된다. 즉, 정식으로 하나님 집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과 진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지니기 전까지는 봉사자 외에 달리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네가 봉사자가 되길 원해도 봉사자요, 네가 봉사자가 되길 원치 않아도 역시 봉사자라는 것이다. 너는 이 호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이는 “저는 평생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을 때부터 치면 그 기간이 수십 년은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봉사자란 말입니까?”라고 묻는데, 이 질문이 어떠하냐? 이는 누구에게 묻는 것이냐? 너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느냐? 지금 너는 힘만 쓰고 있느냐, 아니면 진리를 실행하고 있느냐? 너는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는 길에 올랐느냐? 진리의 실제에 진입했느냐?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느냐? 만약 네가 이러한 것들을 갖추었고 하나님의 시련 앞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면, 당연히 봉사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면 너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여전히 봉사자다. 이는 벗어날 수 없는 필연이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9)>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 집에 오면 처음에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저 각종 바람이나 협력하려는 의지만 있을 때,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봉사자뿐이다. 물론 ‘봉사’라는 말이 그리 듣기 좋지는 않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경륜과 사역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며 힘쓰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 또한 이해하지 못하며, 인류를 구원하고 경영하는 각 세부 사역 및 진리와 관련 있는 여러 사역에 대해 조금의 역량도 바치지 못하고, 어떤 협력도 하지 못한다. 그저 기능과 은사가 좀 있어 사무적인 사역에서 힘을 좀 쓰고 말을 좀 하며, 외적으로 애쓰는 형태의 사역을 좀 할 뿐이다. 본분을 이행하거나 하나님 집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사역을 하는 본질이 이런 것이라면, 그 사람은 봉사자라는 호칭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이는 하나님이 정의한 이 호칭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 사람이 힘을 좀 쓰고, 선천적인 재능이나 은사, 머리로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진리로 살아가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이렇게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다른 이의 인도와 하나님의 깨우침, 또한 징계가 있어야 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이 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목표에 도달하는 동안 대다수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뿐이다. 첫째,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둘째, 특정한 은사를 지녔다면 하나님의 집에서 어느 정도 쓸모가 있다. 셋째, 정상 인성의 사유를 갖췄다면 어떤 사역을 맡겼을 때 이해하고 행할 수 있다. 넷째, 특정 기능을 지녔다면 하나님 집의 어떤 사역에서 네 특기를 발휘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다섯째,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봉사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힘을 쓸 때, 말씀을 듣고 따르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도망가지 않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을 것이며, 온 힘을 다해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자제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대다수 사람의 모습이자 상태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9)> 중에서

‘봉사’라는 단어가 고상하게 들리지도 않고 모든 사람의 바람에 부합하지도 않겠지만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지 봐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의 존재도 특별한 의미가 있고, 이들이 하는 역할 역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봉사자의 역할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선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온전케 하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다. 이들이 힘을 쓰든, 어떤 사역을 하든, 혹은 어떤 직무를 맡든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이냐? 높이 요구를 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충성스러운 봉사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봉사자도 충성을 다해야 한다. 네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하나님이 어떤 이유로 너를 택했든 너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사명에 대해, 네가 맡은 사역에 대해, 이행할 본분에 대해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봉사자가 충성을 다한다면, 그래서 하나님을 흡족게 한다면, 어떤 결말을 얻을 수 있겠느냐? 살아남을 수 있다. 봉사자에게 있어 살아남는 것은 복이 아니냐? 살아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 복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지위 면에서 하나님의 선민과 좀 다르고 차이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봉사자가 금생에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민과 같지 않으냐? 최소한 금생에 누리는 것은 같다. 이는 너희도 부인하지 않겠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공급, 축복을 누리지 못한 자가 있느냐? 누구나 풍성하게 누렸다. 봉사자의 신분은 봉사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이들도 피조물의 일원이며, 그저 이들이 맡은 역할이 봉사자일 뿐이다. 피조물의 일원으로서 봉사자는 하나님의 선민과 차이가 있느냐? 사실상 차이는 없다. 명칭과 본질, 맡은 역할에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불평등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들을 봉사자로 정했겠느냐? 이에 대해 너희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봉사자는 이방인 가운데서 온 자들이다. 이방인 가운데서 왔으니 이들의 본바탕은 좋지 않다. 이들은 전부 무신론자들이다. 이들의 본바탕을 말하자면, 이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로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데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이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말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하나님이 왜 그런 요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다.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에게는 앞서 말했던 생명이 없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갖췄겠느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이나 인식을 갖췄겠느냐?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봉사자의 유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0> 중에서

봉사자라는 이 호칭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차별적인 호칭이겠느냐? 하나님이 일부러 이 호칭으로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드러내거나 사람에게 시련을 주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 호칭으로 사람에게 인간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하려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에게 이런 의도가 있겠느냐? 사실 하나님에게는 이런 의도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고 깎아내리고 비방하려는 의도가 없으며, 이 단어로 사람에게 시련을 주려는 의도도 없다. 유일한 뜻이 있다면 바로, 이 호칭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과 본질, 그리고 하나님이 사역하는 이 기간에 인류가 수행하는 역할, 인류가 할 수 있는 일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 근거하여 정하고 생겨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하나님 집의 모든 일원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며, 한때 이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렇다! 하나님은 이 호칭으로 누군가의 적극성을 꺾으려는 의도가 없으며, 이 호칭으로 너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검증하려는 의도도 없다. 또한 이 호칭으로 너를 깎아내리고, 네가 솔직해지도록, 말을 잘 듣도록, 자신이 어떤 신분이고 지위인지 알도록 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으며, 나아가 봉사자라는 이 호칭으로 인류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권리를 박탈할 의도도 없다. 이 호칭은 전적으로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드러낸 내적 상태와 본질,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 과정에서 처한 상황에 근거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호칭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끝난 후에 사람이 어떤 신분, 어떤 명의, 어떤 지위, 어떤 종착지를 얻을지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이 호칭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경륜과 경영 사역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의 경영 사역 중 인류가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가 봉사자로서 하나님 집에서 애쓰고, 기계처럼 쓰이는 이 상황이 끝까지 지속될지, 아니면 중간에 좋게 바뀔지는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성품 변화를 이루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봉사자라는 이 호칭에서 철저히 벗어날 것이다. 봉사자라는 호칭에서 벗어나면 무엇이 되겠느냐? 하나님을 진실로 따르는 자,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 그러나 만약 이 과정에서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겪으며 힘을 쓰는 데만 만족할 뿐, 진리를 추구하거나 실행하지 않으며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집의 원칙대로 행하지 않아 마지막에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다면, 봉사자라는 이 호칭, 이 ‘월계관’은 네 머리에 너무도 잘 맞을 것이며, 너는 영원히 이 호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 시점에도 네가 여전히 이런 내적 상태이고, 성품이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면, 너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 호칭과 인연이 없는 것이다. 너는 영원히 봉사자이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너희는 이해가 되느냐?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면,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을 모두 구원하고 나면, 하나님의 사역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하나님은 더 이상 말씀하거나 사람을 인도하지 않을 것이며, 인류에게 어떤 구원 사역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때 그 순간에 하나님의 사역은 끝나니,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걷는 것도 거기서 끝나지 않겠느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겠느냐? 하나님이 그의 사역이 그 시점에서 끝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형벌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더 이상은 행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너를 깨우치거나 인도하지 않을 것이고, 간곡하게 충고하거나 책망하고 훈계하는 말씀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만물의 결말이 그 시점에서 드러나고, 인류의 결말 또한 그 시점에서 정해진다는 뜻이다. 누구도 그것을 바꾸지 못하며, 네가 구원받을 기회도 사라진다. 바로 이런 의미이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9)> 중에서

이전: 3)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실행해야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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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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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떻게 해야 진실로 자신을 알 수 있는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 끝까지 견디기만 하면 주님이 오실 때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옳은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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