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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리 실제의 진입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6) 자신의 사탄 성품과 본성을 알아 가는 데 관한 말씀

70. 모든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진면목은 당연히 사람의 본성이다. 네가 말을 빙 돌려 하는 사람이라면 교활한 본성을 가졌을 것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본성을 지녔다면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손쉽게 사람들을 기만할 것이다. 네가 악랄한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이 듣기에는 그럴싸해도 너의 행동은 너의 악랄한 수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네가 게으른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모두 건성과 게으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내용들일 것이다. 네 행동은 매우 굼뜰 것이며 또한 상황을 모면하고 진실을 감추는 데 능할 것이다. 네가 이해심이 많은 본성을 지녔다면 너의 말은 아주 합리적일 것이며 네 행동 또한 진리에 부합할 것이다. 네가 누구에게나 매우 충성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분명 진정성이 넘칠 것이다. 또한 너는 착실하게 일을 하여 주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네가 호색하거나 금전을 탐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네 마음은 항상 그런 것으로 가득할 것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넘거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너를 항상 기억하고 역겨워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71. 사람이 자신을 알려면, 반드시 자신의 참된 상태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상태를 아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다. 각 시기마다 사람의 생각은 중요한 무언가의 지배를 받게 되니 그 생각을 붙잡으면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지만, 너는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출발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것에 지배받고 있는지, 어떤 성질에 속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의 성품이 변화하면 변화된 부분에서 나오는 생각, 마음속 바람, 추구하는 관점도 달라진다. 변화하지 않은 것들, 네가 확실히 깨닫지 못한 것들, 진리의 체험으로 대신하지 못한 것들, 그런 생각은 더럽고 불결하며 추한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역을 몇 년 동안 체험한 사람은 이러한 일을 어느 정도 느끼고 의식한다. 반면, 체험이 적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러한 것을 인식하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며,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쉽게 쓰러지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너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감조차 없다. 평소 자신에게 어떤 생각이나 속셈이 있는지 스스로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며, 그러한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다. 어떤 측면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 그 측면에서 변화가 생긴다. 그렇게 되어야 네가 하는 일이 진리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맞으며,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추구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늘 요구하는 자는 가장 이성이 없다> 중에서

72.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 가야겠느냐? 본성을 알아 간다는 것은 사실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것, 즉 네 생명 안에 있는 것, 기존에 네가 살면서 따랐던 그 사탄의 논리와 사탄의 많은 관점을 해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네가 기대어 살아가던 그 사탄의 생명을 해부하는 것이다.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파내야만 본성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파내야겠느냐?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대부분 사람들은 파내거나 해부하지 못한다. 3년, 5년이 지난 후에야 약간의 깨달음과 인식을 얻을 것이다. 지금 네가 본성을 알아 가려면 반드시 몇 가지 측면을 통해야 한다. 먼저, 네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옷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부러워하는지, 어떤 것을 숭배하고 추구하는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중요시하는지를 의미한다. 너는 그것들을 알고 있느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거기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고 있느냐? 너는 평소에 무엇을 중요시하고 무엇을 숭배하느냐? 어떤 부류의 사람과 접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느냐? 네 마음속 우상은 어떤 사람이냐?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위대한 사람, 언행에 기품이 있는 사람, 또는 가볍고 능청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 겉으로 잘 꾸미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는 좋아하는 사람 측면에서 본 것이다. 좋아하는 사물 측면에서 보면, 자기에게 익숙한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남들이 좋게 보는 일, 동조해 주고 칭찬해 주는 일을 하기 좋아할 것이다. 사람의 본성 안에는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즉, 사람은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것, 화려한 것, 사치스러운 것, 특히 남들의 동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일, 사물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들은 모두 높고 크고 눈부시고 화려하고 고귀한 것들이며, 사람은 모두 이런 것들을 숭배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사람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면모 또한 없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숭배는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좋아한다. … 네가 좋아하는 것, 중요시하는 것, 숭배하는 것, 부러워하는 것, 매일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은 너 자신의 본성을 대표하며, 네 본성 안에 불의를 좋아하는 성분이 있음을 보여 준다. 심각한 사람은 본성이 극도로 사악하여 구제 불능일 정도이다.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해부하고, 삶 속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 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아라. 네가 한순간 누구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네 본성 안에 있는 것이다. 네 뼈를 부러뜨릴지라도 너는 그것을 좋아하여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가장 바꾸기 어려운 점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에 대해 가져야 할 인식> 중에서

73. 자신의 본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인식해야겠느냐? 몇 가지 측면에서 인식해야겠느냐? 이 밖에, 구체적으로 사람이 드러내는 것에서 어떻게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겠느냐? 첫째, 사람의 기호를 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춤을 매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가수나 배우를 매우 좋아하며, 또 어떤 사람은 어떤 인물을 무척 동경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그들의 본성은 무엇이냐? 다시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사람이 한 가수를 몹시 동경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 마디, 미소 하나에 매우 큰 관심을 두고,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심지어 그 가수가 무엇을 입고 쓰는지까지 전부 사진을 찍어 따라 한다고 해 보자. 이 정도로 동경한다는 것은 그의 본성이 어떻다는 의미겠느냐? 그의 마음에는 오직 그러한 것들만 있을 뿐 하나님은 없음을 의미한다.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은 전부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그의 마음을 점령하였으며, 그는 자신의 마음을 모두 그런 것들에 주었다. 이것은 어떤 문제가 있겠느냐? 사람이 무언가를 어느 수준까지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그의 생명이 되어 마음을 점령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임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하지 않으며, 마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본성은 마귀를 사랑하고 숭배하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이렇게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겠느냐? 더없이 정확하다. 사람의 본성은 이렇게 해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특히 바울을 숭배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예배를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형상에 관심 갖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그의 본성을 파헤쳐 보자. 이러한 모습을 가진 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그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74. 사람의 본성을 알아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살피는 것이다. 마귀에 속하는 사람은 다 스스로를 위해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주로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 등과 같은 사탄의 말을 인생관이나 좌우명으로 여기며, 세상의 마왕, 위인, 철학자들의 말을 생명으로 삼는다. 특히 중국인들이 ‘성인’으로 떠받드는 공자의 말은 대부분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이것 외에도 불교나 도교의 명언, 유명인 입에서 나온 고전적 격언은 모두 사탄 철학, 사탄 본성의 정수이자 사탄 본성에 대한 최고의 설명이고 해석이다. 인류의 마음과 영혼에 주입된 그 독소는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하나도 없다. 그 궤변들은 또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하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는 하나님에게서 오고, 사람을 해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통해 그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탄은 국가 정부, 유명인사와 위인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킨다. 그들의 그 허튼소리가 사람의 생명 본성이 되는 것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는 말은 사탄의 명언으로,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침투해 생명이 되었다. 이 밖에 처세 철학의 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이용해 교육함으로써 사람을 끔찍한 재난의 망망대해로 빠뜨린다. 그로 인해 사람은 결국 사탄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멸망당하고 만다. 사회에서 수십 년간 분투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당신은 그 나이까지 세상에서 살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뤘습니다.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명언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가장 중요한 건, 공직에 있으면서 뇌물 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아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이 그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지 않겠느냐? 공직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의 본성이 되었고, 공직에 머무는 것은 그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의 삶, 사람의 일 처리, 사람의 행위와 사람됨에는 수많은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고, 진리는 조금도 들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의 처세 철학, 일 처리 방식, 사람의 좌우명에는 모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가득하고, 이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뼛속과 핏속에 흐르는 것은 모두 사탄의 것이다. 공직에 있는 자, 권력이 있는 자, 성공한 자에게는 모두 그들만의 성공의 길, 성공 비법이 있다. 그 비법이 바로 그들의 본성을 대변하지 않겠느냐? 그들이 세상에서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숨겨진 음모와 간계를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본성이 매우 음험하고 악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어 혈관에 사탄의 독액이 흐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본성이 패괴되고 사악하고 반동적이며, 사탄의 철학으로 점철되고 뼛속까지 물들어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대시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을 이렇게 해부한다면 사람은 모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75.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얕아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생명 성품의 변화 역시 이루지 못한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어느 정도까지 깊이 인식해야 한다. 즉,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그 본성 안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그것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하며, 그러한 것들을 과연 증오할 수 있는지, 자신의 추한 영혼과 사악한 본성을 볼 수 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네가 진실로 네 본모습을 본다면 자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증오하게 됐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육을 버릴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힘을 갖게 되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많은 사람이 일을 할 때 육적인 기호를 따르겠느냐? 스스로가 괜찮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고 정당하며 어떤 문제도 없다고, 심지어는 완전히 정확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자신의 본성이 어떤지,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비열하며, 얼마나 가련한지 알게 되면, 그 후로 그는 건방지고 교만하게 굴지 않을 것이고, 예전처럼 기고만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생각할 것이다.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실천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인간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살 염치도 없지.’ 그가 자신을 보잘것없다고 여기고,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 수월하게 진리를 실천하게 되고, 비로소 사람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갖춘 듯해 보이게 된다. 사람이 진실로 자신을 증오해야 육을 버릴 수 있다.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육을 버리지도 못한다. 여기에서 진실로 자신을 증오하려면 갖추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둘째, 자신이 딱할 정도로 가진 게 없으며,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가엾고 더러운 영혼을 보는 것이다. 진실로 자신의 본모습을 꿰뚫어 보게 되었다면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한 것이니 스스로에 대해 확실히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야 자신을 증오하고, 나아가 자신을 저주하며,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나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면모를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죽음의 위협이 임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이구나. 역시 하나님은 공의로우셔. 나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하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때의 그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사람이 딱할 정도로 가진 게 없으며 너무나도 더럽고 패괴되었으니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멸망되어야 한다고, 자기 같은 영혼은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원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스스로를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추구했으며,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 고난을 겪었어. 그런데 하나님은 결국 내게 죽음을 내리시는구나.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하나님은 왜 내게 죽음을 내리시는 걸까? 나 같은 사람마저 죽어야 한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인류는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하나님께 관념을 가질 것이고, 그다음으로 원망을 할 것이며, 순종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바울처럼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의 징벌이 임한 후에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려면 사람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76.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를 알아 가게 한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이 체험 과정에서 조금씩 스스로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 방식에는 시련도, 심판과 형벌도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리고 사실을 통해 사람이 끊임없이 체험하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징계,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체험하는 동시에 자신의 패괴와 패역, 본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모든 사람에게 사람이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럼 ‘사람이란 무엇인가’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겠느냐? 사람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 본분과 책임을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스스로를 알게 하는 최종 목표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77.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을 적대시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것, 심지어는 스스로 긍정적이라고 여기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진리, 정상 인성, 긍정적인 것으로 분류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한 진리와 얼마나 차이가 나겠느냐? 가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사상과 관점에서 우리의 행위와 우리가 받은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깊이 파헤치고 해부할 가치가 있다. 이러한 것들 중 일부는 사회 환경에서 오고, 일부는 가정에서 오며, 일부는 학교 교육에서 오고, 일부는 책에서 온다. 또 일부는 우리의 상상과 관념에서 온다. 이러한 것들이 가장 무서운데, 우리의 언행을 속박하고 통제하며, 우리의 사상과 일하는 동기, 저의, 목표를 제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파헤치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또 영원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실천할 수도 없다. 네 내면에 자신의 사상과 관점,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는 한,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너는 분명 마음속으로 먼저 가공한 후에 실천할 것이다. 너 자신이 그렇게 행하는 것은 물론, 또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이다. 사람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섞여 있는데도 스스로는 진리를 실천했다고, 진리를 깨달았으며,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상태가 가련하지 않겠느냐? 무섭지 않겠느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 중에서

78. 자신을 알려면 반드시 자신의 패괴된 본질과 치명적인 약점, 성품, 본성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내는 모든 면면을 알아야 한다. 집에서나 외부에서, 예배할 때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또는 어떤 일이 임했을 때, 네 속셈과 관점, 그리고 각각의 일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스스로를 알아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더 깊게 알아 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추구의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 중에서

79. 성품 변화를 이루는 관건은 자신의 본성을 알아 가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하나님이 드러낸 것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이 자신의 추악한 본성과 본성에 있는 각종 사탄의 독소, 무지몽매함, 그리고 약점과 소극적인 부분을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철저히 깨달은 후에 진실로 스스로를 증오하고 육을 버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히 실천하고,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결심을 하게 됐다면 베드로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려면 사람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80. 사람의 본질을 어떻게 알아 가야겠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할 때 본성과 본질을 발견할 수는 없다. 사람의 본질을 알려면 사람이 평소에 드러내는 것, 일을 하는 출발점과 의도, 욕망, 그가 가는 길을 보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이 임하거나 하나님이 친히 그에게 어떤 일을 행할 때, 시련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가 임하거나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빛을 비춰 인도할 때, 그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무엇과 관계가 있느냐? 그 사람의 행동, 삶, 사람으로서의 처세 원칙,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 목표, 방식과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생존의 토대는 무엇인지 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바울의 본질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중에서

81. 자신을 반성하고 알아 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자신이 잘했거나 옳게 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고 자랑할 만하다고 느끼는 부분일수록, 더 깊이 파 보며 자신에 대해 알아 가야 한다. 그 안에 대체 어떤 불순물이 있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보아야 한다. 바울을 예로 들어 보겠다. 바울은 문화적 소양이 무척 높았으며, 전도하고 사역을 할 때도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이 그를 매우 우러러보았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역을 한 후, 자신을 위해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여겼으며, 잘못된 길에 올라 점점 더 멀리 갔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 당시에 그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해부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바울은 예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는 데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을 믿었다. 좋은 행실과 행위만 있으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관념과 상상이 그의 마음과 영혼을 가렸고, 그의 본모습을 숨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드러내기 전까지 사람들은 계속 바울을 자신들의 목표, 본보기로 삼았으며, 바울이야말로 자신들이 동경하고 추구하고 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다. 바울의 일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있는 모든 이에게 한 가지 경고를 준다. 스스로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혹은 자신이 어떤 방면에 매우 은사가 있다고 느껴질 때일수록, 혹은 스스로가 변화할 필요도, 책망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이는 아주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분명 그 부분은 더 파고들거나 신경 쓰지도 않고, 그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해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 중에서

82.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본성을 폭로한 말씀과 늘 차이가 아주 크다. 이는 하나님이 폭로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본성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충분히 깊지 않은 까닭이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행실이나 겉으로 드러낸 것에 대해서만 신경 쓰고 공을 들인다. 비록 가끔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더라도 그 인식은 그다지 깊지 못하다. 자신이 어떠한 일을 했거나 자신에게서 어떤 측면의 패괴 성품이 드러났으니 자신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고 그런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이 폭로한 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인데, 사람이 인식한 것은 사람의 행실이나 말하는 방식의 잘못이나 결점이다. 그래서 사람은 진리를 실천하기 상당히 힘들어 한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그저 조심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으로, 본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이러한 인식으론 진리를 실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진리를 진리로 여기지 않고 진리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리를 실천할 때 건성으로 규례만 지킬 뿐이다. 사람은 자신의 본성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 멸망하거나 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쩌다 한 번 거짓말을 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고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기준에 따르면, 아직 멀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실만 있을 뿐이지, 실제로 진리를 실천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성 인식과 진리 실천> 중에서

83.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여 진리를 얻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보겠다.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굴면서 지위를 지키려 하느냐? 왜 그렇게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불의하고 악한 것들을 좋아하느냐? 그러한 것들의 근원은 무엇이냐?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느냐? 너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그것들 안에 있는 것은 대부분이 사탄의 독소이다. 사탄의 독소가 무엇인지는 말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의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하며,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집 떠나 먼 타향까지 와서 관리가 된 것은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 등과 같은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한다. 이 사탄의 말들이 바로 사탄의 독소이며, 사람의 내면에서 본성이 되었다. 사탄의 본성이 이 말 한 마디에 전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 독소는 사람의 생명, 생존의 토대가 되었고, 패괴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그것의 지배를 받으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사탄은 언제나 자신만을 위한다. 또한 사탄은 하나님을 뛰어넘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권세를 잡으려 하며, 하나님이 지은 만물을 점령하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이 곧 사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의 좌우명은 그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고 보여 준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언행을 어떻게 위장하든 본성을 감추지는 못한다. 어떤 이는 단 한 번도 솔직한 말을 한 적이 없고 위장에도 능하지만, 그와 함께 지내다 보면 그의 본성이 너무나도 간사하여 정직한 면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오래 같이 지내봐야 안다는 말도 있지 않더냐!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본성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그는 단 한 번도 솔직한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간사한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본성이자 그의 본성에 대한 증거, 설명이다. 그 사람의 처세 철학은 누구에게도 솔직한 말을 하지 않고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사탄 본성에는 수많은 철학이 들어 있다. 어떨 때는 스스로도 의식하거나 알지 못하지만, 너는 매분 매초 그것으로 살아가며, 그것이 옳다고, 일리가 있고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사탄의 철학은 사람의 진리가 되었다. 사람은 완전히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며, 거기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사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사탄 철학으로 살아간다고, 사탄의 본성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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