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그리스도의 발표(선집)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9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다 (3)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화제를 가지고 많이 이야기했다. 최근에 우리는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아주 중요한 화제를 하나 교통했는데, 그 화제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이다. 지난번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한 생존 환경에 관한 몇 가지 내용과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생활에 필요한 각양각색의 양식에 관해 교통했다. 사실, 하나님이 행한 것은 사람을 위해 생존 환경만 예비한 것이 아니고, 일용할 양식만 예비한 것도 아니라, 사람의 생존을 위해, 인류의 생활을 위해, 아주 많고 기묘하고 필수적인 각 방면의 사역을 했다. 그런 사역은 다 하나님의 행사이다. 하나님의 그런 행사는 사람을 위해 생존 환경과 일용할 양식을 예비한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범위는 더 넓다. 즉, 하나님이 그 두 가지 사역을 한 것 외에, 또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있어야 할 많은 환경과 생존 조건을 예비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교통할 또 다른 화제이다. 이 화제도 다 하나님의 행사와 관련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여기에서 말할 의의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란 이 글자와 단어, 혹은 하나님의 각 방면 소유소시에 대해 글자 그대로 도리적으로만 인식한다면, 그것은 참된 인식이 아니다. 그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경로는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행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각 방면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에 있었던 행사에 대해 교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만든 후, 만물은 하나님이 정한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고, 규칙 있게 앞을 향해 발전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눈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서, 사람의 생존과 함께 규칙적으로 앞을 향해 발전하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그 법칙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그 법칙을 파괴할 수 없다. 만물이 번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고, 만물이 생존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관리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님의 주재하에서 규칙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윤회하기까지 한다고 하는 것이다. 봄이 올 때면, 끝없이 내리는 보슬비가 봄 기운을 가져오고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 주어 토양이 녹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작은 떡잎이 흙을 비집고 나와 싹이 트기 시작하고, 나무도 점차 푸르게 변해 간다. 그 모든 생물들은 대지에 새로운 생기를 가져다주는데, 그것이 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광경이다. 각종 동물들도 굴에서 나와 봄날의 따스함을 느끼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만물은 무더위를 즐기고 있고, 또한 여름철이 가져다준 따스함도 즐기고 있다. 만물은 신속히 자란다. 나무와 풀, 각종 식물들은 다 신속히 자라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는다. 인류를 포함하여 만물도 여름철을 분주히 보내고 있다. 가을이 되면, 가랑비가 가을철의 상쾌함을 가져다주고, 각종 생물들은 추수의 계절을 느끼기 시작하며, 만물도 결실을 맺어 열매가 있게 된다. 인류 또한 가을철에 맺는 만물의 그 주렁주렁한 열매를 수확하여 겨울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한다. 겨울철, 만물은 추위 속에서 점차 휴식에 들어가고 조용해지기 시작하며, 사람들도 겨울철에는 한가해진다. 이렇게 춘하추동이 교체되고 바뀌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법칙으로 만물을 이끌고 또 인류를 인도하며, 인류에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생활 방식을 제정해 주었고, 인류를 위해 각기 다른 온도와 서로 다른 계절의 생존 환경을 예비해 주었다. 그리하여 규칙적인 그런 생존 환경하에서 인류도 규칙적으로 생존하고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한 그 법칙을 깨뜨릴 수 있는 일인일물(一人一物)도 없다. 벽해상전이든 아니면 상전벽해이든 그 법칙은 계속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관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법칙이 있는 이런 큰 환경이 있기에, 인류의 생활도 그런 법칙과 규칙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 법칙은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양육하였고,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그런 법칙 속에서 생존하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위해 창조한 만물과 법칙이 있는 그런 생존 환경을 누리고 있다. 설령 사람이 그런 법칙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여길지라도, 설령 사람이 그런 법칙을 거들떠보지 않을지라도, 설령 사람이 그런 법칙은 하나님이 지배하고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어쨌든 하나님은 계속 그런 불변의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런 불변의 사역을 하는 목적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인류가 지속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1. 하나님은 만물의 경계를 정해 전 인류를 양육하고 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이 인류와 만물에게 이런 법칙을 정해 주어 전 인류를 어떻게 양육하고 있는지’에 관한 화제를 가지고 말하겠다. 화제가 무엇이라고 했지? ‘하나님이 만물에게 이런 법칙을 정해 어떻게 전 인류를 양육하고 있는가’이다. 이 화제는 좀 크다. 그래서 너희가 인식하기 쉽도록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이야기하면서 뚜렷한 윤곽을 주도록 하겠다. 그러면 너희는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첫 번째,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산천, 평원, 사막, 구릉, 강과 호수에 경계를 나누었다. 지구상에는 산천, 평원, 사막, 구릉이 있고, 또한 각종 수원(水源)도 있다. 그런 것들은 다 어떤 것들이냐? 각종 지리 형세가 아니냐? 하나님은 그런 여러 가지 지리 형세에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 놓았다. 경계를 분명하게 그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산은 산의 경계가 있고, 평원은 평원의 경계가 있으며, 사막은 사막의 범위가 있고, 구릉은 구릉의 고정된 면적이 있으며, 강과 호수, 이런 수원도 다 고정된 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그것들을 아주 분명하게 나누어 놓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산의 둘레가 몇 백km이고 그 산의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이미 정해 놓았고, 어느 평원의 둘레는 몇 백km가 되는지, 그 범위도 정해 놓았으며, 사막의 범위도 만물을 만들 때 정해 놓았다. 또한 구릉의 범위와 그것의 면적, 그리고 그것이 무엇과 인접하는지도 하나님은 모두 정해 놓았고, 강과 호수의 범위도 하나님은 그것들을 만들 때 다 정해 놓았는데, 모두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방금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법칙을 제정해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했다. 즉, 산천의 경계가 어디까지이면, 그것은 지구의 회전에 따라, 또한 연대가 오래됨에 따라 자신의 면적을 줄이거나 확장할 리가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고정된 것이다. 그 ‘고정’된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이 평원의 면적, 평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것이 무엇과 인접하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고정해 두었다. 평원에는 경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갑자기 작은 언덕 하나도 제멋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고, 평원이 갑자기 또 산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방금 말한 법칙은 바로 이런 것들을 가리키고, 경계도 이런 것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막에 대해 그것의 경계만 말하고 여기에서 사막이나 그 어떤 지리 형세, 지리 위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지 않겠다. 사막도 하나님의 주재하에서 마음대로 확장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것에게 법칙과 범위를 주었는데, 그것의 면적이 얼마이고, 역할이 무엇이고, 무엇과 인접하고,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미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은 자신의 범위를 초월할 수 없고, 자신의 위치를 옮길 수 없으며, 또한 제멋대로 자신의 면적을 넓힐 수도 없다. 강과 호수의 물(원문: 水域)은 비록 모두 질서 있게 흐르고 있고, 또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의 범위와 경계를 벗어난 적이 없고, 또한 규칙 있게 한 방향을 따라,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재하는 법칙 속에서 그 어떤 강과 호수도 지구의 회전으로 인해, 또한 연대가 오래됨으로 인해 제멋대로 마르지 않고, 또한 흐르는 방향도 제멋대로 바꾸지 않으며, 물의 유동량도 제멋대로 바꾸지 않는다. 그것은 다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고, 주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 인류 가운데 만들어 놓은 만물은 다 정해진 방향과 위치가 있고, 정해진 면적과 범위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 때, 이미 그것들의 경계를 세워 두었으므로 그 모든 것들은 다 제멋대로 바뀌고 갱신되거나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멋대로’란 무엇을 가리킬까? 그것들은 날씨와 온도로 인해, 또 지구의 회전 속도로 인해 함부로 옮겨지지도, 확장되지도 못하고, 함부로 자신들의 원래 모양이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의 높이가 얼마이고, 산기슭의 면적이 얼마이며, 해발이 얼마이고, 그 산의 식생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하나님에게는 모두 계획이 있고 계산된 것이기 때문에, 그 산은 마음대로 높이를 바꾸거나 면적을 바꾸지 못한다. 평원을 놓고 말하면, 인류는 대부분이 평원에서 살고 있다. 그 어떤 기후의 변천도 평원의 면적에 영향을 주거나 평원의 존재 가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만든 그런 각종 지형이나 여러 가지 지리 환경도 마음대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바꾸지 못한다. 사막을 예로 들면, 사막의 성분은 무엇인지, 사막 밑에는 모두 어떤 지하자원이 함유되어 있는지, 사막의 모래 함량은 얼마나 되는지, 사막의 모래 색상은 어떠한지, 사막의 두께는 얼마인지, 그런 것은 다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 왜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고, 또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서로 다르게 만든 모든 지형과 지리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계획 있게, 규칙 있게 그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지리 환경은 하나님이 창조한 지 몇천 년, 몇만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각자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설령 어느 시기에 화산이 분출하고, 어느 시기에 지진이 일어나 땅이 크게 움직이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그 어떤 지리 형세도 그 고유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관리하고 있고 그런 법칙을 주재하고 장악하고 있기에, 이 모든 것, 즉 사람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과 사람이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규칙 있게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그런 방식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각종 지리 형세를 모두 관리할까? 그 목적은 각종 지리 환경에서 생존하는 생물들에게 안정된 환경이 있게 하고, 그런 안정된 환경에서 번식하고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움직일 수 있거나 움직일 수 없는 모든 만물, 즉 콧구멍으로 숨을 쉴 수 있거나 그럴 수 없는 만물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특유한 환경을 구성하였는데, 그런 환경만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양육할 수 있고,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평안히 생존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방금 내가 말해 준 이런 것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다시 말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그 법칙은 아주아주 중요한 것이다! 만물이 그런 법칙에서 생장할 수 있는 전제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재로 인해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 가운데서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산천을 예로 들어 보자. 산천은 삼림을 양육하고 있고, 삼림은 또 어떠하느냐? 그 속에 있는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들을 양육하고 보호해 주고 있다. 평원은 어떠하느냐? 인류의 경작을 위해,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을 위해 예비한 장소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을 다 평탄한 땅에서 살 수 있게 하여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평원에는 또 넓은 초원도 포함되어 있다. 초원은 지구의 식생인데, 그것은 토지를 보호해 주고 있고, 또한 초원에서 성장하는 소와 양, 그리고 말들도 기르고 있다. 사막도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데, 사막은 사람에게 거주하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사막의 기능은 습한 기후를 건조해지게 하는 것이다. 여러 호수와 강의 물이 흐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편리하게 식수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물이 필요한 만물에게도 편리를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면 그곳의 사람들에게는 마실 물이 있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 가지 지리 형세를 나누어 놓은 경계이다. 하나님이 나눈 그런 경계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지리 형세에도 각기 다른 생존 환경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생존 환경은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들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고, 생존 공간도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각종 생물이 생존하는 환경에 경계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으로 얘기할 내용이다.

두 번째,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곤충은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 하나님은 각종 지리 환경에 경계를 정한 것 외에 또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 어류, 곤충 및 각종 식물에 대해 경계를 나누고 규칙도 정하였다. 여러 가지 지리 환경이 다름으로 인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지리 환경의 존재로 인해,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 어류, 곤충 및 각종 식물에게도 각기 다른 생존 환경이 생겼다. 날짐승과 길짐승, 곤충들은 각종 식물들 속에서 생활하고, 각종 어류는 물속에서 살아가고, 각종 식물은 땅에서 자라고 있다. 그 땅은 어떤 것들을 포함하고 있느냐? 큰 산이나 평원 혹은 구릉 등의 각종 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날짐승과 길짐승들은 자신들의 정해진 서식지가 있게 되어 제멋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들의 서식지는 숲이고, 큰 산이다. 만일 어느 날, 그것들의 서식지가 파괴되면 그 질서는 혼란해진다. 질서가 혼란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무엇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겠느냐? (인류입니다.) 인류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너희는 하나님이 제정한 그런 법칙과 범위에서 일부 기이하고 특이한 현상들을 본 적이 있느냐? 예를 들면, 코끼리가 사막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정말로 있다면 그것은 아주 기이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코끼리의 생활 환경은 숲 속이기 때문이다. 그 숲은 하나님이 코끼리에게 예비해 준 생활 환경이고, 생존 환경이다. 코끼리에게는 자신의 생존 환경이 있고, 자신의 정해진 집이 있는데, 제멋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닐 수 있겠느냐? 사자나 호랑이가 바닷가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 사자나 호랑이의 서식지는 숲 속이고, 큰 산속이다. 바닷속의 고래나 상어가 사막에서 제멋대로 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 고래와 상어의 집은 바닷속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육지에서 살 수 없다. 사람의 생활 환경에서 큰 불곰과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느냐? 집 안이나 집 밖에 항상 공작새나 각종 조류들이 둘러싸고 있는 집이 있느냐? 삼림 속에서 소나 양을 본 적이 있느냐? 독수리나 기러기가 원숭이와 함께 장난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 정말 있다면 그런 것은 모두 특이한 현상이다. 내가 너희들이 보기에 특이하다고 여기는 그런 현상들을 말하는 까닭은, 너희에게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든, 콧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이든, 아니면 걸어 다니는 것이든, 다 그것들의 생존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생물들을 만들기 전에 일찍이 그것들을 위해 각자의 서식지와 생존 환경을 예비해 놓았다. 그런 생물들은 자신만의 정해진 생존 환경이 있고, 자신만의 먹이가 있고, 자신만의 정해진 서식지가 있고, 그것들이 생존하기에 적합한 장소나 적합한 온도가 있는 자신들만의 정해진 곳이 있으면, 그것들은 제멋대로 다른 곳에 가지 않을 것이고, 인류의 생존을 파괴하거나 인류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만물을 관리하면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생존 환경을 제공해 준다. 만물 가운데 있는 그런 생물들은 각자의 생존 환경에서 모두 자기의 생명을 유지할 먹이가 있는데, 그런 먹이가 있기 때문에 고유의 생존 환경에 정해져 있고, 그런 생존 환경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런 생존 환경에서 여전히 하나님이 제정해 준 법칙에 따라 생존하고 번식하고 이어 가고 있다. 그런 법칙이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명정으로 인해, 만물은 인류와 화목하게 지내고, 인류도 만물과 서로 의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고, 만물의 경계를 정하고, 만물 속에서 각종 생물들을 양육하고 있다. 만물이 각종 생물들을 양육하고 있는 동시에, 하나님도 인류를 위해 여러 가지 다른 생존 방식을 예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네가 본 인류의 생존 방식은 한 가지만이 아니고, 생존 환경도 한 가지만이 아니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각종 먹거리와 수원에 대해 말했다. 그런 먹거리와 수원은 사람의 육체 생명이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데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인류 중 모든 사람이 다 잡곡을 먹으며 생계를 이어 가는 것은 아니다. 각종 지리 환경이 서로 다름으로 인해, 각종 지리 형세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 인류에게도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이 있게 되었는데, 그런 생존 방식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인류가 다 경작을 위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이 다 농작하여 먹거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얘기할 세 번째 내용이다. 즉, 인류는 서로 다른 생활 방식으로 인해 경계가 생긴 것이다. 그럼 인류의 서로 다른 생활 방식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류의 서로 다른 먹거리의 근원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바로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것이다. 사냥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너희 중에 사냥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느냐? 너희는 모두 현대인이어서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도 모르고, 또한 어떻게 총을 잡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모두 땅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양식을 먹거리의 근원으로 한다. 사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느냐? (야생 동물 요리입니다.) 먹는 것은 삼림 속의 날짐승과 길짐승이다. 그 ‘야생 동물 요리’는 현대어이다. 사냥꾼들은 그것을 야생 동물 요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먹거리로 여기고, 일용할 양식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하고는 기뻐서 “좋았어, 이 사슴 한 마리면 온 식구가 며칠 먹기에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사슴을 잡았을 때는 농민이 땅에서 식량을 얻은 것과 같다. 농민은 땅에서 식량을 얻는데, 식량을 보면 기쁘고 마음이 든든하여 “이제는 먹을 것이 있어 굶을 걱정은 없네”라고 한다. 먹을 식량이 있어 온 가족이 배를 곯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이 든든해지고 만족감을 느낀다. 사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포획물을 보고는 마음이 든든해지고 만족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끼니를 근심할 필요가 없고, 먹을 것이 있어 다음 끼니에 배를 곯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냥으로 사는 사람이다.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늘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 깊은 산속에서 산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고, 농작물도 심지 않고, 숲 속에서 산다. 숲 속에서 경작지를 얻을 수 있느냐? 경작지를 얻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종 생물과 각종 사냥물로 생계를 이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인들과 다른 일종의 생활 방식이다.

두 번째 부류는 방목을 생업으로 하는 것이다. 방목하며 사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럼, 무엇을 하느냐? 방목만 하느냐? 너희 중에 누가 몽골족이냐? 너희들의 유목 생활을 말해 보아라. (주로 소나 양을 방목하고, 농사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소나 양을 잡아먹는데, 소고기나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밀크 티를 마시고, 볶은 쌀을 먹고, 야채는 아주 적게 먹습니다. 지금은 각 방면으로 교통이 다 편리해져 각종 야채나 주식도 있습니다. 몽골인은 밀크 티를 마시고, 티베트인은 수유차를 마십니다. 유목민은 1년 사계절 매우 분주하게 보내지만 그래도 잘 먹습니다. 유제품과 우유 식품, 육류 식품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이전에는 천막집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다 집을 짓고 삽니다.) 몽골인은 주로 소고기나 양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시고 말을 타고 방목하러 다닌다. 그것이 바로 유목민의 생활 방식이다. 그런 방목 생활은 좋다. 소나 말을 타고 들에서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며 현대인들의 삶의 스트레스도 없다. 매일 보는 것은 아주 넓은 푸른 하늘과 초원이다. 방목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은 초원에서 생활하면서 조상 대대로 자신들의 유목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초원에서 살면 조금 외롭기는 하지만 그런 생활도 아주 행복한 것이다. 그런 생활 방식도 괜찮다!

세 번째 부류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것이다. 즉, 인류 중에 소수의 사람들은 해변가나 작은 섬에서 살고 있는데, 사면이 물에 둘러싸여 있고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한다.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존하는 먹거리는 무엇이냐? 그들의 먹거리는 어디에서 오느냐? 각종 어류, 해산물, 해물 요리이다. 예전에 홍콩이 작은 어촌이었을 때, 거기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했었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날마다 고기잡이를 했다. 그들의 주식은 바로 각종 어류, 생선과 해산물인데, 간혹 어류로 쌀이나 밀가루, 생필품들을 바꾸기도 했었다.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해변가에서 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배 위에서 산다. 그런 것이 물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생활 방식이다. 물가에 살면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며, 고기잡이를 생활의 근원으로 하고 또한 먹거리의 근원으로 한다.

인류는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것 외에 주로 위의 세 가지 각기 다른 생활 방식이 있다. 방목을 생업으로 하고,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며,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몇 가지 부류의 사람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을 경작하여 생계를 이어 간다. 땅을 경작하여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필요한 것은 땅이다. 땅을 경작해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농사짓는 것을 위주로 하는데, 땅에서 먹거리를 얻는다. 야채를 심든, 과일나무를 심든, 잡곡을 심든, 땅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얻는 것이다.

인류가 각기 다른 이런 생활 방식들을 갖추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할까? 반드시 각종 생존 환경이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즉, 사냥꾼이 숲을 잃고 날짐승과 길짐승을 잃게 된다면, 그의 생활 밑천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숲이 없어지고, 날짐승과 길짐승이 없어지면, 생활 밑천이 없어진다. 그럼 그런 민족과 그런 인류는 어디로 나아가겠느냐?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방목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의존하는 것은 초원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의존하는 것은 소와 양이 아니라 소와 양의 생존 환경인 초원이다. 초원이 없다면 그들이 소와 양을 어디서 방목하겠느냐? 소와 양은 뭘 먹겠느냐? 소와 양이 없어지면 유목 민족의 생활 밑천은 어떻게 되겠느냐? 다 없어진다. 생활 밑천이 없는 그런 민족은 어디로 가게 되겠느냐? 생존하기가 매우 힘들고, 미래가 없다! 만일 수원이 없고, 강과 호수도 다 말라 버린다면 물에 의존해 사는 각종 물고기들이 존재할 수 있겠느냐? 물고기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물과 어류에 의존해 생활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겠느냐? 그들에게 먹거리가 없고, 생활 밑천이 없어진다면, 그런 민족은 생존해 나갈 수 없다. 그들의 생활이 일단 문제가 되고, 생존이 문제가 되면, 그런 종족은 계속될 수 없고, 생존할 수 없으며,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멸망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땅을 잃게 된다면, 그 결말은 어떻겠느냐? 그들이 각종 식물을 재배하지 못하고, 각종 식물에서 먹거리를 얻지 못한다면, 그 결말은 어떻겠느냐? 양식이 없으면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다면 그런 인류는 모두 멸망되지 않겠느냐? 그 까닭에 하나님은 각종 생태 환경을 유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각종 환경과 각종 생태를 유지시키고, 각종 환경에서 생활하는 여러 가지 생물을 보호하는 목적은 하나밖에 없다. 즉, 여러 부류의 인류를 양육하기 위한 것이고, 서로 다른 지리 환경에서 생활하는 인류를 양육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만물이 자신들의 법칙을 잃게 된다면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만물의 법칙을 잃게 된다면, 만물 가운데에 있는 생물의 생존은 지속될 수 없고, 인류도 의존할 생존 환경을 잃을 것이다. 인류가 그 모든 것을 잃게 되면, 그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 생육해 나갈 수도 없다. 인류가 지금까지 존재하게 된 까닭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공급해 준 만물로 인류를 양육하고 있기 때문이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류를 양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류를 양육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는 지금까지 존재하고, 오늘날까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정해진 좋은 생존 환경과 법칙 있는 생존 환경이 있기에 지구상의 여러 부류 인류와 종족들은 모두 각기 규정된 범위 내에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범위는 아무도 초월할 수 없고, 그 경계 또한 아무도 초월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구분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구분하였을까? 그 일은 인류에게 있어 아주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은 각종 생물의 생존 범위를 나누고, 여러 부류 인류의 생존 방식을 정해 놓은 동시에 지구상의 각기 다른 종족과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나누었고, 그 범위도 정해 놓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네 번째, 하나님은 인류의 각 종족에게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지구상에는 백인종, 흑인종, 갈색 인종 그리고 황인종이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게도 생활하는 범위를 정해 놓았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리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있어야 할 생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인데,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인종을 예로 들어 보자, 백인들은 대부분 어느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느냐? 대부분 유럽과 미국, 이런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흑인종이 생활하는 지역은 주로 아프리카이다. 갈색 인종은 어떤 지역 범위에서 생활하고 있느냐? 주로 동남아 지역이다. 태국, 인도,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같은 동남아 지역이다. 황인종은 주로 아시아에서 생활하는데, 예를 들면, 중국이나 일본, 한국, 이런 나라들이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여러 인종을 다 적합하게 분포하여 그 서로 다른 인종들이 지구의 각기 다른 지역에 분포되게 하였다. 하나님은 지구의 각기 다른 지역에 있는 서로 다른 인종을 위해 일찍이 그들에게 적합한 생존 환경을 예비해 놓았다. 하나님은 그런 생존 환경 중에 그들을 위해 토양의 색상과 토양의 성분을 예비해 놓았다. 즉, 백인 몸의 성분은 흑인 몸의 성분과 서로 다르고, 다른 유색 인종 몸의 성분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이미 그런 생존 환경을 예비해 놓았는데, 예비해 놓은 목적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생육하기 시작하고 많아지기 시작할 때 그런 범위에 정해 놓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를 만들기 전에 그곳을 백인종에게 남겨 두어 백인종이 발전하고 생존하도록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땅을 만들 때, 이미 목적 있게, 목표 있게, 그 땅에 무엇을 더할지, 그 땅에서 어떤 것을 기를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땅에 어떤 높은 산들이 있어야 하는지, 평원이 얼마나 있고 수원(水源)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어떤 날짐승과 길짐승이 있어야 하는지, 어떤 어류가 있고 어떤 식물이 있어야 하는지를 하나님은 미리 예비해 놓은 것이다. 즉, 인류를 위해, 한 인종을 위해 생존 환경을 예비할 때, 하나님은 여러 방면의 많은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지리 환경, 토양의 성분, 날짐승과 길짐승의 종류, 그리고 각종 어류의 크기와 성분, 수질의 다른 점, 또한 각종 식물의 유형……그런 것들을 하나님은 일찍이 예비해 놓았다. 그런 환경은 하나님이 창조한, 백인종에게 예비해 준 고유의 생존 환경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많은 심혈을 기울였고, 계획적으로 일을 했다는 것을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제는 다 알았겠지?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부류의 인류를 위해 세심하게 생각하셨다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각종 인류의 생존 환경에 어떤 날짐승과 길짐승과 각종 어류를 예비해야 하고, 높은 산과 평원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를 전부 다 빈틈없이, 아주 정밀하게 생각하셨다는 걸 보았습니다.) 백인종의 경우, 먹는 음식물은 대부분 무엇을 위주로 하느냐? (주로 고단백질입니다. 각종 육류와 유제품과 밀가루 음식입니다.) 백인들이 먹는 음식은 아시아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백인들이 먹는 주식은 대부분 육류, 계란, 우유, 가금류이다. 빵이나 쌀밥 같은 곡물들은 기본적으로 접시의 한쪽에 놓는 부식이다. 야채를 샐러드로 먹는다고 해도 구운 소고기나 닭고기 구이를 조금 첨가한다.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치즈, 계란, 육류 등을 곁들여 먹는다. 즉, 그들의 주식은 대부분 밀가루 음식이나 쌀 종류를 위주로 하지 않고, 고기와 치즈를 많이 먹는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열량이 매우 높다. 그리하여 그들은 항상 얼음물을 마신다. 식사할 때가 되면, 음식이 다 차려지지도 않았는데, 얼음물부터 한 컵씩 마신다. 그래서 백인종은 아주 건장하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예비해 준 생활 근원이고 생활 환경인데, 그들에게 그런 생활 방식이 있게 한 것이다. 그 생활 방식은 다른 유색 인종의 생활 방식과 다르다. 그런 생활 방식은 옳고 그름이 없이 타고난 것이고, 하나님이 명정한 것이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인종에게 그런 생활 방식과 생활 근원이 있게 된 것은 그들의 인종으로 인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예비해 준 생존 환경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백인종을 위해 예비한 생존 환경과 그들이 그 생존 환경에서 얻게 되는 일용할 양식은 매우 풍부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다른 인종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생존 환경을 예비하였다. 다른 인종에는 흑인도 있다. 흑인종은 어디에 분포되어 있느냐? 주로 아프리카의 중남부에 분포되어 있다. 그런 생활 환경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예비해 주었느냐? 열대 우림, 각종 날짐승과 들짐승, 또한 사막도 있고, 각종 식물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수원이 있고, 생활 근원이 있고, 또한 음식물 근원도 있는데, 하나님은 그들이라고 차별 대우 하지 않았다. 그들이 전에 무엇을 한 적이 있든, 그들이 생존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도 지구의 한 지역에서 일정한 위치와 일정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황인종에 대해 말해 보자. 황인종은 주로 지구의 동방에 분포되어 있다. 동방은 환경이나 지리 위치가 서방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 그 땅은 대부분 아주 기름지고, 물질 자원도 풍부하며,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다시 말하면, 지상과 지하의 각종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하나님은 그 일부분의 사람들, 그 인종을 위해서도 그 인종에게 적합하고 알맞은 토양과 기후 그리고 각종 지리 환경을 예비해 주었다. 비록 그 지리 환경이 서방과는 크게 다르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음식물, 사람의 생활 근원, 생존 근원을 예비하였는데, 단지 서방의 백인종과 생활 환경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너희에게 일깨워 주고 알려 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동방에 있는 그 인종의 수는 비교적 많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땅에 서방과 다른 성분을 많이 더해 주었는데, 지구의 그 지역에 서방과 다른 풍경과 각종 풍부한 물질을 많이 더해 주었다. 여기의 산물은 아주 풍부하고, 지리 형세도 천태만상이고 다양하여 이 방대한 수의 동방 인종을 양육하기에 충분하다. 서방과 다른 점은 동방의 땅이 남에서 북까지, 동에서 서까지 기후가 서방보다 좋다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온도가 적합할 뿐만 아니라, 산물도 매우 풍부하고, 천연적인 경치와 천연적인 각종 지리 형세가 서방보다 훨씬 좋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했을까? 바로 백인종과 황인종 사이에 아주 합리적인 균형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할까? 백인종은 여러 방면에서 황인종보다 더 잘 누린다. 먹고 쓰는 것도 황인종보다 훨씬 더 잘 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인종도 차별 대우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황인종에게 더욱 아름답고 더욱 좋은 생존 환경을 주었다. 바로 이런 균형인 것이다. 이제는 알았겠지?

하나님이 어느 부류 사람들에게 어떤 땅에서 성장하라고 명정했으면, 인류는 그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 이것은 아주 기묘한 일이다! 설령 각기 다른 시기나 어떤 특별한 시기에 전쟁이나 침략하는 일이 있었을지라도 그 침략이나 전쟁은 절대로 하나님이 각 인종에게 명정해 놓은 생존 환경을 파괴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 부류 사람들을 지구의 한 지역에 정해 놓으면, 그들은 그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인류가 어떤 야심이 있어서 영토를 바꾸거나 확장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루기가 매우 힘들고, 성공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다. 예를 들면, 백인들은 전에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일부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한 적이 있다. 독일 사람들이 전에 일부 국가들을 침략한 적이 있고, 영국도 인도를 점유한 적이 있는데,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결국에는 모두 실패했다. 그 실패 가운데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자신이 명정해 놓은 일을 사람이 파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이 영토를 확장하려는 그 기세가 얼마나 컸든, 마지막에는 철수해야 했다. 그 땅은 여전히 인도에 속하고, 그 땅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도 여전히 인도 사람이지, 영국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歷史)를 연구하거나 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영국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 결론을 내렸는데, 그들은 그 민족이 정복될 수 없기 때문이거나 사람의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은 다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민족을 어느 땅에서 살게 하고 어디에 정착시키고 이동하지 못하게 하면, 그들은 영원히 이동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범위를 정해 주면 그들은 그 범위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런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범위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데, 그것은 매우 확실한 것이다. 침략자의 세력이 얼마나 크든, 침략당하는 자의 세력이 얼마나 미약하든, 최종 결과가 성공인지의 여부는 하나님이 결정하고, 하나님이 이미 명정해 놓은 것이므로 아무도 바꾸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각 인종들이 서로 다르게 분포되도록 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각 인종들이 서로 다르게 분포할 수 있도록 어떤 일을 하였을까? 우선 큰 지리 환경, 큰 환경을 예비했는데, 그들에게 좋은 장소를 나누어 주어 그들이 조상 대대로 거기에서 생존하도록 정해 놓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생존 범위가 정해진 것이다. 그다음,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과 그들의 생활, 즉 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지, 무엇을 생업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일찍이 정해 놓았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각기 다르게 예비해 놓았다. 토양의 성분이 서로 다르고, 기후가 서로 다르며, 각종 식물이 서로 다르고, 각종 지리 환경도 서로 다르며, 심지어 각지에는 각지의 서로 다른 날짐승과 길짐승이 있고, 물의 각 영역에는 각 영역의 서로 다른 어류와 수산물들이 있다. 심지어 곤충까지도 하나님은 모두 그 종류를 정해 놓았다. 예를 들면, 아시아에는 까치가 있고, 미국에는 까치가 없다. 그것은 아주 특이하다. 그리고 미국의 참새도 중국 대륙의 참새와는 다르다. 아메리카에서 자라는 것들은 다 아주 크고, 아주 높고, 매우 튼튼하다. 숲 속의 나무들이 뿌리는 아주 얕게 내리지만 매우 높게 자라는데, 심지어 30m 이상 자라기도 한다. 하지만 아시아 숲 속의 나무는 대부분 그렇게 높지 않다. 너희는 알로에를 다 알고 있겠지? 일본의 알로에는 가늘고 약하지만, 미국의 알로에는 매우 굵다. 차이가 있지 않느냐? 같은 종류의 식물이고 이름도 같지만, 아메리카 지역에서 자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크다. 그리고 확실히 구별된다. 각 방면의 차이를 사람은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이미 다 나누어 놓았다. 서로 다른 인종을 위해 각기 다른 지리 환경과 지리 형세와 각종 생물을 예비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각 부류의 인류를 만들었기 때문에 각 부류 인류의 필요와 생활 방식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은 것은 다 아주 좋은 것이다.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

이 몇 가지 방면에 대해 말했는데, 너희는 방금 말한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로 인식하였느냐? 이해가 조금 있게 되었느냐? 내가 왜 이 큰 화제에서 이 몇 가지 방면에 대해 말하는지 기본적인 윤곽이 잡혔느냐? 너희가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은 만물의 법칙을 제정하셔서 전 인류를 양육하십니다. 하나님은 법칙을 정하실 때, 서로 다른 인종에게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생활 방식, 서로 다른 먹거리, 서로 다른 기후와 온도를 주셨는데, 그렇게 하신 것은 다 전 인류가 땅에서 안정되게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정밀한 안배를 보았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완벽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양육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이런 법칙을 제정해 주시고, 지리 환경과 각종 먹거리도 예비해 주신 동시에, 우리가 이런 환경에서 더 잘 생존하도록 서로 다른 생존 공간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계획이 매우 정밀하다는 것을 보았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보았습니다.) 또 보충할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칙과 범위는 그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도 바꿀 수 없고,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성장 법칙을 제정한 일을 놓고 보면, 인류는 어떤 부류이든지 모두 하나님의 공급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고, 모두 하나님의 양육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느냐? 누가 이런 법칙을 타파하거나 혹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런 법칙들을 제정해 주지 않았다면, 인류의 앞날은 어떠할까? 인류가 기본적인 생존 환경을 잃고 나면 인류에게 먹거리의 근원이 있겠느냐? 아마 먹거리의 근원이 문제 될 것이다. 인류가 먹거리의 근원을 잃게 되면, 즉 먹거리를 얻을 수 없다면 아마 한 달도 지탱하지 못할 것이고, 사람의 생존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생존을 위해, 사람이 계속 번성하고 생육하도록 하기 위해 행한 매사는 다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행한 매사는 다 사람의 생존과 밀접히 관련되어 갈라놓을 수가 없다. 사람의 생존과 밀접하여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생존이 문제가 된다면 하나님의 경영이 계속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경영이 계속 존재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영과 하나님이 양육하는 전 인류의 생존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물을 위해 무엇을 예비하든, 인류를 위해 어떤 것을 하든, 그런 것들이 하나님 편에서는 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고, 또한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만물이 만약 하나님이 만물에게 제정해 준 그런 법칙을 떠난다면, 만물의 법칙은 깨지고 혼란스러워지며, 만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인류의 생존 환경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인류의 일용할 양식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인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경영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은 다 인류가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이런 것들, 하나하나의 일과 각 항목들은 다 각 사람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마 너희는 “당신이 말씀한 이런 것은 범위가 너무 커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이 말씀한 것들이 저와는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 역시 만물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는 일원이고, 하나님이 주재하는 만물 중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라! 만물은 하나님의 주재를 떠날 수 없고, 아무도 하나님의 주재를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공급을 잃게 되면, 사람의 생명과 사람의 육체 생명도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의 생존 환경을 정한 중요성이다. 네가 어떤 종족의 사람이든, 어느 땅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든, 서방에 있거나 동방에 있거나를 막론하고,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정한 생존 환경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정한 생존 환경의 양육과 공급도 떠날 수 없다. 네가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고, 너의 육체 생명을 무엇에 의존해 살면서 유지하든, 하나님의 주재와 관리를 떠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난 농민도 아니고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하늘에 의지해 살지 않아! 그래서 난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정하신 생존 환경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난 이런 환경에서 얻은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맞지 않다. 왜 맞지 않을까? 네가 농사를 생업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너는 양식을 먹지 않느냐? 너는 육류를 먹지 않느냐? 너는 달걀류를 먹지 않느냐? 야채와 과일을 먹지 않느냐? 네가 먹는 것과 너에게 필요한 그런 것들은 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정해 놓은 생존 환경을 떠날 수 없다. 또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근원은 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그런 생존 환경을 떠날 수 없다. 네가 마시는 물과 네가 입은 옷을 포함해 네가 사용하는 각종 물건 중, 어떤 것이 만물 가운데서 얻은 것이 아니더냐? 어떤 사람들은 “어떤 것은 만물 중에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이냐? 예를 들어 보아라. 어떤 사람은 “보세요, 플라스틱은 만물 중에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화학 물품이고, 사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옳지 않다. 왜 옳지 않겠느냐? 플라스틱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화학 물품이지만 플라스틱의 원재료는 어디에서 왔느냐?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에서 온 것입니다.) 그것의 원재료는 하나님이 창조한 물질에서 얻은 것이다. 네가 누리는 것, 네가 보는 것, 네가 사용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에서 얻은 것이다. 인류를 놓고 말하면 어떤 인종이든, 어떤 생존 방식으로 살든, 어떤 생활 환경에서 생존하든, 모두 하나님의 공급을 떠날 수 없다. 그럼 오늘 우리가 말한 이런 내용들이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하는 주제와 관련이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말한 것을 이 큰 제목 아래에 열거할 수 있지 않겠느냐? 바로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얘기들을 하게 된 것이다. 아마 오늘 말한 어떤 일들은 좀 추상적이어서 얘기했을 때 난이도가 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어느 정도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몇 차례 교통한 화제는 비교적 폭넓고 범위가 크며, 또한 이런 화제는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접해 보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듣기에는 좀 버거웠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오한 비밀로 듣고, 어떤 사람은 이야기로 듣는데, 어떤 관점이 옳은 것일까? 너희는 이런 말들을 어떤 관점으로 들었느냐? 이런 말들을 듣고 나서 너희는 어떤 수확을 얻었느냐?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한 방면의 권병(역주: 권세)을 인식하였고, 하나님의 존귀하심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실 때마다 사람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안배하고 계획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저희를 아껴 주셨습니다. 정말 저희들의 먹거리까지도 빈틈없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만물을 아주 조리 정연하게 안배하셨음을 알게 되었고, 만물에게 이런 법칙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그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더욱 많은 행사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안배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이런 교통을 통해 하나님이 만물을 관리하는 범위를 보았느냐? (전 인류, 만유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인종만의 하나님일까? 한 부류 사람들만의 하나님일까? 소수 사람들만의 하나님일까? (아닙니다.) 아니라면,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하나님을 소수 사람들의 하나님만으로 인식하거나 하나님을 너희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그 관점이 옳은 것이냐? 하나님이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재자인 이상,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동시에 나타내는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며 전 인류를 주재한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이 전 인류를 주재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깨달음도 없다면, 너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라고 시인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느냐? 아마 속으로는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일생을 다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시인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 하나님이 그렇게 작겠느냐? 아니다! 너는 자신에게서만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이 행한 역사를 보았을 뿐이다. 그런 일에서만 하나님의 주재를 본다면, 그 범위는 너무 좁아서 네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아가는 데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고,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자라는 것을 참으로 인식하는 일에서도 제한을 받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너에게 공급해 주고 너를 구원해 준 그 범위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너는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고 만물을 주재하며 전 인류를 주재한다는 것을 영원히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이 너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한다. 너는 마음속으로부터 영원히 그 단계까지 인식할 수 없고, 영원히 그 깊이까지 인식할 수 없다. 알겠느냐? (네.) 사실, 나는 내가 말하고 있는 이런 화제와 내용들을 너희가 어느 정도까지 깨달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왜 계속 얘기할까? 왜냐하면 이런 화제는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는 각 사람이 반드시 깨닫고 인식해야 할 화제이기 때문이다. 설령 오늘, 지금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너의 생명과 진리에 대한 경력(역주: 체험)이 일정한 정도에 이르렀을 때, 너의 생명 성정이 일정한 정도로 변화되었을 때, 너의 분량이 일정한 정도로 자라났을 때에는 이런 말들, 즉 내가 지금 교통하는 이런 화제는 네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일에서 참으로 너에게 공급해 주고 충족시켜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은 앞으로 너희가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임을 알고, 하나님 자신을 알아가는 데에 기초를 닦고 예비해 주기 위한 것이다.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 있으면 하나님의 지위도 그만큼 있고,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만큼 깊으면 하나님의 지위도 그만큼 높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텅 빈 것이고 막연한 것이라면, 네 마음속의 하나님도 텅 비고 막연한 것이다.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너의 범위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너의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하나님이고,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연결되지 않고 무관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실제와 전능한 그 면을 인식하고, 하나님 자신의 진실한 신분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고, 만물 가운데서 창현(彰顯)되는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각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각 사람의 생명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각 사람의 실제 생명과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알아가는 것을 단지 문자에만 제한하고, 너의 작은 경력이나 네가 헤아린 하나님의 은혜 속에 제한하며, 하나님에 대한 너의 작은 간증에만 제한한다면, 나는 너의 하나님은 전혀 진실한 하나님이 아니고, 전혀 진실한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네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하나님 자신은 만유를 주재하는 분이고, 만유 가운데서 거닐며 만유 가운데서 관리하고 있는 그분이고, 전 인류의 운명을 장악하고 만유의 운명도 장악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행사는 단지 소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행사는 지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만물 가운데서, 만물의 생존 가운데서, 만물의 변화 법칙 가운데서 창현되는 것이다. 사람이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그 어떤 행사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그 어떤 행사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도 전혀 증거하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을 전혀 증거하지 못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보잘것없는 하나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면, 너의 생각 속에, 너의 좁은 가슴속에 국한되어 있는 그런 하나님을 계속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너의 믿음을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증거할 때, 단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을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는지, 이런 것만으로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그것은 턱없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증거하고, 진정한 하나님 자신을 증거하려면, 하나님의 행사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병을 보아야 하며, 하나님이 전 인류에게 어떻게 공급해 주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을 보아야 한다. 네가 단지 너의 일용할 양식과 생활에 필요한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만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만물을 통해 전 인류에게 공급해 주고, 만물을 주재함으로써 전 인류를 인도하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알았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너희에게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한 이런 화제는 너희 자신의 생명 진입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여기면서 이런 화제를 어떤 지식이나 학설로만 듣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그런 태도로 듣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좋은 기회를 잃을 것이다. 알겠지?

내가 이 모든 화제를 말한 목적은 무엇일까? 그 목적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하나님의 행사를 알아야만 하나님을 알아갈 기회가 있거나 알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무엇으로 알아야 하느냐? 그 사람의 생김새를 보면 되겠느냐? 그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되겠느냐?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면 되겠느냐? 그 사람에게 풍부한 지식이 있는지를 보면 되겠느냐? 틀림없이 다 안 된다. 그럼 무엇을 통해 사람을 알 수 있느냐? 사람의 마음과 생각, 그 사람의 언행, 그 사람이 표현해 낸 것과 유로(역주: 흘러나옴)해 낸 것을 통해 그 사람을 분별하고 알아보고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과 진실한 면을 인식하려면, 너희는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이 행한 하나하나의 실제적인 일들을 통해 알아가야 한다. 그것은 가장 좋은 경로이자 유일한 경로이기도 하다. 알았겠지?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서 자신의 행사를 창현하고, 만물 가운데서 만물의 법칙을 주재하고, 만물의 법칙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알아가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다.

2. 하나님은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여 인류에게 안정된 생존 환경을 주었다

우리는 방금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의 법칙을 주재하는지, 또 만물의 법칙 속에서 어떻게 만물의 법칙으로 전 인류에게 공급하고 인류를 양육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은 한 방면이다. 이어서 우리가 나눌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고 어떻게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였는가’이다. 이 제목도 너희에게는 좀 크다.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는 이런 일을 사람이 할 수 있느냐? 사람은 할 수 없다. 사람은 파괴할 줄만 알고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렇게 큰 권병도 없고, 그렇게 큰 능력도 없다.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것 역시 인류의 생존과 크나큰 관계가 있다. 하나님이 하려는 매사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다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고 인류에게 좋은 생존 환경을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들과 중요한 일들을 하여 인류의 생존을 유지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균형되게 한다’는 이 말은 글자 그대로 보면 아주 두리뭉실한 화제이다. 그리고 우선은 사람에게 하나의 개념을 주고, 만물은 여전히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균형되게 한다’의 글자 표면의 뜻은 무엇을 말할까? 우선, ‘균형되게 한다’는 것은 균형을 잃지 않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들 천칭을 알고 있을 것이다. 천칭으로 물건의 무게를 잴 때, 물건을 한쪽 저울판에 놓고 다른 한쪽 저울판에는 분동을 놓는데, 그 분동의 수량이 나중에 그 물건의 무게를 결정한다. 그것을 균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균형되게 하려면 양쪽의 무게가 반드시 같아야 한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 속에는 많은 것이 있는데, 고정된 것, 움직이는 것, 살아 있는 것, 숨 쉬는 것, 그리고 숨 쉬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은 많은 것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부딪치며, 또 함께 숨 쉬며 생존하는 그런 관계를 갖게 하려면 쉬울까? 거기에는 틀림없이 원리가 있다. 비록 아주 복잡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연구하려면 상당히 복잡하다. 비록 네가 보기에는 그저 간단한 균형이란 단어이지만, 그 ‘균형’을 인류에게 연구하라고 하고 균형되게 하라고 한다면, 인류의 생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나아가 역사(歷史)를 연구하는 정상급 인물까지 다 출동한다고 해도 나중에 연구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연구한 결과는 바로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너무 기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은 영원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만물들 사이에 원리를 제정해 주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제정해 주어 서로 제약하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 공급하게 하였다. 그런 여러 가지 방식은 얼기설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지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머리와 배운 지식, 눈으로 보게 된 그런 현상으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는 원리를 입증하거나 연구한다면, 그 원리를 발견하기 아주 어렵고, 그 결과 또한 발견하거나 얻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기에 인류가 결과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머리와 지식으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스린다면, 인류는 그것들의 균형을 유지시키기 매우 어렵다. 인류는 만물이 생존하고 있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들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시켜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만물을 관리하게 하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면, 인류는 아주 쉽게 그 균형을 파괴해 버릴 수 있다. 일단 파괴해 버리면 인류의 생존 환경이 파괴되는데, 인류의 생존 환경이 파괴되는 동시에 그에 따라 인류의 생존에 위기가 생기게 되고,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인류가 재난 속에서 살고 있을 때면, 인류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추측하기 매우 어렵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바로 그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할까? 우선, 지구상의 어떤 곳은 1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어떤 곳은 1년 내내 봄날처럼 따뜻하다. 얼음 한 조각도 볼 수 없고, 눈꽃도 볼 수 없으며, 겨울철이 없이 1년 사계절이 봄날 같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는 방식인데, 전반적인 기후를 놓고 말한 것이다. 두 번째, 이쪽 산을 보면 식물이 무성하고, 여러 가지 식생이 땅을 뒤덮고 있어 숲들로 우거져 사람들이 그 속에서 다니면 태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쪽은 오히려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민둥산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겉으로 보면 다 토양이 쌓인 산(원문: 山體)이지만, 한쪽은 숲이 무성하고, 다른 한쪽은 오히려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 이것이 두 번째이다. 세 번째, 이편의 초원은 일망무제하고, 온통 푸른 물결이나, 저편의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생물도 볼 수 없으며, 수원은 더더욱 볼 수 없고, 모래바람만 휘몰아친다. 네 번째, 이쪽은 바닷물로 뒤덮여 있고 영역이 넓지만, 저쪽은 오히려 샘물 조차 보기 힘들다. 다섯 번째, 이쪽 땅에는 늘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며 공기가 촉촉하지만, 저쪽 땅은 오히려 늘 뜨거운 태양이 떠 있어 비 한 방울도 보기 어렵다. 여섯 번째, 이쪽은 고원이어서 공기가 희박하고 호흡하기 곤란하지만, 저쪽은 오히려 움푹한 늪지대여서 각종 철새들의 서식지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기후, 또는 서로 다른 지리 환경에 따른 기후나 환경이다. 즉, 하나님은 큰 환경에서 기후부터 지리 환경까지, 토양의 서로 다른 성분부터 수원의 다소까지, 인류의 기본적인 생존 환경을 균형되게 하여 사람이 생존하는 환경 속의 공기, 온도, 습도를 균형되게 하였다. 서로 다른 이런 지리 환경이 어우러져 있기에, 인류에게는 균형을 이루도록 정해진 공기가 있게 되었고, 균형을 이루도록 정해진 서로 다른 계절의 온도와 습도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런 생존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큰 환경을 놓고 말한 것이다. 우선, 큰 환경에서 균형되게 하였는데, 서로 다른 지리 방향과 위치, 서로 다른 지리 방식, 그리고 서로 다른 기후의 변천으로 서로 제약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균형에 도달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그 균형에 도달하게 하였다. 이것은 큰 환경을 놓고 말한 것이다.

세부적인 것에서 말한다면, 예를 들어 식물들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게 할까? 즉, 어떻게 식물들을 균형된 생존 환경에서 계속 생존해 나가도록 할까? 바로 여러 가지 식물의 수명과 그것들의 생장 속도와 번식 속도를 장악함으로써 식물의 생존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작은 풀은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 그 작은 풀은 죽는다. 이듬해에 그 씨앗은 싹이 트면서 계속하여 똑같은 법칙을 반복한다. 작은 풀의 수명은 아주 짧아 봄에서 가을까지만 살고 죽는다.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그 과정은 단지 봄, 여름, 가을 시간대일 뿐이다. 여러 가지 나무들도 수명이 각기 다르고,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 주기도 서로 다르다. 어떤 나무는 수명이 30~50년이므로 30~50년이 되면 죽는다. 그러나 그것들의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 그 열매가 다시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서 다시 30년, 50년 자란다. 그것들은 그런 주기가 있다. 늙은 나무가 죽으면 어린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너는 숲 속의 나무들은 항상 자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정상적인 순환과 정상적인 생사 과정이 있다. 어떤 나무는 천 년 이상 살 수 있고, 심지어 어떤 나무는 3천 년을 살 수 있는데, 그것들은 그런 식물인 것이다. 어떤 식물이든, 그 수명이 얼마인지를 막론하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그것들의 수명, 그것들의 번식 능력과 번식 속도, 번식의 수량과 빈도에 근거해 그런 식물들의 균형을 장악하여 그런 식물들, 즉 작은 풀에서 큰 나무까지 모두 끊임없이 생장하고 번성하면서 균형된 생태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지구상에서 네가 볼 수 있는 숲, 나무든 아니면 작은 풀이든, 그것들은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들의 법칙에 따라 번식하고 생장하고 있는데,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고, 사람이 따로 어떤 일을 더 해 줄 필요도 없다. 그런 균형이 있어야 그것들은 자신의 생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에게도 자신에게 적합한 생존 환경이 있어야 그렇게 많은 숲과 풀밭이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다. 그것들은 존재하면서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양육하고 있고, 숲과 초원에서 대대로 서식하는 각종 생물, 즉 날짐승과 길짐승, 곤충에서 각종 미생물까지 양육한다.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의 균형도 주관하고 있다. 그 균형을 어떻게 주관하고 있을까? 마찬가지로 식물과 비슷하다. 역시 그들의 번식 능력, 번식 수량, 번식 빈도와 동물 중에서 맡은 그것들의 역할에 근거해 균형을 장악하고 그것들의 수량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는데, 만약 사자의 수량이 얼룩말의 수량을 초과한다면 얼룩말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느냐? 얼룩말은 멸종될 것이다. 그럼 얼룩말의 번식 수량이 사자보다 훨씬 적다면, 그것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 역시 멸종될 것이다. 그러므로 얼룩말의 수량은 반드시 사자의 수량을 훨씬 초과해야 한다. 왜냐하면 얼룩말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자를 위해서도 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얼룩말은 얼룩말들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 사자의 먹잇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자의 번식 속도는 영원히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자의 수량은 영원히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그래야 사자의 먹이가 보장될 수 있다. 사자는 얼룩말의 천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늘 보게 되는 것은 그들이 오히려 같은 곳에서 유유하게 서식하는 모습이다. 얼룩말은 사자가 잡아먹는다고 해서 수량이 줄어들거나 멸종되지 않는다. 사자도 자신의 ‘왕위’로 인해 가족 구성원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그 가운데 있는 균형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동물들 사이에도 균형된 법칙을 제정하여 그들이 그런 균형을 맞추게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얼룩말의 천적은 사자밖에 없느냐? 악어도 얼룩말을 잡아먹는다! 악어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악어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장면도 아주 끔찍하다. 얼룩말은 보기에도 매우 무력한 동물로, 사자와 같은 흉악한 본성이 없다. 사자와 같은 강적을 만나면 얼룩말은 달아날 줄밖에 모르고 심지어 반항할 줄도 모른다. 도망칠 때 사자보다 속도가 뒤처지면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은 동물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너희는 그런 장면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있었느냐? 얼룩말이 불쌍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느냐? 그럼 사자가 밉게 느껴지지 않았느냐? 얼룩말은 얼마나 멋지냐! 근데 사자는 호시탐탐 늘 얼룩말을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얼룩말은 바보처럼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다. 얼룩말은 사자가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히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사자는 언제 얼룩말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얼룩말은 속으로 알고 있느냐? 얼룩말은 알면서도 그 땅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기묘한 일이다. 그 기묘한 일에는 하나님의 명정이 있고, 하나님의 주재가 있다. 네가 얼룩말이 불쌍하게 여겨져도 그것을 구할 수 없고, 사자가 미워도 그것을 멸할 수 없다. 얼룩말은 하나님이 사자에게 예비해 준 먹거리이다. 그러나 사자가 아무리 잡아먹어도 얼룩말은 멸종되지 않는다. 사자의 번식 수량은 아주 적고, 번식 속도 또한 아주 느리기 때문에 사자의 수량은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아무리 잡아먹어도 사자의 수량은 얼룩말을 초과하지 못한다. 바로 이런 균형이다.

하나님이 그런 균형들을 유지시키는 목적은 무엇일까? 이것 또한 사람의 생존 환경에 관련되고, 사람의 생존에 관련된다. 얼룩말이나 사자의 그 어떤 사냥감, 즉 사슴이나 다른 것들의 번식은 매우 느리고, 사자의 수량은 급격히 늘어난다면, 인류는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될까? 사람들이 기르는 닭, 오리, 거위, 개가 먼저 사자의 사냥감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집 밖에 있기 때문에 우선 사자의 사냥감이 된다. 그럼 이런 것들이 사자가 잡아먹기에 충분할까? 어떤 집에서 돼지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사자가 산에서 내려와 잡아먹는다. 그럼 사자는 잡아먹은 후에 돌아갈까? 사자는 ‘산에 먹을 것이 없으니 여기에서 기다리자. 이 집에서 돼지를 기르고 있잖아. 돼지를 다 잡아먹고 나면 사람도 몇 명 있으니까! 안 그래도 다음 끼에 먹을 것도 없는데, 이렇게 다 예비되어 있잖아? 집에만 있으면서 계속 외출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사람이 문을 나서면 한입에 덥석 잡아먹을 것이다. 그러면 인류는 반항할 어떤 능력도 없다. 그것은 아주 비참한 일이 아니겠느냐?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을 잡아먹는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그 비극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재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도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만물의 균형은 인류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것에게 있어야 할 균형을 잃으면 안 된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산천과 호수는 인류를 위해 아주 정상적인 생태 환경을 예비하고 있는데, 인류는 그런 생태 환경, 바로 그런 균형된 생태 환경이 있어야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만약 큰 나무나 작은 풀의 번식 능력이 아주 낮고 번식 속도가 아주 느리다면, 토양은 어떻게 되겠느냐? 토양은 수분을 잃지 않겠느냐? 토양이 수분을 잃게 되면 그것들은 병에 걸리지 않겠느냐? 토양이 식생을 잃고 수분을 잃게 되면 곧 유실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막으로 대체될 것이다. 토양이 병에 걸려 사막화가 되는 것이다. 토양이 변질되면 인류의 생존 환경도 따라서 파괴되고, 그와 동시에 초래되는 것은 재난이다. 생태 균형과 생태 환경이 없어진다면 인류는 늘 만물의 불균형으로 인해 재난의 엄습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환경이 균형을 잃게 되어 어느 곳에 개구리가 많아지면 개구리의 생태 환경이 파괴된 것이다. 개구리들이 다 한곳으로 모여들고 그 수량은 급격히 늘어나는데, 심지어 사람들은 개구리가 도시에서 길을 건너고 수많은 개구리들이 큰길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많은 개구리들이 사람의 생존 환경을 차지하게 되는 그런 것을 뭐라고 하느냐? 그것을 재난이라고 한다. 왜 재난이라고 할까? 인류에 대해 매우 유익한 그런 작은 동물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곳에서 산다면, 인류에게는 유익하다. 그것은 인류 생존 환경의 균형을 보호하고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재난으로 변하면 사람의 생활 질서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개구리 몸에 있는 여러 가지 것들과 여러 가지 성분들이 사람 삶의 질과 생활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심지어 사람 육체의 어떤 기관이 침습(侵襲)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재난 중의 한 가지이다.

다른 한 가지 재난은 인류가 흔히 당하는 재난인데, 메뚜기 떼가 대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재난이 아니냐? 그것은 매우 무시무시한 재난이다. 사람에게 비행기, 대포,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는 아무리 큰 재능이 있을지라도 인류에게 메뚜기 떼의 습격을 대처할 무슨 방법이 있느냐? 대포로 쫓아 버릴 수 있느냐? 기관총으로 쫓아 버릴 수 있느냐?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럼 농약을 뿌려서 쫓아내면 어떨까? 그것도 쉽지 않다. 그럼 그 조그마한 메뚜기들이 왜 온 것일까? 양식을 먹으러 온 것이다. 메뚜기 떼가 가는 곳마다 농작물은 전부 사라진다. 메뚜기는 농작물과 양식만 먹어 치우는데, 한번 지나가면 양식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농부들이 의지하는 농작물이 메뚜기 떼의 습격에 눈 깜짝할 사이에 1년 식량이 전부 먹혀 버릴 수 있다. 그 메뚜기 떼들이 온 것은 인류에게는 무엇이겠느냐? 소란을 피우는 것만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인 것이다.

메뚜기 떼는 일종의 재앙이다. 그럼 쥐는 어떨까? 만약 쥐의 번식이 너무 빠르고, 쥐를 잡아먹는 부엉이나 갖가지 매들이 없다면, 쥐의 번식 속도는 너무 빨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될 것이다. 쥐가 넘쳐 난다면, 인류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겠느냐? 편하게 지낼 수 없다. 그럼 인류가 직면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것이겠느냐? (온역입니다.) 온역뿐이겠느냐? 쥐는 무엇이든 다 먹는다! 나무도 갉아 버린다. 어떤 집에 쥐 두 마리만 있어도 그 집 사람들은 다 방해를 받을 것이다. 쥐는 어떤 때에는 기름을 훔쳐 먹고, 어떤 때는 양식을 까먹고, 어떤 때는 옷을 갉아 놓는다. 이런 것들이 쥐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고민거리이다. 조그마한 쥐라 해도 사람은 속수무책이고, 그것에게 당해야만 한다. 어떤 때, 쥐는 주방 선반에도 기어오르는데, 그럼 거기 그릇들을 쓸 수 있겠느냐? 그 그릇도 쓰지 못한다. 소독해도 안 된다. 소독을 해도 마음이 꺼림칙하여 그릇을 버려야 한다. 쥐는 또 자기가 먹지 못하는 것도 갈기갈기 갉아서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옷, 신발, 나무, 가구, 뭐든 다 갉아 놓는다. 쥐 떼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두 마리라고 해도 사람을 심하게 방해한다. 만약 재앙이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럼 조그마한 개미가 재앙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초래되는 피해를 무시할 수 없다. 개미가 집을 갉아서 집이 무너지는 일은 이상하지 않다. 개미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조 주택에서 흰개미나 흰개미 알을 발견하면, 미국에서는 아주 큰 일로 보고 반드시 전문 회사의 기술자를 찾아 전문적인 방법으로 흰개미들을 죽여 버린다. 만약 죽여 버리지 않으면 그 집을 팔기 매우 어려워서 큰 문제가 된다. 개미 떼가 말을 잡아먹는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커다란 말도 개미 떼가 달라붙어 한번 지나가면 뼈만 남게 된다. 무섭지 않으냐? 말을 탔던 사람은 그 장면을 보고 어디로 도망쳤겠느냐? 옆에 호수가 있어서 뛰어들어 건너편으로 헤엄쳐 도망쳤다. 그리하여 살아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장면을 본 후, 자그마한 개미에게 그토록 큰 위력이 있다는 것과 하마터면 자신도 먹힐 뻔했던 그 일을 평생 잊지 못한다. 말이 없었다면 개미들은 틀림없이 먼저 그 사람을 먹었을 것이다. 개미들이 호수에 가로막혀 미처 다리를 놓지 못해 그 사람을 먹지 못한 것이다. 만약 물이 없었더라면 사람은 말과 함께 개미에게 먹혔을 것이다. 개미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각종 조류들이 재앙으로 번진다면 그것 역시 무서운 것이다. 즉, 어떤 동물이든 어떤 생물이든, 일단 그것의 균형을 잃게 되면, 그것들은 불규칙적이고 규율이 없는 범위에서 자라고 번식하고 생존할 것이다. 그러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류의 생존과 생활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재난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심지어 인류는 치명적인 재난을 당하고, 멸망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여러 가지 방식과 형식으로 만물이 균형을 이루게 하였고, 산천 호수의 생존 상태와 식물의 생존 상태도 균형을 이루게 하였으며, 각종 동물, 조류, 곤충의 생존 상태도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그 목적은 각종 생물들이 다 하나님이 제정해 놓은 법칙에서 번식하고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물은 그런 법칙을 벗어날 수 없고, 그런 법칙을 깨뜨릴 수 없다. 인류는 그런 기본적인 환경에서만 아주 안전하게 한 세대 또 한 세대 살아가고 번성할 수 있다. 그 어떤 생물이든, 하나님이 정해 놓은 수량과 범위를 넘어서고 하나님이 주재하는 생장 속도, 생장 빈도, 생장 수량을 넘어선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각기 다른 정도로 파괴될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생존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생물의 수가 너무 많으면, 그것은 인류의 먹거리를 빼앗을 것이고, 사람의 수원을 파괴할 것이며, 인류의 터전도 파괴할 것이다. 그러면 인류의 번성이나 인류의 생존 상태는 즉시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물’은 만물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만약 동물의 수량이 너무 많고, 쥐나 개미, 메뚜기, 개구리의 수량이 너무 많으면 그 동물들도 모두 마실 물이 필요하므로, 동물의 수량이 너무 많아지면 그와 동시에 식수량도 그에 따라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고정된 식수의 원천, 물이 있는 영역에서 사람의 식수량과 수원은 줄어들 것이고, 인류에게는 물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식수는 파괴되고 오염되며, 각종 동물들의 수량이 초과되는 재앙이 임하게 된다. 그런 열악한 생존 환경에서 인류의 생존은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생물이나 몇 가지 생물들이 그 정해진 수량을 초과한다면, 인류가 생존하는 공간의 공기, 온도, 습도에서 공기의 함량까지 다 어느 정도 해독을 입고, 파괴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상태에서 인류의 생존과 인류의 운명은 여전히 그런 생태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균형을 잃게 된다면 인류가 호흡하는 공기가 파괴될 것이고, 인류가 마실 수 있는 물이 오염될 것이며, 인류에게 필요한 온도도 어느 정도 바뀌게 되고,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류의 고유한 생존 환경은 큰 영향을 받게 되고, 도전을 받게 된다. 인류의 기본적인 생존 환경이 파괴된 그런 상황에서 인류의 운명과 인류의 전망은 어떠하겠느냐? 그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만물이 왜 인류를 위해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든 만물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모두 생각이 있고,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만물의 모든 면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이 행하는 매사는 다 아주 중요하고, 매우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만물 가운데의 어떤 생태 현상을 보게 되거나 만물 가운데의 어떤 자연법칙을 보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이 이 만물 중의 하나하나를 만든 필요성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너는 무지한 말로 하나님이 만물을 그렇게 안배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게 공급하는 것을 함부로 논단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만든 만물의 법칙에 대해서도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지금까지 말한 이런 것들은 어떤 것에 관련된 것이냐? 다시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하는 매사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사람은 그 뜻을 비록 측량할 수 없지만, 그것은 모두 사람의 생존과 커다란 관계가 있고,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으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헛된 일을 한 적이 없고, 하나님이 하는 매사와 그 일의 원리와 원칙에는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계획과 뜻의 목적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인류를 보호하여 재난을 피하게 하고, 그 어떤 생물의 침습도 받지 않게 하며, 만물 중의 그 어떤 것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해도 다 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화제 속에서, 그리고 이 화제를 통해 보게 된 하나님의 행사로부터 하나님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전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전 인류를 양육하고 목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화제와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주제와의 관계는 크지 않으냐? (큽니다.) 아주 큰 관계가 있는데, 그것은 그중 한 가지이다. 이런 화제에 대해 말하기 전까지는 다들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일부 막연한 상상만 가지고 있었을 뿐, 참된 인식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이 행한 일을 알려 주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행한 그런 일의 원칙을 다 알아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으며,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 (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을 주재하거나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그것에 관련된 원리, 원칙, 법칙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복잡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 가지고 교통하여 너희에게 인식하게 한다고 해도 너희는 그것이 하나님의 행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 아주 실제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하나님에 대해 인식하는 것과 이전에 하나님에 대해 인식한 것에는 어떤 다른 점이 있느냐? 본질상에서 다른 점이 있다. 이전의 인식은 아주 텅 비고 막연했지만 지금의 인식에는 실제적인 증거(證據)가 아주 많아 하나님의 행사에 비추어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한 이런 것들은 너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다 아주 좋은 교재(敎材)들이다.

오늘 예배는 여기까지 하자, 짜이찌엔(再見)! 굿나잇! (전능하신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오!)

2014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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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명정(命定): 명하여 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