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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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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떻게 자신의 사탄 본성과 사탄 성정을 인식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154. 자신을 알려면 자신의 패괴된 실질을 인식하고, 자신의 치명적인 부분을 인식하며, 자신의 성정과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씩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는 것, 집에서든 밖에서든, 혹은 예배드릴 때,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혹은 너에게 일이 임할 때마다 유로되는 너의 속셈과 관점 및 갖가지 일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이런 일들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하는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발췌

155.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관점, 우리의 사상 속의 어떤 것이 하나님과 적이 되는 것이고, 어떤 것이 전혀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진리가 없는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의 교만과 독선을 인식하거나 사람의 거짓말과 궤사를 인식하는 이런 것은 패괴 성정 중에서 사람이 인식하기 쉬운 방면이다… 하지만 사람의 사상 관점은 인식하기 어렵다. 이것은 성정 그 부분보다 인식하기 어려우며 이것은 깊이 뿌리박힌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행위, 네 겉면의 행실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때에도 너의 사상과 관념과 관점에, 네가 받아들인 전통문화 교육에 아직도 파헤쳐 보지 못한 하나님과 적대되는 많은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과 적대되게 한 깊이 뿌리박힌 근원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인식하려면 자신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156. 자신을 인식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실제 정형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정형을 알려면 가장 주요하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장악해야 한다. 시기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어떤 주요한 것에 지배를 받는데, 마음과 생각을 잡아내면 배후의 것도 잡아낼 수 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데, 그 마음과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 출발점은 무엇이냐? 그 마음과 생각은 어떻게 생긴 것이냐? 어떤 것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냐? 그 마음과 생각은 어떤 성질에 속하느냐? 사람의 성정이 변화된 후에는 변화된 그 부분에서 생기는 마음과 생각, 속으로 바라는 것이나 추구하는 관점은 다르다. 네가 아직 변화되지 않은 그런 것, 철저히 인식하지 못한 그런 것, 진리를 체험하지 못하여 대체하지 못한 그런 것, 그런 마음과 생각은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하다. 지금 사역을 몇 년 동안 체험한 사람은 이런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느낌과 의식이 있지만, 체험한 시간이 짧은 사람은 이런 일에 대해 아직 인식하지 못하여 지금도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른다. 도대체 자신의 치명점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쉽게 넘어질 수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너희는 지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지만 자신은 오히려 느끼지 못한다. 평소에 생각이나 속셈이 좀 있어도 스스로 확실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그런 일의 실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너는 어떤 방면에서 깊이 인식할수록 그 방면에서 변화가 있게 된다. 그래야 하는 일이 비로소 진리에 부합될 수 있고,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 이렇게 추구해야 효과를 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늘 요구하는 사람은 가장 이지 없다>에서 발췌

157. 사실, 어느 방면을 실행하든, 진솔한 사람이 되거나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훈련하거나 어떻게 형제자매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정상 인성에 진입할 것인지, 어느 방면을 추구하든 매일의 삶 속에는 각 방면이 다 있고 다 관련될 수 있다. 하지만 각 방면은 자신을 인식하는 문제에 관련된다. 진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자신을 인식하는 문제와 관련되지 않느냐? 네가 자신이 궤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야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고, 자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야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실행하거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순복할 것인지를 찾고 구하게 될 것이다. 네가 자신을 모르는데 너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거나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빈말이다.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에 어느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든 그리 쉽지 않은데, 모두가 사람의 이 패괴 성정 속에서 각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네가 각 방면의 진리를 실행할 때, 너의 패괴 성정 속의 것과 패괴 성정 속의 각 방면이 틀림없이 유로되어 네가 진솔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며, 또한 형제자매들을 인내하고 포용하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인식하지 못하고, 해부하지 않고 파헤치지 않고 자신의 상상으로 진리를 실행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진실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든, 어떤 일을 하든, 먼저 자신을 인식해야 하고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이나 자신의 생각, 자신의 속마음, 자신의 관념과 상상, 심지어 세상에서 온 처세 철학이나 사탄에게서 온 그런 독소, 혹은 학교 교육에서 온 지식 문화를 인식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반드시 해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인식하려면 자신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158.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가 모두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모두 자신을 파헤쳐 해부할 수 있고, 이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대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틀림없이 수확이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자신을 인식하는 이 일에서 점차 깊이 진입할 것이고, 깊이 진입하는 동시에 진리를 실행하여 갈수록 진리가 있게 되고,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 실제가 우리의 생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자신을 인식하는 이 일에서 진입이 전혀 없다면, 진리를 실행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네가 많은 외적인 현상에 가려져 자신의 행위가 좋아졌다고 느끼고, 자신이 이전보다 정상적이 되었다고 느끼며, 자신이 이전보다 온화해졌고, 남을 생각해 줄 줄 알고, 포용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을 인내하고, 관용할 줄 알게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너는 자신이 이미 아주 좋고, 완벽하고,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네가 하나님의 요구 기준과는 아직도 거리가 아주 멀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인식하려면 자신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159. 연합하여 ‘자신을 인식하고’ 함께 단결하여 큰 붉은 용을 배반할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나의 뜻이다. 관건은 사람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에 있지 않고 뭇 자민이 일체가 될 수 있는지에 있다. 그래야 진실한 간증이 생길 수 있다. 이전에 사람은 다 자신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말을 부지기수로 해도 너희는 모두 어떻게 인식했느냐? 지위가 있는 자일수록 자신을 내려놓기 더 어렵고, 또한 바라는 것이 클수록 형벌 속에서 받는 고통이 더 큰데, 이것은 사람에 대한 나의 구원이다. 알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37편 말씀>에서 발췌

160. 너는 자신에게 아직도 어떤 불결한 것들이 있는지 늘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사람의 종교 관념, 속셈, 소망, 독선, 오만 같은 이런 것은 다 불결한 것인데, 네가 하나님이 밝힌 모든 말씀에 대조하여 자신에게 어떤 종교 관념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참으로 인식해야 벗어 버릴 수 있다. …성령의 현실적인 말씀만 추구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다. 성령의 그때그때의 빛을 추구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아직도 어떤 관념과 속셈들이 있는지를 인식하고, 어떤 것들이 사람의 독선적인 것인지, 어떤 것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이런 것은 다 네가 인식한 후 벗어 버려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161.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생명 성정도 절대로 변화되지 못한다. 자신을 어느 깊이까지 인식해야 하는데, 바로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 안에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그런 것들은 어디에서 생겼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리고 네가 그런 것들을 정말 증오할 수 있는지, 자신의 추한 영혼과 사악한 본성을 보았는지 하는 것이다. 정말로 자신의 진상을 보게 된다면,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게 된다.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을 때 네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면, 그때는 육체를 배반할 수 있어 진리를 실행할 힘이 생기고 힘들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주로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에서 발췌

162. 사람 본성 안에 있는 것은 겉면의 일부 행위와 수단 혹은 마음과 생각을 다루면 끝나는 것과는 다르다. 본성 안에 있는 것은 조금씩 파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발견했다고 해도 변화되기 쉽지 않기에 반드시 심도 있게 인식해야 한다. 왜 늘 사람의 본성을 해부하겠느냐? 너희는 내가 본성을 해부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느냐? 패괴 성정의 유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모두 본성에서 오는 것이고, 본성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의 하나하나의 패괴 성정, 하나하나의 마음과 생각, 하나하나의 속셈 모두는 본성에 관련된다. 그러므로 직접 너의 근원을 파헤친다면 사람의 패괴 성정이 해결되기 쉽지 않겠느냐? 그럼 해결되기 쉽다. 본성이 비록 변할 수 없을지라도 사람이 유로한 이런 패괴 성정을 사람이 인식할 수 있고 진리에 결부시켜 완전히 인식할 수 있으면, 사람의 성정이 점차 변화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에서 발췌

163.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너는 자신이 한 것이 좋다고 여기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한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거기에서 더욱 자신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속에 도대체 어떤 불순물이 있는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는 것인지를 깊이 파헤쳐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바울을 놓고 말하자면, 바울은 지식이 매우 많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사역을 하고 나서 어떻게 여겼느냐? 그는 이미 자신을 위해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여겼다. 그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해부할 수 있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의 겉면의 행위, 좋은 행실이나 자신의 상상으로 좋다고 여긴 것에 그의 심령이 속임당했고, 그의 진면목이 감추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드러내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계속 바울을 목표와 푯대로 삼았고, 바울이 자신들이 동경할 대상, 추구할 대상, 모방할 대상이라고 여겼다. 바울의 사례는 지금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에게 경고를 준다. 즉, 자신이 한 것이 아주 좋다고 여길 때, 자신이 어떤 방면에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생각할 때, 또는 자신이 변화될 필요가 없고, 훈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이런 부분에서, 더욱더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본래 좋다고 여기던 부분에서는 틀림없이 그것을 파헤치지 않고, 그것을 중요시하지도 않고, 거기에 도대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있는지를 해부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인식하려면 자신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164. 너의 행위마다, 네가 일을 처리할 때마다, 어느 방면으로 하고 목표는 무엇인지, 사실 너의 사상 관점에 의해 이미 네가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할지가 결정되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잘 위장하여 그렇게 하지 않고, 혹은 아주 잘 덮어 감추고 아주 잘 포장하여 그렇게 하지 않기에, 겉으로는 아주 좋은 것 같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어떤 말도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사상 속에 깊이 뿌리박힌 것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폭로하려는 것이자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흔히 어떻게 여기느냐? ‘우리는 말을 해도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아주 순결하고 아주 이지적이며, 우리의 행위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고, 혹은 우리가 본분을 함에 있어 겉보기에 이미 아주 합당하고 적합하여 흠잡을 데가 없는데, 그럼 우리가 자신에게서 뭘 더 인식해야 합니까? 우리가 자신을 더 인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부분일수록 더욱 자신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고, 더욱 자신을 인식해야 하며, 더욱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 말씀을 하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인식하려면 자신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165.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것, 심지어 우리가 스스로 긍정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 안에 나열해 놓았고, 정상 인성에 나열해 놓았으며, 긍정적인 것에 나열해 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기에 그런 것은 혐오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한 진리와 거리가 얼마나 멀까? 이것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사상 관점에서 우리의 행실, 우리가 받은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는 다 우리가 깊이 파헤치고 깊이 해부할 가치가 있다. 어떤 것들은 사회 환경에서 온 것이고, 어떤 것들은 가정에서 온 것이며, 어떤 것들은 학교에서 온 것이고, 어떤 것들은 책에서 온 것이며, 또 어떤 것들은 우리의 상상과 관념에서 온 것이다. 이런 것들이 가장 무서운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에 의해 우리의 언행이 속박당하고 통제당하고 있고, 우리의 사상이 통제당하고 있으며, 우리가 일하는 동기, 속셈, 목표도 통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것을 파헤치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고, 영원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할 수 없다. 네 안에 자신의 사상 관점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여 원래대로 실행할 수 없다. 너는 틀림없이 속으로 다시 가공한 다음 실행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하고 또 그대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데, 사람의 것을 섞고 하나님의 것을 섞고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됐어, 진리를 실행했어. 이제 깨달았어. 모든 것이 다 있어.’ 말해 봐라, 사람의 정형이 가련하지 않으냐? 무섭지 않으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인식하려면 자신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166. 성정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너희는 아느냐? 바로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어떻게 인식하겠느냐? 인식한다는 것은 사실 영혼 깊은 곳의 것, 곧 너의 그 생명 안의 것, 원래 네가 살면서 근거로 하고 있는 그 사탄의 논리와 사탄의 많은 관점, 즉 네가 살면서 의지하고 있는 그 사탄의 생명을 해부하는 것이다. 네 영혼 깊은 곳의 것을 파내야만 너의 본성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파내겠느냐?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파내지 못하고 해부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에 너는 일을 다 하고 난 후에도 인식하지 못하는데, 아마 3년, 5년 후에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거나 인식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본성을 알려면 반드시 몇 가지 방면을 통해 알아야 한다. 우선 네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네가 무엇을 먹기 좋아하고 무엇을 입기 좋아하는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부러워하는지, 어떤 것을 숭배하는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중요시하는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 안에는 사람이 좋아하는 공통성이 하나 있다. 즉, 사람들은 겉으로 사람들이 모두 특별히 부러워하는 것, 화려한 것, 매우 호화스러운 것, 겉으로 특별히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좋아하는데, 모두 이런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은 모두 높고 크고 눈부시고 화려하고 고귀한 것인데, 사람은 모두 이런 것을 우러러본다. 보다시피, 사람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고 사람의 참된 모습이 없다. 이런 것을 우러러보는 것은 전혀 의의가 없지만, 사람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167.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몇 가지 방면에서 인식해야 하느냐? 그리고 그 몇 가지 방면에서 유로된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 취향으로 본성을 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춤을 매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유명한 가수나 배우를 매우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특히 어떤 인물을 숭상한다. 이런 것에서 보면, 그들의 본성은 어떤 것이냐? 간단히 예를 더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유명 가수를 특별히 숭상하는데, 어느 정도로 숭상하느냐? 그 가수의 일거일동과 말하고 웃는 것까지, 말 한마디, 몸 동작 하나에까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매우 신경을 쓴다. 심지어 그 가수가 어떤 것을 입고 쓰는지도 사진으로 남기고 또 모방하기까지 한다. 이 정도로 숭상하면 그 사람에게 어떤 본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느냐? 마음에는 온통 그런 것뿐이고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탄이 유로(역주: 흘러나옴)한 것인데,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였다. 마음을 다 그런 것에게 준 것은 무슨 문제일까? 그러므로 어떤 것을 너무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될 수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을 점유할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완전히 증명된다. 그런 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자이고, 마귀를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의 본성은 마귀를 사랑하고 마귀를 숭배하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런 자의 본성을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으냐? 완전히 정확하다! 사람의 본성을 이렇게 해부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특히 바울을 숭배한다. 겉으로 설교하고 사역하고 모임하고 강연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는 걸 좋아하며, 사람들이 자기를 숭상하고 에워싸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자기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자기 형상을 중시하게 만드는 걸 좋아한다. 우리는 보여지는 이런 것에서 그 사람의 본성에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였느냐? …만약 그에게서 정말 이런 것들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교만 자대(自大)하고, 하나님께 전혀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또한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관할하고 점유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자리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에서 매우 두드러진 것은 교만자대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본성이 아니냐? 나타나는 이런 표현에서 그의 본성을 완전히 간파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168. 사람의 본성을 인식하는 데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에서 그 사람의 본성을 보는 것이다. 마귀에게 속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그의 좌우명은 주로 사탄의 말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것과 같은 것인데, 모두 세상의 마왕, 위인, 철학자들의 말이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 특히, 중국 사람들이 ‘성인’으로 떠받드는 공자의 말은 대부분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그리고 불교나 도교의 명언, 저명한 인물이 늘 말하는 그런 명언은 모두 사탄 철학과 사탄 본성의 종합이자 사탄 본성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고 해석이다. 인류의 심령에 주입된 그런 독소는 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전혀 없다. 그런 허튼소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 적대되는 것인데, 이것으로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사람을 해치는 모든 부정적인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오는 것임을 완전히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으로부터 그 사람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와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분투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당신은 세상에서 그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면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는데 주로 어떤 명언으로 살았어요?”라고 물으면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자면, ‘관직에 있으면서 뇌물 준 사람을 해하지 말고, 아부 없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거예요.”라고 할 것이다. 이 말이 그 사람의 본성을 대표하지 않느냐? 한자리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 그의 본성이 되었고, 그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의 삶, 일 처리, 사람의 처세에는 또 많은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어 거의 다 진리가 전혀 없는데, 예를 들면 사람의 처세 철학, 사람의 성공 좌우명, 일 처리 수단 등이 있다. 사람마다 큰 붉은 용의 독소로 가득한데, 그것은 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뼛속에, 핏속에 흐르는 것은 전부 사탄의 것이다. 세상에서 성취한 사람이라면 다 자신만의 성공의 길과 비결이 있다. 그 비결이 더욱 그 사람의 본성을 대표하지 않느냐? 그런 자들의 본성은 너무 교활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그렇게 큰 자리에 앉고 그렇게 큰일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 교활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본성은 너무나 음험하고 악독하여 무슨 짓이든 다 저지를 수 있다. 사람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사람마다 핏속에는 사탄의 독소가 흐르고 있다. 보다시피, 사람의 본성은 다 패괴되어 사악하고 반동적이며, 다 사탄의 철학으로 가득 차 있고 푹 젖어 있어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본성을 해부한다면 모두가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169.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무엇을 숭상하는지,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마음속으로 매일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것은 너의 본성을 대표한다. 이것은 너의 본성 안에 불의를 좋아하는 요소가 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심한 자는 본성이 아주 사악하여 구제 불능이다.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해부해야 한다. 이것은 너의 삶 속에서 네가 좋아하고 네가 버리는 것이 모두 무엇인지에 달렸다. 아마 네가 일시적으로 누구를 좋게 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네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네가 참으로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너의 본성 안의 것이다. 설사 너의 뼈를 부러뜨릴지라도 너는 그것을 좋아할 것이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본성 안에 있는 사람의 취향을 파내려면 본성 안의 것에 속하는 기타 각 방면을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일을 보는 관점, 삶의 방식과 목표,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무엇인지, 또한 진리에 관련된 모든 관점과 견해, 이런 것은 다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것인데, 성정 변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170. 사실, 많은 사람의 좌우명은 다 사람의 본성을 대표하고, 사람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말을 할 때마다 아무리 위장을 해도 그 본성은 감추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솔직한 말을 전혀 하지 않는 데다가 위장술도 뛰어나다. 하지만 그런 자와 오래 지내다 보면 사람들은 그 사람은 본성이 매우 궤사하고 전혀 진솔하지 않은 사람임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고, 장기간 같이 지내다 보면 사람의 본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저 사람은 전혀 솔직하지 않아! 정말 궤사한 사람이야.’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한마디는 그 사람의 본성을 말하고 있다. 즉, 그 사람의 본성에 대한 증거가 되고,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의 처세 철학은 어떤 사람과도 솔직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어떤 사람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사람의 본성을 대표하지 않느냐? 사람의 사탄 본성에는 많은 철학이 있다! 어떤 때는 너 스스로도 알지 못하지만 너는 시시각각 그런 것으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아주 맞고 일리가 있으며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탄의 철학이 사람에게는 진리가 되어 사람은 완전히 사탄의 철학대로 살고 있고, 거기에서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 속에서 사탄의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유로(역주: 흘러나옴)되고 있으며,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사탄 철학대로 살고 있다. 사탄의 본성이 바로 사람의 생명인 것이다. 본성이란 무엇일까? 충분히 말로 요약하여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에는 교만자대하고 남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하는 것이 있고, 재물을 위해 목숨도 서슴치 않는,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있으며, 또한 궤사하고 간교하여 어디에나 기만하는 것이 있고, 사악하고 더럽기 그지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다 사람의 본성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사람의 본성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다면 자신의 본성에 대한 인식이 있을 것이다. 네가 자신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171. 사람의 본성 안에 있는 것은 시시각각 유로되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의 본성은 유로하게 된다. 사람은 범사에 자신의 속셈과 목적을 갖고 있다. 대접하든, 복음을 전하든 아니면 어떤 사역을 하든 부지중에 본성에 있는 것을 유로하게 된다. 본성은 사람의 생명이기에 사람은 살면서 모두 본성의 지배를 받는다. 본성의 유로는 결코 우연한 일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완전히 그 사람의 실질을 대표한다. 사람의 뼛속에서, 핏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다 본성의 것을 대표하고, 그 사람의 생명을 대표한다. 어떤 사람은 미녀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지위를 매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와 자신의 형상을 매우 중요시하며, 어떤 사람은 어떤 우상을 매우 좋아하거나 숭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매우 교만자대하면서 속으로는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전력을 다해 지위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관할하기 좋아하는데, 이런 등등의 각종 본성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본성에는 바로 이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공통성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172. 본성의 것은 잠시 연약하여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관된 삶이라 어떻게 해도 모두 그런 비린내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든 그 본성의 것을 가지고 있다. 설사 뚜렷하게 유로되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그 속에는 뒤섞임이 있다. 예를 들면, 궤사한 사람이 한순간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라도 사실 그 말 속에는 또 말이 있는데, 여전히 궤사한 것이 뒤섞여 있다. 궤사한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궤사하게 노는데, 자기 가족과도 궤사하게 놀고 심지어 어린아이와도 궤사하게 논다. 네가 그런 사람을 아무리 진실하게 대해 줘도 그 사람은 너와 궤사하게 논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 본성의 진면모이다. 그런 사람은 궤사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항상 그렇다. 예를 들면, 진솔한 사람도 궤사하게 말을 할 때가 있지만 평소에는 그래도 비교적 진솔한 편이다. 일 처리할 때도 비교적 실제적이고, 사람을 사귀어도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도 일부러 시험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그래도 비교적 진실하고 사람들과 마음을 털어놓고 교통할 수 있기에 다들 그 사람을 진솔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궤사한 말을 좀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이 바로 패괴 성정의 유로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본성을 대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사람의 본성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어떤 것이 본성의 것이고, 어떤 것이 패괴 성정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제 너희는 자신의 본성을 해부해 보아라. 어떤 사람은 자기가 말을 듣기 거북하게 하거나 교양 없이 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예절이 없거나 본분을 하면서 어떤 때에 뒤섞임이 있었다고 말하지, 자신의 본성이 어떤지,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자신의 본성을 알 수 없다. 항상 감추면서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깊이 파 보아야 한다. 파내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받지 못한다. 자신을 알려면 매우 엄격해야지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고, 건성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서도 안 된다. …사람마다 치명적인 부분이 있다. 사람의 삶은 시시각각 그런 것의 지배를 받고 있고, 그 속에는 그런 것이 뒤섞여 있으며, 다 그런 것을 위해 사는데, 그것이 곧 사람의 본성을 대표한다. 사람의 본성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치명적인 부분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173.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한 것과 하나님이 사람의 본성에 대해 폭로한 것에는 늘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폭로한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가 깊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근원적으로, 실질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행실이나 겉면의 유로에 신경을 쓰고 공을 들인다. 설령 어떤 사람이 간혹 자신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을지라도 그 인식은 별로 깊지도 않고, 또한 자신이 어떤 부류의 일을 하게 되거나 어떤 방면의 유로가 있으니 자신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고 그런 본성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폭로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고 실질이지만 사람이 인식하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나 표현상의 잘못이나 문제점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려면 상당히 힘이 드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본성에서 유로된 것이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표현이고 조심하지 않아 유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이런 인식이 있으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진리로 여기지 못하고 진리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할 때면 건성으로 규례만 지키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본성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아직 멸망되거나 징벌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하여 어쩌다 거짓말 한 번 하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라고, 이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준에 대보면 사실은 아직도 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단지 겉보기에 진리와 어긋나지 않는 행실이 있을 뿐, 사실 진리는 전혀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성 인식과 진리 실행>에서 발췌

174. 사람이 이전에는 왜 육체를 따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합하고 정당하다고 여겨 그 어떤 잘못된 점도 없고 심지어는 그것이 완전히 정확하다고까지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비열하고 얼마나 가련한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그 후에는 그렇게 자고(自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교만방자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렇게 득의양양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착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살 면목도 없어.’라고 여기게 된다. 그가 정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고 보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볼 때, 그때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고, 사람의 모양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일 것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증오할 때에야 육체를 배반할 수 있다.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육체를 배반할 수 없다. 참으로 자신을 증오하는 여기에도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빈궁하고 가련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알며, 자신의 가련한 영혼, 더러운 영혼을 아는 것이다. 참으로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이 효과에 도달하였다면 진실로 자신을 알게 된 것인데,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에야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고, 심지어 자신을 저주하면서 정말로 사람이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모양이 전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정말로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될 때, 그는 ‘아!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이야, 역시 하나님은 공의로우셔. 나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너무나도 가련하고, 너무나도 더럽고 패괴되었으니 마땅히 하나님께 멸망돼야 해. 이런 영혼은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이 괜찮다고 여긴다면 죽음의 위협을 당할 때, 그는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많은 것을 치르고 이렇게 많은 고생을 했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나에게 죽으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왜 나보고 죽으라고 하시는 걸까? 나 같은 사람마저 죽어야 한다면 어느 누가 구원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인류는 모두 끝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첫째, 관념이 있고, 둘째, 원망이 있고 순복은 조금도 없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면 후회해도 늦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주로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에서 발췌

175. 베드로가 추구했던 것은 하나님 말씀의 연단에서, 하나님이 주는 여러 가지 시련에서 자신을 알고, 자신이 유로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진정으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베드로는 사람이 너무 패괴되어 가치가 없고,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나중에 베드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소중하구나!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정말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살 자격도 없고, 인생도 없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베드로는 이 정도까지 체험했을 때 자신의 본성에 대해 꽤 알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지금의 사람의 상상대로라면 베드로가 말로 밝히 설명하지 못했을 것 같겠지만, 베드로는 이 정도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을 추구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의 본성을 더 깊이 아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인식하고, 그것을 말로 요약하고, 자신의 원래 옛 생명, 옛 사탄 본성의 생명을 철저히 인식하게 되면, 하나님이 요구하는 효과를 본 것이다. 만약 이 정도까지 인식하지 못했으면서도 자신을 알고 있고 생명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냐? 너는 자신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며, 자신이 도대체 사람의 기준이 되는지, 아직도 사탄의 요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도대체 누구에게 속하는 자인지도 잘 모른다. 너는 자기 분수조차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지를 갖출 수 있겠느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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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④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⑤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중국 상용어로 자신을 위해 살라는 뜻. 이기적인 것을 정당화하는 데에 쓰는 말.

⑥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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