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그리스도의 발표(선집)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하나님의 권병 (1)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에 관한 화제로 수차례 교통하였는데, 너희는 교통을 들은 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다고 느껴지느냐? 그런 이해와 인식은 얼마큼 되느냐? 너희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느냐? 너희는 지난 수차례의 교통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느냐? 그럼 그런 이해를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진실한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너희에게 하나님에 대한 그런 인식과 이해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전부의 실질과 소유소시에 대해 인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뻔한 일이다! 왜냐하면 지난 수차례의 교통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단지 일부분 내용일 뿐, 모든 것이 아니고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너희가 지난 교통을 통해 하나님이 전에 했던 사역을 일부분 알게 되었고, 이런 사역을 알게 된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 및 하나님이 일을 할 때마다 가진 태도와 생각까지 알게 되었지만, 그런 것은 단지 표면상에서, 구두상에서 하나님에 대해 이해한 것일 뿐이다. 너희는 그런 내용에 실제적인 요소가 얼마큼 포함되어 있는지에 관해서는 마음속으로 잘 모른다. 그런 내용에 대한 이해에 실제적인 요소가 있는지는 주로 무엇에 달려 있느냐? 사람이 실제 경력(역주: 체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얼마큼 진실로 경력할 수 있는지, 실제 경력 가운데서 얼마큼 보고 얼마큼 인식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수차례의 교통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생각도 알게 되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의 출발점 그리고 일을 하시는 원칙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았고 하나님의 전부를 인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이런 논법이 맞느냐? 분명히 틀리다. 왜 틀리다고 하겠느냐? 하나님이 했던 일, 하나님이 했던 말씀에는 모두 하나님의 성품이 발표되고, 모두 하나님의 소유소시도 발표되어 있다. 하나님이 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한 말씀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게 하는데, 이것은 단지 사람이 그런 역사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일부분 성품과 하나님의 일부분 소유소시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더 진일보로 알려고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더 많은 말씀과 역사를 경력해야 한다. 비록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역사를 부분적으로 경력할 때,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단지 일부분이지만, 그 일부분은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을 대표하지 않느냐? 하나님의 실질을 대표하지 않느냐? 당연히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실질도 대표한다. 그것은 틀림없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나타나고, 어떤 방식으로 그의 뜻을 표현하든, 그가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것과 발표하는 것은 다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고, 다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대표한다. 하나님은 그의 소유소시로 사역을 하고, 하나님 자신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역을 하는데,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도를 들을 때에만 하나님에 대해 일부분 알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부분 이해는 단지 이론상의 인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실제 정형으로 보면, 아직도 사람마다 실제로 경력하는 가운데서 체험하고 조금씩 체득해야만, 오늘 듣고 보고 또는 마음속으로 인식하고 터득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나 인식을 실증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을 교통하지 않고 사람의 경력만으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 이를 수 있겠느냐? 그것은 아마 매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사람이 어떻게 경력해야 할지 알게 되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큼 먹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실제적으로 경력할 수 있으며,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은 길을 인도하고 사람을 이끌어 경력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수차례의 교통은 진실한 경력이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더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더 실제적으로 알아가도록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만, 진실한 경력이 없는 사람이나 금방 경력하기 시작하고 금방 실제를 접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커다란 시련이다.

지난 여러 번에 걸쳐 교통한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이다. 너희는 내가 교통한 모든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부분과 핵심적인 부분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너희는 지난 여러 번의 교통을 통해서, 그런 사역을 할 수 있고 그런 성품을 유로할 수 있는 분은 바로 만물을 주재하는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할 수 있느냐? 너희가 다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너희는 무엇을 통해 확신한 것이냐? 몇 방면을 통해 확신한 것이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나는 내가 앞서 여러 번 교통한 내용이 확실히 너희를 촉동하여, 하나님에 대한 너희 마음속 인식에 새로운 시작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매우 좋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인식이 그전에 비해 매우 크게 늘었지만, 하나님의 신분에 대한 너희의 정의는 여전히 율법시대의 여호와 하나님과 은혜시대의 예수 이름에 머물러 있고, 또한 국도시대의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비록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 자신’이라는 이 화제에 대한 교통을 통해, 너희가 하나님이 이전에 했던 말씀과 했던 사역, 유로한 소유소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지만 ‘하나님’이란 이 명사에 대해서는 전혀 진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 자신의 지위와 신분, 즉 만물 가운데서의, 전 우주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지위에 대해서도 진실하고 정확한 평가나 인식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에 대해 그전에 교통한 모든 내용은 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전 발표와 유로에 근거한 것인데,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동시에, 혹은 그 외에 유로하고 발표한 소유소시는 모두 사람이 찾아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설령 하나님이 이전에 했던 사역에서 유로한 소유소시를 알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너희의 정의는 여전히 유일무이한 하나님,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과는 거리가 있고 조물주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난 수차례의 교통을 통해 각 사람마다 ‘하나님의 생각을 사람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어? 누군가 정말 안다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일 거야.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자신의 생각을 다 아시고, 또한 하나님 자신만이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하는 자신의 태도와 출발점을 아시니까.’라는 이런 느낌이 있을 것이다. 너희가 그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마치 경우에 들어맞고 순리대로 조리가 서는 것 같지만, 어느 누가 하나님의 성품에서, 하나님의 역사에서 그것이 확실히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지 사람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고, 그런 것이 다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능력을 지닌 분이 주재할 수 있는 것임을 볼 수 있겠느냐? 즉, 너희는 어떤 특징이나 실질을 통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신분을 지닌 하나님 자신이고 바로 만물을 주재하는 분임을 확인했느냐? 너희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가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즉, 너희는 수차례 교통을 통해 단지 하나님이 이미 사역했던 그 기간 역사(歷史)에 대해 이해가 좀 생기게 되었고, 이미 하신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태도와 표현 그리고 유로에 대해 이해가 좀 있게 되었을 뿐이다. 비록 그런 이해는 각 사람에게 이미 두 단계 사역을 한 그분이 바로 너희가 믿고 따르는 그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하게 하고, 또한 그가 바로 너희가 영원히 따라야 할 그분임을 확신하게 할지라도, 너희는 그가 바로 창세 이래 존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원까지 존재하는 그 하나님임을 확신할 수 없고, 또한 그가 바로 전 인류를 인도하고 주재하는 그분임을 확신할 수도 없다. 너희는 이 문제에 대해 틀림없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든, 주 예수든, 너희는 어떤 방면의 실질과 표현을 통해 그가 바로 너희가 따르려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류를 주관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그분이고, 더욱이 천지 만물을 주재하는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할 수 있느냐? 너희는 어떤 경로를 통해 너희가 믿고 따르는 분이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하느냐? 어떤 경로를 통해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하나님과 연계시키느냐? 무엇을 통해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천지 만물 가운데의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하느냐? 이것이 바로 내가 다음 화제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이다.

너희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이런 문제에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찾아야 할 진리가 있다. 이런 문제가 너희에게 임하여 너희가 직면해야 하고 선택해야 할 때, 너희의 우매와 무지로 인해, 또는 너희가 경력이 너무 얕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음으로 인해, 이런 문제가 철저히 해결될 수 없다면, 이런 문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에 가장 큰 장애물과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이 방면의 화제에 관해 교통할 필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 너희는 너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느냐? 너희는 내가 말하는 문제를 분명히 알고 있느냐? 이런 문제는 너희가 직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문제가 아니냐? 이런 문제는 너희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으냐? 진정한 문제가 아니냐? 너희는 이 일에 대해 매우 흐리멍덩하다. 보다시피, 너희는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진정 알지 못하고 있고, 그에 대해 진지한 태도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분의 말씀이 하나님의 발표이기에, 저는 그분이 하나님임을 알고 그분을 따릅니다. 그러면 충분한데 또 무슨 실증이 필요합니까? 설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단 말입니까? 설마 우리보고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말입니까? 설마 우리가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 자신의 신분에 대해 물음표를 찍어야 한단 말입니까?” 너희가 이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내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너희에게 하나님에 대해 의심이 생기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것도 아니다. 너희에게 하나님의 신분과 실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너희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실질을 알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지위를 인정하고 확신하도록 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 마음속의 유일한 분이 되게 하고, 각 피조물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를 복원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물주, 만물의 주재자,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 또한 내가 여기에서 교통하려고 하는 주제이다.

지금부터 성경의 본문을 읽어 보자.

1.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다

1) (창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2) (창1:6~7)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원문: 空氣)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3) (창1:9~11)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4) (창1:14~15)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5) (창1:20~21)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6) (창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첫째 날, 인류의 낮과 밤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해 생기고 세워졌다

먼저 첫 단락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3~5) 이 말씀에 기술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창세하기 시작해서 행한 첫 번째 일이다. 또한 하나님이 보낸,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는 첫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평범치 않은 하루였다. ‘하나님은 처음에 만물을 위해 빛을 예비했을 뿐만 아니라 빛과 어둠을 나누었다. 그날 하나님이 말씀하기 시작했고, 그의 말씀과 그의 권병(역주: 권세)은 공존했다. 그의 권병은 만물 중에 창현되기 시작했고, 그의 능력은 그의 말씀으로 인해 만물 중에 확장될 수 있었다. 그날부터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운행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는 이 말씀을 하자 그 ‘빛’이 곧 생겼다. 하나님은 어떤 공사도 벌이지 않았으나, ‘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나타났다. 그 빛은 바로 오늘까지 사람이 여전히 의존하고 있는, 하나님이 낮이라고 한 ‘빛’이다. 하나님의 명정으로 인해, 빛은 지금까지 그것의 실질과 가치를 바꾼 적이 없고 또한 지금까지 사라진 적도 없다. 그것의 존재는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을 창현하고 있고, 조물주의 존재도 선고하고 있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조물주의 신분과 지위를 실증하고 있다. 그것은 공허하거나 희미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이다. 그때부터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 텅 빈 세계에 첫 번째 물질적인 것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하나님 입의 말씀에서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해,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통해, 만물이 창조되는 첫 장면에 나타났다. 이어서 하나님은 빛과 어둠으로 나뉘라고 명하였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변화되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부르고 ‘어둠’을 ‘밤’이라 불렀다. 그로부터 하나님이 만들려고 하는 세계에 첫 번째 저녁과 첫 번째 아침이 생겼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첫째 날이라고 하였다. 그 하루는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한 첫날이자 또한 만물이 만들어진 시작이었고, 그가 만든 이 세계에서 조물주의 권병과 조물주의 능력이 처음으로 창현된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권병을 보게 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을 보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능력도 보게 하였다. 이런 능력은 하나님에게만 있기에 하나님만 이런 권병이 있고, 하나님에게만 이런 권병이 있기에 하나님만 이런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이나 물질이 이런 권병과 이런 능력을 구비하고 있느냐? 너희 마음속에 답이 있느냐? 하나님 외에 또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 이런 권병이 있느냐? 너희는 그 어떤 서적이나 간행물에서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가 천지를 개벽하고 만물을 창조했다는 기사가 있었느냐? 이것은 어떤 서적이나 그 어떤 기록에도 없는 것이다. 물론 성경 중에서도 이것은 유일하게 하나님이 창세한 것을 기록한, 기세가 대단하고 권병을 지니고 위력을 지닌 일부분 말씀이다. 이 일부분 말씀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병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신분을 대표한다. 이런 권병과 이런 능력을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상징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확실하게 말해서,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런 권병과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이 권병과 이 능력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하고 대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에 대한 한 방면의 특징이 아니냐? 이것을 너희가 보았느냐? 사람은 이 부분의 말씀에서 하나님에게는 유일무이한 권병이 있고, 유일무이한 능력이 있고, 지고지상한 신분과 지위가 있다는 이 사실을 아주 쉽게,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너희는 이상의 교통에서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둘째 날, 하나님의 권병이 물을 지배하고 궁창을 창조하여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공간이 나타났다

계속하여 두 번째 단락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원문: 空氣)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1:6~7).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말씀한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성경 본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하나님이 말씀하고 그 일을 하자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바로 이 단락의 성경 본문 중 마지막에 있는 그 말씀이다. “그대로 되니라”

간결한 두 마디 말씀에는 기세가 웅장한 한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이 어떻게 물을 관리하고 어떻게 인류의 생존 공간을 창조하였는지 그 놀라운 위업, 그 멋진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그림 속에서 물과 공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병으로 인해 나뉘어졌고, 하나님이 지정한 방식에 따라 위아래로 나뉘어졌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만든 공기는 아래의 물 위를 덮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위의 물을 받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조물주가 물을 움직이고 물을 다스리고(원문: 指揮) 공기를 창조한 장면의 장관과 그의 권병의 위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이 휘둥그레지게 하고 찬탄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또 한 번 위업을 이루었다. 그것은 조물주의 권병의 위력이 아닌가? 우리 함께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행사를 해석해 보자. 하나님이 말씀을 한 마디 하니 그 말씀으로 인해 물 가운데 공기가 생겼고, 동시에 그 한 마디 말씀으로 인해 그 공간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는 일반적인 의미상의 변화가 아니라 무에서 유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조물주의 생각에서 생긴 것이고, 조물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인해 무에서 유가 된 것이다. 아울러 그때부터 그것은 조물주를 위해 존재하고 세워지며, 조물주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갱신된다. 이 단락 말씀에 기록된 것은 조물주가 온 세계를 창조할 때에 했던 두 번째의 일이다. 그것은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이 또 한 번 발표된 것이자 조물주가 또 한 번 전례 없는 창조를 한 것이었다. 그 하루는 조물주가 창세 이래 지낸 둘째 날이자 또한 조물주가 지낸 또 하나의 다채로운 날이었다. 그는 빛 사이에서 거닐며 공기를 가져오고 물을 배치하고 주관하고 있었는데, 그의 행사, 그의 권병, 그의 능력은 새로운 하루 속에서 운행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말씀하기 전에 물 가운데에 공기가 있었느냐? 물론 없었다! 하나님이 “물 가운데에 궁창(원문: 空氣)이 있으라”고 말씀한 후에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나타났는데, 물 가운데에 공기가 있게 되었고, 물도 하나님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한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위아래로 나뉘어졌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말씀한 후,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만물 가운데 두 가지 새로운 것, 두 가지 신생 사물이 나타났다. 너희는 이 두 가지 신생 사물이 나타난 데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느냐? 조물주의 거대한 능력을 느꼈느냐?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비범한 기세를 느꼈느냐? 그런 기세와 그런 능력의 거대함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권병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대언이자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너희는 이 단락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또 한 번 깊이 느끼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아직도 상당히 부족하다.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은 그런 것에 그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가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피조물과도 다른 실질이 있다는 원인도 있겠지만, 또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은 비범하고 무한하고 모든 것을 초월하고 모든 것을 능가하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의 권병과 그의 소유소시가 생명을 창조하고 기적을 창조할 수 있고, 다채롭고 비범한 매 일분일초를 창조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가 창조한 생명을 주관할 수도 있고, 그가 창조한 기적과 매 일분일초까지도 주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날, 땅과 바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겨나고 하나님의 권병은 이 세계에 생기가 넘치게 하였다

계속해서 다음 단락, <창세기> 1장 9절에서 11절의 첫 마디를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이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는 이 말씀만 하였는데, 어떤 변화가 일어났느냐? 빛과 공기 외에, 그 공간 속에 또 무엇이 생겼느냐?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하자면, 그 공간에 또 땅이 생기고 바다가 생겼다. 즉, 물과 땅이 나뉘어진 것이다. 그런 신생 사물의 나타남은 다 하나님의 입에서 명령이 한 마디 나오자 ‘그대로 된’ 것이다. 성경 본문에 하나님이 그런 일을 이루는 기간에 바쁘게 보냈다고 기록되었느냐? 하나님이 손을 댔다고 기록되었느냐?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하였느냐? 하나님은 어떻게 그런 신생 사물을 생겨나게 하였느냐? 말하지 않아도 알다시피,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루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한 것이다.

우리는 이상의 세 단락 말씀에서 이미 세 가지 큰일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세 가지 큰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나고 생기게 된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차례대로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났다. 보다시피, “하나님이 이루어지라고 말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세워지라고 명하면 그대로 세워진다”라는 이 말씀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 실질은 하나님의 생각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실증되고, 하나님이 입을 열어 말씀할 때 충분히 체현된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한마디를 읽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겨났다. 순식간에, 저마다 형태가 서로 다른 여린 작은 생명들이 흙 속에서 작은 머리를 한들한들 내밀면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내지도 않은 채 한시도 참지 못하고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이 세상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베풀어 준 생명에 감사를 드리고 있고, 그것들은 만물 중의 일원이라고, 조물주의 권병을 창현하기 위해 각자의 생명을 바치겠노라고 이 세상에 알리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을 발함에 따라, 땅에는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각종 채소가 흙을 뚫고 올라와 생기 넘치게 자라며, 산천과 평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밀림이 울창하다…… 생기가 조금도 보이지 않던 그 벌거벗은 세계는 풀과 채소와 나무 등의 각종 식물에 덮여 재빨리 푸른 빛깔로 차고 넘친다…… 공기 속에는 풀의 향기가 가득하고 흙 향기가 물씬 풍기며, 각종 식물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숨을 쉬고 자라나는 과정을 시작한다. 동시에 그 모든 식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번식하는 생명 역정을 시작하고, 각자의 생명 운행 궤적을 충실히 지키기 시작하고, 만물 중에서 각자의 배역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모두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며, 모두 조물주의 끊임없는 공급과 자양을 얻을 것이고, 또한 영원히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을 창현하기 위해 이 대지의 곳곳에서 꿋꿋이 살아갈 것이며, 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영원히 창현할 것이다……

조물주의 생명은 비범한 것이고, 그의 생각은 비범한 것이고, 그의 권병은 비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을 발했을 때 마지막의 결과는 다 ‘그대로 되었던’ 것이다. 아주 뚜렷한바, 하나님이 일을 하는 데에는 손댈 필요가 없다. 그는 단지 생각으로 지휘하고, 말씀으로 명정했을 뿐인데,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날 하나님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 뭍이 드러나게 한 다음, 뭍에 풀이 자라나게 하였고,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도 자라나게 하였으며, 그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고, 열매마다 씨를 가지게 하였다.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분부한 대로 이루어져 잇따라 이 새로운 세계에 나타났다.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마음에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일에 대한 그림 한 폭이 그려져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기 시작할 때, 즉 하나님이 입을 열어 그 그림의 내용을 말씀할 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으로 인해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어떻게 그의 권병을 시행하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한 단계씩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해 한 단계씩 변화된 것이다. 그 모든 변화와 자라남은 다 조물주의 권병을 창현하고 있었고, 조물주의 생명 능력의 비범함과 위대함도 창현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간단한 구상이 아니고 텅 빈 그림이 아니라, 생명력을 갖고 있고 초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권병이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소생시키고 갱신시키고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로 인해 모든 사물은 다 그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동시에 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있었다……

만물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생각 속에 완전한 계획이 이루어져 있었고, 하나의 참신한 세계가 이루어져 있었다. 비록 셋째 날에 땅 위에 각종 식물이 생겨났지만, 하나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려는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여전히 계속 말씀하여 그가 창조하려는 한 가지 한 가지 신생 사물을 계속 만들어 내려고 하였다. 그는 말씀하고 명령하고 그의 권병을 시행하고 그의 능력을 창현하려고 하였으며, 그는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만물과 인류에게 예비해 주려고 계획한 한 가지 한 가지를 예비하고 있었다……

넷째 날, 인류의 사시, 일자, 연한은 하나님이 또 한 번 시행한 권병 속에서 탄생되었다

조물주는 말씀으로 자신의 계획을 이루면서 그렇게 계획 안에 있었던 첫 3일을 보냈다. 그 3일 동안 그가 분주하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기진맥진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반대로 그는 계획 안에 있었던 다채로운 첫 3일을 보냈고, 벽해상전, 상전벽해의 위업을 이루었다. 새로운 세계가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났는데, 하나님의 생각 속에 봉해져 있었던 아름다운 그림이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조금씩 펼쳐졌다. 신생 사물이 하나하나 나타나는 것은 마치 신생아가 태어나는 것과 같았다. 조물주는 자신의 생각 속에 있었던, 그날 이미 현실이 되어 나타난 그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시각, 그의 마음은 위로를 얻었지만, 그의 계획은 그때 막 시작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하루가 왔다. 조물주의 새로운 한 페이지의 계획은 또 무엇이었느냐? 그는 또 무슨 말씀을 하였느냐? 그의 권병은 또 어떻게 시행되었느냐? 동시에 또 어떤 신생 사물이 이 새로운 세계에 왔느냐? 조물주의 인도에 따라,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멈춰졌다. 그 하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조물주에게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또 다채로운 하루였고, 현재의 인류에게도 극히 중요한 하루였는데, 그 하루는 물론 헤아릴 수 없이 가치 있는 하루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얼마나 다채롭고,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을까? 먼저 조물주의 말씀을 들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창1:14~15) 이것은 하나님이 뭍과 그중의 식물을 만든 후에, 또 한 번 피조물에게서 하나님이 시행한 권병이 창현된 것이다. 하나님께 있어 이런 일을 하기란 마찬가지로 매우 쉬운 것이다. 하나님께 이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하면 그대로 하고, 또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에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그 광명체가 하늘에서 빛을 내어 땅을 비췄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사시, 일자, 연한을 위한 징조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이루려고 하는 매사는 다 하나님이 말씀한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지정한 방식에 따라 응하고 있었다.

‘하늘 궁창의 광명체’는 바로 상공에서 빛을 발하는 물체인데, 그것은 하늘을 비추고 땅과 바다도 비춘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령한 템포와 빈도수에 따라 회전하며 땅을 비추고, 서로 다른 시간대가 형성되게 한다. 그리하여 땅 위 동서쪽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생기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낮과 밤을 위한 표시가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서로 다른 회전 주기로 인류의 명절과 각종 날을 위한 징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반포한 사계절―춘하추동과 상부상조하고 서로 상응하여 인류에게 사시, 일자, 연한을 나타내는 규칙적이고 정확한 징조를 보여 주고 있다. 비록 인류가 경작하면서부터 비로소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로 구분된 사시, 일자, 연한을 알아보거나 접촉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인류가 오늘날 알고 있는 사시, 일자, 연한은 일찍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부터 있었고, 인류가 겪는 춘하추동의 교체 주기도 일찍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는 규칙적으로, 정확하게, 분명하게 사람이 낮과 밤을 식별하고 날짜를 셀 수 있게 하며, 사람이 절기와 연한을 매우 분명히 장악하게 할 수 있다. (달이 둥글어지는 날, 즉 한 달이 되는 날이면, 사람은 광명체가 비추는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알게 되고, 달이 이지러지는 날, 즉 한 달의 반이 되는 날이면, 사람은 새로운 절기의 시작을 알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유추하면, 몇 개 밤낮이 한 절기가 되는지, 몇 개 절기가 한 계절이 되는지, 몇 개 계절이 한 해가 되는지는 매우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류는 매우 손쉽게 광명체의 운행으로 나타나는 사시, 일자, 연한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류와 만물은 모두 부지중에 광명체의 운행으로 생기는 낮과 밤의 교체, 사계절이 바뀌는 이런 규칙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것도 조물주가 넷째 날에 광명체를 만든 의의이다. 마찬가지로 조물주가 이 일을 하여 이룬 목표와 의의도 여전히 그의 권병과 능력을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와 광명체가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가치도 역시 조물주가 권병을 시행한 또 하나의 역작이다.

아직 인류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그 새로운 세계에, 조물주는 이미 자신이 곧 만들 새 생명을 위해 ‘저녁과 아침’, ‘공기’, ‘땅과 바다’, ‘풀과 채소, 각종 나무’, ‘광명체와 사시, 일자, 연한’을 예비하였다.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은 그가 창조한 한 가지 한 가지 신생 사물에서 발표되고, 그의 말씀과 사실은 동시에 진행되는데, 오차가 조금도 없고 시간 간격이 조금도 없다. 그 모든 신생 사물의 출현과 탄생은 모두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을 실증하고 있다. 즉, 말씀한 이상 꼭 그대로 하고, 그대로 하는 이상 꼭 이루며, 이루는 이상 꼭 영원하다. 이 사실은 바뀐 적이 없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지금 다시 성경 본문의 이런 말씀을 보면, 너희는 아주 새롭게 느껴지지 않느냐? 너희는 새로운 내용을 보게 되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 것이 아니냐? 그것은 조물주의 행사가 너희의 마음을 움직였고, 너희에게 그의 권병과 능력을 인식하는 방향을 가리켜 주었고, 조물주를 알아가는 대문을 열어 주었으며, 그의 행사와 그의 권병이 이런 말씀 생명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에서, 사람은 조물주의 권병이 생생하게 나타남을 보게 되었고, 참으로 조물주의 지고지상을 보게 되었으며,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의 비범함을 보게 되었다.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은 하나 또 하나의 기적을 창조하고 있으며, 사람의 눈길을 끌고 있다. 사람은 권병으로 시행한 조물주의 하나하나의 놀라운 행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비범한 능력은 인류에게 한번 또 한번 놀라움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는데, 사람은 눈이 모자랄 정도가 되었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였으며, 또한 이로 인해 찬탄하고 기묘함에 탄복하고 갈채를 보내게 되었으며, 더욱이 이로 인해 얼굴에 감동의 빛이 돌게 되었고, 앙모와 경외와 그리움의 정이 생기게 되었다. 조물주의 권병과 행사는 사람의 심령을 뒤흔들고, 사람의 심령을 깨끗이 씻으며, 더욱이 사람의 심령에 만족을 얻게 한다. 그의 하나하나의 생각, 한 차례 한 차례 발한 음성, 그가 한 차례 한 차례 유로한 권병은 모두 만물 가운데서의 걸작이고, 모두 피조된 인류가 가장 깊이 알아가고 인식할 가치가 있는 놀라운 위업이다. 조물주의 말씀에서 탄생된 피조물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 능력의 기묘함에 끌려 저도 모르게 조물주의 발자취를 따라 다음날, 즉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다섯째 날에 왔다.

다음의 성경 본문을 조금씩 보면서, 조물주가 또 어떤 일들을 하였는지 보자.

다섯째 날, 형태가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생명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물주의 권병을 나타냈다

성경 본문은 이러하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0~21). 성경 본문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그날에는 하나님이 각종 수중 생물을 만들고, 땅 위에는 각종 새를 만들었다. 즉, 각종 어류와 각종 날짐승을 만들고, 아울러 하나님이 그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땅 위, 하늘의 궁창, 물속은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말씀을 발함에 따라, 순식간에 형태가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생생한 생명들이 조물주의 말씀 속에서 생동감 있게 나타났다. 그것들은 앞다투어, 팔짝팔짝 깡충깡충 뛰면서, 즐겁게 외치며 이 세상에 왔다…… 물속에는 각종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고, 각종 조개류가 물속의 모래흙에서 자라며, 각종 비늘이 있는 생물, 각질이 있는 생물, 연체 생물이 물속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앞다투어 자라났다. 그것들은 몸집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다. 동시에 각종 해조류도 서로 앞다투어 자라면서 물속 각종 생물의 움직임에 따라 너울거리고 몸을 한들거리며 쥐 죽은 듯 고요한 그 물에게 “세차게 흘러라! 네 친구와 함께,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만든 각종 수중 생물이 물속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그 하나하나의 생생한 생명은 오랫동안 고요했던 그 물에 활력을 가져오고 새로운 기원도 가져왔다…… 그때부터 그것들은 서로 의지하고 기대고, 서로 함께하면서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았다. 물은 그중의 생물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의 품속에서 생존하는 하나하나의 생명을 자양하고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생명도 물의 자양으로 인해 그 물을 위해 생존한다. 그것들은 상호 간에 서로의 생명을 바치며 동시에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의 기묘함과 위대함을 증거하고, 조물주 권병의 초월할 수 없는 힘을 증거하고 있다……

바닷물이 더 이상 고요하지 않게 된 동시에 공기 가운데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참새들이 땅에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것들이 각종 수중 생물과 서로 다른 것은 깃털이 가득 나 있고 두 날개를 갖고 있으며, 자태가 우아하고 몸짓이 가볍다. 참새들은 두 날개를 파닥거리며 보란 듯이(원문: 驕縱), 자랑스럽게 조물주가 부여한 화려한 겉옷과 특수 기능과 재간을 보이고 있는데, 자유롭게, 능숙하게 천지간을 날아다니며 초원과 수림을 누비고 있다…… 참새들은 하늘의 총아이고 만물의 총아이다. 그것들은 곧 하늘과 땅의 연결 고리가 될 것이고, 만물을 위해 정보를 전달할 것이다…… 그것들은 노래하고 즐겁게 춤추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텅 비어 있던 이 세계에 즐거운 노랫소리를 더해 주고, 즐거운 웃음소리를 가져오고, 생기와 활력도 가져왔다…… 그것들은 맑고 낭랑한 목청으로, 그것들 마음의 소리로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을 찬미하고 있다. 그것들은 즐겁게 춤추는 자태로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한 그 완벽함과 기묘함을 보여 준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해 준 특별한 생명으로 조물주의 권병을 증거하기 위해 그것들의 일생을 바치고 있다……

각종 수중 생물이든 아니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각종 생물이든, 그것들은 조물주의 분부에 따라 구조가 서로 다른 생명체 속에서 살고 있고, 또한 조물주의 분부에 따라 떼를 지으며 그것들 각자의 부류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규칙과 그 법칙은 어떤 피조물도 바꿀 수 없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제정해 준 범위를 전혀 초월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 범위를 초월할 수도 없다. 그것들은 조물주의 명정하에서 끊임없이 번식하며,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제정해 준 생명 궤적과 생명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고, 그것들에 대한 조물주의 소리 없는 분부와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준 천상의 법칙과 계율을 오늘날까지 자각적으로 준수하고 있다. 그것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조물주와 대화하고, 조물주의 뜻을 깨닫고, 조물주의 분부에 순종하는데, 어느 한 가지 물질도 조물주의 권병을 초월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조물주의 주재와 주관은 모두 생각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록 말씀을 발하지 않았지만, 조물주만이 갖고 있는 권병은 언어 기능이 없는, 인류와 다른 이 모든 만물을 아주 조용하게 주관하고 있다. 이런 특별한 방식으로 권병을 시행하였기에, 사람은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얻고, 새로운 해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하루에 조물주가 권병을 시행하여 또 한 번 조물주의 유일무이함을 나타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계속해서 이 단락 성경 본문의 마지막 한 마디를 보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너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가 창조한 만물이 이미 그의 말씀으로 인해 세워지고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다 점차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든 각종 물체, 그리고 이룬 갖가지 일에 대해 아주 흡족해하지 않았겠느냐? 이 답은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너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무엇을 뜻하느냐? 무엇을 상징하느냐? 말하자면, 하나님께는 그가 계획해 놓은 일, 그가 정해 놓은 일을 이루고, 그가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를 이룰 이런 능력이 있고, 이런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가지 일을 한 다음, 그에게 후회가 있었느냐? 답은 여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후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아주 흡족해했다는 것이다. 후회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한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도 완벽한 것이고, 그의 권병은 그가 일을 완벽하게 이루는 유일한 근원임을 설명한다. 사람도 한 가지 일을 하고 난 후, 하나님처럼 이렇게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이 하는 매사가 모두 완벽함에 도달할 수 있느냐? 사람이 한 가지 일을 한 번에 영원히 이룰 수 있느냐? 마치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이 있을 뿐 가장 좋은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은 영원히 완벽함에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한 매사와 이룬 매사가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창조한 한 가지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법칙으로 고정되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창조한 물체는 한 번에 영원히 규격화되었고 부류로 나뉘어졌고 위치와 그 용도와 기능이 고정되었으며, 동시에 만물 중에서의 그것의 역할과 하나님이 만물을 경영하는 기간에 그것이 가야 할 역정은 이미 하나님께 정해져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물주가 만물에게 제정해 준 ‘천상의 법칙’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사람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이 간결한 말씀, 사람의 주목을 충분히 끌기 어려운 이 말씀이 오히려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천상의 법칙과 천상의 계율을 하달한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조물주의 권병이 또 한 번 더 실제적이고, 더 깊게 체현되었다. 조물주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얻으려고 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이루려고 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만든 모든 것을 그의 수중에 주관할 수 있고, 그가 만든 만물을 질서정연하게 그의 권병 아래에 주재할 수 있다. 동시에 만물도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생존하고 소멸되며, 더욱이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그가 제정한 법칙 속에서 생존하는데, 그 법칙에서 함부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법칙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위해 조물주가 그것을 폐하는 그날까지 존재하고 지속되고 운행될 것이다!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는 데에서, 또 세워지라고 명하면 세워지는 데에서만 체현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가 만물을 관리하고 주재하고 만물에게 생기와 활력을 부여할 수 있는 데에서도 체현되며, 더욱이 조물주가 한 번에 영원히 그가 창조하려고 계획한 만물을 완벽한 형식, 완벽한 생명 구조, 완벽한 역할을 갖게 하여 그가 만든 세계에 나타나고 존재하게 할 수 있는 데에서도 체현되고, 조물주의 모든 생각이 어떤 조건의 국한도 받지 않고 시간, 공간, 지리의 제한도 받지 않는 데에서도 체현된다.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신분은 그의 권병처럼 태고부터 영원까지 바뀔 리가 없으며, 그의 권병은 영원히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대언과 상징이며, 그의 권병은 영원히 그의 신분과 공존할 것이다!

여섯째 날, 조물주가 말씀하자 그의 생각 속에 있었던 각종 생물이 속속 등장하였다

부지중에,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하는 사역이 지속된 지가 이미 5일이나 되었고, 잇따라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하는 여섯째 날을 맞이하였는데, 이 하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고, 또 하나의 평범치 않은 하루였다. 새로운 하루가 올 때, 조물주께 또 어떤 계획이 있었느냐? 또 어떤 새로운 피조물이 생기고 만들어졌느냐? 들어 보아라, 그것은 조물주의 음성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24~25) 이런 생물에는 모두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 있느냐? 성경 본문에는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고 기술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날 땅에 각종 생물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두 그 종류대로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앞의 다섯 날과 마찬가지로, 조물주는 여섯째 날에도 똑같은 어조로 명령하여 그가 원하는 생물이 생겨 땅에 나타나고, 또한 그 종류대로 되게 하였다. 조물주의 권병이 시행되는 동시에 그의 말씀은 절대로 허사가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에 조물주가 만들려고 계획한 한 가지 한 가지 생물이 모두 예정대로 나타난 것이다. 조물주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라는 이 말씀을 하자 뭍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땅 위는 순식간에 각종 생물이 내뿜는 기운으로 가득 찼다……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에는 튼튼한 살찐 소들이 꼬리를 휘저으며 연이어 나타나고, 매매 하고 우는 양들이 떼를 이루고, 울부짖는 말들도 달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고요하던 드넓은 초원은 온통 들끓었다…… 각종 가축이 나타나 고즈넉한 초원에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더하고 무한한 생기를 가져왔다…… 그것들은 초원과 친구가 될 것이고, 초원의 주인이 되어 초원과 서로 의존할 것이고, 초원의 순찰자와 보호자가 될 것이며, 초원도 곧 그것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어 그것들을 위해 모든 것을 공헌할 것이고, 그것들을 영원히 생존하게 하는 자양자(滋養者)가 될 것이다……

각종 가축과 같은 날에 생긴 각종 곤충도 조물주가 말씀을 발할 때 함께 잇따라 등장했다. 비록 그것들이 피조물 중 가장 작은 부류의 생명체일지라도, 그것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조물주의 기묘한 창조에서 온 것이다. 그것들은 결코 뒤늦게 오지 않았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고, 어떤 것은 천천히 기어 다니며, 어떤 것은 폴짝폴짝 뛰고, 어떤 것은 비틀거리며 걷고, 어떤 것은 앞걸음할 때 힘이 있고 어떤 것은 뒷걸음할 때 신속하며, 어떤 것은 옆으로 걷고 어떤 것은 앞뒤로 뛰어다닌다…… 그것들은 제각기 급히 자기의 집을 찾는데, 어떤 것은 풀숲에 들어가고, 어떤 것은 땅에 굴을 파느라 분주하고, 어떤 것은 나무에 날아올라 밀림 속에 숨어 있는다…… 그것들이 비록 몸집은 작지만 모두 배고픈 고통을 견디지 못하기에, 제각기 집을 찾은 다음 배를 채울 먹이를 급하게 찾는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여린 풀잎에 기어올라 먹기 시작하고, 어떤 것은 흙을 집어 들고 한 입 한 입 삼키는데, 아주 맛나게 먹으며 매우 즐거워한다(이 흙은 오히려 그것들의 맛있는 먹이가 되었다). 어떤 것은 비록 밀림에 숨어 있지만 결코 쉬지 않는데, 푸르른 나무 잎사귀의 즙액이 그것들의 맛있는 음식과 요리가 되었다…… 그것들은 배를 실컷 불린 후에도 결코 그것들의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들은 비록 작지만 에너지가 아주 크고 활력이 무한하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모두 만물 중에서 활동이 가장 빈번하고, 가장 부지런한 부류의 피조물이다. 그것들은 전혀 게으르지 않고, 전혀 안일을 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배를 실컷 불린 후, 여전히 그것들의 앞날을 부지런히 일하고 있고, 그것들의 내일을 위해, 그것들의 생존을 위해 바쁘게 보내고 있고 내달리고 있다…… 그것들은 각종 리듬을 가진 서로 다른 박자의 가요를 조용히 흥얼거리며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고 기운을 내며, 또한 풀숲에, 수림에, 끝없는 토양에 즐거움을 더해 주면서 색다른 하루하루와 한 해 한 해를 가져온다…… 그것들은 각자의 언어와 각자의 방식으로 땅 위의 각종 생물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또한 각자의 특수한 생존 궤적으로 만물에게 표시를 하고 흔적을 남긴다…… 그것들은 토양과 푸른 풀과 밀림과 아주 친밀한 관계이다. 그것들은 토양, 푸른 풀, 밀림에 활력과 생기를 가져다주고, 또한 갖가지 생물에 대한 조물주의 부탁과 안부도 전해 준다……

조물주의 눈길은 그가 만든 만물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 그 시각, 그의 두 눈은 밀림 속에, 큰 산 사이에 멈추었으나, 그의 생각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말씀을 발함에 따라, 무성한 밀림 속에, 큰 산 사이에 그전의 모든 피조물 부류와 다른 한 부류의 피조물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야수’이다. 그것들은 머리와 꼬리를 흔들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데, 서로 다른 특이한 생김새를 갖고 있다. 보라, 그것들 중 어떤 것은 털이 있고, 어떤 것은 딱딱한 껍질이 있고, 어떤 것은 이를 드러내고, 어떤 것은 입을 벌리고, 어떤 것은 목이 길고, 어떤 것은 꼬리가 짧고, 어떤 것은 두 눈에 살기를 띠고 있고, 어떤 것은 두려워하는 눈빛을 띠고 있고, 어떤 것은 몸을 굽혀 풀을 먹고, 어떤 것은 입에 피비린내가 가득하고, 어떤 것은 두 발로 뛰어다니고, 어떤 것은 네 발로 움직이고, 어떤 것은 나무에 기어올라가 멀리 바라보고, 어떤 것은 밀림 속에 숨어 기다리고 있고, 어떤 것은 동굴을 찾아 쉬고, 어떤 것은 평원에서 내달리며 장난치고, 어떤 것은 밀림을 헤치고 다닌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사납게 울고, 어떤 것은 으르렁거리고, 어떤 것은 미친 듯이 짖어 대고, 어떤 것은 울부짖는다…… 그것들의 소리는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나지막하고, 어떤 것은 우렁차고, 어떤 것은 또랑또랑하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얼굴이 흉물스럽고, 어떤 것은 생김새가 예쁘고, 어떤 것은 사람을 역겹게 하고, 어떤 것은 아름다워 호감을 가지게 하고, 어떤 것은 공포를 느끼게 하고, 어떤 것은 귀엽고 천진난만하다…… 그것들이 하나하나 속속 걸어 나온다. 보라, 그것들은 저마다 의기양양하고 제멋대로이며, 서로 상대하기 싫어하고 서로 쳐다보기도 싫어한다…… 그것들은 모두 제각기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각자의 특별한 생명과 야성과 야만을 지니고 밀림에 나타났고, 큰 산 사이에 나타났다. 그것들이 그토록 ‘눈에 뵈는 것이 없고’ 기세가 등등한 것은, 그것들이 모두 큰 산과 밀림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 아니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나타나라고 명령한 그 순간부터, 그것들은 밀림을 ‘강점’하고 큰 산을 ‘강점’했다. 조물주가 이미 그것들의 경계선을 정해 놓고 그것들의 생존 범위를 제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들이야말로 큰 산과 밀림의 진정한 제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이처럼 야성을 지니고 있고, 이처럼 ‘기고만장’한 것이다. 그것들이 ‘야수’로 불리는 까닭은 만물 중에서 그것들만이 진정 야성과 야만을 지니고 있는 길들이기 어려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길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사육될 수 없고 인류와 화목하게 거할 수 없으며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다. 바로 그것들이 사육될 수 없고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반드시 인류를 멀리해야 하고, 인류도 그것들을 가까이할 수 없다. 그것들이 인류를 멀리하고 인류가 그것들과 가까이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이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책임―큰 산을 보호하고 밀림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의 야성은 큰 산을 보호하고 밀림을 보호하는 것이며, 큰 산과 밀림은 그것들이 번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보호와 보장이다. 아울러 그것들의 야성은 또 만물의 균형을 수호하고 보장하고 있다. 그것들이 출현함으로, 큰 산과 밀림은 의탁과 기탁이 있게 되었으며, 그것들이 출현하여 고요하고 텅 빈 큰 산과 밀림에 무한한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때부터 큰 산과 밀림은 그것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었고, 그것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집을 잃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큰 산과 밀림은 그것들을 위해 생기고 존재하며, 그것들은 큰 산과 밀림을 지키기 위해 직책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고, 또한 엄격하게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탁한 것을 따름으로―그것들의 영토를 지키고 그것들의 야수 본성을 유지함으로 조물주가 제정해 놓은 만물의 균형을 수호하고,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을 창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물주의 권병 아래에 있는 만물은 다 완전무결하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는 새, 어류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나무, 화초와 같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은 여섯째 날에 만든 가축, 곤충, 야수를 포함해 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중에는 그런 일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완전무결함에 도달하였고, 하나님이 이르려고 하는 표준에 도달하였다. 조물주는 그의 계획에 따라 그가 하려고 하는 사역을 순서대로 하나씩 하고 있다. 그가 창조하려고 하는 것이 한 가지씩 나타났는데, 한 가지 한 가지의 나타남은 모두 조물주 권병의 체현이자, 또한 그의 권병이 가져온 결정체이다. 이런 결정체는 모든 피조물에게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게 하고, 조물주의 공급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게 한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흑암하던 데에서 맑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피조물마다 그것이 존재해야 할 특유하고 고정된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병 아래에서 생존한다. 어떤 때, 사람이 한 곤충을 보고 그 곤충이 아주 못생겼으면 “이 벌레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렇게 못생긴 벌레는 절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게 아니야. 하나님은 절대 이렇게 못난 것을 만드실 리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우매하다! 마땅히 “이 벌레가 못생기긴 했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거니 틀림없이 이것의 독특한 용도가 있을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은 그가 만들려고 하는 각종 생물들에게 다양한 생김새와 다양한 기능과 용도가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없다. 외형에서 내부 구조까지, 생활 습성에서 제각기 차지한 위치까지 모두 각기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당나귀는 당나귀의 생김새가 있고,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말해 봐라, 어느 것이 가장 잘생겼고, 어느 것이 가장 못생겼느냐? 어느 것이 가장 유용하고, 어느 것이 가장 존재할 필요가 없느냐?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좋아하지만 코끼리로 농사짓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사자와 호랑이의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만물 중에서 가장 위풍 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애완동물로 삼아 기를 수 있느냐? 어쨌든 만물을 대함에 있어, 사람은 모두 조물주의 권병에 순복하는, 즉 조물주가 만물에게 제정해 준 법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만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조물주의 본의에 대해 구하고 순복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만 진정 조물주의 권병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인데, 사람이 또 흠잡을 이유가 있겠느냐?

이때에 이르러, 조물주의 권병 아래에 있는 만물은 곧 조물주의 주재에 새로운 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조물주의 새로운 하루의 사역에 눈부신 서막을 열 것이며, 조물주도 곧 이 시각 그 자신의 경영 사역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펼칠 것이다! 만물은 조물주가 제정한, 봄에는 싹트고 여름에는 자라고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저장하는 이 법칙에 따라 조물주의 경영 계획과 멀리서 서로 호응할 것이다. 그것들은 각자 새로운 하루와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생명 역정을 맞이할 것이고, 그것들은 또한 조물주가 권병으로 주재하고 있는 아래에서의 하루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장하고 번성할 것이다……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은 다 조물주의 신분을 대체할 수 없다

만물을 창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발표되기 시작하고 유로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그가 어떤 방식으로 만유를 창조하였든지, 그가 왜 만유를 창조하였든지, 어쨌든 만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세워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다. 인류가 이 세계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 조물주는 그의 능력으로, 그의 권병으로 인류를 위해 만유를 창조하였고, 그의 특유한 방식으로 인류를 위해 적합한 생존 환경을 예비하였다. 그가 한 그 모든 것은 다 장래에 그의 생기를 얻을 인류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지음받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권병이 인류와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창현되었는데, 큰 것으로는 천체, 광명체, 해양, 육지가 있고, 작은 것으로는 날짐승과 길짐승 및 각종 곤충이나 미생물이 있다. 또한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각종 세균까지 포함해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존하지 않는 것이 없고,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번식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서 살지 않는 것이 없다. 그것들은 비록 조물주의 생기를 얻지 못했지만, 여전히 서로 다른 형식과 서로 다른 구조로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의 활력을 창현하고 있다. 그것들은 비록 조물주가 인류에게 부여한 언어 능력을 얻지 못했지만, 각자 모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베풀어 준, 인류의 언어와 다른, 생명을 표현하는 방식을 얻었다. 조물주의 권병은 겉보기에 정지된 듯한 물질에게 생명의 활력을 부여하여 그것들을 영원히 없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각종 생령(生靈)에게 번식할 본능을 부여하여 그것들이 영원히 자취를 감추지 않고 한 세대 또 한 세대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해 준 생존 법칙과 규칙을 전달하게 할 수 있다. 조물주 권병의 시행 방식은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어떠한 형식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천우의 운행을 주관하고 만물의 존망도 주재하며, 더욱이 만물을 움직여 그를 위해 효력하게 한다. 그는 산천, 호수의 운행을 관리하고, 그중의 만물도 주재하며, 더욱이 만물의 필요를 공급한다. 이것은 바로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 인류 외의 만물 중에서 창현된 것이다. 이런 창현은 일생 동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히 정지되지 않고 전혀 쉬지 않으며, 그것을 변경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일인일물(一人一物)이 없고, 더하거나 줄일 수 있는 일인일물도 없다. 조물주의 신분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조물주의 권병은 어떤 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어떤 비피조물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나 천사,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고, 더욱이 조물주의 권병도 구비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없고 하나님의 권병이 없는 까닭은, 그들이 조물주의 실질을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피조물 중,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와 천사,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대신해 일을 조금 할 수 있지만 결코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비록 인류가 구비하지 못한 능력을 조금 구비했지만 하나님의 권병은 구비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결코 하나님과 같은,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주관하고 만유를 주재하는 권병은 구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그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 역시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너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어떤 사자가 와서 만물을 창조하는 것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왜 그의 사자와 천사를 파견해 만물을 창조하게 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권병을 시행할 능력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그들도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다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 조물주의 권병 아래에 있고, 마찬가지로 조물주 또한 그들의 하나님이자 그들의 주재자이다.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능력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그들 중의 어떤 일원도 조물주의 권병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 중의 어느 하나도 조물주의 신분을 대체할 수 없는데,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없고, 영원히 조물주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와 사실이다!

우리는 이상의 교통을 통해, 오직 유일무이한 권병을 구비하고 유일무이한 능력을 구비한 만물의 창조자와 주재자만이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할 수 있다고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지 않겠느냐? 여기에서 너희는 나의 물음이 너무나 심오하다고 여길 것이다. 너희는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그중의 실질도 꿰뚫어 보지 못하기에 지금 이 물음에 대답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여기는데, 그럼 내가 계속해서 교통하겠다. 나는 이어서 너희에게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권병과 능력의 여러 방면의 실제 행사를 보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란 어떤 것인지를 참으로 이해하고 터득하고 인식하게 할 것이다.

2.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다

(창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조물주의 권병은 만물을 창조한 데에 이어‘무지개 언약’에서 또 한 번 실증되고 창현되었다

조물주의 권병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창현(彰顯)되고 시행된다. 그는 만물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가 손수 만든 인류, 즉 다른 생명 구조가 있고 다른 생명 형식으로 생존하는 특별한 피조물도 주재하고 있다. 만물을 만든 후, 조물주는 결코 그의 권병과 능력의 발표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만물을 주재하고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그의 권병은 인류가 참으로 그의 손에서 탄생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는 인류를 경영하고 인류를 주재하려고 하고,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고, 참으로 인류를 얻으려고 하였는데, 만물을 관리할 수 있는 인류를 얻으려고 하였다. 그는 이런 인류를 그의 권병 아래에서 살면서 그의 권병을 인식하고 그의 권병에 순복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정식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말씀으로 그의 권병을 발표하고, 그의 권병으로 그의 말씀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나님 권병의 창현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일부 특별한 사례만 골라, 너희가 그중에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이해하고 인식하도록 하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병을 이해하고 인식하도록 하겠다.

<창세기> 9장 11절에서 13절, 이 단락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세에 관해 기록한 위의 몇 단락 말씀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 유사한 부분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똑같이 말씀으로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한 것이다. 다른 부분은 이 단락의 말씀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대화인 것이다. 이 단락의 대화 내용은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사람에게 언약에 관한 내용을 알려 준 것이다. 하나님이 그때 행한 권병의 시행은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지음받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한 가지 분부와 한 가지 명령이었고, 그가 만들려고 하는 피조물에게 반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대상이 생겼으므로, 그때 그의 말씀은 사람과의 대화이기도 하고, 인류에 대한 그의 부탁과 훈계이기도 하며, 더욱이 만물에게 하달한, 권병을 지닌 그의 명령이기도 하다.

이 단락에는 하나님이 행한 어떤 일이 기록되어 있느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에, 사람과 세운 언약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증거를 하나 만들려고 하였다. 그 증거는 무엇이었느냐? 원문에서는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고 했다. 이는 인류에게 한 조물주의 본래 말씀이다. 그가 말씀한 동시에, 그 무지개는 지금까지도 사람의 시야에 나타나고 있다. 너희는 다 무지개를 본 적 있다. 사람이 무지개를 볼 때, 그 무지개가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알고 있었느냐? 과학은 이 일을 논증할 수 없다. 과학은 그것의 근원을 찾을 수 없고, 그것의 종적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물주가 사람과 언약을 세운 증거이며, 그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 없고 인위적인 것도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조물주가 말씀을 발한 후에 있게 된 권병의 계속이기 때문이다. 조물주는 사람과 세운 그의 언약과 그의 승낙을 그만이 갖고 있는 방식으로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무지개의 나타남을 하나님이 언약을 세운 증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조물주에게 있어서든 아니면 피조된 인류에게 있어서든 모두 영원히 바뀔 수 없는 천상의 계율이고 법칙이다. 지속적으로 변함없는 이 법칙은 조물주가 만물을 만든 후에 있게 된 권병의 또 한 번의 진실한 체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고,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은 무한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무지개’를 증거로 한 것은 바로 조물주 권병의 계속과 확장(원문: 延伸)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한 또 한 가지 일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운 증거이다. 그는 사람에게 그가 무엇을 이루려고 뜻을 정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응하게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는지를 알려 주었는데, 일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응했다. 오직 하나님께만 이 능력이 있다. 그가 이런 말씀을 한 지 수천 년이 된 오늘날에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말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 일은 지금까지 계속 바뀌지 않았고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 무지개를 옮겨 갈 수 없고, 아무도 그것의 규칙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위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말씀하면 꼭 그대로 하고, 그대로 하면 꼭 이루며, 이루면 꼭 영원까지이다.”라는 이 말씀이 여기에서 매우 뚜렷하게 체현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 권병과 하나님 능력의 아주 뚜렷한 증거와 특징이다. 이런 증거와 특징은 어떤 피조물에게도 구비되지 않았고 볼 수 없으며, 어떤 비피조물 중에서도 볼 수 없다. 이런 증거와 특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이 특별히 소유한 것인데, 그것은 조물주만이 갖고 있는 신분과 실질을 피조물과 구분해 놓았고, 아울러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증거와 특징이기도 하다.

하나님에게 있어 사람과 언약을 세운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는 그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그의 뜻도 알려 주려고 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자신만 갖고 있는 방식을 썼는데, 특별한 증거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고 그런 증거로 사람과 세운 그의 언약을 보증(원문: 承諾)하였다. 그렇다면 그 ‘언약’을 세운 것은 매우 큰 일이 아니냐? 그 일은 어느 정도로 크냐? 이것이 바로 그 ‘언약’의 특이한 점이다. 즉,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세운 언약이 아니고, 한 단체가 다른 한 단체와 세운 언약이 아니며, 한 국가가 다른 한 국가와 세운 언약도 아니라, 조물주가 전 인류와 세운 언약이고, 그 ‘언약’의 유효 기한은 조물주가 만물을 폐하는 그날까지이며, 그 ‘언약’의 집행자는 조물주이고 그것의 수호자도 역시 조물주이다. 어쨌든, 인류와 세운 ‘무지개 언약’의 모든 것은 다 조물주와 사람과의 대화대로 오늘까지 응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피조물은 조물주의 권병에 순복하고 복종하고, 조물주의 권병을 믿고 받아들이고 목격하고 칭송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느냐? 그것은 유일무이한 하나님 외에, 능히 그런 언약을 세울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무지개가 한 번씩 나타날 때마다 그것은 인류와 세운 조물주의 ‘언약’을 인류에게 알려 주고 인류에게 제시해 주며, 인류와 세운 조물주의 언약이 끊임없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이 인류에게 보여 주는 것은 ‘무지개’와 ‘언약’ 그 자체가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조물주의 그 권병이다. 무지개가 한 번씩 나타나 보여 주는 것은 은밀한 곳에서 경천동지하는 조물주의 기묘한 행사이고, 아울러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조물주의 권병이 활력 있게 체현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조물주의 다른 한 방면의 유일무이한 권병이 창현된 것이 아니냐?

3. 하나님의 축복

1) (창17:4~6)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2) (창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3) (창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4)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조물주만이 갖고 있는 말씀 방식과 특징은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권병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얻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원칙이 있고,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약속을 주고 얼마만한 은혜를 주는지는 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사람의 모든 행위에 근거하여 분배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또 사람에게 그 가운데서 무엇을 보게 하느냐? 여기서 우리 잠시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주는지 논하지 말고,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해 주는 원칙도 논하지 말고, 그래도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보고,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는 이 각도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보자.

이상의 4단락 성경 본문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준 것에 관한 기록인데, 하나님이 축복하려고 하는 대상, 예컨대 아브라함과 욥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했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준 원인도 상세하게 기술했으며, 동시에 그 내용도 상세하게 기술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 하나님이 선 각도와 위치에서, 우리는 복을 베푸는 자와 받는 자는 분명히 다른 신분과 지위, 실질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말씀하는 그런 어조와 방식, 선 위치는 조물주의 신분을 지닌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권병과 위력을 지니고 있고, 조물주의 존귀를 지니고 있으며, 그 누구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는 위엄도 지니고 있다.

먼저 창세기 17장 4절에서 6절을 보자.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이 몇 구절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약속이자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즉, 하나님이 그를 여러 민족의 아비가 되게 하고, 그의 후손을 심히 번성시키려고 하였으며, 또한 그에게서 나라가 세워지고 그로부터 왕들이 나오리라고 말씀한 것이다. 너는 이 몇 마디 말씀에서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의 권병을 본 것이냐? 너는 하나님 권병의 어떤 방면의 실질을 보았느냐?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면 발견하기 쉬운데,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신분은 하나님이 말씀할 때 사용한 단어에서 매우 뚜렷이 유로되었다. 예컨대, 하나님이 말씀한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될찌라 ……내가 너로……케 하리니” 중의 “너는……될찌라”, “내가……케 하리니” 등등 하나님의 신분과 권병을 지닌 이런 확실성 있는 용어는 한 방면으로는 조물주의 신실함을 말하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그것들이 다 조물주의 신분을 지닌 하나님의 전용어이자 관용어임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후손이 심히 번성하고 그에게서 나라가 세워지고 왕들이 나오리라고 축복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소원일 뿐이지 결코 약속이나 축복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감히 “내가 반드시 너로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하리라, 내가 너를 어떻게 어떻게 하리라……”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제 자신이 이 권력을 구비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해도 결정할 수 없고, 설령 이렇게 말했다 해도 그것은 빈말이고 쓸데없는 말이며, 사람의 욕망과 야심이 부추긴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소원을 이룰 수 없다고 여길 때, 감히 이렇게 호언장담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모두 좋은 소원이 있고, 후손이 모두 벼락출세하고 남보다 뛰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황제가 될 후손이 하나 생긴다면 정말 가장 큰 행운이다! 성장감이 나와도 괜찮고, 높은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것은 다 사람의 소원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후손을 위해 축복을 빌 수 있을 뿐, 어떤 사람에게 준 약속이나 승낙을 이행하거나 이룰 수는 없다. 사람은 모두 속으로 사람에게는 이런 것에 도달할 권력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것도 다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께 이런 권병이 있고, 그가 사람에게 준 모든 약속을 성취할 수 있고 실현시킬 수 있으며, 사람에게 주는 모든 축복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하나님이 한 사람의 후손을 심히 번성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고, 그가 한 사람의 후손을 흥성하게 하는 것도 단 한 마디 말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전혀 이를 위해 수고하지 않고, 이를 위해 골머리를 앓거나 신경 쓰며 걱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권병이다.

너희는 <창세기> 18장 18절의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라는 이 말씀을 본 후, 하나님의 권병을 느낄 수 있게 되었느냐? 조물주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느냐? 조물주의 지고지상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확실하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한 것은 하나님께 필승의 확신이라는 이런 신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또 이런 신심이 있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권병의 실증이고, 그의 말씀이 응할 수 있는 명령이다. 여기에 너희가 주의해야 할 두 단어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라고 한 이 말씀에 애매모호한 요소가 있느냐? 근심의 요소가 있느냐? 두려움의 요소가 있느냐? 인류에게 자주 표현되는, 사람만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이런 요소는 하나님 말씀 중의 ‘必要(반드시……되고)’와 ‘必因(반드시……말미암아)’라는 이 두 단어로 인해 조물주와는 결코 관련이 없다. 감히 이런 용어를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데에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감히 확실하게 다른 사람에게 강대한 나라를 축복해 주거나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는 사람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할수록, 그것은 무엇을 실증하느냐? 하나님께 이런 권병이 구비되어 있고, 하나님의 권병이 이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실증하며, 하나님이 반드시 이런 일을 이룰 것임을 실증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마음속에서 확실한 것이고 단호한 것이다. 또한 그는 그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니, 어떤 세력도 바꾸거나 가로막거나 파괴하거나 방해하여 그 일이 응하지 못하게 할 수 없다. 어떤 일이 발생하든지 하나님 말씀의 응함과 성취를 중지할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의 응함과 성취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의 위력이자 또한 사람이 부인해서는 안 되는 조물주의 권병이다! 네가 이 말씀을 다 읽었을 때, 마음에 또 의심이 있겠느냐? 이런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을 띠고 있고 위엄을 띠고 있으며 권병을 띠고 있다. 이런 위력과 이런 권병 그리고 사실이 이루어지는 필연성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도달할 수 없고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조물주만이 이런 말씨와 이런 어조로 인류와 대화할 수 있다. 사실에서, 그의 약속은 빈말이 아니고 큰소리가 아니라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초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발표임이 증명되었다.

하나님이 한 말씀과 사람이 한 말에는 어떤 구별이 있느냐? 네가 하나님이 한 이런 말씀을 볼 때는 하나님 말씀의 위력과 하나님의 권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너는 그 사람이 너무 교만하다고 느껴지고, 그가 큰소리치고 있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겠느냐? 그는 이런 능력이 없고 이런 권병을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전혀 이룰 수 없다. 그가 이렇게 확실하게 보증(원문: 許諾)한다면,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틀림없이 교만하고 주제를 모르는 것이며, 전형적인 천사장의 성정이 유로된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 입에서 나온 것인데, 너는 여기에 교만의 요소가 있다고 느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어린애 장난이라고 느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권병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사실이다. 그의 말씀이 입에서 나오기 전에, 즉 그가 어떤 일을 이루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약속이자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약속은 이미 정해진 사실이자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그런 사실들은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점차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하였다고 해서 결코 하나님에게 교만한 성품이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일을 이룰 수 있고, 그런 능력이 있고, 그런 일을 완전히 이룰 수 있는 그런 권병이 있으며, 그런 일을 이루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능력 범위의 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의 유로와 발표이고, 하나님 실질과 하나님 권병의 완벽한 유로와 표현이자, 또한 조물주의 신분을 가장 합당하고 가장 적합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 말씀 방식, 어조, 용어는 바로 조물주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신분에 완전히 부합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가식이 없고 뒤섞임이 없는데, 완전히 조물주의 실질과 권병이 완벽하게 나타난 것이다. 피조물에게는 그런 권병도 없고, 그런 실질도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이 부여한 능력도 없다. 사람에게 그런 유로가 있다면,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패괴 성정의 폭발이고, 사람의 교만과 야심이 작용한 것이며, 전형적인 마귀,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유혹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려는 악독한 속셈의 폭로이다. 하나님은 그런 말의 유로를 어떻게 보겠느냐?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려고 하고, 하나님으로 사칭하려고 하고, 하나님을 대체하려고 한다고 말씀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를 모방하는 속셈은 바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위를 대체하고, 본래 하나님께 속해야 할 인류를 강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이고 천사장의 후예가 하는 것이며, 천리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너희 중 누가 전에 어떤 한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을 모방하면서 말해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잘못 이끌고 미혹시켜 자신이 말하고 일하는 데에 하나님의 권병과 위력을 띠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게 하고, 자신의 실질과 신분이 남다른 것같이 느껴지게 하고, 심지어 자신이 말하는 어조가 하나님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껴지게 한 적이 있느냐? 너희는 이런 일을 한 적이 있느냐? 전에 하나님의 어조를 모방하고, 소위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 손동작을 하고, 소위 위력과 권병을 띤 적이 있다면, 그런 표현은 너희 대다수 사람들이 늘 해 오던 것이거나 하려고 했던 일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진정 조물주의 권병에 대해 보고 견식을 넓히고 인식했을 때, 다시 너희가 그때 했던 것이나 유로했던 것을 돌아본다면 역겹지 않겠느냐? 너희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이 인식되지 않겠느냐? 이런 부류 사람의 성정과 실질을 해부해 보면 그들을 저주스러운 지옥의 자식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무릇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은 다 굴욕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는 이 성질의 심각성을 인식했느냐? 어느 정도로 심각하느냐? 사람이 그렇게 하는 속셈은 바로 하나님을 모방하려고 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사람에게 자기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게 하려고 하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위를 없애려고 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쫓아내어 자기가 사람을 통제하고 삼키고 차지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는 다 이런 욕망과 야심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사탄이 패괴시킨 이런 실질 안에서 살고 있고, 모두 하나님과 적대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이런 사탄 본성 안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의 권병, 이 방면의 화제를 교통하였는데, 너희에게 아직도 하나님으로 사칭하고 하나님을 모방하려고 하는 욕망과 야심이 있느냐? 아직도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느냐? 아직도 하나님이 될 욕망이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이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사람이 사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비록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는 모방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실질은 모방할 수 없다. 네가 비록 하나님의 지위에 서서 하나님으로 사칭할 수 있을지라도, 너는 영원히 하나님이 하려고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영원히 만물을 주재하거나 주관할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의 안중에서 영원히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너의 능력과 재능이 얼마나 많든지, 네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갖고 있든지, 너의 모든 것은 다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있다. 설사 네가 엄한 말을 몇 마디 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으로 너에게 조물주의 실질이 있음을 설명할 수 없고, 너에게 조물주의 권병이 있음을 뜻할 수 없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지 배운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더해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러므로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영원히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피조물 중의 일원으로서 반드시 자기의 본위를 지키고 참답게 살며, 조물주가 준 부탁을 충실하게 지켜야지 분수에 넘치는 일이거나 자기 ‘능력 범위’ 외의 일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위대한 사람, 뛰어난 사람, 높고 큰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거나 하나님이 되기를 추구해서도 안 된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안 될 ‘소망’이다.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고, 하나님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더욱 파렴치한 일이고, 사람을 역겹게 하고 사람에게 버림받는 일이다. 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대견한 일이고, 피조물이 철저히 지켜야 할 바이며, 모든 사람이 다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이다.

조물주의 권병은 시간, 공간, 지리의 제한을 받지 않으며 조물주의 권병은 헤아릴 수 없다

우리 <창세기> 22장 17절에서 18절을 보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했던 또 한 단락의 말씀이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여러 차례 축복하여 그의 자손을 번성케 하려고 하였는데, 어느 정도로 많게 하느냐? 성경 본문에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말한 바와 같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자손 후대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단지 형상적인 말일 뿐이다. 하나님의 이 형상적인 표현을 통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후손은 한둘이 아니고 수천수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뭇 나라가 될 정도로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여러 나라의 아비가 되리라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많아지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달렸느냐? 사람에게 후손이 얼마나 있게 될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느냐?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진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명만이라도 사람은 결정할 수 없다. 누가 자기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아쉽게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얼마나 큰 능력이 있든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이 있든지, 사람은 결정할 수 없고, 아무도 하나님의 명정을 초월할 수 없다. 하나님이 너에게 얼마 있게 하면 그만큼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너에게 적게 있게 하면, 너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이 너에게 많이 있게 하면 네가 싫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냐?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 자신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는데,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이 “네 씨로 크게 성하여”라고 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약속이다. 이 약속은 ‘무지개 언약’처럼 영원히 성취될 것이고,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기도 하다. 이런 약속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행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다. 사람이 믿든 안 믿든, 사람이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사람이 하나님이 준 약속을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대하든,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조금도 차이 없이 응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의지나 관념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지 않고, 그 말씀은 그 어떤 인ㆍ사ㆍ물의 바뀜으로 인해 바뀌지 않으며, 만물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만물이 없어지는 그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응하는 그날이기도 하다. 그는 조물주이기에 그에게 조물주의 권병이 있고 조물주의 능력이 있으며, 그는 만유를 주관하고 모든 생명력을 주관하며,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있고 있는 것을 없게 할 수도 있으며, 모든 생과 사의 전환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손을 번성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지극히 간단한 일이다. 비록 이 일이 사람이 듣기에는 천일야화나 동화인 듯하겠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하나님이 하려고 작정한 일과 사람에게 약속한 일은 천일야화나 동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본 사실이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는 이것에 대해 체득이 있느냐? 사실로 증명된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이 많지 않으냐? 어느 정도로 많으냐? 하나님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말씀한 것과 같지 않으냐? 각국, 각 지역에 널리 퍼지고, 세계 각지에 널리 퍼진 것이 아니냐? 이 사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이냐? 하나님 말씀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말씀하고 난 후 몇백 년 또는 몇천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응하고 끊임없이 사실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고 하나님의 권병이 실증된 것이다. 당시에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빨리 생긴 일이고 짧은 시간 내에 응한 일이다. 그런 일이 성취되고 응하는 데는 시간의 차이가 없이 즉시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똑같이 다 하나님 권병의 창현이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그 일에서 사람에게 하나님 권병의 다른 한 방면의 실질을 보게 하였고, 또한 조물주의 권병의 헤아릴 수 없음도 보게 하였으며, 더욱이 조물주의 권병의 더 실제적이고 더 정밀하고 깊은 면도 알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권병이 그 사역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으로 약속한 그 사실이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만물 가운데, 모든 것은 다 그로 인해 서로 다른 변화가 생긴다. 마치 봄이 올 때 풀은 푸르르고, 꽃이 피고, 나무에 싹이 트고,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기러기들이 돌아오고, 논밭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만물도 다 따라서 소생되는데, 이것은 조물주의 기묘한 행사이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룰 때, 하늘의 만물과 땅의 만물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새롭게 바뀌고 변화되는데, 하나도 예외가 없다. 하나님의 승낙과 약속의 응험을 위해 만물도 다 효력하고 움직이며, 모든 피조물도 다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지배되고 안배되면서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고, 각자의 기능을 삼가 바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권병의 창현이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보았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느냐? 하나님의 권병은 범위가 있느냐? 시간의 제한이 있느냐?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을 논할 수 있느냐? 대소와 강약을 논할 수 있느냐? 사람의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권병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복을 주면, 그 축복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지속되는 것이다. 이 지속은 하나님 권병의 헤아릴 수 없음을 증거하고 있고, 또한 인류에게 조물주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력이 한번 또 한번 재현되는 것도 보게 한다. 그의 권병이 창현될 때마다 그의 입의 말씀을 완벽하게 나타내는데, 만물에게 나타내고 인류에게 나타낸다. 그리고 그의 권병으로 이루어진 매사는 그렇게 정교하고 뛰어나고 완벽하여 흠잡을 데가 없다. 다시 말해서, 그의 생각, 그의 말씀, 그의 권병과 그가 성취한 사역마다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 의의와 가치는 인류의 언어로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을 준 후, 그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가 약속을 얻기 전후의 배경이 어떠하든지, 또한 그의 생존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생기든지, 하나님께는 모두 손금 보듯 환하다. 하나님이 한 말씀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든지,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금방 발생한 것과 같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능력이 있고 하나님께 그런 권병이 있어, 그가 인류에게 준 하나하나의 약속을 뒤따르고 주관하고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든, 또한 그 약속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쳐야 완전히 응할 수 있든, 더욱이 그 약속을 이루는 데에 관련된 범위가 얼마나 넓든(예컨대 시간, 지리(원문: 地界), 종족 등등), 그 약속은 다 성취되고 실현될 것이며, 아울러 하나님께 있어서 그것은 다 식은 죽 먹기이다. 이것은 어떤 일을 실증하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이 주관하는 범위는 전 우주와 전 인류이다. 비록 빛은 하나님이 만든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빛만 관리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물을 만들었으니 물만 관리하고 나머지 일은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오해가 아니냐? 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준 일이 몇백 년이 지난 후 사람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졌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 약속은 여전히 전과 같았다. 그것은 여전히 성취되는 과정에 있고 멈춘 적이 없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권병을 시행하였는지, 만물이 또 어떻게 하나님께 지배되고 안배되었는지, 하나님이 만든 만물 가운데에서 얼마나 많은 멋진 이야기들이 발생했는지, 설사 인류가 이런 것을 전혀 모르고 전혀 들어 보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 권병의 창현과 하나님의 행사에서 유로된 하나하나의 멋진 부분은 모두 만물 가운데에서 전해지고 칭송되고 있다. 만물은 모두 조물주의 기묘한 행사를 창현하고 있고 말하고 있으며, 조물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한 토막 한 토막의 미담들은 영원히 만물에 의해 전해질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이 만물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와 무시부재(無時不在)이다. 네가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이 무소부재함을 보았을 때는, 하나님이 무소부재하고 무시부재한 분임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 지리, 공간과 어떤 인ㆍ사ㆍ물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병과 그의 능력의 범위는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데, 사람이 측량할 수 없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며, 사람이 영원토록 다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추리하기 좋아하고 상상하기 좋아하는데,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는 어디까지 되겠느냐?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느냐? 사람의 추리와 상상이 하나님 권병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지어낼 수 있느냐? 사람들로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인식하는 데에 이르게 할 수 있느냐? 사람들로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진실하게 터득하고 순복하게 할 수 있느냐? 사실에서 증명되다시피, 사람의 추리와 사람의 상상은 사람 두뇌의 산물일 뿐,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는 데에는 추호의 도움이나 유익이 없다. 어떤 사람은 일부 과학 환상 소설을 본 적이 있어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할 수 있고, 외계의 천체가 어떠어떠한지를 알지만, 설령 그럴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조금 이해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의 상상은 단지 상상일 뿐이다. 사람은 사실이 어떠한지, 즉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권병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설사 네가 달나라에 가 봤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이냐? 그것으로 너에게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여러 방면의 이해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범위가 얼마나 큰지 상상할 수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느냐? 사람의 추리와 상상이 모두 사람에게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게 할 수 없는 이상,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가장 현명한 선택은 추리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는 이 일에 대해 절대로 상상하고 추리하는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 자신의 신분, 하나님의 실질은 너의 상상에 의해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상에 의해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할 수 없다면, 어떤 방식을 써야 하나님의 권병을 진실로 인식하는 데에 이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교통을 통해, 또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력을 통해 점차적으로 체험하고 점차적으로 실증하여 점차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이르고 순차적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는 데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경로이다. 이것을 제외한 다른 지름길은 없다. 너희에게 상상하지 말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논리로 추리할 필요가 없고, 지식으로 분석할 필요가 없고, 과학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통해,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매사를 통해, 네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권병 있는 분임을 체득하고 검증하고 실증하라는 것이고, 그가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음을 실증하라는 것이다. 그의 능력은 시시로, 그가 진실한 하나님 자신임을 실증하고 있다. 이것은 각 사람마다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함에 있어 반드시 경력해야 할 경로이다. 어떤 사람은 더 간단한 방식을 찾아 이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더 간단한 방식을 생각해 냈느냐? 내가 말해 주겠는데, 너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이 발표한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하는 하나하나의 일을 통해 성실하게, 착실하게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텅 빈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조물주가 만물 생령을 주관하고 주재하는 사실이 조물주의 권병이 진실로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욥기>에도 욥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욥에게 무엇을 베풀어 주었느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2)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이런 것은 무엇이냐? 사람의 재산이 아니냐? 이런 재산을 소유한 욥은 그 시대에 아주 부유했던 것이 아니냐? 그는 어떻게 그런 재산을 소유하게 된 것이냐? 그의 부유함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이냐?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그런 재산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욥이 그런 재산을 어떻게 대하였는지,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대하였는지에 관한 것은 우리가 여기서 언급하려고 하는 화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축복을 놓고 말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다 꿈속에서도 바라는 것이지만, 사람이 일생 동안 얼마만한 재산을 얻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는지는 사람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논쟁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비록 하나님께 권병과 능력이 있어 사람에게 그 어떤 재산이든 베풀어 주고, 사람에게 그 어떤 축복이든 얻게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원칙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축복하느냐? 당연히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아브라함과 욥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축복은 다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그의 후손을 모래와 같이, 별과 같이 많게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일을 놓고 말하면, 하나님은 한 사람의 후손과 한 종족을 강성해지게 하였는데, 그 일에서 하나님의 권병이 주재한 것은 만물 생령 중에서 하나님의 생기를 내쉬고 있는 인류이다. 이 인류는 하나님 권병의 주재하에서, 하나님이 정한 범위와 속도에 따라 생육하며 생존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런 종족의 생존 능력, 확장 속도, 수명은 다 하나님의 지배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그 모든 것의 원칙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 권병의 섭리하에 막힘없이 통하고 실현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놓고 말하면, 천지가 뒤집히든지, 어떤 시대든지, 인류가 어떤 재난을 겪든지, 아브라함의 후손만은 치명적인 재난의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 종족만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욥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그를 매우 부유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더 많이 베풀어 준 것은 숨 쉴 수 있는 각종 생령인데, 그 생령들의 많고 적음, 번식의 빠르고 느림, 생존율의 높고 낮음, 그것들의 튼실 여부 등등 이런 구체적인 사항들도 다 하나님의 주관 가운데 있다. 비록 그런 생령에게 언어 능력이 없지만, 그것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조물주의 지배 아래에 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지배하는 원칙은 욥에게 약속한 축복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욥에게 준 축복에 대해 말하자면, 비록 약속의 내용은 좀 다를지라도 만물 생령을 주재하는 조물주의 권병은 똑같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 아브라함과 욥에 대한 하나님의 서로 다른 약속과 축복에서 발표되는데, 그것으로 또 한 번 인류에게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의 상상으로 닿기에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을 보게 한다. 그런 세부적인 내용은 또 한 번 인류에게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 역사에 대한 경력에서만 도달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보게 한다. 즉, 하나님의 권병은 단지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궁창이 있으라 하니 궁창이 생겼고 뭍이 드러나라 하니 뭍이 드러났느니라’는 이런 말씀에서만 체현된 것이 아니라, 더 많게는 하나님이 어떻게 빛을 지속되게 하고, 공기를 사라지지 않게 하고, 뭍을 영원히 물과 나뉘어지게 하는지에서 체현되고, 하나님이 어떻게 빛, 공기, 뭍, 이런 피조물을 주재하고 관리하는지의 세부 내용에서 체현되는 것이다. 너희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에서 또 무엇을 보았느냐? 아주 뚜렷한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욥에게 복을 베풀어 준 후, 결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권병이 이제 막 시행되기 시작하였고, 그는 자신이 한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을 다 현실이 되게 하고, 자신이 말씀한 하나하나의 세부 내용을 이행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세월 속에서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계속하여 하나하나 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께 권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만사만물이 다 이루어진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사람의 이런 상상은 좀 황당무계하다! 만약 네가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을 일방적으로만 대하고, 하나님의 권병이 주재하는 만물 생존의 각종 현상과 사실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권병에 대한 너의 이해는 너무나 공허하고 너무나 황당무계하다!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이런 상상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이미 궁지에 빠졌고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상상하는 하나님은 명령만 내리는 기계일 뿐, 권병을 지닌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아브라함과 욥의 사례를 통해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실제적인 면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욥을 축복한 후 가만히 있은 것이 아니고, 사자에게 하라고 시키고 자신은 성과만 보려고 기다린 것도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기만 하면, 만물은 모두 하나님 권병의 인도하에 하나님이 하려고 하는 사역에 협력하여 하나님께 필요한 인ㆍ사ㆍ물을 예비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서 나오면, 하나님의 권병은 온 땅에서 시행되기 시작하고, 아브라함과 욥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 응하기 위해 길을 개척하고, 동시에 앞으로 진행될 하나하나의 절차와 모든 중요한 일환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맞게 계획하고 예비한다는 것이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움직인 것은 하나님의 사자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도 포함된다. 즉, 하나님 권병의 시행 범위는 하나님의 사자들 가운데서만이 아니고, 더 많게는 만물을 움직여 하나님이 이루려고 하는 사역에 협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 권병의 구체적인 시행 방식이다. 너희의 생각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병을 ‘하나님께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저 셋째 하늘에 있거나 정해진 곳에 있으면서 아무런 구체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도, 모든 사역은 다 그의 생각 속에서 저절로 완성된다.’라고 이해할 것이다. 사람은 또, 하나님이 비록 아브라함에게 복을 베풀어 주었지만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고 말씀만 하면 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러냐? 아주 뚜렷한바, 아니다! 비록 하나님께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지만 그의 권병은 진실하고 실제적인 것이지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과 그의 능력의 진실성과 실제적인 면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하고, 인류를 인도하고 경영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유로되고 체현된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주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하나의 방식, 하나하나의 각도, 하나하나의 세부 내용과 하나님이 성취한 모든 사역, 그리고 만물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이 빈말이 아님을 매우 확실하게 실증했다. 그의 권병과 능력은 시각마다, 매사마다 창현되고 있고 유로되고 있다. 이런 창현과 유로는 모두 하나님의 권병이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시시각각 모두 그의 권병과 능력으로 그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고 만물을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으며, 그의 능력과 권병은 천사와 하나님의 사자를 포함해서 모두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축복해 주고 욥에게 무엇을 축복해 주는지,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하는 것이다. 설사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이나 욥에게 직접 임했을지라도, 그들이 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분부대로 한 것이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있고, 마찬가지로 모두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다. 비록 사람이 성경의 기록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임한 것을 보았을지라도, 비록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무엇을 하였는지 보지 못했을지라도, 사실상 진정한 능력과 권병의 집행자는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그 어떤 사람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설사 네가 천사나 사자에게 큰 능력이 있어 그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거나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 얼마의 일을 하는 것을 보았을지라도, 그들의 모든 행위는 단지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하기 위한 것일 뿐 절대로 하나님 권병의 창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조물주의 권병을 구비하고 소유한 일인일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물주의 권병을 시행하고 창현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다.

조물주의 권병은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다

너희는 이상의 세 부분 성경 본문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그의 권병을 시행할 때 원칙이 있음을 보았느냐? 예컨대, 하나님이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는데,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는다는 이 일을 사람에게 알려 주었다. 지금 사람이 보게 되는 ‘무지개’는 여전히 당초에 하나님이 말씀한 ‘무지개’가 아니냐? 그것의 성질과 의의에 변화가 있느냐? 확실히 말해서, 변화가 없다. 하나님은 그의 권병으로 그 일을 하였고, 그가 사람과 세운 언약은 지금까지 계속 지속되어 왔다. 이 ‘언약’이 언제 바뀌는지에 관해서는 물론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라고 말씀한 후, 지금까지 하나님은 계속 이 ‘언약’을 지키고 있다. 너는 이 일에서 또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께 비록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지만, 그는 매우 신중하고 매우 원칙적으로 일을 하고, 신용을 잘 지키며 일을 한다. 그의 신중함과 일하는 원칙은 조물주의 거스를 수 없음과 조물주 권병의 뛰어넘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비록 그가 지고지상한 권병을 소유하고 만물이 모두 그의 권세 아래에 있을지라도, 비록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구비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전혀 자신의 계획을 파괴하지도, 망치지도 않는다. 그는 권병을 시행할 때마다 모두 엄격하게 그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있고, 정확하게 그가 말씀한 대로, 그가 계획한 절차와 목표대로 진행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는 만물도 다 하나님 권병의 시행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의 권병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고, 그의 권병의 시행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일인일물도 없다. 그의 안중에, 축복받는 사람은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되고, 저주받는 사람도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징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 권병의 주재하에, 하나님 권병의 시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고, 하나님 권병의 시행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일인일물도 없다. 조물주의 권병은 어떤 요소가 바뀐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가 권병을 시행하는 원칙도 어떤 원인으로 인해 바뀌지 않는다. 천지가 크게 변해도 조물주의 권병은 변하지 않고, 만물은 없어져도 하나님의 권병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조물주 권병의 실질이다. 이것도 조물주의 유일무이함이다!

다음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함에 있어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씀인데, 그것의 함의는 이제 교통할 내용에 있다. 우리 계속해서 성경 본문을 읽어 보자.

4.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분부

(욥2: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사탄이 감히 조물주의 권병을 초월하지 못하기에 만물이 규율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욥기>에서 발췌한 말씀인데, 이 말씀 중의 ‘그’는 욥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비록 아주 간단하지만 많은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기술된 것은 영계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했던 구체적인 대화이다. 여기에 하나님이 말씀한 대상―사탄에 대한 설명이 있고, 하나님이 말씀한 구체적인 내용도 기술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분부이자 명령이었다. 그 명령의 구체적인 세부 내용은 욥의 목숨을 보존하게 하는 것과 관련되고, 하나님이 사탄에게 준, 욥을 대하는 데의 최저선―욥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는 것과 관련된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먼저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한 말씀임을 알게 되는데, <욥기>의 원문에 결부시켜 보면, 하나님이 어떤 배경하에서 이런 말씀을 하였는지 알게 된다. 즉, 사탄이 욥을 참소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동의를 얻어야만 욥을 시험할 수 있었고, 하나님은 사탄의 요구를 허락해 욥을 시험하게 한 상황에서 사탄에게 그런 조건을 제기한 것이다. 하나님이 “욥을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고 말씀하였는데, 이는 어떤 성질의 말씀이냐? 아주 뚜렷한바, 이것은 분부이자 명령이다. 네가 이 말씀의 성질을 알고 나면, 당연히 이 명령의 선포자는 하나님이고, 명령을 받아들이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대상은 사탄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양자의 관계는 이 명령을 통해, 이 말씀을 읽는 각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역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에 관한 성경 기록에서 제공되는 영계에서의 하나님과 사탄 간의 관계이고,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 지위의 구분이자 또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구체적인 사례와 구체적인 글자 기록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 지위의 판이한 면이다. 여기에서 나는 기록된 이 말씀이 인류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알아가는 데에 있어 중요한 문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인류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사람에게 조물주가 영계에서 사탄과 했던 한 토막의 대화를 통해 조물주 권병의 또 하나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하였다. 이 한마디 대화에서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은 또 한 번 실증을 얻었다.

겉으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질상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는 태도와 선 위치는 사탄보다 높은 것이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이 명령의 어조로 사탄에게 분부하여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 주고, 욥을 이미 그것의 손아귀에 넘겼으니 제멋대로 욥을 대해도 되지만 욥의 목숨만은 취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준 것이다. 그 뜻은 비록 욥을 그것의 손아귀에 넘겨주었지만 결코 욥의 목숨까지 넘겨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욥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태도는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이 명령에서 아주 뚜렷하게 나타났다(원문: 釋放). 그와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할 때 선 지위도 이 명령에서 나타나고 유로되었다.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선 지위는 단지 빛과 공기와 만물 생령을 만든 하나님만이 아니고 만물 생령을 주재하는 하나님만이 아니라, 인류를 주관하고 음부를 주관하는 하나님이고 모든 생령의 생사존망을 주관하는 하나님이다. 영계에서 하나님 외에 누가 감히 사탄에게 이런 명령을 하달하겠는가? 하나님은 또 왜 사탄에게 친히 그의 명령을 반포하였겠는가? 그것은 욥의 생명을 포함해, 사람의 생명은 다 하나님의 수중에 주관되어 있고, 하나님은 사탄의 침해를 허락하지 않고, 사탄이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이 욥에게 임하는 것을 허락했을 때에도 여전히 잊지 않고 특별히 그런 명령을 하달하여 재차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가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권병을 지금까지 감히 초월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명령과 구체적인 분부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그 명령에 따르고 순종하며 감히 거역하지 못했는데, 물론 사탄은 또 감히 제멋대로 하나님의 그 어떤 명령도 바꾸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탄에게 준 범위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감히 이 범위를 초월하지 못했다. 이것은 하나님 권병의 위력이 아니냐? 하나님의 권병이 실증된 것이 아니냐?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하는지, 사탄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여기는지, 이런 것은 사탄이 인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영계에서 분명하게 보았고, 하나님 권병의 위력과 하나님 권병의 시행 원칙에 대해 깊이 느낀 바가 있기에 감히 조금이라도 태만하지 못했고, 감히 조금이라도 거스르지 못했으며, 감히 하나님의 권병을 초월하여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노에 대해 감히 그 어떤 도전도 하지 못했다. 설사 사탄의 본성이 사악하고 교만할지라도, 사탄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제정해 준 한계와 범위를 감히 뛰어넘지 못했다. 천만년 이래, 사탄은 그 한계를 엄격히 지키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하나하나의 분부와 한 차례 한 차례의 명령을 지키면서 지금까지 그 한계를 한 걸음도 넘어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탄은 비록 악독하지만 패괴된 인류보다는 많이 ‘현명’하여 조물주의 신분을 알고 자기의 경계선도 알고 있다. 사탄이 ‘규율을 지키는’ 이 행위에서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은 사탄이 초월할 수 없는 천상의 계율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규율 속에서 변화되고 번식할 수 있고, 인류가 하나님이 제정한 궤적에서 번성하고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규율을 타파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고, 이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일인일물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조물주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조물주의 명정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조물주의 권병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조물주의 신분을 구비한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한 권병을 소유하고 있다

사탄의 ‘특수’ 신분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의 여러 방면의 표현에 대해 무척 흥미를 느끼고, 심지어 적지 않은 흐리멍덩한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 사탄에게도 권병이 있다고 여긴다. 사탄이 이적을 행할 수 있고, 인류가 해내지 못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류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동시에 마음속으로 사탄에게도 자리를 내주고, 심지어 사탄을 하나님으로 여겨 섬기고 있다. 그런 사람은 불쌍하면서도 가증스럽다. 그들이 불쌍한 것은 그들의 무지함 때문이고, 그들이 가증스러운 것은 그들의 대역무도함 때문이고 또한 그들의 천성적으로 사악한 본질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너희에게 무엇이 권병인지, 권병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권병은 무엇을 대표하는지를 알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자신이 곧 권병이고, 하나님의 권병은 하나님의 지고지상함과 하나님의 실질을 상징하고, 하나님 자신의 권병은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신분을 대표한다. 그러면 사탄이 감히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사탄이 감히 자기가 만물을 창조하였고, 또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사탄은 당연히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탄은 만물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했고 생명이 있는 것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에게 하나님의 권병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신분이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것에게 하나님과 똑같은 능력이 있느냐? 당연히 없다! 사탄이 한 그런 일, 사탄이 나타낸 이적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능력이냐? 권병이라고 할 수 있느냐? 당연히 아니다! 사탄은 사악한 조류를 이끌어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파괴하고 가로막는다. 이 수천 년 동안, 그것이 인류를 패괴시키고 잔혹하게 해한 짓들을 제외하고, 또 사람을 유혹하고 미혹하여 타락하게 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죽음의 골짜기에 들어서게 한 짓 외에, 사람이 기념할 만하고 칭찬할 만하고 중히 여기고 소중히 아낄 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그것에게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다면, 인류가 그것에게 패괴될 수 있겠느냐? 그것에게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다면, 인류가 그것의 참해를 당할 수 있겠느냐? 그것에게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다면, 인류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죽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 사탄에게 권병이 없고 능력이 없는 이상, 그것의 모든 행위의 실질에 대해 어떤 정론이 있어야 하느냐? 어떤 사람은 사탄의 모든 행위를 잔재주라고 정의를 내리는데, 나는 사탄에 대한 이런 정의는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류를 패괴시킨 악행이 잔재주이냐? 사탄이 욥을 잔혹하게 해한 그런 사악한 기세와 욥을 해하여 삼키려는 그 강렬한 욕망은 절대 잔재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욥의 온 산과 들에 가득했던 소와 양이 없어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욥의 거액의 가산이 다 없어졌는데, 그것이 잔재주로 할 수 있는 것이냐? 사탄이 한 모든 행위를 그 성질에서 보면 모두 파괴, 방해, 파손, 참해, 사악, 악독, 음침(원문: 陰暗) 등등 이런 부정적인 단어와 어울리고 맞물린다. 그러므로 모든 비정의와 사악한 사물의 발생은 다 사탄의 행위와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고, 다 사탄의 추악한 실질과도 갈라놓을 수 없다. 사탄이 얼마나 ‘능력이 뛰어나고’ 얼마나 건방지든지, 그것의 야심이 얼마나 크든지, 그것의 파괴력이 얼마나 강하든지, 사람을 패괴시키고 사람을 유혹하는 그것의 재능이 얼마나 광범위하든지, 사람을 위협하는 그것의 수작과 간계가 얼마나 뛰어나든지, 그것이 존재하는 형태와 방식이 얼마나 변화무쌍하든지, 그것은 지금까지 생명이 있는 그 어떤 것도 창조해 낼 수 없었고, 만물 생존의 법칙과 규율을 제정할 수 없었으며,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주관하거나 주재할 수 없었다. 우주 궁창에, 그것에게서 나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존하는 일인일물이 없고, 그것이 주재하는 일인일물이 없으며, 그것이 주관하는 일인일물이 없다. 반대로, 사탄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더 하나님의 모든 분부와 명령에 순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사탄은 지상의 물 한 방울, 모래알 하나도 쉽게 건드릴 수 없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지상의 개미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이겠느냐? 사탄은 하나님의 안중에서 산속의 백합보다 못하고, 하늘의 새보다 못하며, 바닷속의 물고기보다 못하고, 땅의 구더기보다도 못하다. 그것이 만물 중에서 하는 역할은 만물을 위해 효력하고, 인류를 위해 효력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위해 효력하는 것이다. 그것의 본성이 얼마나 악독하든지, 그것의 실질이 얼마나 사악하든지, 그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충실하게 그것의 기능을 지키는 것―하나님을 위해 효력하는 것, 즉 좋은 안받침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본질과 그것의 본래 위치이다. 그것의 실질은 생명과 무관하고, 능력과 무관하며, 권병과도 무관하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 수중의 장난감에 불과하고, 하나님께 효력하는 데에 쓰이는 기계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원형을 알고 나서도 권병이 무엇인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데, 그럼 내가 알려 주겠다! 권병 자체를 놓고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선 확실하게 말해서, 권병이든 능력이든 다 긍정적인 것이다. 권병과 능력은 그 어떤 부정적인 것과도 관계가 없고,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과도 관계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 어떤 형식의 생명이 있고 활력이 있는 것이든 창조해 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병은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복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기게 하고,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 생존하고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를 주재하고 주관하는데, 영원토록 전혀 오차가 없다. 이런 것은 그 어떤 사람이나 물질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오직 조물주만이 이런 능력을 소유하고 구비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을 권병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유일무이함이다. 그러므로 ‘권병’, 이 단어 자체든 아니면 권병의 실질이든, 그것은 오로지 조물주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조물주의 특유한 신분과 실질의 상징이기 때문에, 조물주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 조물주 외에 ‘권병’, 이 단어와 관련이 있는 일인일물은 없다. 이것도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에 대한 해석이다.

사탄이 비록 욥에 대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욥의 털끝 하나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그것이 비록 천성이 사악하고 잔인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에게 명령을 내린 후, 그것은 하나님이 분부한 것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설사 사탄이 욥에게 임했을 때 흉악한 이리가 양 무리에 들어온 것처럼 사납게 날뛰었을지라도, 감히 하나님이 그것에게 준 범위를 잊을 수 없고,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초월할 수 없었다.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감히 하나님 말씀의 원칙과 범위를 떠나지 못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냐? 이런 것에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한 임의의 한 마디 말씀도 다 사탄이 감히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탄에게 있어, 무릇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다 명령이고, 다 천상의 법칙이고, 다 하나님 권병의 발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의 배후에는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천상의 법칙을 어기고 대항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초월한다면, 하나님의 권병을 초월하고 천상의 법칙에 대항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는 도대체 무엇이냐?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사탄이 욥, 이 한 사람에게 저지른 일은 단지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하나의 축소판일 뿐이다. 사탄이 그 일을 저지를 때, 하나님이 그것에게 준 범위와 명령은 그것이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하는 원칙의 축소판일 뿐이다. 그리고 사탄이 그 일에서 맡은 역할과 그것의 위치도 사탄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맡은 역할과 위치의 축소판일 뿐이다. 욥을 시험한 일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탄의 절대적인 복종은 사탄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하나님에게 감히 추호도 대항하지 못하는 하나의 축소판일 뿐이다. 이런 축소판이 너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이냐? 사탄을 포함하여 만물 중에 조물주가 제정한 천상의 법칙과 천상의 계율을 초월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고, 그런 천상의 법칙과 계율에 감히 대항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다. 왜냐하면 대항하는 자에 대한 조물주의 처벌을 바꿀 수 있거나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조물주만이 천상의 법칙과 계율을 제정할 수 있고, 오직 조물주만이 그런 천상의 법칙과 계율을 시행할 능력이 있으며, 오직 조물주의 능력만은 그 어떤 일인일물도 초월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만이 갖고 있는 권병이다. 이 권병은 만물 중에서 지극히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하나님은 으뜸이고 사탄은 버금이다”라는 논법은 없다. 유일무이한 권병을 소유한 조물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지금 너희는 하나님의 권병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인식이 있느냐? 우선, 여기에서 말한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의 권력과 구별이 있느냐? 어떤 구별이 있느냐? 어떤 사람은 함께 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아주 좋다! 사람이 비록 함께 논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의 사상 관념으로 늘 사람의 권력을 권병이라 말하고 또한 늘 그것들을 함께 놓고 비교하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이것은 다른 개념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니냐? 연관시킬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데도, 사람은 억제하지 못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네가 정말 해결하고 싶다면,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병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너는 조물주의 권병을 이해하고 인식하고 나면 사람의 권력과 하나님의 권병을 함께 논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권력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의 패괴 성정과 사람의 욕망 또는 사람의 야심을 최대로 부풀어 오르게 할 수 있는,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재능이나 수완이다. 이것을 권병이라고 할 수 있느냐? 어떤 사람에게 있어, 그의 야심과 욕망이 얼마나 크게 부풀어 오를 수 있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든, 그에게 권병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가 부풀어 오르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기껏해야 사탄이 사람 가운데서 하는 짤막한 어릿광대 연기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사탄이 스스로 자신의 선조가 되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야심을 만족시키는 한 토막의 촌극에 불과하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권병을 어떻게 대하느냐? 이상의 이런 말씀을 교통한 후, 너는 마땅히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럼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하나님의 권병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지 않느냐?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상징하지 않느냐?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지위를 상징하지 않느냐? 너는 만물 중 어떤 일에서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느냐?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 사람이 겪는 사계절에서 보면, 춘하추동이 교체되는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봄이면 나무에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나뭇잎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열매 맺고, 겨울이면 낙엽이 지는데, 이런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권병이 한 방면으로 체현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는데, 그 ‘빛’이 현재 존재하지 않느냐? 그것의 존재는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이냐?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공기가 현재 존재하지 않느냐? 인류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누가 빼앗아 갈 수 있겠느냐? 누가 그것의 실질과 기능을 바꿀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안배한 낮과 밤, 명정한 낮과 밤의 이 법칙을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사탄을 포함해 깨뜨릴 수 있겠느냐? 설령 네가 밤에 자지 않고 밤을 낮으로 삼아 지낸다고 해도, 그것은 역시 밤이다. 너는 너의 생활 법칙을 바꿀 수 있어도 낮과 밤이 교체되는 법칙을 바꿀 수는 없다. 이 사실은 아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사자를 소처럼 밭을 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코끼리를 나귀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닭을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이리를 양처럼 풀을 뜯어 먹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물속의 고기를 육지에서 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왜 없느냐? 하나님이 그것을 물에서 살도록 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은 물속에서 살아야지 육지에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한 범위를 초월하지 못한다. 만물은 다 생존하는 법칙과 범위가 있고 각자의 본능도 있는데, 이런 것은 모두 조물주가 정해 놓은 것이니, 누구도 바꿀 수 없고 초월할 수 없다. 마치 사자가 영원히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야생 세계에서 사는 것과 같이, 그것은 영원히 소처럼 충직하고 온순하게 사람과 동반하고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없다. 비록 코끼리와 나귀는 다 네 발 가진 동물이고 다 숨 쉴 수 있는 피조물이지만, 그들의 종류는 서로 다르다. 그들은 각기 하나님에 의해 종류가 구분되고 모두 각자의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서로 바뀔 수 없다. 비록 닭도 두 다리가 있고 독수리처럼 날개를 갖고 있지만, 닭은 영원히 하늘을 날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나무 위로 날아오를 뿐이다. 이것은 닭의 본능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하나님 권병의 명정으로 있게 된 것이다.

인류가 오늘까지 발전하면서, 인류의 과학은 ‘나날이 발전한다’고 할 수 있고, 과학을 탐색하는 중에서 얻은 성적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고 할 수 있으며, 인류의 재주는 갈수록 늘어난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인간의 과학이 넘어설 수 없다. 다시 말해, 인류가 비행기를 만들고 항공 모함을 만들고 원자탄을 만들고, 우주에 가고 달에 가고, 인터넷을 발명하고 첨단기술로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인류는 숨 쉴 수 있는 생물은 하나도 만들어 낼 수 없고, 어떤 생물의 본능과 생존 법칙 및 각종 생물의 생사윤회에 대해서도 인류 과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고 그것을 장악할 수도 없다. 이는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절정에 이를지라도 조물주의 하나의 생각보다 못하고, 조물주의 창조의 기묘함과 조물주 권병의 위력을 측량할 수도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구상의 바닷물이 그렇게 많아도 함부로 그것의 범위를 벗어나 육지에 올라온 적이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것들에게 각자의 경계선을 다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에게 어디에 있으라고 명정하면 거기에 있고,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고,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것에게 움직이라고 말씀할 때에야, 그것이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의 방향과 그것의 존재는 하나님의 권병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병’을 보통 말로 해석하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어떻게 할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으니, 하나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만물의 법칙은 다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명정으로 말미암아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천지 만물, 우주, 별하늘, 일년 사계절,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명정대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하나님이 당시에 창조한 법칙대로 조금도 차이 나지 않게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서 존재하고 운행하고 변화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질도 그것의 법칙을 바꿀 수 없고, 그것의 원래 운행 궤적을 바꿀 수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또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소멸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지금 너는 하나님의 권병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라고 느껴지지 않느냐? 하나님의 권병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이 구비할 수 있는 것이냐? 그 어떤 인ㆍ사ㆍ물이 모방할 수 있고 사칭할 수 있고 대체할 수 있는 것이냐?

조물주의 신분은 유일무이하니 ‘다신론’을 지키지 말라

비록 사탄의 기량과 재능이 사람의 것보다 클지라도, 비록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하는 일이 네가 부러워하는 것이든, 지향하는 것이든, 증오하는 것이든, 혐오하는 것이든, 볼 수 있는 것이든, 볼 수 없는 것이든,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그것을 참배하고 공양하게 할 수 있든, 네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너는 절대로 그것이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을 구비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하나님은 곧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오직 한 분임을 알아야 하며, 더욱 하나님만이 권병을 구비하고 만물을 주관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구비했음을 알아야 한다. 너는 사탄에게 사람을 미혹하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사탄이 하나님을 사칭할 수 있고 하나님을 모방해 표적을 행하고 이적을 나타내고 하나님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여러 분이 있는데 그들의 기량에 크고 작음이 있고 그들이 주관하는 범위에 구별이 있을 뿐이라고 잘못 여기면서 그들의 선착순, 그들 나이의 다소에 따라 그들의 크기를 배열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잘못 여겨서도 안 되며,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병이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고 잘못 여겨서도 안 된다. 너에게 이런 생각이 있다면, 네가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권병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네가 ‘다신론’만 지킨다면, 나는 네가 피조물 중의 인간쓰레기이고 전형적인 사탄의 화신이고 지독히 사악한 놈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도대체 너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 것인지, 너희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느냐? 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배경에서든 하나님을 다른 인ㆍ사ㆍ물과 함께 논해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얼마나 알기 어렵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여기든, 사탄의 행실이나 논법이 얼마나 너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든, 얼마나 너를 만족시키든 너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개념이 헷갈리지 말고, 하나님의 존재를 거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부인하지 말고, 하나님을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사탄을 끌어와 네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대신하지 말고, 너의 하나님으로 삼지 말라. 이렇게 하는 결과는 무엇일지, 너희는 모두 생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류는 비록 패괴를 거쳤을지라도 여전히 조물주 권병의 주재 아래에서 생존한다

사탄은 인류를 수천 년 동안 패괴시켰고, 무수한 악을 저질렀으며,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을 미혹시켰고, 인간 세상에서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했다. 그것은 사람을 잔혹하게 해하고, 미혹하고, 유혹하여 하나님께 대항한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악행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있는 만물 생령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하나님이 제정한 법칙과 규율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의 권병에 비하면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그것의 날뜀(원문: 猖獗)은 그토록 추하기 짝이 없고, 그토록 사람을 역겹게 하고 혐오케 하며, 또한 그토록 보잘것없고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설사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이리저리 돌아다닐지라도, 그것은 전혀 하나님 명정하의 그 어떤 인ㆍ사ㆍ물도 바꿀 수 없다. 인류는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하나님이 내려 준 빛과 공기를 누리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이 친히 내쉰 숨을 쉬고 있으며,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한 화조어충(花鳥魚蟲)을 누리고 있고, 하나님이 공급하는 만물을 누리고 있다. 낮과 밤은 여전히 끊임없이 바뀌고, 사계절도 예전과 다름없이 바뀌고 있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기러기들은 올 겨울에는 갔다가 내년 봄이 되면 변함없이 돌아온다. 물속의 고기는 지금까지 그들의 집―강과 호수를 떠난 적이 없다. 여름에 지상의 매미는 자기들만의 노래를 실컷 부르고 있고, 가을에 풀숲 속의 귀뚜라미는 가을 바람을 타고 나지막한 소리로 노래하며, 기러기는 무리를 짓지만 참매는 외로운 홀몸이고, 사자 무리는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고라니는 꽃과 풀숲을 떠나지 못한다…… 만물 중의 각종 생령은 갔다가 또 오고, 왔다가 또 가며 순식간에 끊임없이 바뀌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그것들 각자의 본능과 그것들의 생존 법칙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공급과 자양 아래에서 생존하는데, 그것들의 본능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것들의 생존 법칙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만물 중에서 생존하는 인류가 설령 사탄에게 패괴되고 사탄의 미혹을 받았을지라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물과 공기와 만물을 떠날 수 없고,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이 공간에서 번성하며 생존하고 있다. 인류의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여전히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머리로 사고하고, 심령으로 깨닫고, 두 다리와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일하는 등등,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하나님에게서 오는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고, 인류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으며, 인류가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고, 인류 심령의 필요는 변하지 않았으며, 인류가 본래 뿌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소원은 바뀌지 않았고, 인류가 조물주의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소원은 바뀌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서 생존하고 있지만 사탄의 참혹한 학대를 겪고 있는 인류의 현 상태이다. 비록 인류는 사탄의 유린을 당할 대로 당하여 더 이상 태초에 창조한 아담, 하와가 아니라 지식, 상상, 관념 등등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들로 가득 차고 사탄의 패괴 성정으로 가득 찬 인류이지만, 인류는 하나님의 안중에서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이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 아래에 있고, 여전히 하나님이 제정한 궤적에서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안중에 사탄에게 패괴된 후의 인류는 겉으로 때가 가득하고, 허기지고, 반응이 조금 느리고, 기억이 조금 쇠퇴해지고, 나이가 조금 들었을 뿐, 사람의 각 기능과 본능은 오히려 완전하고 손상이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하는 인류이다. 이런 인류는 조물주의 부름을 듣고, 조물주의 음성을 듣기만 하면 일어나 음성의 근원을 찾기 위해 뛰어다닌다. 이런 인류는 조물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위해 화비하며, 심지어 그를 위해 목숨까지 버린다. 인류의 심령이 조물주의 마음의 소리를 깨닫게 될 때, 인류는 사탄을 버리고 조물주의 곁으로 오게 된다. 인류가 몸의 때를 완전히 씻어 버리고 조물주가 재차 자양하고 공급하는 것을 얻게 될 때, 인류의 기억은 회복된다. 그때의 인류는 진정 조물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온 것이다.

2014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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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촉동(觸動): 자극을 받아 움직임.

⑤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⑥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⑦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는 뜻.

⑧성장(省長): 한국의 도지사에 해당함.

⑨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⑩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⑪안받침물: 한 사물을 통해 다른 한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

⑫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