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그리스도의 발표(선집)

목차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각 사람에게 있어 매우 생소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은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며, 그것은 다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어서 하나님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하여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모호한 일이 되었고, 아주 공허한 말이 되어 버렸다. 비록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고,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지, 인류가 어떻게 협력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인류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경영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을 중요시하지 않아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나아가 피조된 것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등등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런 문제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따르는 대열에 많이 끼어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이 단지 복을 받고 재난을 피하고 출세하기 위해서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의의를 분명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 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되는 이 방면의 화제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경영이 사람에게는 아주 심오한 것이지만,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사역마다 모두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이 있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과 관련이 있으며, 인류의 생명과 삶 그리고 인류의 귀숙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과 사람에게 하는 사역은 아주 현실적이고 의의가 있는 것이며, 사람이 볼 수 있고 체득할 수 있는 것이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이 사람에게 있어 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하는 것이 또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그러한 경영이 또 어찌 사람으로 구원받게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오직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경영을 언급하기만 하면, 침묵을 지키고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무미건조한’ 문제는 안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없고, 어떤 유익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설령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것을 건성으로 대할 뿐 결코 보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명의 일부분으로는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단 하나의 목표, 즉 복을 받는 것이다. 그것 외에 그들은 자신의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일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은 가장 정당한 목적이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가치라고 여긴다. 만약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현 상태이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듣기에는 아주 정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동시에 다 화비하고 봉헌하고 본분을 하고 있으며, 또한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오랜 세월 밖에서 동분서주하며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종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향을 바꾸고,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추구 방향도 바꾸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이 얼마나 멀든, 도중에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뛰어다닌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계속 바칠 수 있게 하였을까? 그들의 양심인가?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인가?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려고 하는 그들의 의지인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도 보수를 바라지 않는 그들의 믿음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그들의 충성심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나친 요구가 전혀 없는 그들의 봉헌 정신인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과 대가를 바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바쳤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잠시 논하지 말자.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해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그 속에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이익을 제외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우리는 사람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단지 적나라한 이익 관계로,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로 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일 뿐이다. 피고용인이 수고하는 것은 다만 고용인이 주는 삯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이익 관계에는 혈육 같은 친밀한 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주고 받는 사랑은 없고 베풀어 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만 있으며,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으면서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사이는 없고 영원히 넘어갈 수 없는 깊은 골만 있을 뿐이다. 일이 이미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그런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또 그런 관계가 위급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확신하는데, 사람이 모두 복받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도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민망하고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을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가장 슬픈 일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자신의 경영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경영을 본체만체하는 것이며,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기를 추구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귀숙의 꿈을 만들어 가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귀숙을 얻을 수 있겠는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사람이 모두 자신이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누가 또 자신의 발걸음을 저지하여 더 이상 자신을 위해 무엇을 타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사람과 그에게 순복하기 위해, 그의 경영 사역에 온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날마다 그에게 두 손을 내밀어 구걸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위해 좀 화비하고는 그에게 빚을 받아 내려고 기다리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봉헌을 조금 하고는 그것을 자격으로 삼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하고, 그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 대해서만 말하기 좋아하는 그런 냉혈 인류를 증오하며,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이 기회를 틈타 사리사욕을 채우는 그런 사람들은 더욱 증오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단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회를 빌어 복을 받을 수 있겠는지에만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전심으로 자신의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가지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고,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하며,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도 못한다.

망망한 우주 궁창에 많은 생령(生靈)이 번성하고 있고,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생명의 법칙과 그 불변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죽어서 떠나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가고, 살아 있는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류는 자신도 모르게 물어보게 된다. ‘우리는 왜 살고 있지? 왜 죽어야 하지? 누가 이 세계를 주관하고 있을까? 누가 또 이 인류를 창조하였을까? 정말 대자연의 조화일까? 인류는 정말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을까? ……’ 수천 년에 걸쳐 인류는 이런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인류가 이런 문제에 집착할수록 점점 더 과학을 갈망하게 되었다. 과학이 사람의 육체에 잠시적인 만족과 누림은 가져다주었지만, 인류를 영혼 깊은 곳의 고독과 쓸쓸함, 그리고 감추기 어려운 공포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는 할 수 없었다. 인류는 단지 육안으로 볼 수 있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지식으로 심령을 마비시키고 있을 뿐, 오묘한 비밀을 탐구하려고 하는 발걸음은 저지하지 못한다. 인류는 우주 만물의 주재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더욱이 인류의 최초와 장래에 대해서도 모르며, 어쩔 수 없이 이 법칙 속에서 살아갈 뿐 아무도 벗어날 수 없고,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만물 가운데서, 천우(天宇) 위에서 태고부터 영원까지인 그분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가 지금까지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그분이고, 인류가 지금까지 그 존재를 믿지 않았던 그분이지만, 그는 인류의 선조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생명을 베풀어 준 그분이고, 인류가 생존하도록 공급하고 자양(滋養)하는 그분이며, 인류를 오늘까지 인도한 그분이고, 더욱이 인류가 생존하는 데에 있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그분이다. 그는 만물을 주재하고 있고, 천우 중의 만물과 생령을 주재하고 있으며, 사계절을 주관하고 있고, 풍상설우를 조절하고 있다. 그는 인류에게 햇빛을 베풀어 주고 인류에게 밤의 장막도 가져다주었으며, 하늘땅을 펴고 인류에게 산과 강과 호수와 그 속의 생물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행사와 능력은 무소부재하며, 그의 지혜와 권병(역주: 권세)도 무소부재하다. 이 모든 규율과 법칙은 그의 행사가 체현되는 것이고, 그의 지혜와 권병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는 것이다. 누가 그의 주재를 벗어날 수 있는가? 누가 그의 안배를 벗어날 수 있는가? 만물은 모두 그의 눈앞에서 생존할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재 아래에서 번식하고 있다. 그의 행사와 능력은 인류로 그의 확실한 존재를 시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하고, 그가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를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이 우주를 주관할 수 없고, 더욱이 그 어떤 것도 이 인류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공급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이 하나님의 명정 가운데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고, 또한 하나님이 영원토록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그의 존재와 그의 권병은 결코 인류가 인식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있는지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만이 인류의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알고 있고, 또한 오직 그만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 모든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에게 직접 보여 줄 것인데, 이것도 역시 하나님이 곧 이루려고 하는 사실이다. 인류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살고 또한 하나님의 눈앞에서 죽는다.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또 하나님의 경영으로 인해 두 눈을 감기도 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온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전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인류에게 그의 존재를 알게 하고, 그의 주재를 믿게 하며, 그의 행사를 보게 하여 그의 나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계획이고, 수천 년 동안 경영해 온 그의 사역이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은 그의 경영 사역에 착수하였는데, 그 경영 사역의 핵심은 바로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해 있게 된 것이다. 그의 경영 사역이 일분일초나 눈 깜빡할 사이가 아니고 또한 1~2년도 아니라 수천 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더 많은 것들을 창조해야 하였다. 예를 들면, 해와 달, 각종 생물 및 인류의 양식과 인류의 생활 환경이다. 이것은 하나님 경영의 시작이다.

이어서 하나님이 인류를 사탄에게 내주어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하나님의 첫 시대의 사역, 즉 율법시대의 이야기가 생기게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율법시대가 지속되면서 인류는 그 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져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점점 하나님의 보살핌을 멀리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율법을 지키는 동시에 우상을 섬기고 악한 일을 행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보호를 잃어, 다만 성전 안에서 제단만 지키면서 생활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사역은 일찍이 그들을 떠났다. 설령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율법을 고수하면서 입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신만이 여호와의 백성이고 선민이라 여길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조용히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 언제나 한 곳에서 조용히 떠나는 동시에 또 다른 곳에서 소리 없이 새로 개척한 사역을 하는데, 마비된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은 다만 천일야화이다. 사람은 언제나 낡은 것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삼아 지키면서 생소하고 새로운 것을 보면 원수처럼 혹은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새로운 사역을 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만물 가운데서 오직 사람만이 제일 마지막에 소식을 알게 된다.

여호와가 율법시대에서 하신 역사를 뒤이어 하나님은 조금도 예외 없이, 육신을 입고 두 번째 부분의 새 사역을 시작하였다. 즉,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하여 사람이 되었고 10년, 20년 넘도록 지내면서 신도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말씀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에야 소수의 사람들이 그가 도성육신 된 하나님임을 시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골치 아프게도 뜻밖에 바울이라고 하는 자가 나와서 죽을지언정 완고하게 하나님에게 끝까지 적대하였다. 그는 격살당한 후에 사도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옛 본성을 고치지 않고 많은 서신을 썼다. 불행하게도 후세 사람들은 그의 서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아 누렸고, 심지어 신약 성경에 편입시켜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이 취급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인류에게 성경이 있게 된 이래 가장 추한 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어리석기 짝이 없어 범하게 된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하신 사역을 기록한 내용에 사람의 서신이나 영적 수양으로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사칭한 것이 있어서는 전혀 안 된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이런 것은 모두 화제와 동떨어진 말이니, 본 화제로 돌아오자. 하나님의 제2단계 사역이 완성되었을 때, 즉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하나님은 이미 사람을 죄에서(즉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는 사역을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인류는 주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명의상으로 말하면, 사람의 죄는 더 이상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오는 데에 있어 장벽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약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실제적인 사역을 하면서 미리 겪었고, 하나님 자신이 바로 속죄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육신, 즉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속량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노략당한 후에, 한 걸음 더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그 단계 사역은 율법시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한층 더 깊어진 하나님의 경영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이렇다. 즉,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 조물주는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왜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이런 인류를 사탄에게 내어 주어 사탄이 제멋대로 패괴시키게 한 다음, 또 인류가 완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탄을 버릴 수 있을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영이다. 이것은 듣기에 마치 신화 같고, 또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이 그것을 신화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이 수천 년 동안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발생하였는지 모르고, 또한 이 우주 궁창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발생하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더구나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는 이 물질세계의 배후에 있는 한층 더 기묘하고 무서운 그 세계를 전혀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의의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의의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인류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탄의 패괴를 전혀 거치지 않은 아담과 하와 같은 인류를 원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복하는 한 무리 인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이 인류는 비록 사탄에게 패괴되었지만, 더 이상 사탄을 아비로 삼지 않고,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인식하여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무엇이 추하고 무엇이 거룩한지에 대한 대비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위대함과 사탄의 사악함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인류는 더 이상 사탄을 위해 힘 쓰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사탄에게 참배하지 않고 사탄을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한 무리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의 의의이다. 이번의 경영 사역에서 인류는 사탄이 패괴시킨 대상이고, 동시에 또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며, 또한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쟁탈하는 산물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역을 하는 동시에 한 걸음씩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온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진다……

더 나아가 국도시대(역주: 왕국시대)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사역은 한 단계 더 현실적이면서도 사람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역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의 형벌의 채찍이 점점 더 사람에게 다가가고, 동시에 또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더욱더 뚜렷하게 나타내 사람에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인류는 속량된 후에 정식으로 하나님의 집에 돌아왔다. 원래 잘 누릴 수 있겠다고 여겼던 인류가 오히려 하나님께 호되게 맹공격을 당하였는데, 이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알고 보니 하나님의 자민(子民)이 되려면 이와 같은 세례를 ‘누려야’ 했다. 이와 같은 대우로 사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난 하나님이 비싼 값으로 사온, 잃어버린 지 오래된 그 양인데,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대하실까? 설마 하나님이 그분의 방식으로 나를 비웃고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 수년간의 경력(역주: 체험)은 지나갔고, 연단과 형벌의 고통을 겪은 인류는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비록 지난날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부지중에 사람됨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오래된 깊은 마음을 알게 되었다. 차츰차츰, 사람은 야만스럽고 길들이기 어려운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였고, 여러모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께 사치한 요구를 한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은 되돌리지 못한다. 지난 일들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도 사람의 새 삶의 동력이 되었다. 사람의 상처는 날마다 아물어 가고 몸이 건강해져 사람은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계속 나의 곁에서 지키고 계셨다. 그의 웃는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히 그렇게 마음을 설레게 하며, 그의 마음은 여전히 자신이 만든 인류를 그토록 걱정하며, 그의 두 손은 여전히 처음과 같이 그렇게 따뜻하고도 힘이 있었다. 사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던 그때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이때의 사람은 더 이상 뱀의 유혹을 따르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맞이하며 가장 진귀한 제물을 바친다―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세부적인 부분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깊이 배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그는 여전히 꾸준하게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경영을 얼마나 알고 있든,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도움과 유익은 사람이 다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네가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생명의 공급을 조금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네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는 결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취지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인류를 빼앗아 오는 것이지, 사탄에게 패괴되고 그를 대적하는 인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5년 9월 23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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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②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③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④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