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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상> 세 편에서 발췌한 말씀

1. 요한은 예수가 세례를 받기 7년 전부터 천국의 복음을 널리 전파했다. 사람들은 그가 행한 사역이 훗날 예수가 행한 사역보다 더 중요하다 여겼지만, 어쨌든 그는 선지자일 뿐이다. 요한은 성전 밖에 있는 마을을 돌면서 사역하고 가르쳤지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유대 백성, 특히 가난한 유대 백성들 사이에서 지냈으며, 상류 사회의 사람들과는 거의 접촉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유대 평민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며, 예수를 위해 적합한 사람들과 사역할 장소를 예비했다. 그렇게 길을 예비한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곧바로 십자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는 사람을 택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친히 나서서 사람들이나 사역할 장소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는 그런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적합한 사람이 와서 그를 위해 예비하였다. …요한이 사역한 7년, 즉 천국의 복음을 전파한 7년간 그가 행한 이적이 별로 많지 않다. 요한의 사역은 길을 예비하는 사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사역과 예수가 해야 할 사역은 그와 전혀 무관하다. 요한은 단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게 하였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하여 구원을 얻게 하였을 뿐이다. 요한은 새로운 사역을 하였고 이전에 아무도 간 적이 없는 길을 개척하였어도 단지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행하는 선지자에 불과하다. 요한은 결코 예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예수는 천국 복음을 처음으로 전하지도 않았고 요한이 예비해 놓은 길을 이어 갔지만, 예수의 사역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으며, 예수의 사역은 요한의 사역보다 중요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예비할 수 없다. 예수는 하나님을 직접 대표하여 사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사역한 기간이 얼마나 되든 요한은 선지자일 뿐이고,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 예수가 3년 동안 행한 사역은 요한이 행한 7년의 사역을 초월하였다. 그들이 행한 사역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1)>에서 발췌

2. 예수가 당시에 사역할 때, 일부 사역은 구약성경이나 여호와의 율법시대 말씀과 모세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는 그런 것들을 통해 일부 사역을 행하였다. 당시에 그는 회당에서 가르치고 교훈하였으며,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 그를 적대시하는 바리새인들을 훈계하였고, 성경 말씀으로 그들의 패역을 드러내고 그들을 정죄하였다. 이는 그들이 예수가 행한 모든 것을 혐오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의 수많은 사역이 성경 율법을 따른 것이 아니며, 또한 예수의 가르침이 그들의 말은 물론, 심지어 성경의 선지자의 예언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단지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함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더 많은 말씀을 하여 사람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했다. 그의 사역이 성경을 벗어나지 않아도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행한 사역은 말씀의 사역도,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사역도 아니라 다만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사역이었다. 단지 인류의 속죄제만 되는 것이지 인류에게 말씀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방의 사역, 즉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었다. 그가 비록 성경을 바탕으로 사역했으며, 옛 선지자의 예언으로 바리새인들을 정죄했을지라도, 십자가의 사역은 충분히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성경 옛 선지자의 예언을 바탕으로 사역한다면,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약에는 너희 중국인들의 패역과 죄업은 물론, 죄악으로 가득한 너희의 역사(歷史)도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속 성경에서 소용돌이친다면, 너희는 영원히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인들의 유한한 역사(歷史)로는 너희가 악한지 선한지를 판단하거나 너희를 심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솔직히,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歷史)에 따라 너희를 심판한다면, 너희가 지금처럼 따를 수 있겠는가? 너희가 다루기 힘든 존재인지 알고 있는가? 이번 단계의 사역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정복 사역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성경 이외에 더 말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를 정복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1)>에서 발췌

3. 오늘날의 사역은 완전히 지금 상황에 맞춰 행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을 기초로 하는 것이지 그 범위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당연히 말을 경계해야 하고, 음란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구약의 율법 아닌가? 지금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십계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계명과 율법이다. 그것들을 폐하는 것이 아니다.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의 사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에게 계명과 구약의 율법만을 지키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하라고 한다면, 심지어 여호와가 정한 율법을 외우게 한다면, 너희에게는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한계가 있는 몇 가지 계명을 지키거나 수많은 율법을 외운다고 해도 너희의 옛 성품은 그대로 깊이 뿌리박혀 있어 파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갈수록 타락할 수밖에 없으며 아무도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간단한 몇 가지 계명이나 수많은 율법은 너희가 여호와의 행사를 인식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너희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계명을 외우기만 해도 여호와의 행사를 볼 수 있으며, 여호와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할 수 있다. 하지만 너희는 전혀 그러지 못한다. 구약시대의 몇 가지 계명들은 너희로 자신의 마음을 바치게 하거나 너희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너희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 음부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내가 행하는 정복 사역은 오로지 너희의 패역과 옛 성품만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와와 예수의 타이르는 말씀은 오늘날의 엄한 심판의 말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엄한 말씀이 없다면 수천 년 동안이나 패역한 이 ‘전문가들’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약의 율법은 너희에게서 효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오늘날 심판의 위력은 율법의 위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너희에게는 간단한 율법의 단속보다 심판이 가장 적합하다. 너희는 시초의 인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타락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두 오늘날 사람들의 실제 상황과 자질, 그리고 실제 분량에 근거한 것으로 규례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너희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고 너희의 고정 관념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1)>에서 발췌

4. 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를 믿으면 죄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는 자는 구속받았고, 죄에 속하지 않고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모두 조금씩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 함은 예수에게 온전히 얻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하지 않고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게 된다. …그 당시 사역의 목적은 사람들을 온전케 하거나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한 가지 사역을 행하기 위해 천국의 복음을 가져오고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그의 사역은 모두 끝이 났다. 이 단계에서의 정복 사역은 반드시 더 많이 말씀하고 더 많이 사역하며,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예수가 이전에 행한 사역이나 여호와가 행한 사역의 심오한 비밀을 모두 열어 모든 사람들이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말세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말세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사역이자, 사역을 끝내는 시기이다. 이 단계의 사역에서 너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예수의 구속에 대해 명백히 알게 할 것이다. 그것은 주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너에게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의의와 본질을 깨닫게 하고 예수가 행한 수많은 사역을 알게 하며, 또한 그가 한 수많은 말씀의 의도에서 성경에 대한 너의 맹목적인 숭배까지 모두 명확히 알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가 당시에 행한 것과 오늘날 하나님이 행하는 것들도 알게 할 것이며, 모든 진리와 생명과 길을 다 깨닫게 하고 보게 할 것이다. 예수는 왜 그 단계에서 행한 사역들을 마무리하지 않고 떠났을까? 그 단계의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의 말씀도 끝이 났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 그의 사역 또한 모두 끝이 났다. 그 단계의 사역은 반드시 할 말을 다 하고 모든 사역을 마무리해야만 끝나는 이 단계의 사역과는 다르다. 예수는 그 단계의 사역에서 많은 말씀들을 다 하지 못했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예수의 직분은 말씀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떠났다. 그 단계 사역의 주요 목적은 이 단계의 사역과는 달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이 단계 사역은 주로 마무리를 하고 마당을 깨끗이 하며 모든 사역을 끝내는 것이다. 말씀을 끝까지 다 하지 않으면 사역을 끝낼 수 없다. 이 단계의 사역은 말씀으로 모든 사역을 끝내고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예수는 수많은 사역을 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떠났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잘못 이해했으면서 맞다고 여기고 틀린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마지막 이 단계는 사역을 철저히 끝내고 마무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깨닫고 알게 한다. 사람들 내면의 관념과 속셈, 잘못된 수용 방식, 여호와와 예수의 사역에 대한 관념, 이방인에 대한 견해, 치우치고 그릇된 모든 것을 되돌리고, 사람들이 인생의 모든 올바른 길과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 그리고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면 이 단계의 사역은 끝이 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2)>에서 발췌

5.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세상 창조의 서막이지만, 이 단계의 사역은 사역을 끝내는 종막이다. 시작 단계는 이스라엘 선민들 가운데서 행하면서 가장 성결한 곳에서 천지를 창조했지만, 마지막 단계는 가장 더러운 국가에서 행하면서 세상을 심판하고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첫 단계는 가장 밝은 곳에서 역사했지만, 마지막 단계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역사하며 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광명을 되찾아 오고, 이들을 모두 정복할 것이다. 가장 더럽고 어두운 곳의 자들을 정복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참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고, 마음속 깊이 탄복하게 함으로써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행할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대표적인 의의가 있으며, 이 시대의 사역이 완성되면 6천년의 경영 사역은 완전히 끝이 난다. 가장 어두운 곳의 자들이 정복되면 그 외의 곳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하는 정복 사역만이 대표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중국은 모든 흑암 세력을 대표하며, 중국인들은 육체와 사탄, 그리고 혈기에 속한 모든 자들을 대표한다. 중국인들은 큰 붉은 용에 의해 가장 심하게 타락한 자들이며, 또한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고 인성도 가장 비열하고 더러운 자들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전 인류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자들이다… 너희를 내 경영 계획의 부속물이라고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들의 타락과 더러움, 그리고 불의와 대적, 패역 같은 것들이 중국인들에게서 가장 보편적이고 다양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양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삶과 사상이 낙후하다. 생활 습관과 사회 환경, 그리고 출생 가정이 매우 열악하다. 이들은 모든 것이 뒤떨어졌다. 이들은 지위 또한 낮아서 이곳에서 사역하면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시범 사역을 전면적으로 행하면 이후에 사역을 행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이 단계의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이후의 사역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여 큰 성과를 거두게 되면 온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 또한 완전히 끝나게 된다. 사실 너희들 가운데서 행하는 사역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온 우주의 사역이 성공한 것과 다름이 없다. 너희를 본보기와 표본으로 삼으려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는 패역이면 패역, 대적이면 대적, 더러움이면 더러움, 불의면 불의가 있으며, 이들의 패역은 온 인류의 패역을 대표한다. 이들은 정말 쉽지 않은 상대이기에 정복의 모델로 삼는 것이다. 물론 정복한 후에는 표본과 본보기가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2)>에서 발췌

6. 첫 단계 사역을 이스라엘에서 행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가장 성결하고 심하게 타락하지 않은 인류이기에 그 지역에서 천지를 창조한 것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다. 인류의 조상이 이스라엘 땅에 있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 사역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그들은 가장 성결하였고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사역하여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성경에는 두 시대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는 율법시대의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구약에는 여호와가 당시에 이스라엘인들에게 한 말씀과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에는 예수가 유대에서 행한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인들의 이름은 왜 거기에 없을까? 그것은 이전의 두 사역이 모두 이스라엘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인들이 선민에 속하고 여호와의 사역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심하게 타락하지 않은 인류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앙망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랐으며, 제사장 옷을 입고 제사장 화관을 쓰고서 늘 성전 안에서 그를 섬겼다. 그들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경배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은 최초로 그들에게 사역하였다. 그들은 온 인류의 표본과 본보기에 속하며, 성결한 자와 의인의 표본과 본보기에 속한다. 욥과 아브라함 그리고 롯, 또는 베드로와 디모데 등은 모두 이스라엘인이며, 가장 성결한 표본이자 본보기이다. 이스라엘은 인류 가운데 하나님을 가장 먼저 경배한 나라이며, 그곳에서 배출된 의인 역시 가장 많다. 그들에게 역사한 이유는 이후에 온 땅에서 인류를 더 잘 경영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행적’과 여호와를 경배하면서 행한 의로움을 기록하여 은혜시대에 이스라엘인 이외의 사람들의 표본과 본보기로 삼았고, 그들이 행한 것으로 수천 년의 사역을 오늘날까지 유지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2)>에서 발췌

7. 은혜시대는 예수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예수가 직분을 수행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그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여호와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그를 위해 사역하였다. 구약의 율법시대가 끝났다 함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닌 예수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8. 예수가 재림할 때는 시대가 그에 의해 바뀌었을 텐데, 그를 계속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예수로만 불려야 하는가? 새 시대에는 더 이상 새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는 것인가? ‘사람’의 형상과 특정한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전부란 말인가?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는가? 어떻게 낡은 것을 지키겠는가?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그가 재림할 때에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는가?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는가?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가?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 아닌가?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시대는 이름에 의해 바뀌고, 이름에 의해 대체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으며, 또한 시대성을 띤 그의 성품만을 대표하고 사역을 대표할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 하나를 택하여 전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 여호와의 시대든 예수의 시대든 모두 이름으로 시대를 대표하였다. 은혜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자 예수도 돌아왔다. 그런데 그를 어찌 또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가 어찌 또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오겠는가? 너는 예수가 단지 나사렛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잊었는가? 너는 ‘예수’가 인류의 구속주일 뿐임을 잊었는가?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말세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9. 하나님은 지상에 올 때마다 이름은 물론, 성별과 형상, 그리고 사역도 바꾼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이므로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가 이전에 왔을 때 예수라고 불렸다 해서 이번에도 여전히 예수라고 불리겠는가? 이전에는 남성이었는데, 이번에도 남성이겠는가? 이전에는 은혜시대의 십자가 사역을 했는데, 이번에도 사람들을 구속하여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겠는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는가? 그렇다면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모르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0.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날 수 있겠는가?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는가? 그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성품을 사람들에게 점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은 그의 고유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에게 비밀스러운 것이었고,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품을 조금씩 나타냈다. 이렇게 사역한다고 해서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해서 그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역하는 시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모든 성품을 단계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자신을 알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특정한 성품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그의 성품 역시 조금씩 바뀐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특정 성품, 즉 자신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나타낼 때,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낸다.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다’는 말은 그의 사역을 두고 말한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속성을 두고 말한 것이다. 너희는 6천년의 사역을 어느 한 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만 머물 수 없다. 이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은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1.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라 사탄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은 영원히 사탄일 뿐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 공의로움, 그리고 위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질과 그의 속성은 영원불변한 것이지만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심화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사역을 하며, 피조물에게 그의 새로운 뜻과 성품을 보여 준다. 사람이 새 시대에 새로운 성품의 발현을 보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아 놓지 않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2. 하나님은 시대마다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지금이 말세인 이상, 하나님은 말세의 사역을 하고, 자신이 말세에 지닌 모든 성품을 나타내려고 한다. 말세라 함은 다른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때가 되면 너희는 반드시 재앙을 겪을 것이며, 지진과 기근, 그리고 온역을 겪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낡은 은혜시대가 아니라 다른 시대임을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듯, 하나님은 영원불변한 존재이고, 그의 성품은 영원히 긍휼과 자비이며,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여 그 어떤 사람도 구원하고 또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의 사역에 끝이 있겠는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죄인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제단에 바침으로 구속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가 이미 은혜시대를 끝냈는데, 말세에 또다시 은혜시대의 사역을 행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이는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온 하나님이 십자가 사역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때처럼 긍휼과 자비를 베푼다면, 그가 이 시대를 끝낼 수 있겠는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 시대를 끝낼 수 있겠는가? 시대를 끝내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으로 나타난다. 온갖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만이 시대를 끝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3. 말세가 되었으니 만물은 각기 종류대로 나뉠 것이며,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나누어질 것이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귀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결말은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서만 오롯이 드러나고, 사람은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만 본색이 드러난다. 사람은 악한 자는 악한 자끼리, 선한 자는 선한 자끼리 각기 그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형벌과 심판을 통해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착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 이로써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권능에 복종하게 된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의 타락 성품과 패역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로써 모든 불의한 자들을 강력히 징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품은 모두 시대적 의미가 있다.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아무 의미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다.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는 말세에도 여전히 끝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며 사랑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 없이 사랑하기만 하면서 관용을 베풀고 인내하고 죄를 사해 주며,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언제나 용서만 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지 않는다면, 전체 경영은 언제 마무리할 수 있겠는가? 그런 성품으로 언제 사람들을 인류에게 적합한 귀착지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사람들을 언제나 사랑하기만 하는 한 법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이 무슨 죄를 저지르든 모두 사랑해 주고, 그 누구라도 아껴 주고 감싸 준다면, 공정한 판결은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말세에는 오직 공의로운 심판만이 인류를 부류대로 나뉘게 할 수 있고, 더 새로운 경지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판과 형벌을 지닌 공의로운 성품으로 전체 시대를 끝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4. 전체 경영 사역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은 매우 분명하다. 은혜시대는 은혜시대이고, 말세는 말세이듯,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 때문에 시대마다 뚜렷한 차이가 있다. 말세의 사역을 하여 시대를 끝내려면 반드시 불사름과 심판, 형벌, 진노 그리고 훼멸이 함께해야 한다. 말세라고 하면 마지막 시대를 가리킨다. 마지막이라면 시대를 끝내는 것이 아닌가? 시대를 끝내려면 반드시 형벌과 심판이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를 끝낼 수 있다. 예수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한 것은 그들이 계속 생존하고 계속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잘 생존하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또한 그들이 계속 타락하여 음부, 지옥에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음부, 지옥에서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말세가 도래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멸절시키고 인류를 완전히 훼멸시키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패역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으로는 시대를 끝낼 수 없고 6천년의 경영 계획을 완성할 수도 없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특별한 성품이 있고, 시대마다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자신이 나타내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그의 이름과 사역은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오롯이 갖춰진 새로운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5. 하나님은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사역을 하였고, 지상에서 첫 단계의 사역을 하였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으며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그들 가운데서 사역한 것이다. 그들을 인도한 것은 하나님이 사역할 지상의 근거지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 근거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그가 천지 만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음을 점차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한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지상에서 역사한 첫 성지이다. 하나님이 지상에서 처음으로 역사한 곳은 이스라엘 전역이고, 그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은혜시대의 사역에서 예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었고, 그의 속성은 바로 은혜와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그리고 관용이었다.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이유는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성품은 어떠했는가?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였다. 그는 자신의 긍휼과 자비에 따라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며, 그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인류를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었다. 사람은 오직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누릴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구원과 죄 사함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며,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구약성경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역을 행하였지만,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의 사역은 끝이 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하였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얻으며, 마지막에는 시대를 끝낸다. 모든 시대와 모든 단계의 사역에서 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6. 하나님이 시대마다 하는 사역이 모두 똑같고 모두 동일한 이름으로 불린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겠는가?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려야 하고, 여호와만이 하나님이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인식할 것이다. 혹은 예수만이 하나님이고 예수라는 이름 이외의 다른 이름으로는 불릴 수 없으며, 예수 외에 여호와나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고 예수라 불려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이런 생각은 규례를 지키는 것에 불과하고, 하나님을 어떤 범위 내에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대마다 행한 사역과 불렸던 이름, 그가 지닌 형상과 그가 행한 각 단계의 사역은 지금까지 어떤 규례도 따르지 않고 어떤 제한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이지만 예수이기도 하고 메시아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의 사역이 바뀜에 따라 그의 이름도 변하지만, 어떤 이름도 그를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모두 그를 대표할 수 있고, 시대마다 하는 사역은 모두 그의 성품을 대표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7. 말세가 왔을 때, 네가 본 하나님이 여전히 예수이고, 또한 예수의 모습으로 흰 구름을 타고 와서는 “너희는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금식기도를 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되 제 목숨을 아끼듯이 사랑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알고 인내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행해야만 내 제자가 될 수 있다.”라고 예수가 이전에 했던 말을 한다고 하자. 너희가 이렇게 행하여 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은혜시대의 사역이 아니겠는가? 그 가르침도 여전히 은혜시대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너희가 그런 말씀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것은 여전히 예수가 행한 사역이라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반복되지 않는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겠는가? 너희는 하나님이 행한 사역이 지금 이 수준에 그칠 뿐 더 이상 발전이 없고, 그의 능력도 이게 전부라 새 사역을 행하지도 않고 능력을 다 써 버렸다고 느낄 것이다. 2천 년 전이 은혜시대였는데,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은혜시대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전에는 정말 지혜롭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를 가르치거나 원수를 사랑할 줄만 알았지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영원히 은혜시대에 국한하고, 영원히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여길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의 사역이 되풀이되겠는가?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으며, 너희가 보고 듣게 되는 것은 너희의 상상과 전해 들은 전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8.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의 의미를 지닌 예수라는 이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예수라고만 불려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리 없다고 말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모독인 것이다!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중에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이 많은 이름들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이 완전히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를 전혀 대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그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친히 역사할 때면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시대별 성품을 대표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은 여호와로도, 예수로도, 메시아로도 불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바로 ‘창조주’이다. 그때가 되면, 그가 지상에서 불렸던 이름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가 지상에서 하는 사역이 끝나면서 그의 이름도 따라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물이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는데, 그가 아주 적합하면서도 완전하지 않은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겠는가? 너는 아직도 하나님의 이름을 따지고 묻는가? 아직도 하나님을 오직 여호와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하나님을 오직 예수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다. 단지 사역을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으므로 한둘 혹은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이다. 그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조물인 네가 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의 수용 능력과 인류의 언어에 따라 정해지지만, 사람이 이 이름을 개괄할 수는 없다. 너는 단지 “하늘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신다. 그분은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자신으로서, 참으로 지혜로우시고 너무나 위대하시며, 참으로 기묘하시고 신비로우시며 너무나 전능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 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다. 너는 그 정도밖에 모른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님 자신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말세가 와도 여전히 하나님이 역사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그의 이름도 바뀌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19. 그 당시 예수는 성령이 그에게 지시하고 성령이 행하려는 대로 사역을 한 것이지, 구약 율법시대나 여호와가 행한 사역에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와서 한 사역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른 것도, 여호와가 정한 계명을 따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근원은 하나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대표한 것이자 은혜시대를 대표한 것이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여호와를 대표한 것이자 율법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그들의 사역은 한 분의 영이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행한 사역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표하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표할 뿐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외의 족속들도 인도했을 뿐이다. 신약의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한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하며 시대를 인도한 것이다. 네가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을 바탕으로 사역했을 뿐, 새로운 사역을 하지 않고 완전히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행하였으며 또한 여호와가 행한 사역과 이사야가 한 예언에 따라 사역했다고 말한다면, 예수는 성육신한 것이 아니다. 그가 그런 사역을 했다면, 그는 율법시대의 사도나 일꾼에 불과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20. 네가 말한 대로라면, 예수는 시대를 열 수 없고 다른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이는 성령은 반드시 여호와를 위주로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여호와가 아니라면 성령이 새로운 사역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의 사역을 이렇게 알고 있다면, 모두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과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사역을 했다고 여긴다면, 네가 보기에 예수는 성육신한 하나님인가, 아니면 선지자인가? 이런 논리대로라면 은혜시대는 존재하지도 않고, 예수를 성육신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행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표할 뿐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가 되려면 오직 예수가 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펼쳐야 했다. 또한 이전에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에서 벗어나면서도 이스라엘에서 여호와가 행한 사역과 그의 낡은 규례에 얽매어 행하지도 않아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규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사역을 해야 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21. 하나님은 와서 스스로 시대를 열고 시대를 끝내지만, 사람들은 시대를 펼치는 사역도 시대를 끝내는 사역도 행할 수 없다. 예수가 여호와의 사역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예수는 와서 여호와의 사역을 끝냈고 여호와의 사역을 이었으며, 그 자신의 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이는 그의 시대가 새로운 시대이고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한다. 그들은 각 단계에서 전혀 다른 사역을 했다. 한 단계의 사역은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단계의 사역은 성전 밖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한 단계의 사역에서는 율법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인도했고 다른 단계의 사역에서는 속죄제로 바쳐졌다. 전혀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이 곧 신시대와 구시대의 구분이며, 아주 분명하게 두 시대를 나타낸다. 그들이 사역한 장소와 내용 그리고 목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두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신약과 구약은 곧 신시대와 구시대를 가리킨다.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불렸지만, 한 분의 영이 두 단계의 사역을 한 것이다. 그 사역은 계속 이어진 것이었다. 이름과 사역의 내용이 다르기에 시대 역시 다르다. 여호와가 오면 여호와의 시대이고, 예수가 오면 예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일단 오게 되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그 단계의 새로운 길이 하나의 이름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함을 의미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6천년 경영 계획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날마다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길과 신기원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역이 나타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22. 사람들의 상상대로라면 예수가 다시 와야 하고 말세에도 여전히 예수라고 해야 한다. 또한 흰 구름을 타고 와서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임해야 한다. 그러면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성령이 낡은 것을 계속 따르겠는가?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관념에 불과하고,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상상하는 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원칙과 하나님의 뜻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어리석거나 멍청하지도 않다. 그의 사역은 네가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이 행함과 생각대로라면, ‘예수는 흰 구름을 타고 오거나, 너희 가운데 임한 그를 너희가 본다거나, 흰 구름을 타고 와서 너희에게 자신을 예수라고 말하거나, 너희가 그의 손에 난 못 자국을 보고서 예수임을 알아보거나, 다시 너희를 구원하여 능력이 매우 큰 하나님이 되거나,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에게 새 이름을 주고 흰 돌을 하나씩 준 다음 너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거나 천국으로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사람들의 관념이 아니겠는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람들의 관념대로 역사하겠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관념에 반하여 역사하겠는가? 사람들의 관념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닌가? 사람은 모두 사탄에 의해 타락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사람들의 관념대로 한다면 하나님이 사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조물과 같은 부류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피조물은 사탄에 의해 이 지경까지 타락해 모두 사탄의 화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탄의 것에 따라 행한다면 사탄과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대로 행하지도, 너의 상상대로 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리라고 한 것을 그가 친히 한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인 것은 맞지만, 너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신비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준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인가? 성령이 지시한 것인가, 아니면 너의 관념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관념과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사야가 한 말일지라도 네가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감히 그의 말을 해석할 수 있는가? 이사야의 말도 해석하지 못하면서 어찌 감히 예수의 말씀을 해석하는가? 예수가 대단한가, 아니면 이사야가 대단한가? 예수가 대단한데, 왜 그가 한 그 말씀들을 모두 해석하려 하는가?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미리 너에게 모두 알려 주겠는가? 피조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늘의 사자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다. 지금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3단계 사역을 인식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23. 여호와부터 예수까지, 그리고 예수부터 이 단계의 사역까지 세 단계 사역이 이어져 오면서 완전한 경영이 되었는데, 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은 끊임없이 역사하면서 인류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며, 시대를 펼치는 존재이자 시대를 끝내는 존재이다. 3단계 사역은 시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지만, 한 분의 영이 행한 것임에 틀림없다. 3단계 사역을 따로 갈라놓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이제 첫 단계부터 지금까지 행한 사역은 의심할 바 없이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고,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임을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3)>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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